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忠淸北道)!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언제나 그리운 내 고향이다.
청주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서울로 갔다.
70년대 초, 바다가 없는 내륙도 충북은 슬로건중 ‘150만 충북도민, 15만 청주시민’이었다.
어느덧 50여년이 흐른 지금, 청주시 인구가 85만으로 100만을 바라보는데 충북도민의 인구는
겨우 10만이 늘어 160만이니 얼마나 군 지역의 인구가 줄었겠는가!
충북의 대처(對處)는 청주와 충주이고, 북부가 충주-제천-단양이라면
남부는 보은-옥천-영동이며, 청주부근에는 증평,진천,음성,괴산이 위치한다.
어릴적부터 자랑인 속리산 국립공원과 법주사가 유명하며, 대표적인 서원은
괴산 화양동의 화양서원이 있고 청주부근엔 대청호와 청남대가 위치한다.
북부는 지금은 4통 8달의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70년대 후반까지도
국도도 비포장 이었으며 청주에서 충주,제천,단양을 가려면 뽀얀 비포장 길로
하루가 걸리는 길 이었다.
고교 시절엔 좀 산다하는 집안의 친구들이 거기서 청주까지 유학을 오니 벌써
청주시내는 그 당시에도 대학이 5개, 고등학교가 15개인 교육도시였다.
당시부터 충북은 케치플레이즈가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이었다.
충주에는 비료공장이, 제천 단양에는 시멘트 산업이 유명했다.
78년에 시작하여 86년에 완공된 남한강 최대의 댐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바다 없던 내륙에
바다 같은 호수가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수 많은 묵객들이 그림으로, 글로 극찬한 이 곳은
수몰지가 되었고 호수로 인하여 새로 생겨난 아름다운 관광도시가 되었다.
21만 인구의 충주사람들은 ‘충주호’라 우기고, 13만의 제천 사람들은 ‘청풍호’라 고집하며,
3만 인구가 채 안 되는 단양사람들은 단양읍과 3개면이 수몰되었지만 뭐로 불리든 여행객은
모두 단양으로 오게 되어 있다면서 여유를 부린다.
충주, 제천, 단양... 행정구역은 그리 나뉘었지만 호수로 연결되었고,
모두다 사랑하는 내 고장 충북의 아름다운 땅이다.
나의 버킷리스트중 하나는 일을 완전히 놓고 유유자적하는 시절이 올 때, 어릴적 충북선
열차를 타고 캠핑하며 놀았던 이 지역을 속속들이 다사 남한강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다.
어느덧 6월,
그 청풍호가 그림처럼 조망되는 가은산(加隱山575m, )을 간다.
금수산, 제비봉, 그리고 단양팔경의 옥순봉, 구담봉이 내려다 뵈는 풍광을 그리며...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옥순대교,
인산인해, 질서요원의 호각소리,
한적한 사진찍기는 어려웠다.
▲옥순대교 건너 좌측으로 출렁다리가 생겼다
제천시가 조성한 220m의 출렁다리로
관광객은 시장 수순.
▲단양과 제천을 경계 짓는 구담봉(龜潭峯·338m)과, 명승 18호 옥순봉(玉筍峯·283m).
기암괴석이 빚은 산과 명경지수(明鏡止水)인 청풍호의 물이 합쳐,
수반 위의 수석 같은..
▲옥순봉(玉筍峯)은 퇴계 이황선생이 붙여준 이름
'희고 푸른 바위가 마치 죽순(竹筍)과 같이
힘차게 치솟아 있는 봉우리다'라는 뜻이라.
▲그 절경은 단원 김홍도의 52세에 그린 진경 산수화 속에서도나타나
‘옥순봉도(玉筍峯圖)’를 남겼다
▲ 단양군수 퇴계는 청풍 부사에게 행정구역 변경을 부탁했지만
거절 당했고. 이황은 아쉬워하며 옥순봉 아래 바위에
‘단양의 관문’이란 뜻의 ‘단구동문(丹丘洞門)’ 글자를 새겨 놓았다.
