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남.부산.울산

경남통영.벽방산(碧芳山·650.3m/안정사주차장→가섭암→의상암→의상봉→정상→안정치→천개산→갈림길→안정사 7km/4H)

산꾼 미시령 2020. 3. 30. 09:59

자가 국민학교를 다녔던 60년대는 맹호’,‘청룡’,‘비들기부대등의 월남전과

 

'애야 뛰지마라 배꺼질라 보릿고개의 서러움이 아련한 시절이었다.

 

 

 

 보리추수가 아직 먼 봄 날, 우리 엄마는 들로 산으로 쑥. 냉이.달래 돗나물.씀바귀,원추리.

 

벌금자리등 나물 캐는 일이 일과였고, 멀건 나물죽’ ‘쑥털털이등을 먹어야 했다.

 

 

 

 그 시절 들로 산으로 다니며 먹었던 기억은, 소나무 새 줄기를 잘라 겉 껍질을 살작 벗겨내고

 

아이스케키 빨듯 속살을 먹었고, 칡뿌리, 참꽃, 찔레, 그리고 할아버지 묘의 묘갈과 봉분에

 

달짝지근하게 배가 오른 삘기가 많아, 햇살 좋은 날이면 그 근처에서

 

종일 그걸 뽑아먹었다.

 

 

 

 또 다른 기억은 '송화 가루(松花粉)'. 봄철에 소나무에서 나오는 꽃가루.곤충을

 

이용한 꽃들과는 달리 바람을 이용해 수분하는 풍매화인 소나무는 대량의 꽃가루를

 

만들어 내어 바람에 날려 보내 수분을 시도한다.

 

 

 

 

 

 송화 가루는 두 개의 큰 공기주머니로 구성되어 바람에 잘 날 수 있는 노랗고 연두빛의

 

고운 가루였다. 노랗게 내려 앉은 가루를 모아 물에 침전시켜

 

송진과 독을 제거한 후 다식이나 면을 만들 때 섞었다.

 

 

 

 오늘날은 이 송화다식이 궁중음식으로 유명하고, 술이나 면에 섞어 먹기도 한다.

 

이 송화 가루는 봄철에 코와 기관지로 들어와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비온 날 마당가에 노랑케 얼룩이 남는다 오늘도...

 

 

 

 그런데 소나무 줄기의 속살이나 송화가루을 많이 먹으면 요즘말로 변비가되었고

 

이 변비가 오래되면 돌처럼 되어 나올 때 ‘X구멍이 상한다

 

그래서 가난을 설명할 땐 ‘X구멍이 찍어지게 가난했다라고 말한다.

 

 

 

 오늘 벽방산 기슭 안정사주변에는 솔숲이 유명하다. 소나무가 겨울바람에

 

춤을 추는 듯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은 이를

 

한산무송(寒山舞松)’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솔숲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조선 광무 4년인 1900년 숲을 보호하기 위해

 

안정사에 금송패(禁松牌/경남문화재 284)를 내렸다.

 

 

 

 금송패는 소나무 벌목을 단속하고 감시하는 권한을 부여한 조선왕실의

 

신분증으로 안정사에만 3개가 남아 있다.

 

 

 

 동시에 송화봉산(松花封山)’도 함께 내려졌는데 소나무만 보호한게 아니라

 

송홧가루도 보호했다는 의미다. 송홧가루는 왕실로 가져 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 했던가?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봄이 찾아온 강산을

 

마음껏 누비지 못한다. 등산 동호인은 이런 시기라도 몸이 근질근질해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배낭을 꾸려 근교의 산이라도 찾아 떠난다.

 

 

 

 조용한 직장 동료 세 분을 인도하여 어느덧 4년전 찾찼던

 

벽방산(碧鉢山)’!

 

거기를 간다.

 

 

 

속히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이 나라에 다시 찾아오기를 기도하며

 

그렇게 걸었다.

 

 

 

 

▲ 2016년 3월 27일 사진...

 

어느덧 4년이 흘렀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 볼품은 없지요.

 

 

 

 

그렇게 햇살 좋은 날

 

포근한 봄 기운 속에 '안정사' 주차장을 떠나

 

,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시동도 끄기도 전에

 

달려온 근무자는 요금 2,000원을 달라고.

 

 

 

 

▲ 안정사를 중심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7K를 걸을 예정입니다.

 

 

 

 

▲ 잎은 산딸기 같은데

 

꽃을 보면 아닌듯도 하고.

