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3대화가‘
내 고향 충북은 11개 시군에 160만 인구를 가졌다. 북부에는
충주, 제천, 단양이 있고, 남부엔 보은, 옥천, 영동이 있으며, 중부지역은
내 고향 청주와, 진천, 증평, 음성, 괴산이 자리한다.
오늘 우리는 괴산(槐山)을 간다. 인구 3만6천의 괴산은 백두대간으로
문경과, 속리산 국립공원을 접한 산자수려한 고장이다.
괴산의 인물로는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꼽을 수 있고, 이 곳 연풍에서 현감으로 3년간
봉직한 단원 김홍도를 소개할 수 있겠다.
조선의 3대 화가가 누구냐 묻는다면 학자들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이라 하고,
어떤 이는 장승업 대신 겸재 정 선을 말하거나, 김득신, 또 어떤 이는
안 견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장승업이 100년 뒤의 사람이라고 보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겸재 정 선을 3대 화가라 하겠다.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의 대가이면서 신선도, 초상화 등의 모든 분야에 천재적인 기량을 보였다.
단원보다 13살 아래인 혜원 신윤복은 일반 층의 풍류, 남녀간의 사랑, 특히 양반풍속의 달인으로
기녀기방의 세계를 해학적으로 그렸다.
겸재 정 선은 ‘진경산수화’라는 ‘조감도’ 같은 화법을 창안하여 조선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한
그래서 화성(畵聖)이라고 부른다.
그 중 단원 김홍도를 좀 더 보자.
그는 우리보다 200살 많은 1745년생이다. 경기 안산에서 태어났다. 안산시는
두 개의 구(區)를 두고 있는데 심훈의 상록수의 무대라 하여 상록구, 그리고 단원 김홍도를
기리는 단원구이고, 가슴아픈 세월호 참사의 단원고등학교도 김홍도의 단원에 기인한다.
이처럼 안산시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단원, 그래서 단원 전시관이 있고,
지난주 전국 씨름대회를 안산에서 했는데 김홍도배 전국씨름대회였다.
당원은 영-정조시대, 이른바 문예부흥기부터 순조 시대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로 그림공부를 하였고, 훗날 도화서 회원이 되어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산수, 인물, 불화, 풍속화등의 여러분야에서 활약했다
당시 화가는 하층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정조는 단원을 극진히 사랑하여 친구처럼 지냈고
훗날 연풍 현감 벼슬을 주기도 했다. 정조는 궁궐 밖의 세상이 궁금했다 단원으로 하여금
밖의 사회상을 그려 오도록 했고, 전국 유명명승지를 그려오도록 했다
오늘날 신문기자 같은 격이리라 세밀한 민중들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그래서 풍속화가 많고, 특히 정조는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 아버지를 극진히 추모했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효도했다. 아버지 묘소 참배와 어머니 회갑을 맞아 수원 화성행궁을
찾았는데 그 행렬도를 단원이 세밀하게 그렸다.
아름다운 고장 괴산(槐山), 거기 수력발전소가 있다. 1957년 국내 기술로 설계하고
시공한 최초의 발전소다.
고교시절, 연풍이 고향이던 친구를 따라
다섯은 청주에서 열차와 버스로 2박3일 캠핑을 다녔는데 괴산댐 뚝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으며 이장희의 ‘그 건너’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런 추억의 고장을 간다.
임금(나라)에 대한 충성심, 자연에 대한 겸손함, 그리고 민중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졌던 단원의 마음으로 걸어보려한다.
▲어느덧 한 해가 깊은 가을로 묻히는 즈음
'장수 산악회'는 이렇게 섰다.
▲ 내 고향 160만 충북은 비옥한 땅을 자랑한다.
여기서 남쪽으로 80여 K,
우리 고향 청주가 있고 부모님 산소가 있다.
▲입구 다리를 철거하고 공사중인 길은
멀리 돌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선유대라 했다 괴산호의 끝자락인 셈.
여기서부터 '충청도 양반길'은 시작된다.