▲이 때문에 단양팔경의 3경이 구담봉이며
4경이 옥순봉으로 돼 있고.
제천에서는 ‘제천 10경’에 옥순봉이 제8경으로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서 문제였다. 우측으로 가야하는데
대장님을 쫒아간다고 선두 다섯이 비탐지역으로
반대방향으로 가파르게 오른거다.
▲잘못되었음 직감했지만
다시 내려갈 수는 없고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얼마나 헤맸을까?
상천에서 올라오는 전망대부근을 만났다.
코스를 바꿔 가은산을 갔다가 역순으로 원점회귀하기로 했다.
▲ 여러번 올랐던 우측 금수산, 좌측은 망덕봉,
어느시절 망덕봉으로 하여
상천으로 내려오는 길은 다들 지옥문 까지 다녀 온 기분이라 했었다.
▲내 고향 충북을 오늘 날 새벽, 잠이 오질 않았다,
버스에서 5분 강의를 했다, 충북의 자연지리,
그리고 충주댐과 청풍호, 9개월 단양군수로 재직한 퇴계와 두향이의 러브 스토리,
제천 땅의 옥순봉이 왜 단양 팔경인지를....
▲그리고 고향에 왔으니 쇠고기는 대접 못하지만
내려갈 때 빵빠레를 쏘겠다고.
▲자연사 박물관인 금수산, 가은산, 건너 제비봉등은
흰 눈을 인 겨울철 수묵화 같은 풍경이 펼쳐질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 월악산 국립공원 관내의
가은산에서 바라본 풍광(옮겨온 사진).
▲ 옥순봉 정상에 서면 조망이 시원하게 열리는데
동쪽 조망이 수반의 수석을 보는 듯 아름답다. 왼쪽이 붕긋한 말목산, 오른쪽에 제비봉,
그 앞으로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습을 한 구담봉이 펼쳐진다(옮겨온 사진).
▲발 아래는 충주호인데 제천에서는 청풍의 옛 이름을
따 청풍호라 부른다.(옮겨온 사진).
▲퇴계와 두향이의 러브소토리를 소개했다.
두 아내와 아들마져 잃은
48세의 퇴계가 외로울 때 만난 18세의 두향이,
9개월 딘양군수 재직후 소백산 너머 풍기군수로 전근가며 둘은 영영 이별했다.
▲ 애뜻한 이별을 나눌 때 두향이는 매 화분을 선물했고
애지중지 두향을 보듯 돌보던 화분은
퇴계로 하여금 마지막 유언 ' 저 화분에 물줘라' 를 남기게 한다.(옮겨온 사진).
▲대포바위라 이름을 붙여보기도 하고.
▲굿굿한 생명력에 경탄하기도 했다.
살아 내는 것,
그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던가!.
▲ 멀리 월악산 영봉이 화려하게 보이고
그림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대청봉에서 만났던 털진달래
아득한 그리움이 솟구쳤으니.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길었고 허기도 졌지만
그래도 간야한다 '독수리 5형제는'.
▲최고의 전망대,
모든 힘듦을 다 보상받는 풍광.
▲거기에 서 보기도 하고
아득한 그림움으로 남서쪽 고향땅을 바라보기도 했다.
▲코끼리 바위인가?
피카소의 작품이런가.
▲여러번 여러번 지독한
생명력에 경의를 표했다.
▲가은산(加隱山, 575m)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또한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되었다.
반지를 찾은 마고할미는 “이 산에 골짜기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한양이 들어설
골짜기인데, 내가 이곳에 눌러 앉아 살려고 해도 한양이 될 땅이 못 되니 떠나가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한다. 이로 인해 ‘가는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
▲거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급하게 다시 삼거리로 왔다.
이제는 서둘러 가 볼 곳을 다 가 봐야하지 않던가.
