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전라도

전남곡성 최악산.형제봉(괴소리-괴소제~남봉~최악산~대장봉~형제봉~공룡능선~도림사주차장/10K,5H)

산꾼 미시령 2018. 4. 22. 20:55

 암울 했던 시절,

 봄이 되면 대학가에서 많이 인용되었던 시는  T.S.엘리어트의 황무지였다.

 

그 시를 다 외우지는 못하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이 부분을 가장 많이 읊었다

 

 그러나 라일락은 우리와 멀다,

 그 꽃을 아는 이, 또 그 꽃이 떨어지고 나면 이 나무를 구분 할 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에겐 봄꽃하면 뭐니 뭐니 해도 진달래꽃이다

 조연현은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그랬지만

우리 어린시절 보릿고개’ 4월의 참꽃, 진달래꽃은

우리의 서러운 추억으로 아련하다.

 

진달래꽃, 두견이의 전설로 인해 두견화라고도 한다.

두견이가 목구멍에서 피가 날 때 까지 밤낮으로 운다고 해서다.

 옛날 촉나라 임금 두우가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이가

되었고 두견이가 울면서 토한 피가 두견화가 되었다고 하니.

만약 누군가가 아침에 그 새의 첫 울음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곧 그의 연인과 헤어지게 됨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일까? 소월은 그 애절린 시를 통하여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렇게 울었고 김동진이 곡을 붙여 조수미가 가곡으로 노래했다.

 

느덧 그 진달래는 초록의 잎만을 남기고

떨어져 간다.

 

그 잔인한 4월의 계절에

정겨운 님들과 같이 거기를 간다

곡성의 최악산,

4년만에 다시 찾는다.

 

▲ 매월 넷째 주,

'우리들...'의 날입니다.

 

▲ '전남 곡성군 삼기면 괴소리'...

거기서 산행은 시작됩니다.

 

▲ '최악산'코스는 좌측 입니다.

4년 전 '오솔길'은 오늘 코스,  역순으로 내려 왔지요.

 

▲ 작고 아름다운 괴소 저수지.

 

▲ '장수' 산악회 회원들도 네 분 동행 했고.

 

▲ 오솔길도  6명이 동행 했으나

같이 촬영하기가 힘이 듭니다.

(우측 '근사한 사람'(남들이 그리 말함)이 필자입니다)

 

 

▲ 버스에서 5분 강의를 했습니다.

1905년도 1,033명이 멕시코로 갔던 선인들의 이야기(애니깽)

 

▲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을 소개하며

그 눈물겨운 이야기와

이 시절에 태어나 이렇게 산에 다닐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에 대하여...

 

▲ 이 시절을 감사하고, 이 한 주간 조국의 평화를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 기독교 '성경'에는

창조주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했다 기록 합니다.

 

▲ 우리 말에도 '말이 씨가 된다'

그런 말로 말의 소중함을 말합니다.

 

▲ 4년전 힘겹게 여기를 내려 오면서

'이 산은 역순으로 걷는게 좋겠다'

가볍게 말 했는데 그 말이 오늘 이뤄 진겁니다.

 

▲ 곡성의 들판이 시원합니다.

인구 3만의 곡성, 심청이의 고향이요, 기차마을로도 유명합니다.

전라선 철도가 지나고, 남해고속도로가 시원하게 관통하는 고장이지요.

 

▲ 저리 기어 오를 정도는 아닙니다.

사진을 위하여 '엎드려...'

그랬더니 잘 따릅니다.

 

▲ 뒤의 분들은 '엎드려!' 그래도 

말을 '지겹게' 안 듣습니다.

 

▲' 산은 곧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않은 영원한 품 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의 수상집

'물소리 바람소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 우리처럼 가끔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일생을 산 속에서 사셨던 스님의 말씀이니 .....

 

▲ 하긴 주말마다 산에 올라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소리를 들으며

땀을 흘림은

나른한 우리의 일상에 강약을 주는 '삶의 악센트' 입니다.

 

▲ 오늘 아침 버스 강의 말미에 그랬습니다.

풍류 악(樂)의 동악산 언저리를 가니 

삶의 아픈 모든 무게를 털고 풍악을 울리는하루가 되자고...