▲팬션옆에 새뱅이 나루터가 있고
건너편의 강물과 절벽이 절경이었다.
▲괴산호는 1957년
괴산댐의 건설로 생긴 아름다운 호수.
▲하늘과, 물과 시원한 바람이
즐거움을 더 했다.
▲선유대 각시바위인가?
이름이야 느끼는대로 붙이면 그만인 것을...
▲삶이란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허물을 벗고
새롭게 성장해 나가는 과정.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는것...
▲손가락에 낀 반지처럼 언제나 같은 자리에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생각도, 감성도.
▲봄이런가 했더니 어느덧 여름도 지나고
짙은 가을이 내려 앉은 아름다움.
▲김용택 시가 생각난다.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
제목이 이렇다.
▲'어느 봄 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해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란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그러면서 시인은
'아! 생각만해도
참 좋은 당신'이라고 ... 끝을 맺는다.
▲맑은 바람과 따뜻한 햇살...
빛나는 님들이 풍경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으로 나타나고.
살다보니 이런 호사스런 날들도 있더라...
▲나무도 사람도 강물도..
그림의 소재되어
거기 그렇게.
▲전망대에서 되돌아오고
다시 가을의 양반길을 걷는다.
▲우리,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아요.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정답입니더.
▲그래야 미련은 남지 않을 테니까.
▲삶은 단 한번 뿐....
어쩔 수 없는 거야.. 지금 하구 싶은거 하구
나중에 후회해야 하면 그때 하자.
▲참고 사는 건 웃기는 거야
당장 기면 기구,
아니면 아닌 걸로 이렇게 걷자.
▲다들 헷갈리게 살다가 후회한다...
충청도 양반길, 고향 땅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산이 좋아 만난 아름다운 님들...
오래오래 녹아들고 섞여서
그렇게 살아가자.
▲오늘 우리 길은 속리산 둘레길 7구간,
마음과 사람, 숲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상생하는 길.
▲속리산 둘레길은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의 문경시와 상주시가 어우러져.
▲속리산권역 총 208.6K를
연결한 광대한 길.
▲우리는 각자의 삶의 지휘자
내가 어떻게 지휘하는에 따라
나의 삶이 즐러울 수 도, 행복할 수도, 긴장감이 넘칠 수도 있는거니까.
▲곳곳에 그렇게 '자연'은
아름다움으로 있었다.
▲정비중인 '충청도 양반길'은 날렵한 이정표 보다
이런 겸손한 안내판이 있어 좋다.
▲출렁다리를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
힘들지 않은 오솔길을 걸어온 여유로움.
▲선유대에서
꿈 같은 길을 걸어온 것.
▲가을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사랑이 '가을 사랑'이라고 따로 있을까만.
▲도종환은 '가을 사랑'이라는 시를 썼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마음은 가을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때의 내마음은
눈부시지 않는 갈꽃 한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중략).
▲서로 닮은 듯한 얼굴은
같은 애정으로 세월을 살아온 탓일거야.
▲男도 있고 女도 있고
가을 단풍도 있으니... 그래서 어울림이라 하자.
▲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지는 않을테지.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건 훨씬 더 많을 거야 이제부터.
▲버스에서 5분 강의를 했다.
괴산의 인물 둘을 소개하면서...
한 분은 '한산도 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진주성 대첩'의 김시민 장군.
▲그리고 여기 연풍현감으로
3년을 재직한 '단원 김홍도'에 관하여
▲단원은 경기도 안산 출신이고
그래서 안산시는 심훈의 '상록수' 무대라서 '상록구'와
단원을 기념한 '단원구'가 있고.
▲ 아픔의 학교 '단원 고등학교'도 그 이름이고
단원의 고향답게 기념관,
전국 장사씨름대회도 '김홍도배' 대회라고.
▲그는 우리보다 200살 많은 1745년생이고,
조선의 3대 화가 답게 천재적 재능이 있었고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
▲그래서 정조의 명을 받아 명산 절경을 ,
그리고 사회상을 돌아보고 풍속화등을 그려 보고했으며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와 모친 혜경궁 홍씨을 기리는 '화성행궁 행렬도'를 세밀하게 그렸다고.