 

 

 

 

▲ 꽃은 아름답고

 

떨어진 꽃은 아련하고.

 

 

 

 

▲ 앵두... 동네처녀 바람 날 때도

 

이 즈음인가 봅니다.

 

 

 

 

명산에는 '대찰'이 있다던가?

 

벽방산은 안정사를 비롯,

 

가섭암, 의상암,은봉암,천개암등 여러 암자가 있고

 

 

 

 

봄 꽃 속 건너다 뵈는 '가섭암'이 보이고..

(경남유형문화재 471호).

 

▲ 봄 햇살 아래 평온하고 아지랭이 가몰거림..

 꽃 세상의 시절에 이 나라의 백성들이 

일상의 행복함을 다시 누리도록....

 

▲ 부처님 열 제자중 첫제자 가섭(迦葉)

그는  욕심이 적고 족한 줄을 알아 항상 엄격한 계율로 행하여

 교단의 우두머리로서 존경을 받았답니다.

 

▲ 오늘 벽방산을 벽발산라고도 하는데

가섭제자가 '벽발'(승려의 공양 그릇)를 받쳐들고 있는

모습같다고 생긴 이름이랍니다.

 

▲ 아득한 세월이 이렇게 부쉈고

또 이어질 세월은 더 작게 하겠지요

 

▲ '개별꽃'인가요?

별과 꽃은 하늘과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듯.

 

가섭암을 뒤로 하고 올라서면 자연의 소리가 화음을 맞춥니다.

작은 계곡,

암반 위를 구르는 물소리,

 

 

나뭇 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 물과 나무 바람,

작은 계곡을 이어주는 청량한 새 소리

돌아보면 초록의 바다, 그야말로 천상의 길이지요.

 

▲ 금창초(金瘡草)라 검색되는데...

창(瘡)자가 부스럼(종기)창자를 쓰는걸 보면

  '후시딘' 약효가 있는듯...

 

▲ 제비꽃의 일종일까?

정말 야생화 공부, 돌아서면 기억이 안되니 

 진도가 나가지 않아요.

 

▲ 이것은 현호색?

현호색은 씨앗이 검다고 이 이름을 얻었지요.

 

 

▲  V 자 모양의 나무를 볼 때마다

엄마의 콩나물 시루 받치는 시루받침, 막걸리 거를 때 쓰시던 '쳇더리'

아니면, 마당 평편을 고르는 '끙개'..

 

작은 것은 고무줄을 매어 샛총 만들기도 했지요

 

그러나 오늘은 산부인과적 상상을 합니다.

봄 날이라 그런가? 작년보다 더 세속화 된 탓일까?

.

한참을 숨을 헐떡이면 만나는

'어서 오시게'...

큰 위로의 말입니다.

 

▲ '어우러짐'의 아름다움을

보기도 했지.

 

'의상암'.

665년 문무왕 5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고찰.

  주변 산 봉우리와 조화를 이뤄 뛰어난 승경을 자랑합니다.

 

▲ 의상대사가 천공을 받았다는 곳...

수려한 나무들과 암석들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 그래도 천하의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천년 고찰..

남도제일의 도량이라는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퇴락이 안타깝고.

 

▲ 밑까지 차량이 올 수있는 임도가 있고

이런 풍광과 역사의 수행터가

왜 이리 쓸쓸해 보이는지....

 

▲ 조금 안타까운 마음으로 의상암을 나와

다시 가파른 길을 오릅니다.

 

▲ 200m 정도만에 만난 주능선...

시원한 바람이 그만입니다.

좌측으론 정상을 가고

 

 

 

▲ 몰래 통제구역인 우측

'의상봉'을 오릅니다.

 

의상봉(553m)

조망은 별로지만 오르는 길의

진달래가 화사했으니.

 

▲ 아찔한 곳곳은 왜 통제구역인지

알듯도 하고.

 

 

 

▲ 노랑 제비꽃도

아름다움으로 빛났지요.

 

▲ 다시 내려온 그 곳에는

도도한 얼레지가 군락을 이룹니다.

 

▲ '바람난 여인'이란 꽃말의 얼레지

그 도도함을 좋아합니다.

 

▲ 이제 걷기좋은 능선길 700m 정도를 오르면

정상에 닿습니다.

 

▲ 이제 계단도 가고  가파른 바위도

올라야 합니다.

