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상북도 45

대구군위. 아미산(峨嵋山737m/주차장~앵기랑바위~돌탑~무시봉~아미산~756봉~밭미골~인곡리 마을회관( 5H)

‘군위(軍威),그리고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오늘 우리는 군위군 삼국유사면을 간다. 군위는 대구공제공항 건설 관계로 23년7월 1일부터 경북에서 대구광역시 소속으로 변경된 인구 2만3천의 1읍 7면의 작은 고을이다.경북 소속 이었을 때는 경북의 한 복판이었다.  북으로 의성, 동으로 청송과 영천, 남으로 대구, 서쪽으로는 구미와 칠곡과 접했다.   군위에 관련된 유명한 인물이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사랑과 나눔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이 여기 출신으로 그를 기념하는 공원등이 생겼고, 또 한 분은 삼국유사의 ‘일연’(一然)스님이다.  전국에 시군 이름을 최근에 바꾼 예는 많다. 영원군의 한반도면, 김삿갓 면,무릉도원면, 그리고 경북영주가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하려다가 단양군쪽의 거센 항의를 받고 대법원 판결까지..

경북청도.지룡산(池龍山·659.2m/신원3거리-복호산-지룡산-산성-내원봉-삼계봉-사림암-수월교- 운문사-주차장.13K,6H)

오랜 세월이 흘렀다. 70년대 초 고교 2년시절, 600명 수학여행 단은 충북선 청주 역에서 경부선 조치원역으로 왔고, 거기서 다시 부산역으로 종일 달렸다, 작은 역까지 모두 섰던 비들기호를 타고...  그 시절 청도 역은 주변으로 감이 유난히 많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청도, 산이 푸르고 물이 맑으며, 인심이 후하다는 이름 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으로 그래서 삼청(三靑)의 고장으로 불린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청도의 자랑은 청도의 역사와 문화유산의 대표, 운문사(雲門寺)를 빼 놓고 말할 수 없으리라. 어느덧 발간 된지 30년이 넘은 ‘우리문화유산답사기 제 2권은 운문사와 그 주변에 대하여 상.중.하, 3장으로 설명하는데 거기서 유홍준(兪弘濬)교수는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가지를 이야기 ..

경북경주.단석산(斷石山 827.2m / 공원지킴터- 신선사- 마애불상군 - 단석산 왕복 4K. 3H/ 박목월 생가, 운문사 답사

‘김유신’ 산청 ‘동의 보감촌 뒷산’에는 ‘왕이 머문 산’, ‘왕산(王山)과 필봉산(筆峰山)’이 있고 그 산의 너머 기슭에는 돌을 쌓아 조성한‘구형왕릉’이 있다. ‘구형왕(仇衡王)’은 가락국 시조 김수로의 10대손으로 521년 제10대왕으로 등극했지만 11년 후 532년, 백성을 전쟁 속에 밀어 넣을 수 없어 조용히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양위하고 식솔들만 거느리고 거기에 기거하다가 ‘나라 잃은 죄와 원통함이 이리도 큰데 내 어찌 편히 흙에 묻히겠는가. 나의 무덤은 돌로 만들어라"’ 유언을 남겼다. 그는 항복할 때 아들 셋을 데리고 진골에 편입 되었는데 그 아들 중 김무력은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장군 이였으며, 김유신의 조부가 된다. 그 김무력의 장남이 김서현인데 왕족 처녀와 사랑에 빠졌고 극심한 반대에..

경북청송.주왕산(周王山,722m 절골탐방지원센터~대문다리~ 삼거리~가메봉~후리메기삼거리~절구폭포~용추협곡~대전사~상의 주차장 (14k 6H)

주왕산周王山 실패한 혁명가 주왕의 비극적 한이 서린 전설의 산이다. 과연 주왕은 누구인가? 여러 설이 있는데 3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당나라 ‘후주천왕’을 자처한 주왕이 혁명에 실패하고 이 곳에 은신하며 후일을 도모했는데 당이 신라에게 주왕을 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신라의 마장군 형제들이 토벌에 나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설이다. 다음으로, 신라 태종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여기에 숨어들었고 사후에 주원왕으로 불리다가 주왕이란 이름으로 주왕산이 되었다는 설. 그러나 삼국사기나 고려사에까지 이 산 이름이 석병산, 대둔산등로 불렸고 주왕산은 조선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나 나오는 것으로 신빙성을 의심 받는다. 세 번째로는 고구려 장수왕이 3만을 이끌고 한성을 공격 했고 백제의 개로왕은 ‘문..

경북청도. 가지산(迦智山.1240m)운문령-쌀바위-가지산(1,240m)-중봉-석남터널/ 8K.5시간)

“쌀바위의 전설‘ ‘이솝우화’, 이 말과 함께 ‘이솝’을 이야기 하면 아마 오늘을 사는 이 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거다. 그러나 이솝이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시대 사람이냐 물으면 글쎄 유럽 어느나라 인가? 한 100년전쯤 사람인가?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 우리에게 ‘이솝’(Aesop)으로 알려져 진 ‘아이소포스(Aisopos)’, 그는 기원전 5세기에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노예로 팔려 그리스로 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지금으로 보면 2,500살쯤 나이먹은 그리스 사람이다. 그의 우화집은 어른들을 위한 풍자로 대략 260편에서 350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있는데 그 내용 또한 모르는 이 없으며 사람은 욕심이 지나쳐서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교훈을 준다. 이와 비슷..

