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좋아하고 존경하기 어려운 풍토에서 그래도 청량감 있는 정치인 한 분을 좋아했는데
7월 뜨거운 여름 날, 비보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아쉬워 했고, 울었고, 미안해 했다.
신촌 세브란스까지는 못 가더라도 창원의 초라한 길가에 차려진 빈소에서
그를 눈물로 추모했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한 언론 매체는 그이 죽음을 ‘솔베이지의 노래’로 표현했다.
솔베이지의 노래.
노르웨이 어느 산간 마을에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와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가 살았다.
둘은 사랑 했고 결혼을 약속했다.
가난한 농부였던 페르귄트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간다.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아 1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에서 산적을 만난다.
돈은 다 빼앗기고 겨우 살아난 남편은 그리도 그리웠던 아내
솔베이지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다시 이국땅으로 떠나 걸인으로
평생을 살다가 늙고, 지치고, 병든 몸으로 겨우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가 살던 오두막에 도착해 문을 여니
어머니 대신 사랑하는 연인 솔베이지가 백발이 되어,
다 늙어버린 노인 페르귄트를 맞는다.
병들고 지친 페르귄트는 그날 밤
솔 베이지의 무릎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다.
꿈에도 그리던 연인 페르귄트를 안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는 솔베이지...
그녀도 페르귄트를 따라간다.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에 삽입된 것으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곡이기도 하다.
작가 입센의 부탁으로 작곡 된,
그 서정적이고 슬픈 선율...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그 서정을 안고 여름 덕유을 간다.
천천히 걷고 그의 죽음을 아쉬워 할 것이다.
솔베이지의 선율따라.....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雪川面)
무주 리조트에서 곤드라를 타고
설천봉까지 오릅니다.
▲ 하산지점 무주구천동 '삼공리탐방센타주차장'에 주차하고
택시로 여기까지 오는데 10,000원(택시기사010-8810-7646)
▲ 벌써 두 해가 지난, 2016년 5월 30일,
덕유종주를 위하여 여기서
곤도라를 이용했습니다.(편도 11,000)
▲ 아! 드디어 설천봉(1500m)에 오르면
장쾌한 조망이 열리고...
▲ 곤도라 상부승강장,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600m를 오릅니다.
▲ 되돌아 본 설천봉 상제루.
▲ 이제 향적봉은 저리 보입니다.
▲덕유산德裕山! 주봉인
향적봉(1,614m),
.
▲ 인증샷을 위하여 줄서는 인내는
어디서든 부럽습니다.
▲향적봉(1614)에서 남덕유(1507.4m)까지
주능선 길이만 17.5km인데다
양쪽 정상까지 오르는 산행 길이를 합치면 30km에 이릅니다.
▲지리, 가야산뿐만 아니라
거창, 함양, 장수, 진안등 전.남북와 경남 일원의
수 많은 고산준령을 한 눈에 바라보며 산행할 수 있습니다.
▲ 우측으로는 무주안성 일대가 보이고
덕산제와 멀리 통영-대전 고속도로도 시원합니다.
▲ 곤도라 덕분으로 슬리퍼, 때로는 구두 차림으로 올라
초가을 바람같은 시원함을 만킥합니다.
▲ 향적봉 아래
향적봉 대피소가 아름답습니다.
▲ 2016년 2월, 안성-동엽령에서 올랐을 때
설경은 오래 잊지못합니다.
▲ 2016년 5월 30일
그리운 '덕유종주'때엔
이랬었습니다.
▲ 향적봉 대피소에서
백련사 방향으로 하산하면 무주 구천동을 만납니다.
▲ 그 겨울, 그리 인산인해이던 대피소는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 이제부터 야생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 김춘수가 그랬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열심히 공부해서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면
내게로 와서 꽃이 되겠지요.
▲ 주목과 구상나무,
구분하기가 늘 어럽습니다. '과'부터 다름을 새삼 느낍니다.
▲살아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을 흔히 그리 부릅니다.
▲ 동자 꽃 이라네요.
▲ 시원한 바람 속,
숲길을 따라 중봉까지 걷습니다.