 

▲ 될 일은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풀리는 법이고

안 될 일은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법이니....

 

▲ 산행 길을 순응하며 걷듯,

될 일, 안 될 일.. 그런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순응할 줄 아는 삶을 살자고....

 

▲ 그런 면에서

'이런들 어떠하라, 저런들 어떠하리'

 

▲ 아이들 말대로

'아님 말고'

그리 쉽게  살자고 다짐도 합니다.

 

▲ 여러 봉들을 오르 내렸지만

오늘 조망은 기대를 버렸습니다.

▲ 풍경 좋은 곳에 서 보지만

조망도, 인물들도 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 조망이 가끔 열리지만

그냥 비가 오지 않음을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 그냥 '나이 다운', 그리고 '나 다운' 내 얼굴로

만족 해야겠습니다.

 

▲ 창원 '새 천년'과 , 광주 '새 천년'

시그널 이라네요.

 

▲ 좋았던 순간은 영원히 아픈 법이니

이 순간도 아픈 추억이 되겠지요.

 

▲ 누가 그랬습니다. '나프탈린 같은 사랑'

오래 오래 보존되도록 갉아 먹히지 않는 ....

 

▲ 아마 알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꺼야....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프탈린은 자기를 잃어 가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꾸만 작아지는데...

 

▲ 많은 봉을 오르 내렸지만

최악산은 아직 멀었나 봅니다.

 

▲ 누군가 여기가 최악산 이라고

써 붙였습니다만 그 건 아니였습니다.

 

▲ 4년전 땅 바닦에 뒹굴던 최악산 간판을

주워 다시 걸어 두었었는데...

 

▲ 길은 더욱 가파르고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집니다.

 

▲ 아직도 최악산은 500m를 더 가야하고

여긴 중봉이랍니다.

 

▲ 생각없이 터벅터벅 산 길을 가다가

'돌아서 가라' 이정표를 만납니다.

 

▲ '돌아서 가라(Detour/ 우회)

우리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우회'가 있을까?

 

▲ 그래도 '길 없음'(Dead End) 보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 그 우회 도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님들과 함께 일 것이니...

 

▲ 가끔 산행 길이 힘들 듯, 삶이 버거워 진다는 생각이 들면

괜찮아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니까...

.

▲ 가슴에 같은 그리움을 담고

걷는 다는 것만으로도 참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우리들은

 

▲ 그렇게 '초악산(728m)에 섭니다.

최악산, 초악산,,, 이름이 통일되어야 될 듯 합니다.

 

▲ 거기 너른 자리에서

옹기종기 앉아 시끄럽게  점심을 즐거움으로 나누고.

 

▲ 몇 고개를 다시 오르내리면 '대장봉(745m)'에 닿습니다.

'동악산'을 북봉이라하고, 여기를 '서봉'이라 하며,

 '형제봉'을 동봉이라 합니다.

 

▲ 여기서 '배넘이재'로 하여 '동악산'으로 가지만

우린 깊히 내려 가 형제봉(성출봉)으로 가야 합니다.

 

▲ 대장봉에서 형제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500m를

가파르게 내려 와야 합니다.

 

▲ 수 많은 야생화와 진달래는

밀려드는 신록으로 쫒기듯  떨어지고.

 

▲ 그렇게 내려오면 헬기장입니다.

그 시절,  가을에 여기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 내려 왔던 길보다 더 가파른 500m...

 

▲ 포만감으로 무디어진 천근 만근의 발걸음은

참 힘이 듭니다.

 

▲ 형제봉은 두 봉이 있는데 아주 가까이

마치 '작대기' 처럼 그렇게 마주 보고 있습니다.

 

▲ 동악산(737m), 대장봉(745m), 최악산(728m)...

여기 형제봉이 가장 높습니다.(750m)

 

▲ 맑은 날이면 지리의 만복대, 노고단, 반야봉이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무등산과 순천의 조계산도

시원하게 조망되는데...

 

▲ 이제부터 우리는

공룡능선을 위하여 나섭니다.

 

▲ '부채바위'를 찾아야 하는데

구름 속에 보이지 않습니다.

