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忠北!,
고향을 떠나온지 어느덧 수십년이 흘러도 ‘충북’번호판을 단 트럭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충북의 忠州(충주)와 淸州(청주)를 혼동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도 그러거늘
6.25당시 UN군들은 오죽했으랴...그 에피소드를 다 기록하지 못한다.
‘청주’는 대전과 세종시 옆에 있는 도청소재지, 85만 인구의 내 고향이고,
‘충주’는 중부 내륙에 자리 잡고 있는 중원으로 주변이 온통 산으로 뒤덮여
분지의 형상을 띤 지역이다.
동부는 태백산지, 북서부 차령산지, 남동부 소백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다양한
고도의 이름난 산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월악산(1097m), 포암산(961m), 신선봉(968m)
대미산(678m)등인데, 충주호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통틀어
‘월악(月岳)’이라 부르기도 한다.
2015년 이었으니 어느덧 9년이 흘렀나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악어봉’을 오른다고 새벽부터 4시간을 달려 도착하여 산행 출발 30여분!
‘몽선암’(충주 살미면 내사리)으로 즐겁게 오르는데 한 패의 등산객이 내려온다.
‘저들은 어디서 올랐길래 벌써 내려오나?’..
산불통제로 인한 입산금지라 되돌아 오는 길이란다...
헐!..이런
비온 날에 꼭 통제를 해야하나?...
할 수없이 차에 올라 급히 월악산 만수봉으로 산행을 변경했었다.
....
가보지 못한 미련인가
산행을 하면서 그 아쉼은 오래오래 남아있었다.
9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거기를 간다. 설렘으로 악어 떼를 만나러.....
▲9년전 섰던, '충북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마을.
'장수' 7명은 그렇게 나섰다.
▲8K 감량을 했다는 맨토는
자세히 봐야 알아볼 정도,
그와 산야를 누비던 시절이 그립다.
▲괴산 IC에서 나와
5분만에 도착하는 내사2동은
대미산이 둘러싼 아득한 마을이었다.
▲ 여기서 좀 거리는 있어도 내가 낳고 자라고
우리 부모님이 묻히신 내 고향 충북 땅 아리런가!
11개 시군의 충북은 북부로 충주,제천,단양,
남부로는 옥천 보은 영동이고.
▲ 중부에 85만 인구의 내 고향 청주가 있으며,
그 주변으로 증평,진천,괴산, 음성이 위치한다.
▲소박한 당집, 어린시절 마을의 이 앞을 지나가려면 아이들도,
술 주정꾼 어른도 옷 매무새를 바로했다.
말하자면 도덕 선생 노릇을 했었지.
▲당산나무와 당집을 걸어오며
짙은 고향 생각이 난 것은 비단 나만 그런건 아닐 것.
▲땀이 흠뻑 등에 흐를 무렵,
'몽선암'에 도착했다.
▲소박한 몽선암, 비오는 날 젖은 바위를 보는 것,
안개낀 몽롱한 나무를 보는 것,
처여한 암자를 보는것..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이 때만 해도 오늘의 길이 얼마나 '고난의 행군'인지는
상상하지를 못했으니.....
▲우리나라 말 단어 중에 '숲' 만큼
어감이나 모습이 청량한 단어는 없으리라.
▲ 이런 가파른 봉을 10여개가
남았다는 걸 모를 때의 미소.
▲그런걸 보면 사람은 미래를 모르고 산다는게 축복일듯..
각종 데이터나, 점집을 가면서라도 미래를 알려고 하는 건
모두 좋은 일이 아닌듯.
▲'숲'은 마른 글자일까, 젖은 글자일까?
이 글자의 어감은 깊고 서늘하다.
▲이 서늘함 속에는 향기도,
습기도 깊게 번져 있다.
▲숲이라는 이 글자 속에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도 들리고
골짜기를 휩쓰는 눈 보라속 소리도,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들린다.
▲어우러짐의 '숲'에는
물푸레 나무도,
자작나무도, 소나무도, 떡갈나무도 있는데.
▲백일홍, 물푸레나무, 자작나무는
기름기 흐르는 껍질 위에 꽃사슴 무늬를 그려내는게 신기했다.
▲소나무 그늘에 설음받던 참나무는 소나무보다 커서 소나무를 밀어낸다.
산을 다니다 보면 소나무 시대에서
참나무 시대로 변화됨을 확연히 느낀다.
