山行..그리움따라 459

아! 지리(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노루목,왕복16.6K, 7시간)

“아! 지리산 고프다.” 지난 1월, 천왕봉을 갈 기회가 있었으나 안과 수술로 인하여 쉬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진 '코로나19'로 인한 모든 산악회의 휴등.... 지난 5월 1일, 지리 종주길이 열렸지만 어느덧 20여일이 지나가고... 오늘 홀연히 부랴부랴 성삼재로 달린다. ‘아! 지리산이 고파서...’ ▲'성삼재' 160K를 달려왔습니다. 설레는 마음.... ▲ 2,100년 전 마한의 한 부족이 달궁으로 피난을 와서 궁전을 세우고 성이 다른 세 명(姓三)의 장군을 보내 남쪽 통로를 지키게 했다는 곳. ▲ 지리산 관통도로(861번 지방도), 전북남원과, 전남구례의 경계이지요 지리종주시 설렘으로 신발끈을 조이고 03:30부터 치고 나갔던 곳... ▲반대방향으로는 만복대-고리봉-바래봉... 서북능선은 이어지..

충북보은.속리산(俗離山.1,058m/법주사주차장-오리숲-세조길-복천암-문장대-신선대-경업대-세심정-세조길-법주사-오리숲-주차장(14K. 6H)

우리 고향 충북, 최고의 자랑 속리산(俗離山/1,058.4m)! 이 산에 관련한 인물이 많다. 최치원, 공민왕, 이성계, 세조, 송시열 그리고 황진이에 관한 시를 써서 파직당한 임제林悌가 다녀갔다. 그 중 속리산이 길러낸 영웅호걸 임경업(林慶業, 1594~1646)장군을 보자. 조선 중기의 명장인 임경업은 속리산에서 무예를 익혔다. 어릴 적부터 무예가 특출했고, 손자병법, 사마법등 병서에도 능통했다.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이 몰락한 후, 그는 속리산에 들어와 무예를 익혔는데, 대표적인 장소가 ‘경업대’다. 그가 무예를 연마한 경업대는 속리산에서 가장 기이한 모양의 영웅바위다. 경업대위 능선에는 입석대가 기묘하게 서있는데, 임경업이 7년 수도 끝에 내공을 보여 주기 위해 누워 있던 바위를 세웠고, 내 어릴 ..

경남함안.백이산(伯夷山369m)/ 주차장→백이산→숙제봉 반환→갈림길→공룡발자국 1·2·3→약수터→서재골 못→도천재→평광숲→고인돌→주차장(원점회귀.8km. 4H) & 서산서원, 어계 생가

백이숙제(伯夷叔齊) 중고교 시절 한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두 형제는 BC 1100년경 중국 은나라 말, 주나라 초엽에 살았던 선비였다. 그들은 은나라 제후 고죽군(孤竹君)이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고죽군이 나라를 숙제에게 물려주려고 했고 숙제는 그것이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사양하자 백이 역시도 받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나라를 떠나 문왕의 명성을 듣고 주(周)나라로 갔으나, 이미 문왕은 죽고 그의 아들인 무왕이 왕위에 올라 은(殷)나라를 정벌하려 했다. 이에 백이와 숙제가 그 정벌의 적절치 못함을 간했으나 무왕이 듣지 않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주나라의 녹을 받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들어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는 고사가 되었고 그 이후 백이숙제는 지조를 지킨 청절지사(淸節之士)..

경남사천. 와룡산(臥龍山801.4m/용두공원 - 와룡마을 – 도암재- 새섬바위- 민재봉-기차바위-사자바위-와룡마을-용두공원/11K. 5H)

삼천포로 널리 알려진 사천. 사천은 왕의 고을이다. 고려태조 왕건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 전국의 호족세력을 규합하는 수단으로 무려 29명의 부인을 얻어 아들 25명, 딸 9명, 총34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중 한 왕자가 왕욱((王郁)이고 그의 아들 ‘왕순’은 훗날 6대왕 현종이 되었는데 경남 사천의 고자실(학촌) 마을과 왕욱(王郁)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는 권력을 남에게 내주기 싫어 근친혼이 성행했는데 헌애왕후가 자식이 없으므로 궁궐을 나가 사가에 살았고, 이웃에 살던 왕욱(王郁)과 자주 왕래하다보니 정분이 났다. 이 일로 왕욱은 두 달된 아들 왕순과 사천으로 귀양을 와 서로를 그리며 왕래하면서 아들을 되돌아보며 갔다하여 ‘고자실’ 마을이 되었다 또 하나의 왕의 자취는 태실(胎室)!이..

경남창녕.우포늪(牛浦/생태관-숲탐방로1길-징검다리-목포제방-제2전망대-숲탐방로3길-주매제방-사지포제방-대대제방- 생태관주차장(8.4K.3H)

궂은비 내리던 날 모든 산행 계획이 취소되고 언젠가 홀연히 비오는 날 걷겠다던 거기를 나섰다. ‘우포늪’ 람사르 협약으로 더 유명해졌다. 까마득한 1억 4천만년 전의 원시습지, 축구장의 210배. 여의도의 4배.. 전체 면적 8.54㎢, 물을 담은 습지 면적 70만 평. 그래서 창녕 우포늪은 늘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국내 최대의 자연늪인 우포늪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대로, 수 많은 생물들의 보금자리요 가시연꽃등이 4계절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밑둥을 반쯤 늪 아래로 담겨 있는 나무는 아마존 원시림에라도 들어선 듯한 신비와 경이로운 풍경을 나타낸다. 특히 해질녁 노을이 우포늪을 감쌀 때, 비가 오거나 눈이올 때면 믿을 수 없는 이상한 나라로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 비오는 날 ..

