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李成桂)!
지금부터 682년전인 1335년에 태어나 73세를 살았다
원나라가 기울고 새로 등장한 明을 치자는 고려의 요동정벌 계획에 반대하여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우왕을 폐하고,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한다.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던 혼란기에 ‘정도전’을 비롯한 공신들과 왕자들의 극심한 갈등으로
7년 통치와, 상왕으로 물러난 10년이 아득한 세월 이었다
태조는 8명의 왕자를 뒀다.
변방의 무명시절 고향처녀 한씨(신의왕후)와 혼인하여 ‘방우,방과,방의,방간,방원,방연’등
6명의 왕자를 얻었고
개경에서 새로 얻은 강씨(선덕왕후)는 개국 과정에서 크게 내조하며 ‘방번,방석’
두 아들을 낳는다.
자연히 둘째부인 강씨가 정비(正妃)가 되니 정도전을 비롯한 개국공신들은 그의 소생중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이에 한씨 소생의 6왕자들은 소외되고 공신들이 권력이 강화되며
왕권은 약화된다
이게 격분한 방원이 세자로 책봉된 방석과 정도전등을 살해하는 난을 일으키니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태조7년, 1398년)이다.
정권을 거머쥔 방원은 큰형은 죽고 장자 노릇하던 둘째 방과를 왕으로 앉히니
그가 제2대 정종이다.
유약한 정종은 한양이 싫어 개경으로 천도하였고 2년후 소생이 없다는 구실로 왕권을 두고
4째 방간과 방원이 무력충돌을 한 2차 왕자의 난이 있었고 여기서 이긴 방원이 마침내 왕이
되니 그가 제3대 태종이다.
태종은 즉위 5년후, 창덕궁을 새로짓고 한양으로 다시 천도했다.
태조 이성계,
조선을 개국했지만 겨우 7년즉위 후, 상왕으로 물러났고 10년 세월을 보낸 후 73세에 죽었다
태종은 아버지의 영정을 전주, 경주 그리고 평양에 봉안하였는데 임란등으로 소실되고,
오랜 부침 끝에 오직 전주 영정만이 유일하게 남아 오늘날 전주 ‘경기전’에 보존 되어있다
(보물931호)
全州!
한옥마을등 우리의 전통문화가 잘 간직된 도시이다
그 전주와, 완주 그리고 김제에 걸처 너른 호남의 분지위에 우뚝솟아 조망이 아름다운 어머니 산,
모악산(母岳山). 거기를 간다
가을이 노란 들판에 내려 앉은 계절에
정겨운 님들과 그렇게 간다.
▲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완주군 구이면 '구이관광단지'
산행의 즐거움은 시작되고..
▲ 저 KBS전주방송국 송신탑이 정상이다.
1971년 전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된 796m의 모악은
여기서 3K이다.
▲ 꽉찬 주차장을 보며 오늘 무슨 축제인가 싶지만
모악은 그렇게 전북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 일대 바로 앞에는 구이 저수지가 있고. 전주예고, 구이초등, 구이중, 전통고,
전북도립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입구의 큰 표지석,
완주군의 모악을 향한 마음만하다.
▲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힘찬 고은 시인의 마음이 배겼다.
지리를 걸을 때 어머니 산이듯, 오늘 종일 어머니 산으로 하자.
'고은'시인의 노벨 문학상을 기원하면서..
▲'김양순'할머니의 선덕비.
그는 젊어서 여기에 동곡사를 지어 늘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했고
전란중에는 빈민구제에 힘썼다.
그는 장차 전 세계의 5색 인종이 모악에 몰려들고
민족통일과 인류평화를 예언했다는데...
▲ 모악산은 완주군, 전주시 그리고
지평선으로 유명한 김제군을 경계로 한다.
▲ 비를 장만하려는 듯, 습도가 높고
산행하기 무척 더운 날씨이다.
▲ '선녀폭포'
산 밑까지 도시화가 진행된 탓일까?
선녀가 목욕하긴 좀 그런 곳이지만 하여간 여기서 목욕을 했고
나뭇꾼과 눈이맞아 대원사 백자골 숲에서 '거시기'를 하다가
하늘에 노함으로 벼락을 맞아 굳어버려 '사랑바위'가 되었단다.
