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충청도

충북제천.동산(東山·895.5m/무암지-무암사-남근석-성봉 왕복-무쏘바위왕복-장군바위-무암지 주차장 5.5H)

산꾼 미시령 2024. 9. 23. 09:33

 

울고넘는 박달재

 오늘날의 도로나 교통수단은 더 이상 고개를 힘들고 고달픔으로 생각하지 않게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읍내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어디서나 크고 작은 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했고 따라서 모든 문학적 표현은 인생의 힘든 고비를 고개에 비유하곤 했다.

 

 고개는 령(), (), (),재등으로 표현한다. 대관령, 미시령, 진부령, 육십령, 정령치,

아현, 성삼재, 코재등의 지명이 대표적이다,

 

 고개는 이별의 한이 서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역사의 고비마다 끌려가는 아들,

딸이 넘었던 곳도 고개요, 삶의 터전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이들도 고개를 넘었고, 시집가는

누나의 울음의 이별도 고개를 넘었으며 무명 치마로 눈물을 훔치던 우리네 엄마들의

아픈 가슴도 고개에 녹아있다.

 

 그렇게 한 세상을 살다 고인이 되어 상여가 고개를 넘을 적엔 온 동네 남녀노소가

마지막 가는 길을 고개에서 배웅했고, 상여군 요령잽이의 구슬픈 가사,

가락은 그 고개를 눈물 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고개 중 온 국민들이 다 아는 이름이 있다. 이름하여 박달재

제천에서 충주로 가자면 넘는 고개다. 산에 박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겠으나

박달이와 금봉이’, 이루지 못한 러브 스토리가 전설이 되었다.

 

 옛날 박달이는 과거보러 가면서 고개 아래 금봉이와 눈이 맞았다.

급제하여 돌아오겠다는 약속으로 아쉽게 헤어졌다 급제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

계속 낙방 하였고 가슴앓이 금봉이는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뒤늦게  달려온 박달이는

금봉이의 그림자 허상을 보고 껴 안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이 스토리를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쓴 반야월울고 넘는 박달재를 발표해서

히트하면서 453m, 박달재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는다.

 

지금은 터널이 생겨 일부러 넘지 않으면 가 볼 수 없는 고개가 되었다.

물항라 저고리는 물빛처럼 연한 파란색 저고리란 뜻이다.

 

 2017년 이었으니 어느덧 7년이 흘렀나보다.

남근석으로 유명한 제천 동산''작은동산을 힘들게 종주했으나

마지막 코스를 놓쳐 무쏘바위를 가지 못했다.

 

거기를 다시간다.

누가 알겠는가 세월을 넘어 회춘의 활기를 얻으려는지....

▲집중호우로 요란했던 다음 날,

충북 제천엔 날씨가 개였고

처서 답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주차장인 무암저수지에서 무암사까지는 2.4K.

더운 날이 아닌게 다행.

▲ 너머로 금수산, 좌로 작성상,

우로 동산과 성봉, 작은 동산들이

 펼쳐진 계곡, 무암계곡이었다.

▲무암(霧岩) 이랬으니

안개와 바위의 계곡이래서 그랬나 보다.

▲ 경조사 이야기도 하고

누구 칭찬도 하고, 그러는 중이지만.

즐거움은 가득.

동산(東山·895.5)을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갈래다.

코스마다 하나씩 유명 바위가 있다보니

한번 등산으로는 안되는가 보다.

▲ 두번째 등산로는

장군바위 코스인데 하산 할 길이다.

수직 암벽에 밧줄이 열개도 넘는다.

▲일상을 잠시 버려두고

새벽부터 준비하고 나선 길

상쾌한 바람처럼 정겨운 산우들이 더욱 좋다.

 

▲무암사(霧岩寺)는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하면서 무림사(霧林寺)라 했다고 전하고

 

절을 세울 때 소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해 주고 힘든 일을 도맡았고,

완공무렵 소가 과로로 죽었다 

그래서 우암사(牛岩寺)라 부르기도 했단.

