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강원도

강원삼척.덕항산(德項山.1,072m/ 하사미교-예수원-구부시령-덕항산-환선봉(지각산)-자암재-환선굴입구-골말- 대이리주차장 (9.5km. 5.5H)

산꾼 미시령 2026. 6. 8. 09:23

석회암 동굴

우리나라는 석회암이 많다. 따라서 시멘트 공업이 발달했다.

석회암은 약 5억년 고생대 시대에 바다에 살던 산호,조류,패류등의 껍질이나 골격이 퇴적되어

수 천년 동안 만들어진 암석인데 중생대(2억년 전)에 땅이 융기하면서 육지가 되었다.

 

 따라서 석회암이 발견되는 삼척,평창,영월,단양,울진등은 과거 바다였다는 증거다.

석회암은 이산화탄소가 뭉쳐진 바위인데 이산화탄소는 물에 닿으면 녹는다. 단순히 물만으로는

주성분인 탄산칼슘(CaCO3)을 충분히 녹일 수 없다. 자연계의 식물이 부식하거나 동물이

호흡할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와 물이 결합해 생긴 탄산(H2CO3)’이라는 물질을 만나 석회암을 녹인다.

 

 오랜 세월 석회암을 녹인 이산화탄소는 가스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가고

탄산칼슘은 광물의 결정으로 침전된다. 이 침전된 광물 결정이 고드름처럼 떨어질 때 굳으면서

종유석이 되고 촛농이 쌓이듯 석순이 되며 이 둘이 서로 붙어져서 하나의 기둥이 되는 듯 현란한

조각 작품등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는 석회암 동굴이 유난히 많다, 남한에서 발견된 동굴만 600여개.

영월의 고씨동굴, 평창의 백룡동굴, 단양의 고수,온달,노동동굴 그리고 울진의 성류굴,

익산의 천호동굴 등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환선굴, 대금굴로 유명한 삼척의 대이리 동굴지대’(천연기념물 제178)가 으뜸이다.

환선굴은 6.2Km에 달하는 거대한 동굴로 현재 1.6Km만 개방되었다.

이산화탄소와 탄산이 오래세월 새긴 거대한 동굴은 예술가의 손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천태만상의

아름다운 조각품들이 즐비하다.

 

 이 거대한 대이리 동굴지대를 품고 있는 산, 백두대간의 덕항산((德項山.1,072m)이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서 그랜드캐니언을 닮은 곳이 있다면 삼척의 덕항산 자암골이라 했다.

땅이 한쪽 부분만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한쪽은 경사가 급한 절벽을 이루고 다른 한쪽은 경사가

완만해진 지형을 말하는 경동지괴傾動地塊)’의 표본 같은 곳이다.

 

 동쪽은 석회암 사면, 서쪽은 1,000m 전후의 고도이면서 평탄하다.

우리나라에서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 가운데 석회암층이 가장 많이 노출된 곳이다.

 

 거기를 간다. 환선굴, 대금굴의 관광만 갔던 그 곳,

그 뒷산을 걷는 것이다. 아련한 추억을 안고,,,,,

▲오늘은 삼척의  유명한 '환선굴'과 '대금굴'을 품고 있는 산,

덕항산(德項山.1,072m을 찾는다.

나무들이 물을 뿜어 올리기에 바쁜 한 여름 초입.

대지도 나무들의 모세혈관이 일으키는 파동을 따라  어깨를 들썩일 것이다

▲새벽 6시 30분, 창원을 떠나 네 시간,

 강원도 태백의 심산으로 들어간.

▲ 고원지대 여기는 이제야 아카시아가 온 산에 하얗다.

시원한 초 봄 계절 날씨.

여기는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하사미동 490,

백두대간 덕항산의 서쪽인 샘.

▲마을엔 주차장이 없다. 개인 산객은 적당히 승용차를 세우고

'예수원' 방향으로 걸어 1K여를 간다.

