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선(忠北線)
지금은 세종시가 된 경부선 ‘조치원’역에서 청주- 충주를 거쳐 제천시 봉양읍 잇는 단선 철도였다.
열차는 느렸고 그래도 충북의 북부지방 사람들은 비포장 도로보다 청주를 오갈 때 많이 이용했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통학열차 러브스토리, 통근 열차의 추억이 담긴 열차였다.
고교시절, 다섯 친구들은 3박4일 예정으로 그 느린 충북선을 타고 음성, 괴산, 충주, 제천,
단양등을 캠핑여행 했고, 첫날은 고향이 괴산 칠성면 이었던 친구 안내로 ‘괴산수력발전소’땜 옆에
텐트를 치고 놀았던 추억이 아련하다.
충북 괴산(槐山), 인구 3만7천의 산자 수려한 고을이다. 청주에서 북동 방향으로 위치한다.
향토사단이 있는 증평읍이 도안면과 함께 증평군으로 분가했고, 동으로 경북 문경과 백두대간으로 경계한다.
남동으로는 보은군과 접해 속리산국립공원을 공유하며, 북서쪽으로는 음성군과 충주시와도 연접한다.
산이 많은 괴산! 낙영산, 칠보산, 도명산, 백화산, 사랑산, 조령산, 조항산,
희양산등이 즐비한다.
그 탓일까? 조선시대 천부적인 산수, 풍속화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이 곳 출신이다
단원과 혜원 신윤복은 13살 차이로 지금 우리보다 200살쯤 많은 분들이다. 이들은 쟁쟁한 조선 미술계의
라이벌이며 세계적인 천재화가였다.
거기 괴산(槐山)!
기암 괴송으로 유명한 막장봉을 간다,
부모님 산소가 30k 위치한 내 고향 청주 하늘을 남으로 바라보며
산꾼은 그렇게 걷는다. 아련한 추억에 잠겨...
▲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제수리제(諸水里峙), 해발 530m,
아래 절말에서 관평으로 넘어가는 한 많은 고개.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산 19-27)
▲막장봉, 칠보산등은
보은 속리산 국립공원 구역이 확장되어
여기까지 이어졌다.
▲오를수록 시원한 여름,
이빨 바위까지는 계속 오르막.
▲백두대간 장성봉까지는 4.8K,
우리는 막장봉3.6K까지 가서
시묘살이 계곡으로 내려갈 거다.
▲광산의 갱도를 닮은 시묘살이 계곡이
쌍곡계곡의 살구나무골에서 갈라져
산등성이로 길게 이어지는데
▲그 마지막에 있는 봉우리라
막장봉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 막장봉은 서쪽의 장성봉과 산줄기로 이어져 있고,
북으로는 칠보산,
남으로는 대야산과 마주보고 있다.
▲'이빨바위'라 한다.
그 입속으로 들어가니 무슨 동물일까?.
▲이제부터 오르내림은
좀 완만 해지고.
▲충북 괴산(槐山), 인구 3만7천의 산자 수려한 고을이다.
청주에서 북동 방향으로 위치한다.
향토사단이 있는 증평읍이 도안면과 함께 증평군으로 분가했다.,
▲어느 배낭에서 나왔든지
나눠 마시는 기쁨.
▲어릴적 소풍갔던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국립공원,
추억도 문화재급 유물들도 그대로 남아있는
그리운 내 고향 충북의 자랑이다.
▲복돼지라 붙여보기도 했지.
▲암릉과 소나무,
거기에 아름다운 처녀들.
한 폭의 그림이었다.
▲바라보는 총각이 측은 했는지
끼워주었다.
내가 먼저 간게 아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괴송의 아름다움을 공감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산과 더불어 공감하며 살아가는 삶.
▲막장봉까지 딱 중간에 선다.
▲시설이 좋아진 여름 산행 길,
더웠고 뜨거웠고 그래도 즐거웠단다.
▲투구봉에 선 아름다운 소나무,
오늘따라 나무들이 기운다는 느낌.
▲여러번 초청받아 서 보지만
짜릿함이야 어디 있을라고.. 여전히 담임선생님.