대구 달성. 도동서원(道東書院), 그리고 곽재우 장군 묘

도동서원(道東書院) 도동서원은 도산, 옥산, 병산, 소수서원과 더불아 조선5대 서원으로 조선 5현(五賢)중 1위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모신 서원이다. 김굉필은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되고 갑자사화 때 사사(賜死)당한 사림파의 문인인데 스승이 김종직, 벗이 정여창, 김일손등이며 제자로 조광조, 이장곤등 쟁쟁한 개혁가들이다. 그의 집안은 원래 황해도였으나 증조부가 현풍 곽씨와 결혼하며 현풍으로 내려와 현풍 사람이 되었고 그의 할아버지가 개국공신 조 반의 사위가 되어 서울 정동에 살게 되면서 김굉필은 단종2년(1454)에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호탕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던 그는 19세에 순천 박씨와 결혼하면서 합천군 야로에 살게 되는데 개울 건너에 한훤당..

경북 고령. 개경포 너울길(개경포공원-개호정- 개산잔 시비- 전투 전적지~어목정 유허지-부례관광지-임도-청운각-개경포전망대-개호정/11㎞, 4H) & 고분군, 박물관, 우륵박물관.

오래전 ‘살아있는 한국역사 스페설’ 30시간 원격연수를 받은바 있는데 그 중 ‘팔만대장경’에 관하여 아주 감동적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다. 지금부터 750년전, 고려사람들은 목판 8만여 장에 글자 수 ‘5천만자’로 깨달음의 진리를 새겨 넣었는데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이지만 경판 수가 8만여 장에 달한다하여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8만장의 경판.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분량일까? 경판 한 장의 두께는 4cm, 따라서 8만장을 전부 쌓으면 그 높이는 3,200m에 달하며 백두산(2744m)보다도 훨씬 높은 셈이다. 글자 수를 한번 보자! 경판엔 漢字가 빼곡히 앞 뒷면에 모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한 면의 글자 수는 대략 300자 정도, 전부 합치면 5천만 자나 된다. 흔히 우리가 뜻을 생각하면서..

경북구미.금오산(金烏山·976m/주차장-해운사-대혜폭포-할딱고개-오형돌탑-마애불-약사전-정상-폭포-도선굴-채미정-주차장.9K, 7H).

우리역사 어느 순간이든 고통과 변란의 아픔이 없으리오마는 그 중 가장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한 때는 고려시대이다. 918년 왕건이 나라를 세운 후, 1392년 조선 건국으로 멸망, 474년을 존속한 고려는 끝없는 전쟁과 무신들의 통치로 이어졌다. 특히 1392년 조선건국으로 고려가 멸망할 무렵, 많은 충신들도, 나왔는데 그 중 우리는 여말삼은(麗末三隱) 또는 고려삼은(高麗三隱)이라 불리는 세 충신을 기억한다. 그 삼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을 말한다. 이 세 충신들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시조들을 남겼는데 이색은 ‘백설(白雪)이 자아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석양(夕陽)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경북달성.비슬산(琵瑟山·1,083m/유가사→도성암→천왕봉→마령재→월광봉→대견사→대견봉→용리사지→ 휴양림→주차장.11㎞, 6H)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대표하는 역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140년 뒤에 쓴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일연(一然, 1206-1289) 그는 지금의 경북 경산에 태어났고, 9세에 광주 무량사에서 공부했으며, 5년후 설악산의 진전사로 출가하였다. 1227년에 승과에 장원급제하여 공무원이 된다. 당시는 사찰에서 국가업무를 대행했기에 대선사, 왕사, 국사등의 지위가 있었으며 과거 시험을 통하여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공무원인 승려가 어찌하여 역사서를 썼을까? 설민석은 ‘우리나라 역사중 내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시절을 꼽으라면 고려라’고 했다 고려는 백성들이 살기에 최악의 시대였다, 원나라의 간섭과 긴 몽고와의 전쟁, 왕은 강화도로 피난 갔고 원 황제의 사위가 되어야 했으며, 10..

경북문경(문경새재선비길/ 박물관 주차장-제1관-제2관-제3관문(왕복 15K, 4.5H / &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선석사)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자수려한 고장 문경, 거기에 유명한 문경새재가 있다. 하도 힘들어 새도 쉬어간다는 뜻이라는 설, 억새풀(새)이 우거진 고개라 그 이름이 붙었다는 설,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에 새 길이 났는데 그 새로 난 길의 고개라는 설등 다양하다. 어떤 연유로 이름이 붙었든 태종 13년(1413)에 개통된 이 고갯 길은 근대 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영남지역에서 경기, 서울지방으로 가던 국도 1호선과 같은 영남대로로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 요충지 임에 틀림없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 시험을 보러 오가기도 했고, 수 많은 물자와 통신이 오갔다. 특히 임지왜란 때 영남 내륙을 지나 올라오는 왜군과 맞선 신립장군은 새재를 버리고 충주 달천에 배수진을 쳤지만 너무나 쉽게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