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수목등도화(樹木等到花)사재능결과(謝才能結果)
강수류도사(江水流到舍) 강재능입해(江才能入海)
불교 경전 화엄경이 글귀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게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먼 훗날을 근심하고, 그 근심은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은
욕심이 됨을 부끄러워 한다.
나무가 꽃을 버리듯, 강물이 강을 버리듯, 내려놓고 비워 내는, 아주 작은 사회적 지위,
몇 푼 가진것, 그것을 믿고 남을 무시했고, 남을 더 이해하고 존중하기는 커녕
함부로 평가하고 그랬으니 나를 버리지 못한 오만함이리라.
어느덧, 연말이 소리없이 다가온다.
평생 갈 것 같던 왕성한 숲도 마른 낙엽 되어 중력을 잃어버리고
떨구듯 우리의 시절도 그렇게 한 해 더 가까워 졌으리라
비우고 더 가벼워져서 든든했던 강을 버리면 넓은 바다의 행복이
다가오겠다.
그 비움의 서정을 안고 거기를 간다.
이름하여 ‘양산 배내천 트레킹 길’
가벼워진 숲도 걷고
맑은 물에 마음 적시고…
▲ '배내천 트레킹길'
2016부터 2년에 걸쳐 고점교에서- 태봉마을까지,
배내천을 끼고 걸을 수 있는
10Km의 트레킹 길이 조성되었습니다.
▲ 경남 양산시 원동면 대리,
고점교(농암대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시작되고.
▲ 여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는 밀양댐으로 넘어갑니다.
▲ 2여년을 함께 고생한 김배차 총무님이
산대장을 맡고 있는 '청림산악회'를 동행하였습니다.
▲ 어둑한 추운 날씨,
비는 내리기 시작하고.
▲ 옆으로 손 잡은 연리지..
그 생성이 엄청 궁금하지만
신비스러움으로 남겨 놓기로 했습니다.
▲ 튼튼하게 자라기를,
아름드리 숲속 경쟁에서 이겨가길 바랄뿐 입니다.
▲ 10K의 길은 약간의 오르내림 데크들이 있지만
가족끼리, 연인끼리 걷기 좋은 길입니다.
▲ 지도상으로는 '단장천'이라 하지만
양산시 입장에서야 배내골이니 배내천이라 하겠지요.
▲ 그러니까 깨끗한
밀양댐의 상류격입니다.
▲ 영남 알프스의 대장격인 가지산에서 내려다 본다면
배내고개에서 양팔 벌리듯 두 산줄기가 이어졌는데
우측으로는 지난주 올랐던, 능동산-천황산-재약산으로...
▲ 좌측으로는 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으로 뻗어가고
그 사이 15K여의 긴 계곡이 배내골입니다.
▲ 거대한 영남알프스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배내골은
1,000m대의 주요 봉우리에서 흘러드는 물이 모이는 곳이지만
▲ 정작 배내골 자체는 산행을 위해 이동하며
스쳐 지나가거나 펜션에서의 휴식을 겸한
물놀이 장소로 여겨졌으니....
▲ 중간에 마을 길도 있지만
대부분은 배내골을 가까이 바라보고
걷거나 우거진 숲으로 이어져 자연과 함께하는 길입니다.
▲ 트레킹 길은 4개 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태봉마을에서 시작해 하류로 가면서 장선마을과
대리마을(이정표의 금천마을), 풍호마을에서 구간이 구분됩니다.
▲ 그러니 좌측으로 69번 지방도를 따라 여러 마을이 있으니
가다가 시간이 없거나,
힘이 들면 마을로 내려가면 그만 인것을....
▲ 저렇게 힘들여 뚝을 쌓고
한 떼기 밭을 만들던 우리들 부모님...
▲이제는 집도, 논밭도 풀 속에
흔적만 남았습니다.
▲ 시인은 비오는 날은 외롭다고들 했는데
찬 겨울,
겨울비는 아픈 생각이 듭니다.
▲ 주룩주룩 내리는 빗 속
비닐쉘터의 요긴함 속에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 우산으로 머리 위를 가리는 것은
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슬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 외로움을 가리우기 위해.
▲'인생도처 유상수'라 했던가
어디서나 큰 교훈으로 마음을 울립니다.
▲ 그렇지, 나 없어도 아이들은 잘 자랄거구
내 염려 안해도 때 따라 꽃도 피고,
낙엽도 지는 법이니.
▲ 비 오는 날 세상은
외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듯합니다.
▲ 이별해서 외로운 사람
외로워서 이별하는 사람....
▲ 모습은 봄 비 스타일이지만
오늘은 겨울비.
▲ 아주 잠깐 진눈개비가
펑펑 눈으로 내리지만
촬영이 안됩니다.
▲ 달이 지구를 떠나
멀리 멀리 가지 못하는 이유는
지구에 작은 달맞이꽃이 있기 때문이라는 글귀.