▲오늘은 '제일산악회' 등산 날,

품앗이 산행으로

'장수'에서 열명이 동참했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계곡마다 물이 넘친다.

새로 징검다리를 놔 가며 건너야 했다.

▲그때부터 고된 된비알의 연속....

남근석이 뭐길래, 이리도 힘을 낸단 말인가!.

▲건너편으로 작성산(鵲城山·844.3)이 위치한다.

많은 이들이 암벽훈련을 하는 곳이다.

저 산을 올라 시계방향으로 종주하면 동산-작은동산으로 이어진.

무림사는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절을 지어 무암사(霧岩寺)라 했다.

무암(霧岩)’은 절 건너편 안개바위에서 유래하며,

 

맑은 날에는 바위가 희미하게 보이다가

안개가 짙게 끼면

선명하게 부처님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흐미....대단하다. 남근석.

잘 생겼고...다들 이 곳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아들이라도 하나 더 낳을 모양이런가?.

▲언제나 늠름한 동근님,

이런  '젊음'은 기 받을 일이 뭐 있겠냐만....

▲여기 제천을 처가로 둔 오늘 종일 같이 할 '멘토',

오랜 세월 그와 전국의 산야를 누볐다.

▲부디, 내게도 기라는게  몰려오려나

소낙비 맞는듯 불가항력으로.....

▲누워있는 남근석, 서 있는 남근석....

'젊음'님들은 누워 있는 건 본 일이 없어

무쏘바위는 '안간다'던가?.

▲까마득한 절벽 위의 남근석...

 회춘의 꿈들은 가슴마다 가득하겠다.

일부러 누가 조각하여 세운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벌떡' 일어서 있으니

 

모든 임들의 건강도, 하는 일들도 이렇게

발기찼으면(이런 표현 써도 될까?) 좋겠다.

▲남근석을 지나면 오름이 없는 줄 알았지만

여러번 밧줄들을 의지해야했다.

저 길을 따라 600m를 올라야한다.

나중 안 일이지만 1K의 가파른 길은

여러번 발을 멈춰야 하는 길..

▲유치환의 '바위'가 생각난.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精)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生命)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시를 읽으면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이 좋다.

김훈이 쓴 이순신의 마음을 닮았다.

▲쇠뿔바위란다.어떤 이는 남근석에 빗대어

쌍과부바위라고도 했.

▲이순신은 1545년 태어났고

53세인 1598년 겨울 바다에서 전사했다

중앙의 도움없이 굶어죽는 병사들까지 보며

나라를 구하고, 죽기 1년전 투옥되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

 

▲그의 나중일기엔 '감옥에서 나왔다' 했고

죽던 날 노량 관음포에서 '지금 급하니 내 죽음을 말을 내지마라'

그 많던 공로도, 그 많은 억울암도 시끄럽지 않았다.

▲작은 공적에 공치사하기 바쁘고

조그마한 억울함에 시끄러웠던 필자는

이순신의 침묵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애련에 물들이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유치환이 본 바위는 그렇겠다

안으로만 체찍질하여

비정의 함묵에 구름은 흐른다.

▲이제부터 인내의 시험장....

여러번 아찔하고, 여러번 주저 앉으며

무릎으로 기어 올라야 한다.

청풍호반을 안고있는 동산, 작성산

그리고 금수산에서 뻗어내린 신선봉,

미인봉...보배로운 산들.

▲산과 마주하면 산은 늘 말이 없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할 뿐.

▲너와 나의 마음이 포개진 자리,

뜨겁고 숨이 찼고, 심장이 뛰더라.....

 ▲입술 끝에 매단 네 마음 달콤함이

눈도 뜨지 못한 채

그 마음 맛보고 싶던 그 날....

▲바위를 기어 어르며

입맞춤 황홀함을 이렇게 생각했다.

바위를 오르며 바위와의 키스를 생각했다.