▲ 여기를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태백, 정선 지방의 밭은

경운기 조차 올라가기 힘든 비탈 밭이.

▲ 기계도 어려운 길을 어찌 밭을 갈며, 추수 때는 어찌 싣고 내려오는지.

참 시기한 노릇.

▲ 그렇게 가다보면

고 대천덕 신부님 살아생전 와 보고 싶었던 '예수원'이.

그 시절 하얀 눈속의 수도원 사진은 환상적인 곳이었다.

예수원은 기독교 공동체 수도원이다1965년 성공회 신부였던 대천덕이 설립했으며,

기도와 노동, 공동체 생활을 통해 신앙을 실천하는 곳이다.

▲ 예수원은 초교파 공동체로 교단에 관계없이 방문 가능하며 기도와 노동을 함께하는 생활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재산을 공유하며 

 

방문객은 보통 2 3일 일정으로 머물며 묵상과 봉사에 참여한다.

"노동은 기도요,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

대천덕 신부(戴天德, Reuben Archer Torrey III1918~2002)는 미국명 예수원을 설립한 성공회 신부다.

한국 교회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영성가이자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1918년 중국 산둥성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으며,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46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 받았다.

1957년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활동했고, 1965년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설립했다.

그는 신학교 원장직을 내려놓고 태백 산골로 들어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기도와 노동, 공동체 생활을 통해 복음을 실천하는 영성 공동체로 세워졌다.

"노동은 기도요, 기도는 노동이다."

 

신앙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공동체 정신과 나눔을 강조한다.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로 유명했다.

"산골짜기의 성자"라고 불린 그는 청빈한 삶과 공동체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한국 교회에 깊은 영향을 남겼고, 2002 84세로 별세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돈을 사랑하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이 한 마디에 그의 신앙과 삶의 철학이 잘 담겨 있.

▲그렇게 대천덕 신부님을 묵상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능선에 닿는다 그의 생전에 여기를 왔어야 한다.

▲'구부시령' 고개에 닿는다. 여기서 부터 백두대간 길.

가슴은 뛰고 설렌다.

구부시령(九夫侍嶺·960m).

한자 이름 그대로, 만나면 죽고, 만나면 죽고...아홉 남편을 모셨다는 여인이

이 고개의 동쪽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에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

▲'따비 밭'에 목숨을 의탁해야 했던 강원도 산골 마을의 신산한 삶이 투영된 이름으로 들린다

지금은 통행로로서 구실을 잃은 고개들지만,

옛날에는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과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를 이어주던 고개였.

▲아득한 고갯길들, 신화나 전설도 많다. 도적 떼의 이야기도, 주막집의 러브스토리도

천등산 박달재 모양, 한 서린 노래로 남기도 했다.

▲산행을 하다보면 이름만 남은 고개들이 얼마나 힘든 시절의 전설이 녹았는지....

나무을 이고지고, 소금을 지고이고 넘나들던 고개들이다.

▲여기서 대부분 직진을 하다 알바를 한다.

백두대간 길은 좌측으로 깊히 내려가야 했다.

북쪽으로는 광동댐 이주단지의 고랭지 채소밭의 앙가슴이 보인다

덕항산 남동쪽 기슭은 벼랑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다.

동쪽이 가파른 산세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

그런데도 등성마루와 서쪽 기슭은 전체적으로 황소 등처럼 둔중하다.

산의 이름도 이런 산세에서 비롯됐다

▲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만 넘으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德項山)’이 되었다.

▲동쪽으로는 천길 낭떨어지각 사람의 접근을 막고

서쪽은 전혀 다른 산인양 느슨하다.

화전 일구기에 안성 맞춤이었으리니....

동쪽으로 나무와 줄로 보호장치를 해놨다.

 구간 대부분은 트레일 관리가 잘 돼 있다.

