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지자체마다 관광 마케팅에 열중하다보니 영월에는 하동면을 김삿갓 면, 서면은 한반도 모형이 있다하여
한반도면으로 개명하기도 했다. 어떤곳은 변강쇠면이라 하려하기도 한다.
인구감소의 여파로 지자체의 어려움은 이해되지만 지명이라는 역사성등이 묻히고 지명이 희화화 되며
영월 땅 이기전에 대한민국 국토라고 보면 국토의 품위를 잃은 처사가 아닌가 걱정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백두대간 대부분이 도의 경계이다 보니 앞 다투어 이 산이 우리 쪽 산이다라는 욕심이
앞서서 몇 년전 경남 함양의 마천면은 지리산면으로 하려다가 이웃 산청, 하동,그리고 전라도의 남원, 구례쪽의
거센 항의로 무산 된 적이 있다.
소백산은 어떤가? 영남인들은 소백산을 찾을 때 영주, 풍기 쪽의 삼가, 희방사 방면등으로 오르니 거의 경북 영주에
소재한 산인 줄 안다. 반면에 북쪽에서 오는 수도권과 충청도 사람들은 충북 단양 어의곡이나 천동쪽으로 오르다 보니
충북 단양의 산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 치열함 중에 몇 년전 영주쪽에서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개명하고자 대법원까지 갔지만 패소하어 무산되었다.
필자는 충북 청주를 고향을 두었으니 언제나 소백산은 충북 단양으로 소개한다.
옛 영주등 영남인들은 한양을 갈 때 ‘죽령’, 그 고개를 넘어 단양에서 배를 타고 한강으로 올랐다 요즘으로 말하면
경부고속도로였다. 거기엔 휴게소가 있는데 거기서 보는 소백산의 도솔봉과 연화봉 위용과 백두대간의 멋진 풍경은
오래오래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중앙고속도로 긴 터널이 생겼고 풍기에서 단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곤 했다.
그 죽령은 경북과 충북의 경계 지점이고 백두대간 고개이다. 거기에 휴게소가 남아있고 그 휴게소가 단양 땅이다 보니
영주사람들은 퍽 아쉬워 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2009년 3월 5일 개정된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은
“백두대간이라 함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라고 정의한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에서 한반도의 산줄기를 대간과 정간, 정맥으로
나타낸 체계를 따라 붙여진 이름인데 산줄기〔山經〕는 1개의 대간(大幹)과1개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백두대간은 총 1625km이고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의 남한 구간만 해도 690km인데 애석하게도 늦게 산행을 시작한 나는 백두대간 종주를 경험하지 못하고 부분 부분 그렇게 답사하며 지금도 어느 산 산행 중 대간 길을 만나게 되면 사무친 그리움과 가슴 뛰는 감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 백두대간 한 복판 소백산의 종주길... 거기를 여유있게 걸어보려 한다.
1987년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은
소백산. 비로봉(1,439.5m)을 중심으로 국망봉(1,420.8m), 연화봉(1,383m), 도솔봉(1,314.2m) 등이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솟아있다.
하얀 눈이었던 설경의 소백산, 철쭉의 아름다움이 끝없던 그 곳
초가을 시원한 바람을 벗삼아 거기를 걷는다.
▲산 줄기 중에는 ‘희다’·‘높다’·‘거룩하다’ 등을 뜻에서
유래된 백산(白山)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소백산.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이 생기기전 영남지방에서
단양,충주로 하여 남한강 배를 타고 한강을 가는
교통 요충지였지.
▲해발 689m, 그 많큼 백두대간 죽령고개는 굽이굽이 역사가 서렸고
'다자구야 들자구야' 전설은 산신하할머니 신당과
제사의 시작이 되었다.
▲죽령고개에서 대피소가 있는 제2연화봉은 4.7K.
도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좀 지겁기도 했다.
▲드디어 저기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가 보이고
그 옆에 대피소가 있다.
▲ 대피소는 우측으로 400m오르고,
비로봉 방향은 좌측으로.
▲경상도와 충북을 가르는
백두대간이다 보니
죽령고개부터 단양군의 긍지가 대단하다.
▲대피소에 올라 바라보는 능선 길,
가운데 천문대가 보이고 그 위 봉이 연화봉이다
좌측 제1연화봉을 거쳐 중앙, 저 멀리 비로봉이 선명했다.
▲ 건너, 죽령고개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도솔봉- 묘적봉... 백두대간은 그렇게 흘러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내달린다.
▲강우레이더, 그 옆에 군부대 시설을 인수받아
리모델링한 대피소가 있다.
▲내 고향 속리산 방향을 바라보며
석양에 물들고.
▲가족단위로 온 산객들이
같은 마음으로 석양을 봤지.
▲밤이오면 누구나 그리움이
어둠처럼 다가오고.
▲태양이 온 하늘을 물들이듯
인생의 마지막도 그래야 하지만
그것도 욕심이겠다.
▲대피소 내부모습.