 

▲ 이제부터 기어서 오르 내려야 합니다.

 

▲ 부채바위가 저 너머로 보이는가 봅니다.

 

▲ 아찔한 암릉 길을

넘습니다.

 

▲ 올라서면 아름다운 조망터 이지만

오늘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  넘어온 암릉을 되돌아 보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 원효대사가 도림사와 길상암을 세울 때

하늘의 풍악에 산들이 춤을 췄다하여

'동악산(動樂山)'이라 부릅니다.

 

"동악산" (動樂山)

''자가 '' 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즐거울 락' 이 아닌 '풍류 악' 자이기 때문 입니다.

▲여기서 '길상암터'로 하여

'도림사'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 그러나 여기서 부터 공룡능선'입니다.

 

▲ 설악의 공룡능선에 비할게 아니지만

작지만 날카로운 암릉이 늘어 서 있습니다.

 

▲ 방금 내려온 봉들이

가끔 구름이 열립니다.

 

▲ 청류 계곡의 아름다운

'노랑석인 연두'는

'미칠' 지경 입니다.

 

▲ 영남 알프스의 '간월 공룡', '신불 공룡', '천태 공룡'이

떠 오르기도 합니다.

 

▲ 도림사가

계곡 아래도 보입니다.

 

▲ 건너 동악산은

좀처럼 보여 주지를 않습니다.

▲ 어디서 이런 빛깔이 나올까요?...

가슴 설레는 '노랑섞인 연두'.

 

▲ 잠깐 구름이 걷히면

지나온 봉들도 되돌아 봅니다.

 

▲ 가운데  '배넘이재'도 보입니다.

좌측 대장봉에서

우측 동악산으로 연결합니다.

 

▲ 청류계곡에서 동악산을 오르는

암릉구간도 건너 다 보이고.

 

▲ 넘고 넘을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 산은 어느덧

여름의 색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 우측으로 형제봉에서 흘러 내린

 깃대봉도 보입니다.

 

▲ 그렇게 필자도 앉아 봅니다.

우측으로 지나 온 봉들이 보입니다.

▲ 공룡능선의  지나온 봉들 입니다.

 

▲ 이제 내려가려 합니다.

 

▲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색들도

 다시 보며.

 

▲ '미끄럼틀' 보다 더 가파른 길을

깊히 내려 갑니다.

 

▲ 철 밧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 다시 긴- 너덜 길로 이어지고

 

▲ 이윽고 배넘이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청류계곡 5개 철교중 4번째 다리를 건넙니다.

 

▲ 올려보면 어떻게 내려왔는지

아득합니다.

 

▲ 이제 길은 편안 해지고

숲 길을 걷습니다.

 

▲ 맑은 청류계곡의 수 많은 소들도 만납니다.

 

▲ 폭포, 소, 담이 굽이치는 반석들과 어울려

지방기념물 101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 그 시절 선인들도

가슴은 우리와 같은 감흥이 있었겠지요.

 

▲ 이제 천년 고찰

도림사(道林寺)를 만납니다.

 

▲ 처음에는 신덕왕후가 다녀 갔다하여 '신덕사'였다가

훗날 '도인들이 숲처럼 몰려든다' 하여 도림사로 불린답니다.

 

▲ 허백련(1981-1977), 동양화가가 썼다는

도림사 오도문..

▲ 도림사의 내력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 그렇게 아름다운 길을

 다시 내려갑니다.

 

▲ 전남기념물 101호로 지정된 청류동 게곡은

옛부터 수 많은 시인 묵객, 고승들이 다녀 간

흔적을 남겼습니다.

 

▲ 그 반석은 1Km로 길게 이어집니다.

 

▲ 그렇게  버스는 '석곡'으로 내려 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고....

맛 있는 '고갈비'로 정을 나눕니다.

 

▲ 세월, 추억이,

그리고 '그 시절'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100년이 넘은 아름다운 석곡초등학교

누군가의 고운 추억의 모교 이겠지요.

 

▲ 그렇게 아룸다운 신록의 자연 속에 함께 했던

하루...

오래 오래 추억으로 다시 남을 것 입니다.

사락,

꽃잎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던 그 계곡에서....

....................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