▲모싯대일까?
▲ 상고대가 아름다운
겨울엔 누구나 포토포인트 였지요.
▲ 세월을 잊은듯
거기 그렇게 있었습니다.
▲2016년 2월, 눈보라 치던 날
안성에서 올랐었습니다.
▲ 누구나 여기오면 이 사진을 찍습니다.
두 나무 사이의 멀리, 무룡산(1492m), 더 가면 삿갓봉(1419m),
그리고 멀리 좌측 남덕유(1507.4m),
우측 서봉 (1,492M).그렇게 육십령으로 백두대간은 흐릅니다.
▲덕유산의 향적봉을 아고산대라고 부릅니다.
아고산대란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1500~2500m)
바람과 비가 많고
▲ 기온이 낮으며
맑은 날이 적어서 키가 큰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없는 곳입니다.
▲ 중봉으로 가다가
되돌아 본 향적봉.
▲ 햇살은 뜨겁지만
바람은 절로 피서가 됩니다.
▲ 덕유 평전의 원추리 군락지는
중봉은 7월 중순, 무룡산은 지금쯤 만개일 것입니다.
▲ 오이풀,,,
지리 천왕봉에서도 반갑게 만났었지요.
▲ 옮겨온 사진입니다.
지리 주 능선이 저렇게 보여야 하는데
▲ 오늘은 천왕봉 방향만 조금 희미하게 남아
았습니다.
여기서 지리는 60k 정도입니다.
▲ 북동쪽 방향으로는
백두대간이 삼봉산(1,254m)으로 흐릅니다.
▲ 야생화는 지천으로
피어나고
▲ 중봉에서 바라본 덕유종주길...
청량하기 그지없는 계곡과 장쾌한 능선,
육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넓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를 갖고 있습니다
▲ 백두대간길은 우측 백암봉에서 좌측으로
흐릅니다.
▲ 향적봉에서 흘러내린
장쾌한 덕유평전.
▲ 그 줄기는 송계계곡으로도 가고,
거창군 여러 고을을 적십니다.
▲ 다시보는 서쪽 무주 안성방향.
▲ 앞에 보이는 삼각봉이 무룡산, 그 너머가 삿갓봉
그렇게 남덕유-서봉으로 이어집니다.
▲ 오늘 계획은 여기 중봉에서
오수자 굴로하여 구천동으로로 12K
걷는 것입니다만 저 아래 '백암봉'까지 다녀와야겠습니다.
▲ 중봉(1,594m)
향적봉에서 1.1K를 왔고
백암봉까지는 1K입니다.
▲너그러운 어머니산, 덕유산
▲백암봉으로 내려서면 올려다보면
야생화 천지.
▲ 그 해 겨울 모습입니다.
같은 바위 하나를 찾아보세요.
▲ 저 아래 좌측 백암봉(송계3거리)...
거기서 백두대간은 갈립니다.
▲ 좌우로 부는 시원한 바람...
▲ 벌써 원추리 군락은 열매를 맺었지만
늦게 피어 이렇게 반겨줍니다.
▲ 중봉과 백암봉 이 사이에서
시작된 무주구천동은 30여K 를 흐릅니다.
▲ 구절초야 가을이지만 범꼬리는
찾아지지가 않습니다.
▲ 고된 찬 바람을 딛고 서 있는
백암봉 안내판.
▲ 헐씬더 가깝게 뵈는 종주길...
한걸음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 지리에서 달려온 백두대간은
여기로 하여 방향을 꺾습니다.
▲ 이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 다시 중봉을 향하여
되돌아 올라야 합니다.
▲ 꿩의 다리와 꽃 모양은 좀 다른듯하고...
▲ 다시 오르는 길은
지리의 연하선경 길 같습니다.
▲ 문득 몰려드는 지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설악의 대청봉에서 중청봉을 향했던 길,,,
그립습니다.
▲안성에서 동엽령으로 올라
향적봉으로 오르든지, 반대로 무룡산이나 삿갓봉으로
하여 '황점'으로 하산들 합니다.