여러 해 지리, 덕유의 여러 대피소를 이용했지만
5성급 호텔 같은 대피소는 처음.
▲좌변식 수세식 화장실이 내부에 있고
남녀,각 방에서 나오면 너른 로비도 있다.
햇반을 데울 전자렌지에 냉장고, 휴대폰 충전실도 개인번호롤 잠군다.
▲ 코로나 이후 대피소 담뇨 대여는 금지되고 짐이 더 많아졌다.
여러 물품들이 요긴했으니..
(대피소는 매월 1일, 15일 오전 10시에 예약하면 된다. 13,000원).
▲거기서 내려다 뵈는 인삼, 사과의 고장 풍기...
늦게까지 죽령터널 차량 정체가 풀리지 않는다.
▲아침이 찾아오고
일출을 기대했건만
짙은 구름에 가렸다.
▲ 멀리 도락산, 구병산-속리산-백화산-대미산-
주흘산-조령산-군자산 파노라마.
▲이제 천천히 걸어보려고
황소의 걸음으로.
▲내려 와 하룻밤 추억이 된
대피소를 다시보고.
▲백두대간 길을 종일 걷는 거다.
▲백두대간, 총 1,625km.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의 남한 구간만 해도 690km인데..
▲그 능선엔
가을이 짙게 내려 앉았다.
▲죽령에서 천문대까지 행성 9개
(명왕성은 최근에 행성에서 빠져 8개다)
소상하게 해설되어 절로 공부가 된다.
▲행성과 행성 사이엔
수 많은 소행성들이 때론
충돌하며 떠 돌고있다는 해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그 어머어마한 넓이, 현기증 나는 거리..
다음엔 무슨 행성이 있을거다라는 예측...
재밌는 공부가 되었다.
▲소백산 천문대...
멀리서 보면 첨성대 모양의 상징물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 별, 지구.
표면의 71%가 물이라는 것,
달을 위성으로 두고 있다는 것등등
▲우리 별이니
거기서 서 보기도 했다.
▲수금지화이니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화성과 금성.
▲수금지화이니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수성.
그 뜨거움으로 죽음의 행성이란다.
▲ 되돌아보면 저 멀리 강우레이더
그 옆이 대피소였으니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 못하면
무식한 늠이라고
안도현이 그랬다.
▲연화봉 정상,
죽령에서 7K, 동남으로 2.4K 내려가면
643년에 두운조사(杜雲祖師)가 창건했다는
유명한 희방사(喜方寺).
▲어느시절 삼가주차장에서 비로사-비로봉으로 올라
여기,연화봉에서 희방사로 내려갔다,
아득한 계단, 희방폭포가 생각난다.
▲좌측 뒤로 대피소와 강우레이더,
아래로는 천문대.
▲드디어 9개 행성들과 소행성 해설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태양이 소개된다.
▲46억년전 가스와 먼지로 이뤄졌고 기체덩어리라는 것
지구의 33만배 질량으로, 크기는 지구의 109배 지름, 지구에서 1억 5천만K.....
표면온도는 6천도.
▲크기와 거리를 보니 지구는 동전크기...
천문학의 재미와 젊은 시절 꿈에 젖는다 잠시.
▲이것은 구절초,
쑥부쟁이와 구별못하면 절교란다 안도현은.
▲제1연화봉은 저렇게 아득하고.
▲하늘이 환상적이다.
노자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것을 이긴다 했으니
'유능제강' 걸음으로 가자.
▲남들은 어찌서던 멋지던구만
난 어찌서든 엉거주춤.
▲용담.
가을의 상징 빛깔이다.
▲제1연화봉은
옆으로 스친다.
▲그리고 저 멀리 비로봉까지
지리의 연화선경 길, 덕유의 길인가 혼동된다.
▲바람은 시원했고
평화로운 길.
▲인생은 가는 길이 선명히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길을 가기도 하지.
▲어느 시절 눈덮힌 풍경과
철쭉 시절 황홀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측 능선아래는 희방사로 가는 길.
▲공중, 그 말을 좋아한다
중심이 비어서....
▲거기 눕기도하고 앉기도 했다. 포근하다
그 대와 그 안에서 아이를 낳고
삶의 냄새를 피웠으면....
▲ 겨울엔 상고대가 붙고, 여름엔 뜨거움이 작렬했겠지만
지금은 꽃 길..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새 떼.
▲손금처럼 쥐고 그댈 그리워하던
그 길이 아롱이었지.
▲험한 세상 멍들며 살아왔다.
조금은 잘못 산 적도 왜 없으랴
내 달리기만 했고 풀잎 하나에도 무정했었지.
▲큰 바위가 많지 않은 능선 길에
우람한 편이다.
▲이름 알아 불러주면 좋겠지만
잘 안된다.
여름 꽃들.
▲어느덧 인생의 가을을 지난다.
아! 그래도 눈물 머금은 신이 나를 바라보신다.
▲가을 꽃들, 모진 비바람 눈보라 이기고
꽃을 피워내는데...
