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김영랑’이 여성 시인인줄 알았다. 이름이 그렇고 ‘모란’의 감성 때문이리라
유홍준이 ‘남도답사 1번지’, '천하제일 비색의 고장‘이라 칭한 ‘강진(康津)’! 거기에
‘영랑 김운식(永郞 金允植, 1903-1950)이 있었다.
그는 1903년 이곳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강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휘문의숙에 다니다가 3.1운동 때 6개월간 복역하고, 출옥 후 일본 청산학원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1923년 방학 때 잠시 귀국한 사이 관동대지진 소식을 듣고는 학업을 중단했다.
22세(1925년)에 결혼하고 1930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등과 <시문학>지를
창간하여 <내마음 아실이>같은 향토색 물씬 풍기는 영롱한 서정시로 이름을 얻고
또 '북의 소월, 남의 영랑'이라는 말과 함께 뭇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1945년 해방공간 때는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여 강진대동청년단장으로 활동하고
1948년 가족과 함께 서울 신당동으로 이사한 후 공보처 출판국장도 역임했으나 6.25동란중
은신하다 포탄에 맞고 사망, 서울 망우리에 안장되었다. 향년 47세.
강진에 가면 1948년 그가 서울로 이주 하기까지 46년을 살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강진읍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영랑 생가는 몇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뒤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하고 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우물, 동백나무, 장독대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오메 단풍
들 것네’‘모란이 피기까지는’등 시비가 있다.
그 영랑의 숨결이 살아있는 강진,
거기 주작산을 간다.
짙은 가을의 서정속에 그리움 님들과 거기를 간다.
▲ 크리넥스 홑껍질보다도 근 수가 덜 나갈 가벼움으로
남도 길을 달려 '오소재'에 닿았으니....
▲ 오늘의 엎저버 '오솔길'도 아름다운 남해의
바람에 흔들리는건 어쩔수가 없습니다.
▲ 조금 오르면 다산이 오고 갔을
드넓은 강진 들판이 펼쳐집니다.
▲하얀 암맥은 끝없이 이어지고
김훈은 강진만의 산과 바다를
요니처럼 조봇하고 아늑하다고 하였습니다.
.
▲ 이런 풍광앞에 다산은 어떻게 복숭아 뼈가 문드러질 정도의 집중력으로
학문에 정진이 가능 했을까요?
.
▲ 그 집중력은 흠흠심서, 목민심서로
우리민족에게 큰 유산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 수양리재까지 5.8K.
지난 봄 '덕룡'길과는 반대로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지는데
끝없는 밧줄의 오르내림입니다.
▲ 가야할 길.... 저리 평온한 길이
막상 들어서면 암릉의 기암들이 숨겨져 있답니다.
▲강진만을 따라 서남쪽으로 땅끝까지
구부렁구부렁 이어지는 기맥.
기묘하고 수려한 땅끝 기맥은 만덕산에서
공룡의 잇빨로 표현되는 덕룡,
봉황의 주작이었다가 두륜산, 달마산으로 이어집니다.
▲ 출발했던 오소재 방향을 봅니다
우측봉이 너머에서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고계봉,
좌측봉이 대흥사와 아치형 출렁다리가
있는 두륜산입니다.
▲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우에"같은
영랑의 시를 생각하면
1930년대 식민지 현실 속에 만연한 인간적 상실과
좌절을 뼛속까지 느끼게 됩니다.
▲ 제1비상 탈출로를 지나기도 합니다.
▲ 아직은 햇살이 뜨겁고
능선에 오르기까지 바람은 없습니다.
▲ 주작은 상서로움의 상징이자 상상의 새로 알려진
'봉황'을 말합니다
풍수리지학상으로 左청룡, 右백호
北현무와 더불어 사현신으로 남쪽의 최전방을 지켜주는 신을 일컫습니다.
.
▲ 산새가 정상을 머리로하여 서쪽을 바라보며
봉황의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펼쳐져 있어
주작산(朱雀山)이라 한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종일 봉황의 우측 날개를 넘나드는 거지요.
▲ 암릉의 능선따라 넘나들다
바람 시원한 곳에서 서보기도 했지.
▲ 백색의 신비로운 바위들은
공룡의 이빨처럼 치솟고,
하늘금이 훤해져 주능선에 올랐다고 안도하면
다시 깊은 내리막으로 이어집니다.
▲ 제1 비상탈출로...
