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전라도

전남담양.용추봉(龍湫峰·584m/관리사무소-용연1.2폭포-용추사-가마터-용추봉-신성봉-가마골-출렁다리 –주차장/ 9.8km.4시간30분)

산꾼 미시령 2017. 9. 17. 20:35

    담(潭陽)!

     벌써 십여년전, 막내가 특전사 부사관이 되어 첫 부임지가 담양이었다.

  대나무가 많은 고장으로만 알았던 그 곳에 가니 가을 빛에 붉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Metasequoia)가 인상적이었고 소쇄원 커피숍 알바생에게 그 발음을 따라 여러번 반복,

   배운 기억이 있다.

 

    인구 5만이 채 안되는 담양, 남쯕으로 광주광역시에 연접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서쪽으론 장성, 동으로, 곡성 화순, 그리고 북으로 정읍과 순창이 이웃한다.

 

      정자 문화로 소쇄원과 면앙정, 식영정 같은 정원과 대나무의 고장으로, 화려함은 덜하지만

    꾸미지 않은 멋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소쇄원과 식영정등은 문화재적 가치와 빼어난 풍광으로

    담양 10경에 꼽힌 곳이다.

 

    그런 담양 10경 가운데 으뜸은 가마골 용소이다.

  옛날 그릇을 굽던 가마터가 많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가마골,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1950년 북한군 유격대는 이곳에 노령지구사령부를 구축하고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탄약제조창과

  군사학교 등을 세우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1955년 완전히 섬멸 당했다.

 

    당시 사령관이 은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사령관 계곡은 2등산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가마골 계곡의 백미는 '용소'. 용이 승천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곳 용소는

  영산강의 시원이기도 하다. 용소는 계곡물이 오랜 시간 암반층을 통과하면서 만든 깊은 웅덩이로,

  암반에는 용이 꿈틀대는 모습으로 홈이 패어 있는데,  물이 홈의 중간에 걸려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절경이다.

 

    이런 가마골을 품고 있는 산, 용추봉(龍湫峰·584m) 거기를 간다

  노랗게 가을이 물들어 가는 들판을 보며

  정겨운 님들과 그렇게 간다.

 

▲ 아담한 폭포가 숨은 깊은 골,,,

'가마골'에 섰습니다.

 

▲ '가마골 생태 관리사무소'

3,000원 입장료가 좀 거시기했습니다.

 

▲ '가마골'

옛부터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다하여

'가마곡(谷)' 이라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마곡이 가마골로 되었습니다.

 

▲ 담양군에서 지정한 생태공원...

수련한 계곡과  빨치산 항거지등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 꽃와 잎이 영원히 만나지를 못한다 하여

상사화.꽃무릇 이라 혼동하여 부르지만 잎이 소멸하고 꽃 대가 올라오는 공통점이 있으나 

상사화는 여름 꽃(7-8월)이고, 9월중순부터 피어나는 붉은 이 꽃이 꽃무릇 이랍니다.

 

▲ 오늘 산행은 우측 '용연폭포'로 올라

좌쪽 용소방향으로 하산 할 예정입니다.

▲ 비온 뒤 개인 날씨에 시원한 바람...

산행하기에 그만입니다.

 

▲ 용추봉을 오르는 길에 첫 만나는 '용연 제1폭포'

수량이 많지않아 우람하지는 않지만

제법 긴 맑은 폭포소리는 마음까지 시원케 합니다.

 

▲ 비탈을 100m 더 가면 제2 용연폭포를 만납니다.

제1폭포가 2단폭포라면 이 폭포는 한달음에 떨어져 내립니다.

▲ 짧은 급경사를 조금 오르면 길이 평탄 해지고

봄이면 벚꽃이 아름다웠을 임도를 만납니다.

 

▲ 아름다운 작은 저수지 뒤로  정광사와 용추사 갈림길을 지나고...

200m를 되돌아 올 생각으로 오르면

'용추사'가 나타납니다. 천년 고찰이라 소개되는데

호젓함 빼고는 크게 볼 것은 없습니다.

▲ 건물은 최근에 지은듯 하고

법당은 닫혀 있습니다. '천불전'

이름으로 봐서는 1000여 불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시원한 약수 옆에 가을의 전령사는 피어나고

코스모스  못지 않는 환한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 요즘들어 사진을 보면 가능하면 멀리 찍어야 합니다.

얼굴에 세월이 진하게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 거기에 정겨운 님들을 세워보고

가슴시린 최백호의 감성의 계절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 그 역사의 가마골에 복원한 가마터가 있습니다.