산마을, 물매화, 분취, 참취, 벌개미취, ..구절초, 쑥부쟁이.
▲비로봉은 저리 보이고, 우측은 비로사- 삼가주차장이고
좌측은 백두대간 길로 국망봉-상월봉- 고치령으로
태백산을 향해 뻗어간다.
▲여기서 북쪽으로는 천둥 탐방로다.
어의곡에서 올라 비로봉으로하여 여기로 내려가기도 했다.
▲강을 만나지 않고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625km...
뉴질랜드 로저 셰퍼드가 북한을 4번 찾아
백두산에서부터 그렇게 완주했다.
▲늦게 산행을 시작하여 내겐 그런 행운이 없었지만
지금도 백두대간 길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바람이 흘러간다 내가 걷는다
너는 내게로 왔고 나는 너에게 머물렀다.
▲지나온 백두대간 길...
꿈 같은 그리움이 되었다.
▲눈 덮힌 그 시절은
수십미터 줄이 이어졌지만
오늘도 바람을 만나러 비로봉을 오른 사람들....
▲비로봉(1,439.5m)
하얀 눈이었던 그 곳, 철쭉의 아름다움이 끝없던 그 곳
이 가을에 만난다.
▲소백산 종주 길...
45K가 국립공원 능선길이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비로사- 삼가주차장(5.5K),
국망봉은 3.1K, 어의곡은 5.2K,
▲당초 계획은 비로봉-국망봉-상월봉-늦은맥이재로하여
어의곡 예정이었으나.
오늘은 여기서 어의곡으로 내려가려고.
▲오늘 지나온 길들도 다시보고
언제나 내려가는 길은
내 다시오마 그리움,
▲ 겨울엔 소백산 바람을 맞아야 한다...
그 날을 다시 예약하자
▲일하는 것을 즐기고
여행을 좋아하고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용기.
▲언제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
몸짓으로 그렇게.
▲여기서 백두대간 길은 우측으로 뻗어간다
국망봉-상월봉.....
▲한라산 어디를 걷는것 같다 저렇게 서면
바다가 하늘에 닿았었다.
▲비로봉에서 어의곡까지 5.2K
생태보호 환경같은 풍경이다.
▲많은 이들이 오르고, 내려가고...
그 시절 눈 덮힌 여기를 올랐었지.
▲설악의 12선녀탕 계곡처럼
싱그럽다.
▲한참을 봐도 원초적 환경
머물고 싶은 곳.
▲국망봉-상월봉-늦은맥이까지 하여
율전으로 내려서면 여기서 만난다.
▲겸손하게 이전한 탐방지원센터,
죽령에서 '내차를 부탁해'를 이용
47,000원 결재를 했더니 여기서 키를 찾아 차를 만난다.
▲그렇게 황소걸음으로
가을바람과 함께 걸은 꿈 같은 길...
또다시 깊은 그리움으로 몸살 앓겠다.
▲어의곡에서 10여K 만난 도담삼봉,
단양8경은 옥순봉, 구담, 석문,
사인암 상선암,중선암 하선암등 8곳을 말한다
김홍도, 퇴계등 수 많은 화가, 묵객들이 찬양했다.
▲남한강이 S라인으로 휘돌아 강 한 가운데 세 봉우리. 그래서 삼봉이고
섬이있는 호수 같아"도담'이다.
▲삼봉을 '삼봉 정도전'과 연관지어 동상까지 세웠다.
그는 봉화가 본관인데 외가가 있던 단양의 매포와 연관되어
유년시절을 여기서 보냈단다
그래서 호를 삼봉으로 했다고.
▲단촐했던 이 곳이 크게 관광지가 되어 혼잡하다.
그래도 내 고향 충북의 땅 단양, 지금은 교통등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우리가 고교 시절만 해도
단양에서 청주로 유학온 친구들이 많았다.
▲언제나 정겨운 내 고향 충북!
우리의 고교 시절은 '150만 충북도민, 15만 청주시민' 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청주시민만도 85만이지만 충북도민은 160만으로 겨우 10만 늘었다.
언제난 눈물겹게 그리운 충북..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아름답게 보존되며 발전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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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사는 동안(청주 무심천) / 도종환
한 세상 사는 동안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욕심이라서 인연이라서
그 끈 떨쳐버릴 수 없어 괴로울 때
이 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게
흐르고 흘러 물의 끝에서
문득 노을이 앞을 막아서는 저물 무렵
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헹구어 볼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엔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어긋나고 어긋나는 사랑의 매듭
다 풀어 물살에 주고
달맞이꽃 속에 서서 흔들리다 돌아보시게
돌아서는 텅 빈 가슴으로
바람 한 줄기 서늘히 다가와 몸을 감거든
어찌하여 이 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심히 흘러오고 흘러갔는지 알게 될지니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욕심 다 버린 뒤
저녁 하늘처럼 넓어진 마음 무심이라 하나니
다 비워 고요히 깊어지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