일단 오르면 작은 쉼의 공간도 찾을 길 없이
계속 이어야 합니다.
▲남도의 금강이라 칭하면 어떨까?
힘들게 오르지만 경탄, 그 자체입니다.
▲ 밧줄을 잡고 오르고 내리기를 수십 차례,
덕룡의 그것보다는 짧지만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 그래도 바위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면
바위 속에 박히는 듯도하고
다시 빠져나오는 듯한 신비로움도 맛보았지.
▲ 원시의 모습 그대로.
무너져 내린 바위가 그대로 계곡에 쌓였고,
그 불규칙한 돌의 배치 사이로 산길이 나 있습니다.
정비되지 않은 산길을 걷기가 만만찮지만,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라서 좋습니다.
▲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면
아직 단풍은 시작되지 않은 듯하고.
▲ 하늘을 향해 비늘을 곧추세운 기맥의 등줄기가 헌걸차
시원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였습니다.
▲'산행길에서/ 강말주
쉬엄쉬엄 온 것 같은데
잰발로 왔나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냇물따라가 버린
친구들 늘어만 가고/.....
▲'''' 그들과 함께한
낯익은 산행 길인데/
지금은 온데 간데없네/
산사의 종소리 올리면
가슴에 떨어지는 낙엽소리/
적막 산을 흔든다.
▲ 언제한번 강진을 위한 하루 답사를 꿈꾸지만
늦춰지기만 합니다
다산초당, 만덕산백련사, 토당의 천일각에서 백련사
영랑의 생가.....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찬란하게 피어나는 계절에
꼭 이뤄지길 다짐합니다.
▲ 남도여행이 너무나 찬란하여
슬플지도 모르지만 ..
.
▲ 이런 암릉의 날카로움 속에도
간간이 지리능선같은 산죽도 이어지기도 합니다.
▲ 하얗게 눈이 쌓이는 날 와 보고도 싶고
지난 봄처럼 온 산에 진달래 철쭉이 물든
그 계절에 다시 오고도 싶습니다.
▲ 가장 좋은 조망의 그 곳에서
이제는 햇살이 오히려 반가운 곳에 자리를 펼치고.
▲ 점심을 나눕니다.
정겨운 님과 함께라면 더 좋은 것을...
▲ 포만감에 행복한 이들
모자를 단체로 구입했나 봅니다.
나도 빨간 걸로 부탁을 해 볼 것을....
▲ 바위 속에 갇힌듯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도하고..
▲이제 자만치 임도도 보이니
끝이 기대되기도합니다.
▲ 저 멀리 좌측으로 만덕산이 아련하고
강진만은 깊게 들어와 있습니다.
건너는 고려청자 도요지로 유명한 칠량면입니다.
▲ 내려올 땐 몰랐는데
건너편에서 보면 아찔하기도 합니다.
▲ 그래도 지난 봄, 석문공원에서 만덕산으로 올랐고
그 후 석문공원에서 덕룡을 답사했으니
오늘 주작을 걸으면 한 부분 완성이라 하겠습니다.
▲ 오늘 종일의 암릉은 세월의 흔적도 없이
날카로움이 어제 세워둔듯 특이합니다.
▲ 석문에 선 사나이
요즘 사진에 흥미를 느껴
밥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은듯 바쁘답니다.
달린거 안떨어졌나 가끔 확인하며 다니라 했습니다.
▲ 오늘 수십차례 넘고보면 똑 같은 모습을 만납니다.
황홀한 순간들.
▲ 바람이 차가워 지는구나
이제 갈 길을 가렴.
▲ 테크나 시설물은 덜하고
밧줄이 수십차례 놓인 것이 오히려
묘미가 있습니다.
▲ 예쁜 여인의 엉덩이이면 더 좋겠지만 어쩝니까
꿩대신 닭이란 말도 있는 것을...
▲ 이제 맑은 오후의 햇살은
흰 바위에 더욱 빛나고
▲ 그 길을 넘는건 마지막 힘을 요합니다.
▲ 왼쪽이 밧줄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 삶에 지쳐 영혼이 곤할 때 산에서 만이라도
바람같은 세상 그리 펼쳐 보이는 것을....
▲ 어제와 오늘이, 아침과 저녁이 가변적인 사람들 속에서
자연의 묵묵한 불변의 그 자리 그 모습을 보면
참 경외감이 듭니다.
▲이제 가을이 지나고 눈이 내리고
그 길들에 흰눈이 덮히는 빛나는 계절도 오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산행은 그리운 길인가 봅니다.