▲멀리 군자산이 아름답고
그 좌측으론 남군자산.
▲다른 곳에서
여기를 본 풍경(옮겨온 사진).
▲어느 시절 막장봉 오르던 길에 투구봉에서 섰다는
추억으로 남겠다.
▲내려다 투구봉을 보면
왜 투구봉인지 안다.
▲거기 고문님들이 서고
새끼 고문은 시중을 들자.
▲저 멀리 지나온 투구,
여기는 총알바위라 하자.
▲상대방의 배려도 받아줄 줄 알고,
배려하는 삶,
상대방이 원하는 거리보다 조금 더 가 주는.
▲시원한 천연 에어컨 바람이 불었다,
배꼽으로 그 바람을 넣고 싶다고도 했다.
▲군자산 그 너머로
내 그리운 고향 앞, 속리산 주능선이 아련했다.
▲사형제바위라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리보인다.
▲아득한 그리움을 안고
그리 멍하게 세월이 간다.
▲사명대사 지팡이라던가!
누구나 서면 그림이 된다.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꽃밭이 내 집이었지/.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가앙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마당이 내 집이었지./
▲저 멀리 우리 고향은 30여K.
생각 난 채송화란 시.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 다녔을 때/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지/.
내가 잠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때/
파란하늘이 내 집이었지/.
▲내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 집은 많았지./
나를 키워준 집은 차암 많았지/.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국어교과, 은준관 시).
▲의자바위라고도 하고,
작은 천지 같아 천지바위라고도 한다.
▲거기는 360도 파노라마가 가능하고.
▲ 천지바위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보배산과 칠보산과 덕가산,
북동쪽으로 덕가산에서 악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동쪽으로 막장봉을,
동남쪽으로 천지바위에서 막장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남쪽으로 대야산을,
▲남서쪽으로 속리산과 백악산과 가령산을,
서쪽으로 투구봉과 그 뒤로 남군자산을,
서북쪽으로 군자산을 조망할 수 있는 거다.
▲능선을 걸으며
어,어,어, 하다보니 자니온 세월이
이렇게 쌓였다는 생각.
▲저 멀리 막장봉이 보이는 곳에
무슨 19금급 꼭지가 보였다.
복이 가득 찻을것 같은.....
▲여유롭진 않더라도
모자람이 없는 지난 세월들...
그리운 능선처럼 이어진 내 꿈은 이뤄진 거니까.
▲나 다움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
▲오르다 힘들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거야.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좋은 글은 못 남겼을지라도 괜찮아.
▲삶의 폴더를 가만히 열면
후회스러움 가득하지만
기쁨을 채워줄 '덜 해본 무엇'을 기대하는 거니까.
▲이윽고 나타난 저 멀리 댐(저수지) 바위.
치마로 보이는 이는 '치마바위' 했다.
▲거기를 오르다가
]바람시원 곳에 앉은 진수성찬,
즐거움은 배가 되었지.
▲우리를 따라 앉은 여러 팀들,
동서사방 출발지는 달랐다.
▲댐바위를 지난다,
오랜 기간이 흐른 천주봉을 오르던
대 슬랩 생각이 났다.
▲거기 한가이 앉아 억겁 세월의 흔적 바위를 본다.
기차바위라고도 하고,
가지런히 빗어내린 소년의 머리카락 같기도 하고.
▲미사일로 보면 미사일,
대포라 하면 대포바위라 하자.
▲그리고 영락없는 꼬끼리 바위...
▲코끼리 잔등에 서서 무엇을 다짐했나?
10년 세월을 다 같이 가자했으면 되는거다.
▲삶은 침묵과, 도약이 놓인 체스판 같은 것,
침묵은 의연하고,
도약은 집중이라 하자.
▲ 그래도 잘들 걷는다
시원한 바람의 도움.
▲거기서 만난 나리.
그 아름다움에 반했고.
▲그렇게 막장봉 정상에 섰다.
▲막장봉(幕場峰 887m)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에 있는 산.
▲백두대간 장성봉은 1.2K를 왕복해야 하니
우린 여기서 하산하기로 한다.