▲나무는 역사를 제 몸속에 나이테로 기록하며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
가믐과 홍수 역사까지도 증언한다.
▲여기가 대미산인가! 여러 봉들을 착각 후에야
드디어 나타난 대미산,
오늘도 맘 졸이며 인솔하시는 '천주산' 대장님.
▲고향 땅을 걷는 청년!
자신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워 지세요.
과정을 즐기는 여유로움으로.
▲대장님의 폼으로야 호형호제,
'장수'와 '제일'을 끌어가는 대장님들.
나는 늘 그 앞에서면 작아진다.
▲'우리,
'함께',
'늘'....
세 단어가 생각났다
▲우로부터, 조대호, 이봉락,박기봉,
김순희, 송예진,김영희님들, 그리고 필자.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우리 길이 맞거든
흔들리지 말고 계속 걸어가세요, 오래오래.
▲엄청 힘든 종일의 길 중에도
호탕한 웃음을 가진 님...
그 웃음이 자손만대 복이 있겠다.
▲두 고문님을 모시고,
늘 그 뒤를 따라가자고
다짐도 했지.
▲나무는 젊음은 바깥 쪽으로 둘러싸고,
늙음은 안쪽으로 모은다.
▲10분의 하나만 바깥쪽인 나무는
안쪽 늙음은 나무가 사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생명의 기능이 소명된 상태인 안쪽은 물기가 닿지않아 무기질로 변했고
그래서 텅 빈 나무가 되기도 한다.
▲오늘같이 힘든 코스는 중간중간 조망터가 있어서
첩첩연봉들이 이어진 산들이
고래뛰듯 솟구치는 걸 봐야 덜 힘든 법인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몽상적인 풍경으로 위로를 받으며
땀을 식켜가며 가는거지.
▲둘러앉은 7형제 독수리.
족발, 낙지볶음, 치킨,
그리고 쌈.... 넘친다 풍성함이.
▲바람이 시원히 넘어가는
거기에서
괜찮다, 괜찮다 바람 소리를 듣는다.
▲포만감에 즐거움은 만땅이고,
답답한 안개도 걷히기 시작했었지.
▲소중한 사람에게 기쁨만을 주기에도 세월은 부족하다.
시간은 휫 지나가는 법이니.
▲위 그림과 아래 그림은 뭐가 다를까?
좌측 두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우측 세 분은 배가 아픈 상황.
▲비가온다, 비를 맞으며
그래도 풍광 좋은 곳에 서 보시라 했다.
▲잠시 쉬었다가 가세요
나를 응원하는 관객도 보고.
▲소중한 장수 가족 김영희 교수님,
여러번 오늘 고군분투 사진을 찍었는데
여러 장이 용량초과라고 안올라간다.ㅠ
▲평안한 산행을 희망 했던만
오늘은 날씨도 코스도 가슴에
냉정과 인내를 채워야하는 계절.
▲아무도 와 보지 않은 코스를 우중 좁은 길을 찾아가니
여러 팀들이 '알바'를 한다.
▲처음 산행을 하며 여러 용어중
왜 산행에 '알바'라는 용어를 쓸까?.
궁금했다
▲'알바'는 본업이 따로있고 부업으로 하는 의미이니
정해진 코스인 본업을 잊어버리고 곁길로 가는 부업이니 '알바'라 한단다.
▲여러 봉들을 넘은 후에야 만난 두로봉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시원한 빗줄기가 오히려 감사했으니
▲소양강땜에 이어 두번째 큰 '충주 땜'은
박정희 정부시절인 72년도 충주 제천 단양 지방의
역대급 대 홍수 이후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홍수로 소중한 문화재들이 거의 소실 되었고,
당시 고학시절 충북도청에 근무했던 필자는 출장 다녀온 직원의 사진,
큰 타이어 하나가 전봇대 꼭대기에 걸려 있던....
▲그 사진 하나로 당신 홍수의
엄청남을 짐작하고도 남았었다.
▲ 그리하여 수 많은 마을이 수몰되고
제천, 단양, 충주 7천 가구가 이주했으며
면 전체가 없어진 실향민의 한이 서렸다.
▲땜은 85년도 준공되었고
충주 사람들은 충주땜이니 충주호라 하고,
제천 사람들은 청풍호라 했다.