훼손 가능성이 있는 곳 대부분은 나무와 돌로 자연스런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덕항산(德項山.1,072m)

 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안에 환선굴을 비롯하여

관음굴, 바람굴 같은 많은 동굴을 품고 있다

그 동굴들을 묶어서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하고 있다. 

그 중 환선굴은 총 길이가 약 6.5Km로 남한에서 가장 큰 노년기 동굴.

텅 빈 산하를 지나는 바람이 한가롭다.

 새벽에 나서 네 시간을 달려오며 버스에서 떡 한 쪽 먹은게 전부...

허기지고 지친 시간이.

▲ 줄서서 사진을 찍는다. 조망은 없어도 즐거움은 가득했다.

오늘 산행의 아쉼은 툭 튀어나온 바위 전망대가 없다는 것.

▲이제 환선봉으로 백두대간 길은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석회암 산이 이어졌다.

▲ 쉼터,  정상에서 400m 내려선 곳,

나중 안 일이지만 대부분 여기서 골말로 하여 환선굴 방향으로 내려간다.

두 시간 정도를 단축할 수 있으리리

▲그러니까 이 길은 숯한 백두대간 산객들이

피재~건의령~푯대봉~구부시령~덕항산~큰재~황장산~댓재 구간으로 걷는 길이다.

▲'건의령' 이름에 따른 사연이 이채롭다.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망국 유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로 나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관모를 뜻하는 건()과 관복을 뜻하는 의()를 합쳐 건의령이 됐다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나라사랑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 가슴에 절절했다.

 ▲산에서는 다리가 뇌를 우선한다.

온전히 산에 들었다는 느낌을 주는 피로감은 언제나 나른한 행복감을 동반한다.

▲흐린 날, 겨우 뵈는 대아리 주차장 방향..

아득하고 낭떨어지 석회암 지대를 실감한다.

일상에서는 한 순간도 문명의 이기 없이 살 수 없는 목숨들이지만,

하루 이틀만이라도 그것을 거부하는 즐거움은

현대의 신()인 문명에 대한 가냘픈 저항이다

이런 의미 맥락에서 되뇌어 보는

랄프 월도 에머슨(1083-1882)의 다음과 같은 통찰은 얼마나 통쾌한가.

문명인은 마차를 만들었지만, 발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지팡이로 몸을 떠받치지만, 근육의 지탱력은 잃어 버렸다

▲ 그는 훌륭한 제네바산 시계를 갖고 있지만,

 태양으로 시간을 알아보는 재간은 없다.”

마지막 1온스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

덕항산에서 1시간쯤 허기져 오르내리면

 환선봉(지각산·1,079m)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지각봉이라했다.

▲덕항산에서 1.4K를 오르내렸다.

여기서 환설굴까지는 3.3K.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환선봉(1,080m)은 원래 지각산(地角山)이라고 불렸다.

지금도 등산지도나 정상석에는 "환선봉(지각산)"으로 함께 표기된.

▲거기 편안한 자리에서 밥상을 펼친다.

진수성찬이 감사했고 시원한 바람이 고마웠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1955에 쓴 것으로 알려진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

우리들 세대에게는 박인희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그렇다 사랑하던 사람은 가버렸지만,

(사랑을 나누었던) 옛날(의 추억)은 남아 있을 것이.

그 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들 사랑이 / 사라진다 해도

그의 눈빛, 입술의 감촉은 아직도 내 가슴에 있. 그것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

사랑이 없으니 가슴마저 서늘해진 것이리라.

▲비가온다 이 능선 길에...

우비 하나씩 가방에 넣어온 것을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했는지.

우리나라에는 석회동굴이 유난히 많은데,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석회동굴만 약 600여 개에 달한다.

