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부산, 마산, 통영등 남해안을 돌아보는 3박4일 수학여행 마지막 밤은 ‘여수’였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남해대교 밑을 지나 여수에 거의 가까이 와서는 수평선이 처음으로 보일 무렵,
약간의 파도에 속들이 울렁였다.
오후 ‘오동도’를 갔다. 오동도 중간쯤 어디쯤엔가 물가까지 내려갔는데
바닷물이 정말 짠 건지 맛을 봤다. 남몰래...
정말 짰다, 그렇게 바다 없는 충북의 고교 2년생은 해운대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고,
오동도 갯가에서 처음으로 바닷물을 손으로 만졌고 맛을 봤었다.
교련복에 검은 학생모자를 쓴, 600명를 인솔 선생님들은 가는 곳마다 기압이고
반군대식으로 ‘군기’들여 다녔다. 여수에서의 마지막 밤, 열 학급 실장들을 불러놓고
선생님들은 가이드라인을 주며 자유시간 2시간을 하달했다.
약싹 빠른 아이들은 언제 준비했는지 주소를 적은 쪽지를 만나는 여학생들마다 돌렸다.
‘박기봉’대장님 같은 친구들 말이다. ‘아 저래야 하는가?’ 주변머리 없던 나도 급히 쪽지 두어 장을
만들었다.
여행 후 며칠 지나 한 여학생에게서 편지 한통을 받았다.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두어 번 편지가 오갔다. 이제는 그 여고생도 여수의 어느 산 아래 동네에서
할머니가 되어 가겠지..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여수’(麗水)
서울에서 KTX도, 새마을호도 다닌다. 호남선으로 내달리던 기차는 ‘익산’ 에서 전라선으로
갈라지고, 그 전라선은 순천을 지나 여수에 닿는다.
내 고향 청주, 청원이 통합될 때 통합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여수였다.
한 뿌리였던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은 이름을 ‘여수’로 하는 대신 시청과 관공서들을
여천에 내주고, 여수시의원은 절반으로 자진하여 줄였다.
그렇게 1998년 3개시군은 통합되어 오늘날 30만 여수시가 되었다.
그런 추억이 있는 아름다운 여수, 거기에 빛나는 보석 ‘금오도(金鰲島)’가 있다.
눈앞에 펼쳐진 다도해 … 걸음마다 초록의 원시 난대림, 그리고 18K가 넘는 수직 벼랑의 길
‘비렁길’(‘비렁’은 벼랑(절벽)의 여수사투리)
거기를 간다.
눈부신 5월의 봄 날에 정겨운 님들과 같이....
▲ '이순신 대교'
광양의 금호동에서 여수의 묘도을 잇는
2.26K의 현수교, 그 높이와 길이에 압도됩니다.
이 다리 덕분에 여수 시내를 거치지 않고
여수산단, 돌산도등을 빠르게 갑니다.
▲ 그렇게 만차되어 도착한 신기항.
'오솔길 가족'들이
5월의 찬란함에 더욱 빛납니다.
(여수시 돌산읍 신복리1626번지)
▲ 신기항과 금호도 여천항을 오갑니다.
20여분이 걸리지요.
▲ 그렇게 항구를 떠납니다.
항구를 떠남은 그리움의 상징이고,
그래서 노랫말이 많습니다.
▲ 왼쪽으로 '화태도'를 연결한 '화태대교'가
길게 놓여 있습니다.
▲ '갈매기'를 기대하고
'새우깡'을 산 분들이 많지만 갈매기는 보이질 않습니다.
어디들 갔을까?
▲ 여수시 남면에 속한 자라를 닮은 '금오도(金鰲島)'.
우리나라에서 21번 크기의 섬 이랍니다.
해안선 길이가 64.5K이며, 인구는 2,300여명 입니다.
▲ 차도 싣고 사람도 싣고 왔습니다.
섬은 바다에 가로 막혀 가볼 수 없는 곳
그래서 그리움이니. 그러니 섬은 동경이고
희망이기도 하지요
▲ 그 여천항에서 버스를 타고
'함구미'에 도착합니다.
여기에서 18.5K의 긴 '비렁길'트레킹 코스가 시작됩니다.
▲ 15명은 '산종주 팀이고,
나머지는 비렁길 코스로 갔습니다.
▲ 섬의 온 논과 밭을 뒤덮은 '방풍'
중풍을 방지해 준다하여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KBS 제3일 다큐는 이 방풍밭에서 시작했습니다.
▲ 아담한 '함구미'...
섬은 그리움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 이제 우리는 대부산(매봉산)으로 하여 10.2K의
긴 종주를 시작합니다.
▲ 편안한 길이라 예상했던 일행은
긴 오르막 길과 끝없는 오르내림의 '종주 길'에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 마을 뿐아니라 산 속 곳 곳에 이런 돌담들이 이어집니다.
세찬 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지혜입니다.