 

▲ 손병흥이란 시인은

...땅속 씨앗에서 싹을 틔운 뒤에 꽃을 피워내기까지 오랜 세월동안
무려 7년 이상이나 걸린다고 하는 인고의 나날을 견뎌낸 봄의 전령사

 

양지 녘에 햇빛 비칠 때 꽃잎이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린 것처럼 보여
너무 흡사하다고 해서 본의 아니게 붙여지게 된 꽃말조차 바람난 여인....

 

▲ 봄날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늘 소박한 아름다움은

모든 봄 꽃들의 청초한 겸손을  지니는듯...

 

▲두견화의 전설... 

  중국의 촉()나라에 의좋은 형제가 있었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에게 학대를  받았고.

 

 

학대로 형은 집을 쫓겨나고 나중에는

동생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는데

 

  어느 따뜻한 봄 날 동생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게 되어

한 마리 새가 되었지요.

 

▲ 이름하여 두견새..

 형를 찾아 헤매던 두견새는 매년 진달래꽃이 필 때면

고향을 찾아와 언제나 형을 만날 수 있을까 슬피 울었고.

 

목이 찢어져라 슬피 울다가 마지막에는 피를 토했는데

 그래서 진달래와 철쭉에는 지금도 붉은 피가 점점이 묻어 있다니...

 

▲ 바위 곳곳에 아름다운 소나무,

4년전 노란색이라 걱정했는데

지금은 푸르름을 회복한듯하여 반가웠지요.

 

벽방산에는 안정사 팔경 명소들이 있지요.

만리창벽(萬里蒼壁), 옥지응암(玉池鷹岩), 은봉성석(隱鳳聖石), 인암망월(印岩望月),

가섭모종(迦葉暮鐘), 의상선대(義湘禪臺), 계족약수(鷄足藥水), 한산무송(寒山舞松)

 

벽방산(碧芳山·650.5m)

통영시와 고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

360도 거칠 것 없는 '남도제일의 파노라마'라 할 만합니다 .

 

 

 

▲ 벽방산 이름이 일제강점기 이름인가 했는데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기록 되었다네요.

 

 

▲ 4년전 봄 날...

그래도 잘 살아온 세월입니다.

인생은 기록보다 완주도 값진거니.

 

▲ 남서쪽을 향하는 안내판.

 

▲ 고성 앞바다와 건너  하일면. 하이면

좌측 너머로 사량도, 우측으로 사천의 와룡산.

 

▲  어째서 벽방산을

한려수도 제1전망대라고 일컫는지

실감하게 되고.

 

▲ 북쪽으론 건너 거류산

그 아래로 대전-통영 고속도로.

고성의 시원한 너른 들판과 고성읍내.

 

▲ 남쪽으로는 바로 아래 안정치, 그 위로 가야할

천개산이 보입니.

 

▲ 그너머 우측으로 통영 시내와 한산도, 미륵산,

좌측으로 거제도의 계룡산, 노자-선자산,

옥녀봉, 망산 등이 보이고.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 안정공단 너머로 여러 섬들,

거제도. 가덕도, 진해만, 그리고 부산...

 

▲ 맑은날 지리산까지 보인다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한 모양입니다.

 

▲ 정상에서 은월리 방향으로도

안정재 방향으로도 가지요.

 

▲ 빙빙 다시 돌아보고

또 다시 돌아봐도 '오늘 정말 참 잘왔다'

다들 경탄합니.

 

▲ 한참을 앉아 햇살을 쐬다가

이제 내려가자고 내려가야 한다고....

아쉽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 여기를 올 때마다 정겨운 소나무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풍상을 겪고도 말없이

서 있는 의연한 자태에 숙연해졌으니.

'촐삭'거린 생이 부끄러웠습니다.

.

벼랑을 내려가는 나무계단.

계단 중간쯤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고성만과 인근 다도해 섬들이

 

그림처럼 다가오며 '일망무제'

가슴으로 알려주고...

 

1경 만리창벽(萬里蒼壁)...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자리잡은 산죽 숲에

 

20여 평 남짓한 평평한 공터가 있는데 이 곳이 바로 만리암터.

여기서 점심을 나누고..  

 

 

 

▲ 오늘 종일 보게되는 안정공단과

한국가스공사의 저장탱크..

좌측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성동조선소.

 

▲ 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나면 친구가 된다던가?

거기다가 모양까지 알게되면 연인이 된다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수 있다.