▲ 다시 올라 되돌아 본 백암봉...
▲ 바위위에 서면 누구나
신선이 됩니다.
▲남덕유, 서봉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그 너머 지리 종주길에 대한 그리움.,
▲ 당신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겠지만
진한 그리움으로 한참을 바라봅니다.
▲ 중봉의 머리 위로는
뭉게구름이 가을 하늘처럼 피어오르고
▲ 그 고된 바람 이겨내고
아름다운 자체로 하늘을 향합니다
벌을 부릅니다.
▲ 고급 카메라를 들고
야생화를 포착하는 모습들..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 다시 중봉에 올라
아쉬운 조망을 다시 보고, 다시보고
▲ 붙잡아 두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그런 순간.
▲ 마음으로 기억하고 각인하기 위하여
더 깊은 달콤한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하여
▲ 이제 오수자굴 방향으로 하산을 서두르며
마지막으로 중봉을 올려다 보고
▲1.4K의 '오수자굴' 방향으로
길을 재촉합니다.
▲ 가파른 계단도 여러곳 지나지만
비교적 길이 좋은 편입니다.
▲ 그렇게 1.4K를 깊히 내려서면
오수자 굴이 나오는데 여기서 백련사는 2.8K를 더 가야합니다.
▲오수자(吳秀子) 라는
스님이 이 곳에서 득도했다는데...
오수자,,, 참 전근대적인 이름입니다.
▲ 거기서 무주 구천동의 첫 계곡을 만납니다.
▲ 그러니까 중봉에서 백련사까지는 4.2K.
백련사에서 삼공리입구까지는 6.2K인니다
▲ 그러니 곤도라 내린 설천봉에서 향적봉은 0.6K,
향적봉에서 중봉은 1.1K, 중봉에서 백암봉까지는 1K,,,
그러니까 오늘 총 걷는 거리는 14K입니다.
▲그렇게 지루하게 내려서면
백련사.
▲ 백련사(白蓮寺)
신라 신문왕때 하얀 연꽃이 나왔다는 설에서 유래했고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1960년대 복원 했답니다.
▲ 이제 부지런히 내려가야 합니다 6.2K는
차량이 다닐수 있는 편안 길 이지만 지루합니다.
▲덕유산 백련사(德裕山白蓮寺)
초서로 휘날린 현판이 시원합니다.
▲ 기념물과 문화재가 즐비합니다.
▲ 이제 계곡 따라 길을 갑니다.
좌측으로 어사 박문수의 '어사길'이 조성되었으나
지친 여름 발길은 오르내림의 그 길을 마다합니다.
▲왜 '구천동'일까?
식당 주인에게 물으니
그 옛날 그 골짜기에 '구씨와 천씨'만 살아서 구천동이란다.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30여K의 무주구천동
기암괴석,·폭포,·벽담, 등과
울창한 수림경관이 조화된 33경(景)이 있습니다.
▲제1경(景)인 '나제통문'을 비롯하여
가의암·추월담·수심대·수경대·
청류동·비파담·구월담·청류계곡·구천폭포 등을 설명하는 데
구분이 어렵습니다
▲ 월하탄... 그러나 가뭄에
수량은 적습니다.
▲ 그렇게 내려선 삼공리 탐방지원센터...
▲ 그렇게 다시한번 덕유의
그리운 발 길은 추억이 되고
▲ 청량한 바람과 푸른 계곡
장쾌한 능선, 전형적인 육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넓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의 봉들...
그 위로 그림처럼 떠 있던 구름들...
오래오래 잊지 못할 그리운 길 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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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veig's Song(솔베이지의 노래)
겨울이 무난히 지나가고,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봄이 가버리겠죠
여름도 보일듯 하다 지나가고,
한해가 가버리는군요
한 해가 지나가 버리겠지요
하지만 난 이것만은 확신해요
당신이 다시 돌아오리란 걸..
다시 돌아오실 거에요
내가 약속드린대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실 거에요
그때 기다리는
날 발견하실 거에요
내가 약속드린대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실 거에요
그때 기다리는
날 발견하실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