▲존경하는 이봉락 형님,

인생의 겨울은 오래오래 나중 이시기를.....

▲화려하고 향기로운 모든 것들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무의 진짜 아름다운 자태가 보이듯,

내게도 그런 날들만이 남아 있기를...

▲정겨워 잡은 손이 아니다. 이 순간만은....

수직 밧줄을 오른 '기어 오름'의 애닮음과

가슴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 중.

▲이건 연출이 아니다.

기어오르고,  오른 숨찬 여인의  모습.

지금보니 순한 어미소의 콧 잔등에 누운듯.

▲그러고도 칼날 능선은

계속이어졌.

▲산에 오를 때는 평지가 나온다는 희망으로 간다.

숨을 고르며...

▲ 그러고 서 보시라...

그렇게 가픈 숨을 잔잔케 했지.

▲그렇게 능선 위에 서면

좌측으로 성봉을 왕복해야 한다.

여기서 점심먹자, 위에 벌써 간 사람이 있다. 시끄러웠다.

▲그저 발을 뗀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많이 왔고, 나아갈 것이다.

▲'성봉'에 닿는다.

작은 봉이지만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남근석 코스,

장군바위 코스, 무쏘바위 코스등 능선을 품고 있다.

▲이렇게 함께 걷고 서로 어루만지고

또 위로하고

나를 주장하기 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계속 걸어간다. 여러 산들을,

많은 세월들을.....

▲늘 좋은 건 아니지만 토닥 거리기도 했고,

서운한 일도 생기지만

이 시원한 산정에서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산우님들은 참 고마운 존재,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다시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자

서둘러 무쏘바위(와근석)를 가야하지 않던가!.

▲ 밥 먹은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좌측으로 비밀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무쏘바위는 700m를 가파르게.

▲거기 역시 여러번 밧줄을 잡아야 했고

아찔한 경험을 해야한다.

▲동남쪽 능선이다.

우측으로는 월악의 영봉이 흐른.

여러번 밧줄을 다시 잡고.

그러나 그 힘겨움의 끝은 있겠다

우리네 삶의 길처럼..

짜릿한 기분이기도 하고,

오돌오돌 떨리는 기분이기도 하고

오늘은 오장육부, 모두를 써야하는 길인듯.

▲그렇게 700m를 내려오면 만나는

'무쏘바위'

사진으로만 봤던 그 리얼리티에 놀랐다.

오늘은 남근석 이야기에 남녀가 없다.

힘들어 내려오지 않는단 소린 안하고

'우리는 서 있는건만 상대한다'는 이..

▲어느 여인은

'누워 있는 건 우리집에도  하나 있다'.

▲오늘 힘찬 남근석 때문인가

이젠 나무 밑둥도 산부인과적 상상력으로 보였으니....

▲무쏘바위 아래 '교리'로 내려가면

외솔봉도, 작은동산도 가겠지만

우린 장군 바위코스를 위하여 다시 700m를 오른다.

▲지나간 힘은 거둘수 없는법,

닥쳐올 힘은 경험되지 않았으니

허벅지에 새 힘을 가득 채워간다.

▲자연은 쉴 새없이 작용하느라 바쁘고

풍경은 그 바쁨 덕에 자연으로 들어 나는데.

▲동서남북 기가 쎈 남근석, 장군봉 탓일까?

나무들도 생기가 넘치는듯.. 대 가족이다.

▲어느시절 성터인가,

생명과 역사의 이어짐을 위하여 힘들게 오르 내렸을 ...

▲다시 능선위에 선다,

성내리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우측 장군봉 능선을 타야했.

▲남근석 능선 남쪽의 장군바위.

빙하기에 흐르다가 저리되었다는

지구과학적 설명은 재미없다.

▲바위와 소나무

그렇게 만나 명품이 된다.

▲장군바위, 낙타바위 여러 이름들이 붙지만

보여지는대로 느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장군바위란다.