▲ 벌써 추워진 기온에 꺼내 입은
겨울스웨터 목 부분이
무엇가 콕콕 찔러 불편하지만.
▲ 그럼에도 따뜻하니 벗을 수 없듯,
사랑도 이웃도 그와 같은 것이리니.
▲ 통도골로 올라가면 주 능선을 넘어
통도사로 넘어 간다니.
그 옛 시절, 그렇게 고달프게 다녀겠습니다.
▲ 우리는 통도골을 가로 지르기 위해
아랫 길로 갑니다.
▲ 이런 빈판 위에
눈으로 살짝 덮힌다면 열중 아홉은 넘어지겠습니다.
그 나머지 한명은 저 일테고..
▲ 깨끗한 통도골... 그 시절 넘나들며
목을 축여겠습니다.
▲ 선녀탕 이라니
홀로 빗 길을 내려가 봅니다.
▲ 박신양, 정진영, 박상면이
좀 웃겼다는 것만 기억나는 달마야 놀자....
▲ 추운 겨울이니 선녀가 목욕 할 일도 없을 테고
다시 길을 가는 섭섭한 마음...
▲ 아일랜드의 시인 '에이츠' 던가?
사랑의 시작을 '느닷없이 당하는 일격' 이라고.
▲ 사랑은 날카로운 통증으로
티없는 마음과 몸을 급습하고
내게는 늘 갑자기 불어닥친 홍수였습니다.
▲ 1998년 고성 이씨의 무덤에서
병술년(1586년)에 작성된 31세 미망인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죽은 남편을 떠나 보내는 애뜻한 여인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 이 여인은 남편과 베개를 맞대고 나눴던
사사로운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함께 다짐했던 약속을 상기 시킵니다..
▲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 낙엽진 계절 탓인가?
찬 겨울비 탓인가...그런 저런 상념에 젖습니다.
▲ 옷도 젖고, 양말도 젖은 탓인가?
뜨거운 방에 누워
미역국 끓는 소리 듣는게 그립습니다.
▲ 어느 시절 누구의 집터였을 그 곳엔
감나무만 남아 시절따라 저렇게 열리고 있었으니.
▲ 건너 재약산 방향산 줄기엔
눈이 쌓이고.
▲ 밭마다 배내골 사과나무는
봄을 기다립니다.
▲ 비를 맞고 있는 여인의 둔부...
차마 앞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우리 집도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 싶지만
마당이 있어야지...
▲ 감도, 다래도, 모과도
그대로 둔 펜션들...
▲ 지나온 풍경들은
모두 그림이 되고.
▲동행..
그렇지, 인생은 경주아닌 동행 인것을...
▲ 결코 갈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떠난 자리
가을이 짧은 끝자락을 보이더니 어느덧 겨울
그리고 연말...
▲ 그 많던 잎들을 떠나 보낸
가지들의 애틋함이 느껴집니다.
▲'카톡'!
'연락줘요 기다릴께요'
그런 톡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연말에.
▲ 그것 봐, 꽃 필 차례가
내 앞에도 있다잖아...
▲ 아무리 교훈들은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라 하지만.
▲ 이 계절은, 나에게, 나 자신에게
칭찬 해주고 싶습니다. 잘 했어! 대단해!
잘 살고 있는거야.
▲ 통장의 잔고야
윤동주의 별이 바람에 스치듯,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스쳐가지만.
▲ 이렇게 건강한 마음, 튼튼한 몸,
열심히 살아내는 한 해였으니.
▲ 이만하면 감사한 시절,
행복한 삶인 것을...
▲ 그렇게 한달 전, 배내봉-간월산-신불산-신불재로 하여
내려왔던 그 곳, 태봉마을로 내려섭니다.
▲ 그렇게 걷기 좋은 길, 사색과 묵상의 길,
10K를 걸었습니다.
▲ '파래소' ..
여기서 2K쯤 우측으로 오르면
'신불산 자연휴양림'과, '파래소 폭포'가 있습니다.
▲ 울산-밀양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고
여기에 배내골 나들목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 저 파래소 폭포 방향으로 가면
통도사 뒷산 '영축산'으로도, '신불재'를 거쳐
신불산-간월산으로도 갑니다.
▲ 거기 한 팬션의 방을 빌려
잠시 몸을 녹입니다.
▲ 작은 인공폭포에 고드름이 열리고
아름다운 연인들은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 그렇게 겨울비 내리는 배내골에서
정겨운 님들과 함께한 하루,
알아봐 주는 이 없어도
봐 주는 사람 없이도
망설임 없이 활짝 피어났다 질 줄 아는 들꽃들의 자신감.
그런 한 해, 그런 나날이 감사한 것을...
----------
등산(登山)/오세영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절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의 벌레처럼 무명(無明)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바람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