 

▲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가마터를

1997년부터의  발굴조사에서 16세기 그릇,기와가 발굴 되었답니다.

 

그릇, 기와를 빚고, 굽고, 

지고나르며 판매를 하며

참 힘겨운 삶 이었을 것입니다.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 생각이 납니다

▲재미없는 아스팔트 임도를 오르다가

좌측 등산로로 접어들면

키만한 산죽 길을 지나갑니다.

 

▲ 무등산이 가깝고, 지리산이 그리움으로 보이니

산죽의 그리움도 짙게 올라옵니다.

 

▲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 그늘에 앉아

누군가의 배낭에서 나온 백포도주를

분위기 나는 유리글라스에 나눠 마십니다.

 

▲ 그렇게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그 곳이 용추봉 정상이랍니다.

 

▲ 남쪽으로 지리주능선도,

남서로는 무등산, 강천산등이 조망되는데

작은 전망대 하나가 참 아쉽습니다.

 

용추봉(龍湫峰·584m)

거기에 섭니다. 이제부터 호남정맥길을 걷습니다.

이 길은 전북과 전남의 경계 길 이기도 합니다.

 

▲ 정상석도 없지만

여기가 용추봉입니다.

 

▲ 이제 호남 정맥길을 따라 오르내리다가

바람 시원한 그늘 아래서 점심을 나눕니다.

 

▲ 정겨운 님들의 배낭은 요술 가방 입니다.

산해진미가 쏟아집니다.

 

▲ 그 능선길은 짙고, 초가을의 햇살은

건강한 조릿대 반짝거림으로 빛납니다.

 

▲ 언제나 산은 그리움으로 손짓합니다

구름도 바람도 ....

 

▲ 이제 한 달여 지나면 낚엽이 지고

풀 벌레소리도 깊은 침묵을 준비하겠지요..

왠지 모를 깊은 그리움에 먹먹 해 옵니다.

 

▲  정호승이 그랬습니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하고 길을 걷는다..'

 

▲ 저 멀리 빼꼼히 그리운 지리가 보입니다.

죽어서도 묻어둘 그리움....

이번 추석연휴,  벽소령에서 1박을 하려고  예약전쟁에서 겨우 자리를 얻었습니다.

 

▲  호남정맥길에서 90도를 꺾어 좌측으로 내려오고

490봉을 지나 내리막 능선을 가면 임도를 만납니다.

 

▲ 여기서 다시 우측으로 산 길을 갑니다.

신성봉은 400m이고, 출렁다리는 1K입니다.

 

▲ 그 호젓한 길을 약간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그만인 능선을 만납니다.

 

▲ 생태공원을 중심으로  산책길, 등산로가

다양합니다.

 

▲ 계속하여 정호승은 말했습니다.

....살아갈수록 외로워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워/

 

외롭고 마음 쓰리게 걸어가는/ 들 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 조릿대 숲 사이로 완만하게  오르면

벤치 3개의 봉우리를 만납니다.

 

▲ 다시 잠깐 내려가다가

오르막 중에 짧은 바위길을 만납니다.

 

▲ 오늘 코스중 안타까웠던 조망터가 이제 나타납니다.

좌측 봉우리가 다녀온 용추봉이고

 

▲ 다시 내려섰다가

오르면 기막힌 조망터가 나타나는데...

 

▲ 오늘 코스중 조망이 제일 좋은

 '신선봉'을 만납니다.

 

▲ 제가 빠지고서야

 무슨 명품 사진이 되겠느냐?

아무도 그 말을 하지않아  제 스스로 그 말을 하며 앉아봅니다.

 

▲ 추월산 방향으로도 서 봅니다.

▲다녀온 좌측 용추봉으로부터 백암산과 내장산도

아련히 흐르고.

 

▲ 여기서 부터 출렁다리까지는 가파른 위험한 길로

이어집니다.

 

▲ 강천산(583m)도 가까이 보이고

그 뒤 우측으로 광주의 무등산도 보입니다.

 

▲ 남서쪽으로는 추월산(731m)도 선명합니다.

 

▲ 회문산도 보이네요.

 

▲ 멋진 소나무에도 앉아봅니다

 

▲ 건너로는 치재산(591m)이고

산 중턱에 '정광사'도 보입니다.

 

▲ 우측으로는 추월산  그뒤로 무등산...

저 멀리로는 지리의 능선도 희미합니다.

 

 

▲ 가파르게 내려가다 되돌아보면

방금 내려온 신선봉입니다.