참 그 나무꾼 재주가 부렵다.
▲ 순진한 선녀 탓일까? 순박한 나뭇꾼에 반한 걸까?
하여간 그 나뭇꾼은 '박기봉 총무' 정도는 되었나보다.
능력이 말이다.
그 애뜻함이 상사화가 되었나? 그 붉은 색이 아프다.
▲ 전주김씨 시조묘 입구.
문장공 김태서의 묘가 이 산에 있는데
그 후손중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있단다.
전쟁이 나면 그 무덤에 가면 안전하리라 포탄을 그리는 쏘지 않을꺼니까...
▲ 사랑바위는 우리 가는 방향과 달라 보지 못했지만
다리가 남아있다.
▲ 오르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
오늘따라 인산인해였으니...
▲ 구한말 사람이며 증산도 교조인 증산 강일순이
1901년에 여기 대원사(大院寺)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강증산은 자기를 보고 싶으면 금산사에 있는 미륵불을 찾으라는 말까지 했기 때문에,
증산계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모악산이 중요한 참배지이다.
▲ 진묵대사의 소개 글...
너무 자세하여 읽을 인내가 없다.
▲ 대원사는 신라시대의 열반종 고승들이 창건했다고 하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이란다.
▲ 대원사는 옆에 대나무 숲과 넓은 마당 한가운데
큰 5층 석탑이 눈에 띈다.
▲ 대원사는 입구에서 1.3k정도지만
산행의 묘미를 흠뻑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연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 입고 우리를 반긴다.
▲ 어느 해 여기에선 기왓장 그림 전시회가 있었는데
이 그림이 확! 눈에 들어왔다
풍만한 가슴을 만져보고도 싶었는데
스님들은 이럴 걸 보고 괜찮으신가? 나만 그런가?
▲ 대원사를 벗어나면 제법 가파른 길이다.
계룡산 다음으로 기가 쎈 곳이라니
지리산도, 계룡산도, 모악산도 어머니 같은 정성의 기도가 통하는가 보다.
▲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스님이 이 곳에 머물 때
남긴 선시가 있다.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자리니
산은 베개로다
달은 촛불이 구름은 병풍이니
바다를 숨통으로 삼는도다
거나하게 취해 일어나
춤추려 하니
곤륜산에 소맷자락이
걸리누나...“
▲ 가파른 길, 무더운 날씨
그래도 어디선가 어머니 바람같은 시원함이 달래주었지.
▲ 오르는 길은 완주군 구이면이고
정상 너머 하산 길은 김제군 금산면이다.
▲ 중간에 막걸리 타임을 갖고...행복한 얼굴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님들이 선다.
여기서 나뭇꾼은 단연 박총무님이지만, 선녀는 뉠까?
▲ 수왕사로 오르는 가파른 길,,,,
흙이 부드럽고 쎈 비가 오면 얼마나 많이 패일까 걱정도 되고...
▲ 수왕사 입구,
2K를 왔고 정상은 1K를 남겨두었다.
▲ 20m의 수왕사를 다녀오는 동안
엉덩이 시원캐하는 바윗돌에 앉은 휴식의 얼굴들..
▲'수왕사'
신라 문무왕 시절까지 역사가 올라가는 아담한 암자.
우리의 번뇌처럼 베베꼬인 나무들 앞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소담하고 예뼜다.
▲ 이제 힘들게 올라오는 후미팀,
오늘 무전기를 건네받아 후미팀을 거느린
송창훈 님은 그 임무 120% 이다.
▲ 다시 앞 팀을 건사해야 하는 필자는 다시 나선다
그래도 명색이 산행대장 아니던가..
폼은 덜 하지만
▲ 수왕사를 지나자마자 다시 가파르게 진행되고
두 아이 엄머가 가위,바위,보로 계단을 오르기 게임을 한다.
서울 남산 길이 생각났다. 어디선가 잘 살겠지 그 시절 그 여인도..
손목만 잡았다 사실이다.
▲ 그렇게 오르면 전주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데
▲ 그 편안한 삼거리에는 어김없이 주막이 펼져진다.
그 나뭇꾼도 사랑바위가 되기 전, 여기서 쉬곤 했겠다.