▲가은산은 화강암의 자연 풍화로 형성된
기암괴석이
청풍호반의 경승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언제나 미소가 맑은 여인...
날렵하기 그지 없다.
▲건너는 말의 목처럼 생긴 말목산,
▲ 광활한 호수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수려한 풍경은 걷는 이의 마음까지 싱그럽게 했지.
▲반갑게 만난 이산가족들....
그 들이 다녀온 길을 우린 가야하는거다.
▲언제나 같이인 부부,
늘 여유로운, 조금 더 여유를 즐기는
그런 삶이 부럽고 오래 오래 간직하시기를...
▲또 다시 만나는 정든 형님, 동료분들...
어쩌나 이렇게 이산가족이 되어
당신은 위로, 우린 아래로 가야한단 말인가!.
▲통천문...
어득한 세월의 흔적이였다.
▲여기서 망설이는 어느 산악회...
비탐지역으로 가느냐, 포기하느냐..
우린 망설임 없이 금지선을 넘었다.
▲둥지봉
둥지봉은 둥그스름한 새둥지를 엎어 놓은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새바위 능선에서 바라보면
그럴싸한 새둥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
▲ 깃든 사연과 이름을 알아 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
▲청풍호는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담수량이 많다.
소양호 다음으로 그 규모가 크고 광활한 호수.
▲꽃 사슴 나무라고 이름을 붙이고
여러각도에서 바라봤다.
▲계곡에서 불어 오는 맑은 바람과
수려한 풍경으로 마음까지 싱그럽고.
▲동심의 에너지가 발동하였고
이렇게 종일 놀던
뒷동산이 그리움으로 떠올랐다.
▲이 때도 몰랐다
얼마나 후둘거리는 길을 가야 할른지.
▲멋들어진 풍광으로 둘러싸인
숲과 바위들의 숨바꼭질.
▲장엄한 아름다움!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짐의 아름다움으로 경탄한다.
▲가까워진 옥순대교
그러나 깊게 호수까지 내려가 치고 올라야했다.
▲장엄한 화강암,
어느 힘으로 치솟아 아득한 세월이 빚어낸 풍경.
▲병풍바위라 이름 지었다
장엄하다는 말 외에 마땅한 언어가 없었다.
▲이제부터 후둘거림의 시작...
비탐지역을 통과해야하는 위험.
▲용감한 여인이 먼저 나서고
그 줄을 놓을 때까지 누가 나서면 안된다.
▲스틱을 밑으로 던져내리고
현실적인 두려움 앞에 섰다.
▲돌아보면 아직도 아득한 길...
줄이 너무 가늘다는 두려움.
▲그렇게 아래서 위에서 코치를 해가며
독수리 5형제는 무사했다.
▲그리고 호우 근처까지 내려가 만난 '벼락맞은 바위'
'00장군이 칼로 내려친 전설'보다 이름이 좋았다.
▲호수까지 내려왔으니 내려오는 길,
그리고 올라갈 길이 아득했다.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했던건 아니지만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걷게 되었지만
그래서 곱절 힘 들었지만
다른 사람과 다른 선택이었지 틀린 선택은 아닌거다.
▲이들이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우리 오르내림은 아무 것도 아닌거야.
힘을 내자 독수리 5형제.
▲여러번 여러번, 악착같은 살아냄의
생명력에 마음이 찡했다.
▲마음에 담아 둔 청풍호수...
곰도 있고, 물개도 있고
자연 풍화가 빚은 숨은 비경들...
▲새바위를 향하는 길은
그래도 고되고 멀었다.
▲이제는 멀어져간 병풍바위,
저기를 깊에 내려와 다시 오른거다.
▲아! 경탄으로 만난 '꼭지바위'
무슨 꼭지 인가? 19금급 그 꼭지는 아닐꺼야
의신마을로 가는 서산대산 길에서 봤던 의자같다.
▲거기 올라 앉아보기도
서 보기도 했지만
이 풍광앞에 겸손해야했지.