경남창원.광려산(匡廬山·752m), 대산(大山, 726m/광산사주차장~능선 삼거리~삿갓봉~광려산 정상~~대산 정상~임도-주차장( 원점회귀/ 11㎞.5H)

한중록(閑中錄). 조선의 3대 궁중 수필이 있다. 하나는 인현왕후전이고, 어느궁녀가 쓴 계축일기, 그리고 1795년(정조 19)에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한중록이다. 혜경궁 홍씨가 환갑 때 첫 편을 썼고, 그 후 세 권을 더 쓴 총 네 권의 수필집인데 후에 여러 필사본이 발간되어 한문용, 국문용, 국한문혼용등으로 출간되어 널리 읽혔다. 저자는 1735년생이니 지금 250살쯤 되었다.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곱게 자랐으나 8세에 사도세자의 ‘비’가 되었고, 시아버지 영조와 남편 사도세자와 비극적 갈등 속에 그 엉청난 정신적 고통, 그리고 27세 때 결국 남편 사도세자는 뒤주에 갖혀 8일만에 죽었다. 아들 ‘이산’과 함께 폐서인이 되어 쫓겨났으나 아들은 궁궐로 다시 돌아가 생이별 했다. 다행히 아들 이산이..

경남통영.벽방산(碧芳山·650.3m/안정사주차장→가섭암→의상암→의상봉→정상→안정치→천개산→갈림길→안정사 7km/4H)

필자가 ‘국민학교’를 다녔던 60년대는 ‘맹호’,‘청룡’,‘비들기’부대등의 월남전과 '애야 뛰지마라 배꺼질라 ‘보릿고개’의 서러움이 아련한 시절이었다. 보리추수가 아직 먼 봄 날, 우리 엄마는 들로 산으로 쑥. 냉이.달래 돗나물.씀바귀,원추리. 벌금자리등 나물 캐는 일이 일과였고, 멀건 ‘나물죽’ ‘쑥털털이’등을 먹어야 했다. 그 시절 들로 산으로 다니며 먹었던 기억은, 소나무 새 줄기를 잘라 겉 껍질을 살작 벗겨내고 아이스케키 빨듯 속살을 먹었고, 칡뿌리, 참꽃, 찔레, 그리고 할아버지 묘의 묘갈과 봉분에 달짝지근하게 배가 오른 ‘삘기’가 많아, 햇살 좋은 날이면 그 근처에서 종일 그걸 뽑아먹었다. 또 다른 기억은 '송화 가루(松花粉)'다. 봄철에 소나무에서 나오는 꽃가루.곤충을 이용한 꽃들과는 달리 ..

경남고성.무이산(武夷山·545.6m/무선저수지-문수암-무이산-수태산-약사전-돌구산-저수지(8.5K. 4H)& 상족암

70년대 대학시절, 미 하버드, 영 에딘버러, 독일 튜빙겐 박사 교수님들을 대하노라면 옛 공자님 대하듯 그 학문적 깊이에 가히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그 만큼 당시에는 외국 경험을 가진 이는 딴 세상 사람 같았고 본인들도 그런 자부심과 그 나라의 자랑을 무슨 하늘나라 이야기하듯 경이롭게 전했다. 그러니 일제 강점기 시절, 앞선 문명의 일본을 다녀온 이들은 그 때부터 친일파가 되었고 그 나라을 무조건 동경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옛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중국을 다녀온 이는 평생토록 그 나라의 강산을 흠모했고 우리나라의 좋은 풍광을 지닌 곳곳마다 중국의 산 이름, 바위 이름을 붙여 찬양한 것을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당시 중국지명 따라하기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의 산이 무이산이다. 무..

경남고성.거류산(巨流山,570.5m)/엄홍길기념관-문암산-거류산성-거류산-거북바위-장의사갈림길-엄홍길기념관(8K, 4시간)

‘좋은 시절 다’갔다‘는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공허, 이걸 학자들은 ’실존적 진공상태‘라 하는데 지금까지 추구해오던 가치가 상실되면 요즘말로 ’싱크홀‘, 가슴에 ’텅빈 구멍‘이 생긴다. 이 때부터 불안과 위기가 찾아오고, 그 결과 점점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인생의 ‘허무’, 그리고 ‘우울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는 거다. 이것을 어찌해야 하는 걸가? 칼.융(CC.Jung)에 의하면 지금까지 ‘외부적으로 향했던 생명에너지’가 내면으로 바뀐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리치료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런 ‘중년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적인 가치’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적, 영적인 면에서 적극 활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1.사랑하라는 것...

경남거제(계룡산(鷄龍山·570m /거제공설운동장-굴다리-돌탑-팔각정-정상-절터- 의상대- 미군통신대 유적-고현육교(5.0Km. 4H)

거제포로수용소(巨濟捕虜收容所) 한국전쟁 당시 사로잡은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에 설치되어 1953년 7월까지 운영된 지금의 거제시 고현동과 수양동 일대에 위치한다. 거제도는 육지와 가까워 포로를 수송하기 수월하면서도, 육지와의 교통수단이 배 밖에 없어서 포로를 격리 수용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이다. 북한군 포로 15만과 중공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의용군과 여성 포로도 3,000명이 있었다. 이들은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친공 포로 간에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하였다. 급기야 수용소 소장이었던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었다가 석방되는 일까지 이어졌다. 휴전회담에서 북한은 포로 전원을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는데 이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