▲ 모악산은 산세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불교,증산교,천주교등 각종 종교문화가 발달한 특별지역이다.
▲ 정상 바로아래 '무제봉'을 만난다
기우제를 올리던 곳이다. 조선시대 가뭄 때마다 전주감사가
산 돼지를 제물로 올리고 주민들은 농악을 울리며 밤을 지새웠다
무제봉 왼쪽의 장군봉은 많은 사람이 신성시 해 왔다.
구이면 방향과 전주시내 방향의 조망이 그만이다.
▲ 무제봉에서 바라본 정상이 눈앞이고..
▲ 다시 무제봉을 다녀 와 정상으로 향했다.
▲ 정상 KBS중계소를 통제하던 시절
여기가 정상이었다
그 전망대에서 사방을 조망한다.
우리의 출발지 구이관광단지, 그 앞으로 구이저수지...
▲ 북쪽으르는 너른 호남평야 위에 65만 인구의 전라북도의 도청소재지
전주시가 보이고..
▲ 이제 마지막 정상을 향해 옥상으로 오른다.
▲ 정상에서 바라본 모악기맥 ...
우리의 오늘 코스는 저 기맥의 남봉, 장근재, 배재였지만
심원암 방향으로 가잖다.
▲ 모악산(母岳山/794m)
전에는 중계소 건물 옥상에 작은 안내판으로 정상이라 했는데의젓한 정상석이 세워졌다.
왜 그 시절에는 호남인들의 어머니 산, 정상에 이런 시설물들을 세웠을까?
하긴 1977년 유신시절이었으니...
▲ 옥상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하산 길의 금산사,
그 앞으로 금평저수지..
모악산은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 안덕저수지..그리고 유명한 벽골제등의
水源이고
호남의 젖줄이니 어머니 산이다..
▲ 안내판이 친절하지만
오늘 조망은 뿌연 연무로 흐리기만 하고
▲ 옥상에서 바라 본 북서쪽으로 매봉, 산 줄기...
가운데 북봉 헬기장도 보인다.
▲ 도로 내려 와 우린 매봉 방향으로 가다가
금산사로 하산한다.
▲ 그 5K는 산죽등 숲이 아늑하고
걷기에 참 좋은 코스이었지..
▲ 너른 북봉의 헬기장
여기서 우린 점심을 나누고 즐거움에 시끄럽다.
▲이제 내려가는 길....
버스에서 전주에 관련하여 태조 이성계,
모악산, 금산사등의 8분 강의를 했는데
종일 야사의 '탑돌이 이야기'들만 기억한다.
▲ 심원암 가기 직전 '금산사 심원암 북강삼층석탑' 보물 제29호,
고려시대의 탑이다.
앉은 자리며, 탑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수행은 청소와 주변 정리부터일건데 우거진 풀 속의 모습이 안타깝다.
▲ 돈 들인 시설은 근사한데
정성들이는 관리는 아쉽다.
▲ 숲이 아름다운 길을 내려가면
▲ 좋은 자리에 '심원암'이 아름답게 자리한다.
수행에 너무 열심인가 깔끔한 주변정리가 아쉽다 여전히..
▲ 여기서 금산사는 1.8K인거구.
▲ 거기에 사람 키만한 예쁜 보살조각이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있다.
요즘은 기계로 한다지만 우리 조상들은
돌을 떡 주무르듯하는 기술이 있나보다.
▲ 이제 우린 다시 금산사로 향한다
▲ 가을은 점점 다가오고
▲ 안내판은 잘 되어 있지만 거미줄 투성이고....
하여간 심원암은 아쉼이 많이 남는다.
▲ 좋은 물질이 많이 나온다는 편백의 숲,
산수유가 아름다운 길을 따라
계곡 물소리와 함께 걷는다.
다.
▲ 아! 드디어 금산사
'혜덕왕사진응탑비' 보물 24호이다...
고려 전기에 활동했던 승려로 금산사 주지를 지냈다.
역사 깊은 금산사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 연리지는 케이블카정, 모악정 방향으로 오르다보면
있었다.
▲ 오랜 수령의 감나무,
그가 말했다 '공수래 였듯, 공수거' 였다고..