▲여기서 내려가면 시묘살이 계곡과
장성봉의 분기점 삼거리를 만난다.
▲장성봉을 저 멀리 남기고
우리는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아직도 경쾌했다
5.2K를 내려가야 하는데.
▲이제는 조망이 없는 아쉬움.
▲그 삼거리에서 쉼을 갖는다.
장성봉은 직진,
우린 시묘살이 계곡으로 간다.
▲5.2K의 계곡 길을.
▲시묘살이.
옛날 부모상을 당하면 묘 옆에 초막을 지어 3년간 거처하며,
아침·낮·저녁 상식을 올리고,
▲저녁이면 침상을 준비하는 것이 禮의 기본이었다.
이것을 시묘살이라 헸다..
▲이러한 효행이 이루어졌던 골짜기라 하여
시묘살이골(侍墓谷)로 불린다.
▲3년을 시묘살이 하는 효,
오늘의 해석은 이해가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듯.
▲어느덧 계곡엔 시원한 소리와
바람이 일었다.
▲산수국이 지천인 계곡.
▲사랑은 무한하지만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려니
우리는 시간의 한계에 갖혀 있는 거니까.
▲가던 길을 멈춤하기도 하고
되돌아보기도 하고.
▲나의 방향이 잘못 된건 아닌가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
▲그래서 '멈춰야 보이는 것'을 본다.
▲은선 폭포란다
신선이 깃든 폭포란 거지
▲시묘살이 계곡의
은선폭포(隱仙瀑布).
▲때로는 삶의 응급처치도 있는 법,
미리 걱정할 것은 없어
그때마다 해결하면 되는 거니까.
▲되도록 가볍게
조금 더 유연하게
미끄러지는 맑은 물처럼 그렇게....
▲국립공원 계곡에서의 알탕.
과태료가 많겠지만
대장님이 해도된다했다 누가뭐라면 그렇게 말하려 한다.
▲시원한 몸으로 걷는 즐거움
여름 산행은 이런 묘미가 있는거야.
▲어느시절 떡바위에서 출발하여
칠보산을 넘어 여기로 내려왔다.
종주하는 이들은 다시 여기서 칠보산으로 간다.
▲이제 협곡도 끝나가는 거구
우리 산행도 막바지.
▲말은 물은 여전히 흐르고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러년 버티기 힘드니까.
▲출입금지를 넘어 쌍폭 앞에 선다.
우렁찬 소리, 시원한 바람.
▲사람이 남긴 길에는
상처도 있고
삶의 경외로움도 상존한다.
▲속리산 국립공원 분소.
거기를 다시 만났고
▲긴 쌍곡계곡은 9곡이 있는데
여기 폭포는 제7곡이다.
▲가족단위 피서객의 즐거운 소리가 가득찬 곳.
▲쌍곡 휴게소를 만나면
오늘 산행은 끝이 난거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선선한 날씨까지,
기분 좋은 걸음걸음이 이어진 하루였으니...
▲괴산의 연풍IC를 입구로 하고
백두대간을 넘어 문경으로 와 어느 관광식당.
▲오미자불고기 전골에 시원한 맥주,
하루의 피로가 한 순간에 물러갔다.
▲오래오래 같이 이자고,
건강들 잘 지키자고 그런 다짐도 하고.
▲신임 오임세 회장님의 건배사에
위하여 박자를 마췄지.
그렇게 즐거웠던 막장봉 산행,
정현종이 그랬다
녹아들지 않으면 그럴듯 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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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들다/ 정현종
녹아들지 않으면
그럴듯하지 않고
즐겁지도 않다
마음은 특히 그렇다
(지금의 세계는
마음이 만드는 세계가 아니거니와)
녹아들지 않으면
마음은 필경
삶의 전부인 저
진실의 순간을 만나지 못한다
그런 순간이 없으면
삶은 깡그리 허탕이다
녹는 일에는
물과 기름과 바람이 있고
살과 피와 무슨 그런 게 있지만
그러나
마음이 녹아들지 않으면
(지금의 세계는
마음이 만드는 세계가 아니거니와)
세계는 잿더미요
삶은 쓰레기 더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