 

강천산은 여전히 아름답게 흐르고..

 

▲ 비문에 자손들의 이름이 정성드린 묘.

따뜻한 자리, 메마른 흙에 잔디는 자랄 수 없지만

산소 위치는 그만입니다.

 

▲ 밧줄을 잡고 아주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눈, 비의 날에는 위험하겠습니다.

 

▲ 다시 좌측으로 가파르게 꺾어 내려가고..

 

▲ 안연한 숲 길을 한참을  미끌어지면

 

▲ 출렁다리가 아름답게 내려다 뵈는

기막힌 조망터가 다시 나타납니다.

 

▲ 방금 내려온 신선봉은

저런 모습입니다.

 

▲ 언제나 한 줄기 바람과 조망

그리고 봉들 앞에 서면

우리들은 근원을 알수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 이제 다시 출렁다리를 향하여 내려갑니다.

 

▲ 출렁다리 건너 앞 봉을 오르면 거기에

'빨치산 사령관 동굴터' 가 있지만

오늘 우리는 거기까지 가지 않습니다.

 

▲ 이쪽 '시원정' 정자에  짐을 벗어놓고

출렁다리를 다녀옵니다.

 

▲ 거기서 '용소'를 내려다 봅니다.

남도의 드넓은 곡창을 감아 돌고, 돌아 흐르는

130K의 영산강의 시원(始原)입니다.

 

▲ 저 뒤로 뵈는 시원정,,,

길이 68m, 지상높이 30m.

1999년 5월에 완공한 출렁다리입니다.

 

▲가마골 계곡의 백미 '용소'입니다.

 용이 승천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영산강의 시원!

 

 용소는 계곡물이 오랜 시간 암반층을 통과하면서 만든 깊은 웅덩이로,

  암반에는 용이 꿈틀대는 모습으로 홈이 패어 있는데

 물이 홈의 중간에 걸려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절경입니다다.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1950년 북한군 유격대는 이곳에 노령지구사령부를 구축하고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탄약제조창과

  군사학교 등을 세우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1955년 완전히 섬멸 당합니다 

▲ 돌 난간도 대나무 모양입니다.

여기가 대나무의 고장 담양아니런가!.

 

▲그렇게 아픈 역사의 계곡을 걸으며

까마득히 내려 온 신성봉을 다시 봅니다.

 

▲ 맑은 햇살에 작은 고기들은 노닐고

영산강으로 흘러흘러 갑니다.

 

▲ 그렇게 시원한 계곡에서 올 마지막일지 모르는 '알탕'도 하고

가을은 이 계곡에도 내려 앉았습니다.

 

▲ '참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꽃무릇.

잎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보다는 나중에 자랄 꽃 눈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지요.

 

▲ 이해인 수녀님은 그랬습니다.

'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내 분홍빛 애뜻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 그렇게 하루 해는 저물고

그리운 님들과의 하룻 길은 깊은 추억이 됩니다.

 

▲  강천산과 추월산을 끼고 있다하여

600m 원시림을 이루고,

 타고난 지리적 여건으로 하여

 

3000이 피난민과, 빨치산 1천명이 머물다 간 아픈 역사의 계곡에서 함께한 하루.

목쉰 폭포의 아수성처럼

그렇게 삶은 이어지겠지요.  그리운 님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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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瀟灑園)에서/ 이희중

 

계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던

오후, 세상이 가파르게 기울던 오후

제주 양씨가 살아서 공들인 해묵은 뜨락에 선다

 

시내는 수백년을 한 자리, 돌 사이로 흘러

낡은 다리의 자리를 뜻깊게 하는데

사람들은 계단을 몰라 축담 근처를 서성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무들은

도대체 죽지 않을 양 오늘도 씩씩하게 자라며

새로 추워지는 날씨에 다만 안색을 꾸밀 뿐

바로 곁에서 그들의 죽은 조상은

도대체 썩지 않을 양, 첩첩한 기와 따위를 들고 있다

신음 하나 없이 문명 또는 운명을 이고 있다

 

들어설 때 보아서 이 뜨락은 산에 안긴 듯했는데

들어오니 산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마당 끝 어디에 겨우 걸쳐 있다

 

사람은 산을 사랑하나 산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법

그래서 瀟灑翁은 세상 쪽으로만 담을 쌓고

등성으로는 삼가하여 담을 쌓지 않았다

 

뜨락이 내내 산으로 열려 있는 동안

제주 양씨는 후손들이 지어준 작은 산 속에

누워 있었을 텐데, 지금 쉽게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