▲ '찔레꽃'... 이 꽃을 볼 때마다
장사익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이 부분이 가슴 찡합니다.
긴 숲속 길을 오르다
이제 조망이 나타납니다.
▲ 오늘 종일 길은 깊은 숲 속을 걷다가
이런 찬란한 햇살이 나타나면 더욱 반갑습니다.
▲ 섬은 그리움이고, 산도 그리움이니
섬 안에 있는 산...그리움에 더한 그리움입니다.
그러니 가고 싶을 수 밖에 없습니다.
▲ 최고봉 대부산이 382m이지만
그 옛날 바다가 육지였을 때는 해발 1천m가 훌쩍넘는 고봉
이었으리니..
▲ '소사나무'
느티나무를 닮은 수형과
기르기 좋아 사람들이 분재로 많이 활용합니다.
뿌리가 강해 해풍에도 끄떡없이 온 산에 군락을 이뤘습니다.
▲ 지은 지 얼마 안될 듯한 최고의 조망지 팔각정,
기와와 목재로 보아 아주 고급스럽게 지어졌으나
포삭 주저 앉았습니다.
설계 탓일까? 시공 탓일까?
▲ 거기서 바라보는 섬.섬.섬.
뒤로 '돌산도', 다리로 연결된 '화태도'
앞 좌측으로 '월호도', 그 앞으로 '대두라도'...
▲ 가야 할 대부산과 옥녀봉 방향도 봅니다.
▲ 여러 오르내림 속 숲이 신기합니다.
난대림의 진수를 볼 수 있습니다.
▲ 돈나무와 쪽동백, 동백나무 관중은 물론 아이비와
콩난등 부착식물도, 지천입니다.
▲ 종종 나타나는 거대한 암릉에는
부처손, 담쟁이 덩쿨이 신선하게 보입니다.
▲ 조선시대 금오도는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棺)
또는 판옥선 등의 전선(戰船)을 만들 때 사용하던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黃腸封山) 이었답니다.
▲ 이로인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는데,
고종황제 이후부터 출입이 자유로워졌으며.
금오도라는 이름은 섬에 삼림이 울창하여
자라처럼 검게 보였기 때문에 "거무섬"이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오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 대부산(大付山)은 옛 날 나뭇꾼들이 산이 높고 장대하다고 하여
'대대산'이라 부른 것이 지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 우리는 힘들어도 35여명이 간, 비렁길 2, 3코스가
아름다워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그리움의 섬들...
화태도 앞으로 월호도, 그 앞으로 대두라도 그 안쪽으로 두라도
우측으로 소횡간도, 대횡간도...그리고 이어진 섬 섬 섬...
과연 남해 어디나 '다도해' 답습니다.
▲ 그 아늑한 곳에서 점심을 나누니
즐거움은 배나 됩니다.
▲ 긴 숲을 빠져 나오면
갑절의 즐거움이요, 상쾌한 바람 속 행복입니다.
▲ 언제나 인품 넉넉한
'장수'의 가족입니다. 동행케 되어 종일 행복했습니다.
▲ 간 밤의 야근으로 좀 힘들어 하는 정수님...
돌아올 때 거금을 들여 '싸만코 붕어'를 돌립니다.
▲ 저 아래로 '송고 선착장'도 보입니다.
바다도 한 가지 색이 아닙니다. 해초가 자란 곳은 짙고,
구름 그림자가 비친 곳도 그러합니다
바다의 속살 이겠지요.
▲ 멀리 돌산도, 그 뒤로 여수 시가지도 아련합니다.
좌측 거너로는 남해의 설흘산도 보입니다.
오늘따라 필자도 그래도 봐 줄만한 정도는 되지 않습니까?
▲ 뜨거운 바위, 한 겨울의 찬 바위에 붙어 자라는 부처손...
그렇게 자라감이 신비롭습니다.
▲ 대부산, 큰 산으로 '대대산'에서 왔다는 것과
입산통제되던 산을 임대, 즉 '대부' 해준 산이라서
이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 대부산(매봉산/382m) 그러나 숲 속에 정상석도 없이
그렇게 갖힌 자리에 실망합니다.
▲ 섬들을 봅니다.
섬과 섬 사이가 바다입니다.
▲ 이제 우리는 '문바위'를 향합니다
▲ 숲 길에 갖혔다가 가끔 나타나는 조망터는
그 고마움을 더합니다.
▲ 송고마을... 날아 다니는 새의 눈에는 저런 풍경이 보이겠지요?
코발트 불루.. 온통 불루입니다.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 대두라도, 그 뒤로 두라도...
그 너머로 향일암으로 유명한 돌산읍이 있습니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습니다.
▲ 그렇게 도착한 '문바위' 두 개의 큰 바위가 문설주 마냥
그렇게 서 있습니다.
▲ 그러나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산들을 다니며 눈높이만 커진 교만함일까..
