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 459

대구군위. 아미산(峨嵋山737m/주차장~앵기랑바위~돌탑~무시봉~아미산~756봉~밭미골~인곡리 마을회관( 5H)

‘군위(軍威),그리고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오늘 우리는 군위군 삼국유사면을 간다. 군위는 대구공제공항 건설 관계로 23년7월 1일부터 경북에서 대구광역시 소속으로 변경된 인구 2만3천의 1읍 7면의 작은 고을이다.경북 소속 이었을 때는 경북의 한 복판이었다.  북으로 의성, 동으로 청송과 영천, 남으로 대구, 서쪽으로는 구미와 칠곡과 접했다.   군위에 관련된 유명한 인물이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사랑과 나눔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이 여기 출신으로 그를 기념하는 공원등이 생겼고, 또 한 분은 삼국유사의 ‘일연’(一然)스님이다.  전국에 시군 이름을 최근에 바꾼 예는 많다. 영원군의 한반도면, 김삿갓 면,무릉도원면, 그리고 경북영주가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하려다가 단양군쪽의 거센 항의를 받고 대법원 판결까지..

전남해남. 두륜산(頭輪山,703m/ 쇄노재-위봉-투구봉(왕복)-구름다리-두륜봉-만일재-북대암-대흥사/6H)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 나의 학창시절은 ‘글씨 잘쓰는 사람과 글 잘 쓰는 사람’을 몹시 그리워했고 그리 되고자 노력했다.되돌아 오늘에 보니 이 것도 저 것도 이루지 못한 회한이 남는다.  전남 해남의 두륜산 아래에는 2018년 유네스코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와 더불어 7대 산사로 등재된 ‘대흥사’가 자리한다.  거기에는 조선 최고의 명필 두 사람의 현판이 있는데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대웅보전(大雄寶殿)’과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1786-1856)의 ‘무량수각(无量壽閣)’ 현판이다.  작가 정강철 장편소설 ‘소설 원교-말 없는 붓, 외로운 먹’이란 소설에 의하면 이광사 집안은 조선 왕족 혈통의 명..

충북괴산(천장봉.등잔봉/속리산둘레길 7구간. 선유대~연하협구름다리~산막이옛길~천장봉-등잔봉~지곡리~쌍곡삼거리. 15K)

“조선의 3대화가‘ 내 고향 충북은 11개 시군에 160만 인구를 가졌다. 북부에는 충주, 제천, 단양이 있고, 남부엔 보은, 옥천, 영동이 있으며, 중부지역은내 고향 청주와, 진천, 증평, 음성, 괴산이 자리한다.   오늘 우리는 괴산(槐山)을 간다. 인구 3만6천의 괴산은 백두대간으로 문경과, 속리산 국립공원을 접한 산자수려한 고장이다.   괴산의 인물로는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꼽을 수 있고, 이 곳 연풍에서 현감으로 3년간 봉직한 단원 김홍도를 소개할 수 있겠다.  조선의 3대 화가가 누구냐 묻는다면 학자들마다 제각각이다.어떤 이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이라 하고, 어떤 이는 장승업 대신 겸재 정 선을 말하거나, ..

경남산청.감암산(甘闇山 834m)상법교-금강폭포-병바위릿지-탕건바위-암수바위왕복-배너미봉-감암산-칠성바위-누룩덤-매바위- 대기마을8.5K(5H)

‘남명 조식’ 예로부터 추풍령과 죽령을 있는 고개의 남쪽 땅을 ‘영남지방’이라 했고그 영남지방을 다시 서울서 봤을 때 낙동강 동쪽을 좌측이라 하여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 했다   지금부터 약 500년전인, 1501년, 이 영남 땅 우도와 좌도에는 두 명의 걸출한 학자들이 탄생했는데 안동출신 퇴계 이황(1501~1570)과 합천 출신 남명 조식(1501~1572)이다.  두 사람은 매우 뛰어난 성리학자였지만 학문적 경향은 매우 달라서, 이황이 성리학 이론을 정교히 하여 개인 수양을 쌓는 공부를 중시한 반면 조식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실천하는 삶에 더 비중을 두었다.  이황의 학문은 당대뿐 아니라 조선시대 내내 많은 선비들에게 영향을 주며 이른바 ‘퇴계학파’라는 큰 학맥을 형성했으며, 지금도 국내뿐 ..

충북제천.동산(東山·895.5m/무암지-무암사-남근석-성봉 왕복-무쏘바위왕복-장군바위-무암지 주차장 5.5H)

울고넘는 박달재’ 오늘날의 도로나 교통수단은 더 이상 ‘고개’를 힘들고 고달픔으로 생각하지 않게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읍내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어디서나 크고 작은 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했고 따라서 모든 문학적 표현은 인생의 힘든 고비를 고개에 비유하곤 했다.  고개는 령(嶺), 치(峙), 현(峴),재등으로 표현한다. 대관령, 미시령, 진부령, 육십령, 정령치, 아현, 성삼재, 코재등의 지명이 대표적이다,   고개는 이별의 한이 서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역사의 고비마다 끌려가는 아들, 딸이 넘었던 곳도 고개요, 삶의 터전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이들도 고개를 넘었고, 시집가는 누나의 울음의 이별도 고개를 넘었으며 무명 치마로 눈물을 훔치던 우리네 엄마들의 아픈 가슴도 고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