▲뒤로는 아득한 세월의 흔적
마이산의 산행기를 쓸 때는 '타보니 지형' 이라 소개했었지만
그건 퇴적암을 말하는데 여기는 화강암 층이라 던데....
▲조용한 산정에서 여인이 '꼭지'에 앉아
이 풍광을 대하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
▲뒤로는 옥순봉이
우측으로는 옥순대교가 보이는 곳에서...
▲마음까지 정결해 지는 자연의 신비로움.
계곡, 호수, 암릉..
자연사박물관임에 틀림없었다.
▲이 풍경의 주인공은 저 위에 떠오른 하얀 구름.
고향 땅 애정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새바위....
정규 방향으로 오른 님들의 즐거운 향연.
▲새도 있고 그 머리위엔 풀이 자라 깃털도 있고
엉덩이에는 계란이 나오는 자취도 있었지.
언제나 아름다운 병아리와 함께 먼 산을 바라본다.
▲ 새바위에서 올려보면
저 중턱이 정규코스인 샘.
▲여기를 올라 한 암봉을 넘는다.
북쪽으로 가야할 길을 놓치고
하염없이 아랫쪽으로 다시 알바.
▲그 덕택으로 건너편 암봉에서
다시 새 바위를 바라본 행운도 있었다.
▲배가 부를 때는 식사를 멈추고,
졸릴 때는 자면 되는건데
이 풍광 앞에는 헤어나지지가 않아.
▲살다보면 알게 돼
눈물 자욱이 슬픔의 흔적이 아니라
빛나는 자취를 이렇게 바라 볼 기회라는 걸.
▲ 다시 계곡을 엄청 나게 헤메고
길 없는 중턱으로 올라오니 드디어 등산로,
오늘 홀리듯 헤맨 알바 길이 끝나는 순간.
▲모든 자연의 섭리야 순서가 꼭 필요 할테지만
사랑의 순서야 손 잡는거나, 입맞추는 거나 ,
순서가 헐클어져도 되는 것처럼
오늘같은 풍광으로야 순서가 바뀐다고 무엇을 탓하랴.
▲그렇데 다시 만난 빛나는 옥순대교
뒤죽박죽 뒤바뀐 순서라도
다시 발을 맞출 수 있었던 발걸음이 감사 할 따름.
▲아! 거기를 떠난다. 청풍호...
유유히 남한강을 따라 여행하는
나의 버킷리스트 여행의 날을 꿈꾸며.
▲거기 유람선 타는 장회나루,
정갈한 식당에서 맞주한
▲뜨거운 육개장 찌개에 담백한 두부...
하루의 피로를 날리기 충분 했으니.
▲멋진 곳에서 정겨운 님들과 함께
즐거움은 배가 되고.
▲오랜만에 가득 채워 달려 온 만차의 기쁨처럼
몸도 마음도 했던 했던 날.
▲누군가는 나이가 들고,
누군가는 철이들어가듯
사람으로 채워지고, 늘 '든다'는 체감이 가득한 장수산악회.
▲어느 여유로운 시절, 여기서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도 돌고, 구담봉도 보고,
강선대 두향이의 묘소도 바라보고 싶었으니.
▲거기를 아쉽게 떠나려는 시간
뒤로 구담봉이 여유롭다.
▲언제나 정겨운 동갑.
인격도, 키도, 그리고 목욕탕에 가면 더 내가 기가 죽지만
어쩌겠는가 늙어감의 동행자임에 틀림 없는거니.....
▲아쉬워 다시 하늘을 올려보고
내 고향 충청북도, 160만 도민과 함께 훼 에버!
오래오래 그 아름다운 청풍명월의 풍광과 인심이 이어지기를...
거기를 떠났지.
▲옥순봉 휴계소을 떠나 파란선 따라 시계방향으로 걸었던 날,
순서야 조금 그렇게 되었지만, 오래오래 잊지못할 추억의 산행.
감사한 하루가 밤깊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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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장터 /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울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겨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