▲ 이 가운데 대이리 동굴지대와 초당굴, 영월의 고씨동굴, 평창의 백룡동굴, 

단양의 고수동굴·온달동굴·노동동굴, 울진의 성류굴, 익산의 천호동굴 등은 천연기념물로, 

나머지 일부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

현재 대이리 동굴지대는 환선굴만 1997년 개방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으며,

관음굴은 보존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발견 즉시 영구보존을 목적으로 폐쇄시켰고,.

 나머지 덕밭세굴, 양터목세굴, 큰재세굴, 사다리바위바람굴 등은 미개발 상태다. 

그리고 이곳은 빼어난 절경 덕분에 주위 산림 약 200만 평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환선굴에서 다시 1시간쯤 더 나아가자

환선굴로 연결되는 '자암재'가 나타난다.

자암재(紫岩峙), 보랏빛 자(), 바위 (), 고개 재()

, "자주빛 바위가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일대는 석회암 지형과 기암절벽이 발달해 있어 바위의 색이나 형태에서 이름이 유래했을 것이다.

▲백두대간 길은 댓재 방향으로 이어지고

비오는 날, 우리는 우측 환선굴 방향으로 간다.

▲ 1.7K라는 말에 그리고 이제부터 오르는 건 없고 '내려간다'에 얼마나 설레였던가!

그러나 그 길은 오늘 산행중 최악의 지그재그 아픈 길이다.

▲비는 오고, 미끄럽고, 조망은 없다,

여러번 여러번 엉덩방아는 어쩔 수 없는 일.

석회암은 약 5억년 고생대 시대에 바다에 살던 산호,조류,

패류등의 껍질이나 골격이 퇴적되어 수 천년 동안 만들어진 암석인데 .

중생대(2억년 전)에 땅이 융기하면서 육지가 되었다. 

따라서 석회암이 발견되는

삼척,평창,영월,단양,울진등은 과거 바다였다는 증거다.

▲ 석회암은 이산화탄소가 뭉쳐진 바위인데

이산화탄소는 물에 닿으면 녹는다. 

▲ 단순히 물만으로는 주성분인 탄산칼슘(CaCO3)을 충분히 녹일 수 없다. 

자연계의 식물이 부식하거나 동물이 호흡할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와 물이 결합해 생긴 ‘탄산(H2CO3)’이라는 물질을 만나 석회암을 녹인다.

오랜 세월 석회암을 녹인 이산화탄소는 가스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가고 탄산칼슘은 광물의 결정으로 침전된다

이 침전된 광물 결정이 고드름처럼 떨어질 때 굳으면서

종유석이 되고 촛농이 쌓이듯 석순이 되며 이 둘이 서로 붙어져서

하나의 기둥이 되는 듯 현란한 조각 작품등이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그랜드캐니언을 닮은 곳이 있다면

삼척의 덕항산 자암골이라 했다.

▲ 땅이 한쪽 부분만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한 쪽은 경사가 급한 절벽을 이루고

다른 한쪽은 경사가 완만해진 지형을 말하는

 ‘경동지괴傾動地塊)’의 표본 같은 곳.

▲환선굴로 가는 길목답게 거대한 동굴...

이 곳도 석회암의 작용으로 만들어졌을거다.

동굴은 인간의 발길이 닫는 순간부터 본래의 자연성을 상실한다는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빚어낸 동굴을 소중한 자연 유산으로 여기고

더 이상의 손상 없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

▲한국의 장가게에 섰지만

비오는 날씨는 아쉬움이다.

▲그래도 거대한 암벽앞에 선

비 맞은 인간의 초라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

▲맑은 날 대이리에서 시작하여 덕항산에 오르고

우측으로 오늘 코스를 따라 돌면서

이 풍경을 본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

식물의 생장과 가장 밀접한 환경요소 가운데 하나는 수분이다.