 

나태주의 시입니다.

 

▲ 중턱에 자리잡은 산불 감시초소

여름날 하루 빌렸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지요.

 

'안정치'().

예전에 동쪽 안정리와 서쪽 완산리 주민들이

 넘어다니던 고개랍니다.

 

▲ 참 고단스러웠겠단 생각도 하고

 

▲ 여기서 천개산은 900m.

그 길은 꽃 길이었지요.

 

▲ 방금 내려왔던 벽방산 정상...

저 가파른 길을 내려왔던가!.

 

▲ 처음 시작은

가파르지만

 

 

 

▲ 양 옆의 진달래 꽃 길.

어쩌면 한번쯤 우리도

누군가의 꽃 길이고 싶단 생각도.

 

 

▲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것....

 

▲ 인생은 아포가토

달기만 한 인생도 없는거구

쓰기만 한 인생도 없는거니....

 

▲ 이 나라의 코로나 19 사태가

경험하지 못한 아득함에 허우적이지만..

그 쓴맛이 얼마나 오래 갈려구....

 

▲ 살다보면 누구나 알게되지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이 분명히 온다는 것을..

.

▲ 눈물 자국은 슬픔의 흔적만이 아니라

단련된 마음이 걸어온, 빛나는 발자국 일테니....

 

▲ 그러니 겨울이 길다고 불평하지 말자

겨울이 길면 봄이 오듯.

순식간에 도적같이 올 것이니...

 

 

▲ 새벽이 몰려올 때 어둠은 쪽도 못쓰는 법이니...

가다보면 걷다보면

날은 밝게 되어 있으리....

 

▲ 좌측으로 500m가면 은봉암.

암자 극락보전 추녀 옆의 입석이 일명

 '은봉성석(隱鳳聖石),

' 벽방 8경의 하나입니다.

 

성철 스님이  1951년부터 4년간 은봉암과 벽방산 안정사 등에서

동안거와 하안거를 했고,

암자 입구에 있는 계족약수 병을 치료하는 약수로 알려졌습니다.

 

 

 

▲ 도착한 헬기장.

쑥. 원추리, 얼레지등이 지천으로 올라옵니다.

 

 

천개산(天開山·524m).

 이 산은 계족산(鷄足山)으로도 부릅니다.

 

▲ 요즘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쓰면

눈 위로는 청년 같이 보여 좋습니다.

 

▲ 북쪽으론 벽방산 정상이

훤히 보입니다.

 

동쪽으로는 여전히 거제, 가덕,

부산등이 보이고..

 

▲ 다시 헬기장으로 내려오면

안정사 방향 2.4K를 가야합니다.

 

▲ 평안한 길을 걷다

안정사 방향으로 좌회전 한 후부터 얼마나

가파른 길인지....

 

▲ 진달래... 좋은 옥토는 다 빼앗기고

거친 돌짝 비탈길에 자리잡아

숲의 그늘이 차기전에 서둘러 떨어집니다.

 

▲ 참꽃 하나를 입에 넣어 추억을 먹었지요.

소월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길 때에는 ...

그 시도 움미하며.

 

 

한산무송(寒山舞松)

춤추는 소나무를 실감합니다.

 

 

▲ 보릿고개 시절, 송화가루의 추억도

가슴 저리게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 이제 거의 도착에 이르고

산은 벌써 노랑섞인 연두로 채워져 갑니다.

 

▲ 해탈교 건너 안정사(安靜寺)

 신라 태종무열왕 원년(654)에 원효 대사가 창건

현재 건물은 조선 영조 27(1751)에 중건한 것이랍니다,

 

▲일주문 앞에 부조탑들이

역사의 묵직함으로 다가오고.

 

 

 '벽발산안정사(碧鉢山安靜寺)'.

불가(佛家)에서는 벽방산이 아니라 '벽발산'이라고 부릅니다.

산 형세가 바리때를 들고 미륵불(미래에 올 부처)을 기다리는 가섭을 닮아서 ...

 

 

 

 

 

▲ 그렇게 천천히 걸었던 통영, 고성의 벽방산, 천개산,,,

 이 지역 3대 명산(거류산·구절산) 중 맨 앞자리 산...

 

 통영·고성·진해만과 다도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그 아른거린 조망의 하루였으니...

어서 속히 이 나라 국민들이 일상의 행복으로 돌아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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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진성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초근목피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 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통곡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