▲그리고 만난 '연하협 구름다리'.
연하구곡(烟霞九曲)에서 유래된 연하협 구름다리는
▲ 산막이옛길 9경 중 제5경으로,
산막이옛길에서 유일하게 달천(괴산호)을 건너는 현수교.
▲2016년 건설된 134m, 폭은 2.1m...
아찔한 상판이 스릴을 더 한다.
▲그래도 이런 다리를 건널적엔
'아이 무서워, 아이 무서워' 엄살하는
그런 여성이 '저벽저벽' 여성보다 난 좋더라 .
▲여러 곳 유람선 타는 산착장이 있었다.
'우리는 걷는데 저들은 돈 많은 사람인가보다'
그렇게 웃었지.
▲저 멀리 댐 방향에서 유람선이 들어온다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끌어지듯,
단풍 아름다운 산속에서 나오듯....
▲사람의 피가 36.5도인 이유는
적어도 그 만큼만 뜨거워져야 하기 때문이야...
너무 펄펄 끓어 오르지 마시고.
▲사람의 가슴에
쉼없이 펌프질하는 뜨거운 심장이 있는거야
그 덕분으로 온 몸 뜨거운 피가 흐르는 거지.
▲영화 '이프 온리' 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당신을 사랑했다면
그 하루는 값진 거야 정말'.
▲'5분을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그 건 중요하지 않아
오늘 네가 아니였다면 난 평생 사랑을 몰랐을거야
사랑법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 또 사랑받는 법도...'.
▲영화 이야기야 내 이야기가 아니라구..
난 그런 간지러운 말을 할 줄 몰라
충청도 양반이잖아.....
▲배를 탄 이들이나, 위에서 손 흔드는 이들이나
오래오래 행복하여라.
▲그렇게 구름다리는
산막이 옛길의 명물이 되어 있더라.
▲거기에 뜨거운 햇살이 좀 부담스러운 자리에
잔치를 벌인다.
아름다운 여성들은 볕을 등지고 앉고
▲시커면 사내들이야
해를 정면으로 받든 상관이 없다
맛있고 즐거우니까.
▲조그만 배낭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온 육,해,공군들....
여기 남자들은 메너가 좀 부족,
의자를 여성 분들께 양보 했어야 한다.
▲확실히 주량꾼들은 사진이 그대로 찍힌다.
의도한게 아니다.
▲언제나 인생은 선택,
아름다운 둘레길은 포기했다.
아홉은 천장봉- 등잔봉으로 간다.
▲개비릿길 같은 강변을 걸어오면 토끼샘,
여기서 길을 놓쳐 한참을 해멧고.
▲드디어 입구를 찾아 단체로 선다,
얼마나 힘든 코스인지 아직은 몰랐던 때의 여유.
▲바람이 말한다 지금 내게
괜찮아 괜찮다.
▲그렇게 힘겹게 오르면 전망대...
한반도 지형이 나타났다.
▲저 끝이 괴산수력발전소의 땜, 달천이
휘돌아 잠겨 한반도 지형을 이룬다.
▲괴산수련발전소는 열악했던 우리나라 수력발전 용략을 표시할 때
동그라미 도표가 춘천댐, 화천댐들에 비하여 작았다.
중고교 시절 교과서에...
▲우리가 오르는 길은 큰 진달래 능선,
지도 안내는 작은 진달래능선을 타야하는데
더 멀리 올라온 것.
▲시련과 고난의 세월 흔적이
신령한 참나무로 등극했다.
나무를 자르려다 갑자기 팔이 아프고 마음이 동하여 중단했다는 전설이 되었다.
▲천장봉(437m)이다
오르다 좌측으로 삼성봉(550m)도 있었다.
▲삶은 한번 뿐인거야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며
나만의 페이스대로 유지하자.
▲지나가는 객이 있어
9명이 다 서 보기도 했다.