▲ 내 지나감이 아쉬운듯
마지막 까지 놀라운 풍경은 다시 나타나고.
▲ 저 위에 선 사람이 한없이 부럽지만
나도 금방 오를 겁니다.
▲ 뜨거운 여름 날은
오르내리기가 힘이 들듯합니다.
▲ 어서오라 그리운 사람,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거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 멀리 덕룡줄기가 아련하고
지난 봄 추억이 새록 떠오를 즈음...
총각급 외모의 대학생 따님을 둔 근수님을 만납니다.
▲ 아쉬어 되돌아보기도 하고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오면 빗 길을 걸어가자 다짐을 해 봅니다.
▲ 거기서 '지리'의 연하선경 같은 길을 만납니다.
사무치는 그리움....
▲ 우측으로는 마지막 암릉의
아름다움이 빛나고
.
▲그 연하선경 길은
그 가을, 그 길처럼 하얀 산국이 하늘 거립니다.
▲ 지금쯤 거기, 지리의 거기에도 그러겠지요
사무치는 그리움...
먼 하늘에 그리움 화살하나 쏟아 올려봅니다.
▲ 내려서서 한참을 그 길을 다시 움미하고
야생화가 지기전에 연하선경을 다시 올라 봐?
안타까워만 합니다.
▲ 내려 온 길,,,,
오늘 마지막 암릉길을 넘어왔나 봅니다
▲ 저도 저 가운데 서 보고 싶지만
서보자 그 말을 못하고
늘 후회만 합니다.
세찬 가을 바람이 더 그립게 합니다.
▲ 대부분 임도 따라 내려가고
속도를 높여 주작의 정상으로 향합니다.
▲ 2K여의 주작 가는 길은
거짓말처럼 순한 능선되어 소사나무 군락지입니다.
▲ 오늘 지나온 능선을 건너다 봅니다
여기서 보면 저리 순한 길 인데....
▲왼쪽을 건너다 보면 덕룡의 그 암릉들이 아련합니다.
저 끝 솟은 봉이 만덕산이고 그 너머는 천관산입니다
만덕산 아래에는 다산의 숨결이 녹아있는 백련사
그 너머는 그리운 강진만....
아련합니다.
▲ 유일한 조망터에 다시
'총각'을 세워 봅니다. 어디가 대학생 학부형일까?
▲ 하여간 '잘 생긴 것들'
옆에서는 서지를 말아야합니다.
주눅들어 오늘 고생하며 산행한 기분이 착 가라앉습니다.
▲ 임도까지는 500여m,
만세을 부르는게 아닙니다. 풀을 헤쳐 나가려니...
▲ 그렇게 내려서면 해맞이 재단이 있는
팔각정 정자를 만나고
▲ 반원형 활처럼 굽은 산세에서 모인 물을 가둔
봉양제가 있는 봉양마을로 갑니다.
▲다시 한번, 주작을 부리로 하여
좌우 날개로 품은 강진군 신전면,
그 너른 들판을 보며
▲주작산 휴양림으로 내려옵니다.
요니처럼 조붓하고 아늑한 강진땅 주작산(朱雀山, 475m)
두루뭉슬 주작산 초원길을 걷다보면
내 자신 능선 따라 바람따라 넘실넘실 춤을 추는 듯합니다
▲ 그리움을 싣고 강진읍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고 나면.
▲ 넓은 강진 시장의 여러 시설들을 만납니다.
▲ 거기 길 가,
장날이면 시장이 서는 그 자리에서
갈비탕에 물만두를 넣은 오묘한 맛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넉넉한 즐거움 이었으니....
▲ 주작의 정상을 머리로
우측은 주작, 좌측은 덕룡의 신비한 날개짓으로
우리 앞에 섰으니...
▲ 종일 영랑을 생각했던
그의 생가가 있는 강진에서
땀흘린 하루 산행.
▲ 부러운 손순옥 시인은
지난 주 그 꿈 같은 강진의 문학기행까지 했다고
사진까지 보내 자랑합니다
부러움의 극치입니다.
▲남도의 끝자락 전남 강진에 있는 주작산(朱雀山·429.5m)
산행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길이 다 포함된
종합 선물 세트의 산행은
다시 깊은 그리움이 되고
오늘 밤도 그리움은 사무침으로 깊어갑니다
가을의 계절같이.
....................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우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