투구를 쓰고 등에 칼을 멘 장군의 모습이라는데

먼데서는 그리 보이겠지만....

▲좌측이 투구이고, 우측 치겨 세워진 곳이

칼 자루라는 것이다.

▲어찌 보이든

늠릉함이야 다를바 없었으니....

▲여기서 보면 낙타바위라 해야 할듯하고

1000년 묵은 거북같기도 했지.

▲그 사이로 들어가 봐고

한바퀴 오금저림으로 둘러보았다.

▲들어가고 나옴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

혀가 빠지는 건 당연지사.

▲이런 곳을 답사 할적에는

'하이바'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

▲풍경은 그대로이데 인간은

수 많은 느낌과 표현력으로 말을 건다.

▲거북이 등같은 디테일이 감동이고

어느 세월이 흘러 어느 화가도 만들지 못할

저런 빛깔을 낼까?.

▲마주 보는 바위를 오른다. 용감한척 하지만

밑창 닳은 등산화는 두렵기도 했다.

▲ 72Kg 몸무게 나갔던 몇년전은 빠져 나올 수 없는 크기

지금은 63Kg 이다.

▲당겨본 건너 능선, 저것도 장군 바위라는데

 속리산의 입석대를 상상했다.

▲작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저렇게 서 봤지만

낭떨어지 후들거림은 여전했다.

▲ 기어이 거기 서 보시겠다 했다

한참을 후들 거리는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다려야 한다.

▲당겨본 모습, 요즘 폰 카메라도 참 초능력자

풍경을 당기기도 밀기도 하지.

▲그리고선 이어지는 밧줄, 밧줄...

수직직벽의 바위도 헤아릴 수 없다.

▲밧줄이 아니면 못 내려올 코스

누구인지 밧줄 설치가 참 생명수 같았다.

▲청풍호(충주호)

1985년 남한강 유일의 다목적댐, '충주댐'

준공되었는데 만수위 3,000만평에 이른다.

 

이 건설을 위하여 단양은 단양읍 전체와 3개면 26개리가,

제천은 5개면 61개리가

수몰되었는데 특히 청풍면은 전체 27개리중 25개리가 물에 잠겼.

▲할거라면 좋아하는 사람과 해

사랑도, 헤어짐도....

▲이제 저 아래 저수지가 무암저수지,

그 뚝 아래로 주차장이 있.

▲그렇게 도로로 내려오고

가랑비 내리는 길을 2K여 걷는다.

▲거기 비온 뒤의 싱싱한 물가로 내려 가 알탕을 한 후

얻어 마시는 맥주 한잔!

캬... 오징어는 아니어도 상관없다.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을 때

사람의 손을 많이 탄 듯한 고양이

그와 겸상하는 소년스런 감성이 예쁘다.

▲돌아오는 길에 옛 아름다웠던

'금월봉'을 다시 찾았다

화려했던 관광지 카페등이 문 닫은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으니....

▲다시 남으로 달리고 달려

의성군 봉양의

한 쇠고기 식당에 전골을 끓인다.

▲여러 바위들로 힘을 듬북 받은 정겨운 님들이

즐거운 식사를 하고.

▲더 바랠것 없는 감사한 인생을 만킥한

'장수' 업저버들의 기쁨도 철철 넘쳤고.

▲어쩌면 한번쯤 우리는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 가던 어느 늦은 저녁

벌써 그대를 향해 웃고 있는 시절을 그리워 할꺼야 오늘을.

▲내가 외로울때 누군가는 외롭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 외로울 적에 외롭지 않은 내가

위로해 주기도 하려는 세월 일테니....

▲그렇게 마음과 몸이 즐거움과 행복에 취했던 밤,

다시 걸은 내 고향 충북의 저 북부, 제천에서의 하루

다시금 추억이 되고

 

정겨운 님들과 걷던 그 길은

어느 훗날 누구와 여기를 왔었노라고,

그리운 얼굴과 함께 그리워할 세월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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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