수분과 관련해 석회암 지역은 매우 특이하다

석회암에서 만들어진 토양은 물을 가두어두지 못하고

배수가 매우 잘 되기 때문에 언제나 쉽게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지고,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덕항산 일대도 이처럼 투수율이 높은 석회암지대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어느 계곡에서나 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석회암지대의 특성에 적응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나무가 굴참나무다

▲ 코르크가 발달한 수피를 벗겨서 굴피집을 짓는데, 

환선굴이 있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골말에서는 지금도 굴피로 지은 집을 볼 수 있다.

 이 굴참나무는 수분 스트레스에 아주 강한 나무로 알려져 있고,

 이런 특성 때문에 배수가 잘 되는 석회암지대에서도 숲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

▲자암재에서 1.7K

참 힘든 가파른 길이다. 여러번 미끄러져 넘어진다.

▲환선굴 입구지만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4시까지 오라는 지시는 오늘 시간이 많이 걸린 코스였으니.

▲오늘 걸은 길을 돌아보면

현란한 백두대간 길을 걸었다. 조망이 아쉬운.

▲물과 세월이 만든 환상적인 동굴들...

여러번 여러 사람들과 올랐었다.

▲ 자연의 작용이란 한 순간 XF 영화처럼 떠 오르지 않는다.

수수만년 바닷속에 침전으로 석회암이 되고.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세월은 땅 속

석회암을 밀어올려 거대한 백두대간 길을 만든다.

▲그리고 녹고 녹이는 세월은 또 얼마런가

그렇게 세월은 흘러 현란한 동굴 조각품이 되었다.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오갔던 곳...

이제는 정적이 그 곳을 채웠고 거기에 비가온다.

▲전에는 보지못했던 거대한 모노레일 시설이 우람했고

운영사 사정으로 운행 정지되어 걸어서 오른다.

▲여기서 매표를 하고 모노레일을 타고 환선굴에 오른다.

문명의 편리함은 이런 작은 2층 건물에도 승강기가 설치되었다.

환선굴에 얽힌 전설, 

아주 먼 옛날 대이리 마을 뒷산에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은 촛대바위 근처의 폭포에서 자주 멱을 감곤 했는데.

▲ 마을사람들이 여인을 발견하고 뛰어 가자

산중턱에서 거대한 바위가쏟아져 나오며 접근을 막았고, 

바위가 나온 커다란 동굴로 여인은 사라졌다.

이 후 이 여인을 본 사람은 없으며 사람들은 사라진 여인이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 하여 이 동굴을 환선굴이라 이름짓고

제를 올렸다고 전해진.

환선굴의 상징인 돔형 옥좌대를 비롯 사자상, 만리장성

지옥소, 꿈의궁전, 흑백유석, 오련폭포, 종유관, 부채형산호등 비경이 많다.

▲ 환선굴 건너로는 대금굴이 있다

어느시절 거기를 모노레일을 타고 들어간 적이 있.

▲아름다운 삼척,

환선굴대금굴뿐 이니라 추암 촛대바위는  

애국가 배경 화면으로 널리 알려진 기암.

▲ 장호항은 

"한국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바다가 아름답고

해신당공원은 독특한 민속 설화가 전해지는 해안공원이다.

▲이처럼  삼척은 "산과 바다, 그리고 동굴이 함께 있는 도시"다.

 환선봉·자암재·덕항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는

백두대간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

▲환선굴과 대금굴을 가기 위해서는 요금이 기다린다.

 오래오래 자연 그대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대이리 자연 지대...

그 곳에 그런 세월의 신비와 역사가 숨어있.

▲어느 시절, 태백-영월- 정선-

그리고 삼척을 아우르는 여행을 계획 해 본.

▲ 겨우겨우 자리잡아 뒷 좌석을 배정받았다

많이 흔들렸고 잠자듯 조용한 왕복 8시간 길이었다.

 

 

아련한 시절. 환선굴, 대금굴의 관광만 갔던 그 곳,

비오는 그  뒷산 덕항상- 환선봉을 걸었다 꿈결처럼...

다시 깊은 추억을 남기고 남으로 남으로 달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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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