▲ 애기단풍 길이 아름다운 길을 내려가면
서서히 웅장한 금산사가 들어온다.
▲ 부릅 뜬 사천왕 상이 온갖 세상으로 땟 물든 나를 호령하고 ..
그 곳을 통과하니 몸도 마음도 잠잠 해진다.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을 지나니 큰 마당이 나오고
입이 딱 벌어지는 아름다운 건물 배치이다.
▲ 백제 법왕 원년에 창건된 금산사(金山寺)
국보 제62호 미륵전, 노주(보물 제 22호), 석련대(보물 제 23호),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 제24호) 등 오측석탑(25호),방등계단(26호)
육각다층석탑(27호) 석등(828호) 당간지주(28호) 대장전(827호)
그리고 심원암의 복강3층석탑(29호)등
보물 10개 도 있다.
▲ 통일신라시절 억압받던 백제 유민을 달래준 진표율사,
후백제의 견훤, 주선중기 천하공물설(천하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의
개혁적 사상가 정여립,
그리고 동학의 전봉준 혁명정신이 깃든 사찰이다.
▲ '대적광전'..
1963년 보물 476호로 지정되었으나,
불이 나서 타버리는 바람에 보물에서 해제되었다ㅜ.지금은 1990년 복원한 것이다.
흡사 옛 궁궐의 왕의 길과 궁전을 닮은 멋찐 모습에 탄복한다.
▲ 미륵전(국보 제62호)
딱 봐도 국보급이다.
이 안에 높이 11.82 m인 미륵불이 있는데 사진촬영 금지란다
▲ 미륵전 옆에 적멸보궁이 있고
보물 25호인 5층 석탑, 26호인 방등계단이 있는데
가림막으로 가리고 공사중이다.
여기 대적광전 뒤 대장전과 나한전이 궁궐의 후원처럼 아담하다.
▲ 여기도 보물, 저기도 보물...
너른 마당에 노주(보물 22호), 석등(보물 828호), 옆의 명부전과
보물 827호인 대장전, 당간지주(보물 제 28호)등 둘러본다
점판암의 까만색의 욱각다층석탑(보물27호) 이 퍽 인상적이다.
▲ 다시 봐도 아름다운 국보 미륵전.
▲ 보물 22호 노주
▲ 보물 828호의 석등,
내 고향 충북의 법주사 쌍사자석등은 국보였다.
▲ 미륵전 뒤로 모악산 정상도 보이고
▲ 그렇게 20여분 금산사를 돌아보고
다시 길을 나선다.
▲ 주차장까지의
숲 길이 참 아름답다.
원래 봄철, 벚꽃이 유명한 곳이다.
▲호남 4경이 있다
변산반도의 녹음(邊山夏景)/ 내장산의 가을단풍(內藏秋景)
백양사의 겨울풍경(白羊雪景)/ 그리고 여기 금산사의 봄 경치(母岳春景) 이다.
▲ 화살나무를 오랜만에 본다
5월에 황녹색 꽃이 아름답고 10월에 붉은 열매가 연다
▲ 일주문을 만난다.
호남, 특히 김제사람들의 긍지가 대단한 곳이다.
▲ 무더운 날, 인공폭포도 시원하고
▲ 그렇게 관광단지를 지나 주차장에서
시원한 바람속에 한 상을 차린다.
▲ 다시 되돌아 본 어머니 산...
아름다운 능선길과 수많은 종교인들과 개혁가들의 꿈과 한이 서리고
어머니 모악이 있었기에
동학도들은 금산천 원평들에서 부나비처럼 산화할 수 있었으리...
의
▲ 오늘, 우리는 이 지도와는 다르게
정상에서 심원암 방향 포근한 길을 걸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모악산.
고은 시인의 말대도 모악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산이다.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었으니 모악의 그 맑은 정기가
모든 정겨운 임들의 삶에 활력이 되고 지혜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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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악 산 /고은
내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사람들마저
어서오라. 어서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여기 고스락 정상에 올라
거룩한 숨 내쉬며
저 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 풀과 나무 어진 짐승들
한 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고장 모악산은 천년의 사랑이외다.
오 내 마음 여기 두어
'山行..그리움따라 >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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