▲단양 사람들은 '내비둬유, 충주호며 어떻고,
청풍호면 어뗘유, 어짜피
사람들은 다 단양으로 오는디'...
이 글은 유홍준 답사기에 나온 내용이다.
▲이 호수는 수평면적이 97제곱킬로미터,
27억 5천톤의 저수량을 자량한다.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철저히 막혔던 악어봉,
비법정 탐방로가 충주시의 끝없는
10여년 노력으로 결실을 맺어 악어봉까지 개방되었다.
▲위험한 로프 구간이 나타났다,
비가 그친 것이 다행이란 생각.
▲백두대간 마패봉과 부봉 사이에서 분기해서
북바위산-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36k는 '계명지맥'
▲길은 미끄럽고
가파름은 다리가 후들거렸지.
▲그래도 '같이'가 아니면 어찌 오르내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특별한 일이 생기는 법은 간단한거야
내가 먼저 움직이고
다가가면 되는 것.
▲이 때의 오름의 그 길은
주저앉고 싶을 만큼 고통이었지.
▲내가 빛를 발하고 있다면
별을 빛낼 수 있게 배경이 되어준
하늘의 소중함을 기억해야지.
▲드디어 만난 큰 악어봉(559M)
이제는 악어 떼는 안봐도 좋으니 끝이면 좋겠다고.
▲오늘을 사는 건 다 같은데
누구는 과거 배경으로 살고,
누구는 미래 배경으로 사는 걸까.
▲큰악어봉은 또 다시 깊히 내려가고,
내려감은 올라감의 공포를 수반했다.
▲비는 그치고 청량해 졌으니
그래도 악어 떼는 볼 수 있겠다란 희망으로 걷자.
▲마지막 오름이 되기를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도와 줄 수 없는 애닮음으로.
▲드디어 아름다운 호수가 서쪽으로 나타날 무렵,
절대적 수평의 물이
등고선을 따라 물에 잠긴 풍경과.
▲산자락과 호수가 맞닿은 모습은 마치
먹이를 쫓아 물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악어떼를 만들어낸다.
▲젊은이들에 묻는다. 여기까지 얼마나 걸렸소? 30분이요.
우리는 6시간, 산전수전을 지났오.
▲그래도 흐릿하지만 악어떼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잠시 시름을 잊고,
자연의 오묘함을 경탄했었지.
▲아름다운 호수,
저 멀리 우리 고향 마을도,
부모님 산소도 있겠다. 짙은 그리움이 출렁였다.
▲맑은 날의 풍경, 옮겨온 사진이다.
지자체 의지, 공단의 협조,
자연 요건이 어우러진 풍경.
▲ 휘파람을 불렀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종점은 가파르게 900m.
▲도착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들...
다들 알바로 고생을 했다지만
우리 팀은 알바는 하지 않은 것으로 위로삼고.
▲내려오다 보면 마지막 조망터가 있었다.
석양에 바라보든가, 안개낀 아침에 보면 신비롭겠단 생각.
▲이제 시각되는 안전 시설의 고마움도 느끼며
하산을 한다.
▲청아한 색깔이
하루의 과정을 위로하는듯 했고.
▲사람의 발자취가 닿는 곳마다
훼손이라는 부작용도 아파했었다.
▲6시간만에 만나는 종점 '게으른 악어' 카페
그래도 안전하게 맞이함을 감사했다.
▲고향 땅을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석양의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성주의 어느 식당.
▲뜨거운 쇠고기 전골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었고,
언제나 산행의 힘듦은
하룻밤 자고나면 그리움으로 남는 신비로운 것...
▲ 다시 다짐한다 화려하지 않게,
너무 진하지도 않게
이것저것 섞지도 말기.
▲행복한 동행자들을 고마워하며
숯한 그리운 추억으로 남기고 거기를 떠났다.
▲되돌아 본 우중 산행 길,
내사 2동마을에서 몽선암으로, 대미산-두루봉-월악 수리봉으로하여
큰악어봉-악어봉.. 그렇게 추억으로 남기고.
존경하는 님들과 함께 걸어갔던 하루의 그리운 길....
잠시 머문 자리이듯,
환희의 웃음을 웃던 곳이든,
그렇게 기억되고 다시 추억이 된다
아픈 흔적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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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나태주
말없이 바라
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때때로 옆에 와
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넝쿨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합니다
그대 생각 가슴속에
안개 되어 피어오름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