▲ 어느새 광산 선생님은 우측 바위에 올라
막 숲에서 나오는 한 분 한 분을 담습니다.
▲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풍요로운 여름입니다. 갑자기 '지리'의 골골골들이
사무친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 거기서 그렇게 여유를 즐깁니다.
햇살이 따뜻합니다. 바람이 시원합니다.
▲ 그러다가 그러다가
앉아보기도 하고...
▲
산이 날 에워싸고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 오르내림이 심하지만
종일 걷는 숲 길... 신비롭습니다.
▲ 삼거리를 만납니다.
뱃 시간이 바쁘면 여기서 여천항으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 그렇게 500m를 더 가면
칼이봉이 나옵니다.
▲ 느진목, 여기서 대우마을로 내려가기도 하고
소유마을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옥녀봉'을 향합니다.
▲ 지금까지 소사나무 군락지였다면
동백의 차라리 어둔 숲 길이 길게 길게 이어집니다.
▲ 방금 기름바른 듯, 반짝임의 동백을 보며,
식물도, 사람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는 생각을
간절히 해 봅니다.
▲ 잎은 자귀나무 같은데 자귀나무 꽃은 분홍빛 보라였는데
이 나무는? 노랑빛이 햇살에 빛납니다.
▲ 옥녀봉을 오르다가 여기서들 앉아 쉽니다.
옥녀가 기다릴텐데.... 재촉합니다.
▲ 옥녀봉 거기서 온 길을 되돌아 봅니다.
멀리 좌측봉에서 갈지자 지형으로
그리 멀리 왔습니다.
▲ 옥녀봉은 옛날 선녀가 내려와서
베틀로 베을 짜던 곳이랍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옥녀가 추울까봐
옥녀봉 인근의 나무는 절대 베지 않았답니다.
▲ 모르지요 나뭇군들은 옥녀봉에서
19금 꿈을 소망하며 낮잠을 청하기도 했을런지요.
왜 이런 아름 다운 곳에서 저만 이런 생각을 할까요?
▲ 옥녀봉은 일출과 일몰의 명소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옥녀봉을 떠나려 합니다.
▲ 길게 달려온 오늘의 길을 마지막 보며..
언제나 가까이 가기가 샘이나는 훤출한 김경환님...
▲ 거기서 종일 같이한 정겨운 님들이 섭니다.
짙은 그리움입니다.
▲ 이 아름 다운 섬들을 보며
왜 '소유'를 생각할까..
버리지 못한 욕심의 일부분 이겠습니다.
▲ 배가 갑니다.
쪽빛 물살을 가르며 배가 갑니다.
울컷한 그리움이 다가옵니다.
▲ 오늘 종일 이어진 차라리 어두운 숲 길들..
그래서 갑갑하기도 했습니다.
▲ 오늘 종일 의문점은 성도 아니고 깊은 정성과 노동력이 굉장했을
긴 돌담들....
예전 사람들이 살 적에는 모두가 주거지, 밭들 이었겠지만
오르내리기 불편하다보니 하나, 둘 바닷가 근접한 마을로 내려 갔겠습니다.
섬에서 그리운 것은 바다 너머 육지였기 때문일까?
▲ 그렇게 도착한 종착지 '검바위'
모두들 바위를 찾지만, 그냥 검바위입니다.
▲ 그렇게 10.2K를 달려온 님들이 비렁길에서 돌아올 버스를 기다립니다.
웃지만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비렁길 코스로 갈 걸,,,
그리 생각 할 분들도 있습니다.
▲ 오늘부터 '오솔길'의 가족이 된
좌로부터 김경환, 전양태, 이재청님,
'천군만마'가 생각났습니다.
앞으로의 활약이 크게 기대됩니다.
▲ 그렇게 다시 여천항으로 돌아 와
뒷풀이로 즐거움이 더하는데 ...
산객님들을 싣고 배는 떠나갑니다.
▲ 그렇게 가지 못한 길. 비렁길의 아쉼을 동경으로 남기고
자라섬 금오도를 떠납니다.
인어공주, 혈의누등 여러편의 영화 드라마 촬영지였습니다.
▲ 종일 같이한 정겨운 님들....
오래오래 같이이길 다시 기원 해 봅니다.
비렁길 코스의 님들을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 오늘의 금오도 트랙...
카페 가족 '하몽'님이 편집해 주신 것을 옮겨왔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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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의 길을 다시 추억이 되고
정겨운님들과 오래오래 같이 하길 간절한 마음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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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최원정)
마음속에
섬, 하나 자라고 있다
때로는 밀물에 떠밀려
아득히 먼 수평선 끝자락에서
보일 듯 말 듯,
애를 태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해일처럼 다가와
미역 자라듯
가슴속에 뿌리 내리고
태산처럼 자라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해당화도 피우고
마냥 슬퍼 보이는
갯메꽃도 피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