그 객은 내 고향 여인이라서 착했다.
▲한반도 전망대,
영월군은 아예 면 이름을 '한반도면'이라 변경했고,
옥천의 둔주봉에서 보는 한반도 모형도 있었다.
▲지난 여름 갔던 무주의 향로봉에서도,
충북 영동의 월류봉에서도
한반도 모형을 봤는데 여기가 가장 '그럴듯 하지 않다'.
▲산 능선따라 길게 늘어선 명품 소나무 숲길 ,
아름다운 길이다.
▲이 산하와 나무들은 70년대 초,
다섯명의 가난한 고교생들을 기억할까?
청주에서 충북선 열차를 타고, 시외버스등을 타고 여기 괴산댐 둑옆에서 텐트를 쳤다.
▲ 한참 유행하던 이장희의 노래를 부르며
트위스트 춤을 췄다.
그건 너, 그건 너, 손가락으로 너를 가르키며.
▲고교 시절, 여기 괴산에는
청주로 유학온 친구들 둘이 있었다.
칠성면이 고향이던 김진욱, 그리고 장연면이 고향이라던 권숙희....
▲ 수재였던 권숙희는 좋아한다 말도 못해보고 끝났지만
훗날 괴산군에서 공무원을 한단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어느 산 언덕아래 할머니가 되어 있을거다.
▲등잔봉(450m)
옛날 한 어머니가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다는 곳.
▲등잔 그림이 추억을 소환한다.
중학교 갈무렵까지 우리 동네는 등잔을 사용했다. 석유를 '대두 소주병'에 받아다 놓고
등잔에 기름을 붓는다.
▲등잔은 심지가 있어 불을 붙이면
성냥개비로 위를 긁어 수위를 조절한다.
▲잘못하면 심지가 석유에 빠지고, 너무 심지가 솟으면 천정이 시꺼멓게 된다
책을 보다 앞머리 그스르기 반복..
학교가면 안 그스른 아이가 없었다.
▲군자산 자락 산막이 마을과
한반도 지형을 휘감고 도는 괴산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산막이'는 산이 장막처럼 둘러싸여 막혔다는 의미,
칠성면 사오랑마을에서 괴산호 서쪽 산막이 마을까지 십리길이다.
▲그렇게 임도까지 내려서고
여기서 길을 잘못들어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다.
▲백두대간이 흐르는 문경과 군자산으로 경계한다.
가을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단풍.
▲여러 명소들을 우리는 놓쳤다.
이런 날은 산을 오르지 않고
둘레길을 걸었어야 한다.
▲'수월정'
조선 시대 중기 이 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문신 노수신(1515~1590)을 기린 멋스런 건물이다.
▲유배생활의 답답함이 서려 있는듯
들어야 본다. 그 시절 여인의 방문은
왕명으로 금지겠다.
▲이런 나무도 있다 이름하여 '정사목情事木'
사랑을 나누는 중이란 19금급 이라는데
순진한 나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석양의 시간, 돌고돌아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칠성, 장연, 연풍...
그 정겨운 이름을 떠난다.
▲그렇게 막히는 고속도로를 돌고돌아
도착한 성주의 그 식당.
▲거기에서 다시 쇠고기 전골을 먹는다.
즐거운거야 시끄러운 거구.
▲가끔은 아무 이유없이
일탈이라는걸 해 보자구
산행이든 여행이든 멋진 이름들이니까.
▲어쩌다 오늘은 여인들 숫자가 더 많은듯..
이런 호사스런 시절도 있느거야 살다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그 곳을 다시 회상한다.
젊을적 아련한 추억이 서린 곳,
내 고향 청주가 저 남쪽 하늘로 아련한 곳.... 거기에.
▲ 3만 6천의 괴산군..
산자 수려한 아름다운 고장... 거기를 지키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군민들,
'대학옥수수'도 잘 팔리고,
마늘 ,고추도 실하게 키우셔서 오래오래 행복하세유.
내 고향 앞 아름다운 고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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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들은 노래 / 한강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