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상북도

경북고령. 개경포 너울길(개경포공원-개호정- 전투 전적지~어목정 유허지-부례관광지 4.2㎞,/ 시산제) & 지산동 대가야고분군

산꾼 미시령 2025. 3. 3. 17:11

 
 
팔만대장경
 우리역사 가운데 어느 시대인들 편안한 시절이 있었을까만 그 중 가장 힘든 역사는
고려 474년간을 들겠다. 아래로는 왜, 위로는 몽고, 원나라등 끝없는 침입과 안으로는
최씨 무신정권등 참으로 힘든 시대였다.


지금부터 750년전, 고려사람들은 이 힘든 역사를 불교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거대한 국책사업을 시작했는데 목판 8만여 장에 글자 수 ‘5천만자로 깨달음의
진리를 새겨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이지만 경판 수가 8만여 장에 달한다하여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8만장의 경판.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분량일까? 경판 한 장의 두께는 4cm,
따라서 8만장을 전부 쌓으면 그 높이는 3,200m에 달하여 백두산(2744m)보다도
훨씬 높은 셈이다.


경판엔 漢字가 빼곡히 앞 뒷면에 새겨져 있는데 한 면의 글자 수는 대략 300자 정도,
전부 합치면 5천만 자나 된다.


우리가 뜻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하루에 넉넉잡아 4-5천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전체를 읽어내는 데는 ‘30이란 세월이 걸리게 된다.


이 경판 제작을 보자. 준비에서 완성하기까지 총 1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1-2m짜리 통나무 1 5천개가 필요했고, 벌목에 동원된 인원, 목판에 필사하는
인원이 하루에 한 사람이 천자 정도 쓸수 있다고 보면 5천만 자를 전부 써 내자면
연인원은 5만명이 필요하다.


필사에 소요된 한지도 꼭 필요한 양만도 16만장, 실제론 그 3배인 50만장쯤
있어야 했고 한지 제작을 위해서도 연인원 만명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판각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새길 수 있는 글자는 40자 정도로 보면 경판의 총 글자수가
5천만자이니 필요한 조각가가 연인원 125만명에 달한다.


그밖에도 경판에 옻칠을 하기 위해선 대장경판 전체에 필요한 옻액은 총 40g!
이 정도 양을 채취하자면 연인원 천명이 동원돼야 한다.


이 외에도 내용을 교정보고, 구리 장식을 만드는 것, 게다가 제작을 뒷바라지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하면그 수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렇듯 팔만대장경의 완성은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그것은 고려 5백년간 가장 큰 국책사업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경판들은 오랜 세월도 비켜간양,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이 처럼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것 외에도,
질적으로도 아주 우수하다는 거다.


마치 숙달된 한 기계가 이 모두를 만든 것처럼 판각 수준이 일정하고,
오자나 탈자도 거의 없다. 그래서 이것은 '목판 인쇄술의 극치다',
'세계의 불가사의다' 이런 찬사를 받고 있다.


이렇게 제작된 경판이 강화, 남해로 하여 낙동강으로 옮겨졌고(移運) 경판을
하역한 나루를 경전이 도착한 포구라 해서 개경포, 또는 장경나루였다.
여기서 해인사까지 40K는 사람이 직접 이고 지고 그렇게 옮겨졌다.


겨울의 추위가 아직 남아있는 즈음, 비가 온다는 예보로 급히 산행지를 변경
하여 그렇게 경북 고령으로 달렸다.

 
▲ 장수산악회의 전용 '세원고속관광'의 조 현 규 사장님(010-3852-4776),
거금을 투자하여 멋진 새 버스를 구입했다.
안전 운행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 버스에서 5분 강의를 했다. 팔만 대장경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국책 사업인가,
현직에 있을 때  8시간 연수 받을 것을 5분으로 압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교 교실에서도 딴짓하는 학생들은 있는 법...
먹기에 분주했다.



▲ '개경포 공원' 낙동강 가의 경북 고령군의 감자로 유명한 개진면,
 개포리가 있고. 거기에 개경포 나루가 있다.



▲강화도에서 16년간 대 역사로 완성한 대장경은 서해-남해의 험한 바다로 옮겨
여기서 하역했고 해인사까지 40K를 이고, 지고 이운(移運)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여기서 40K '대장경 이운 순례길'이 조성되어 자전거로, 도보로 걷는다.
▲개포리는 처음에는 ‘산이 열린다’는 뜻인 개산포(開山浦)라 불렸다.
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면서 경전이 도착한 포구라 해서
개경포, 장경나루라 했다가.. 

 
 일제강점기에 개포로 바뀌었다.
개포는 근대까지 낙동강으로 올라오는 물산의 집결지

 
 영남 내륙에 곡식과 소금 등을 운송했을 만큼
큰 나루터였다.
지금은 산업화에 밀려 북적이던 나루는 옛이야기가 됐다.

 
▲팔만대장경을 보자.
지금부터 750년전고려사람들은 이 힘든 역사를 불교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거대한 국책사업을 시작했다.

 
목판 8만여 장에 글자 수 ‘5천만자로 깨달음의
진리를 새겨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이지만 경판 수가 8만여 장에 달한다하여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 8만장의 경판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분량일까경판 한 장의 두께는 4cm,
따라서 8만장을 전부 쌓으면 그 높이는 3,200m에 달하여 백두산(2744m)보다도
훨씬 높은 셈이다

 
 경판엔 漢字가 빼곡히 앞 뒷면에 새겨져 있는데
한 면의 글자 수는 대략 300자 정도,
전부 합치면 5천만 자나 된다.


 
우리가 뜻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하루에 넉넉잡아 4-5천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전체를 읽어내는 데는 ‘30이란 세월이 걸리게 된다.


 
▲ 이 경판 제작을 보자준비에서 완성하기까지
총 1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1-2m짜리 통나무 1만 5천개가 필요했고,

 
▲  벌목에 동원된 인원목판에 필사하는 인원이
하루에 한 사람이 천자 정도 쓸수 있다고 보면 
5천만 자를 전부 써 내자면 연인원은 5만명이 필요하다.



 필사에 소요된 한지도 꼭 필요한 양만도 16만장,
실제론 그 3배인 50만장쯤
있어야 했고 한지 제작을 위해서도 연인원 만명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판각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새길 수 있는 글자는 
40자 정도로 보면 경판의 총 글자수가 5천만자이니 

 
필요한 조각가가 연인원 125만명에 달한다.
그밖에도 경판에 옻칠을 하기 위해선 대장경판 전체에 필요한 옻액은
 40g! 이 정도 양을 채취하자면 연인원 천명이 동원돼야 한다.

 
▲거기에 너울길이 생겼다.
부산 국제신문에서 이 코스를 읽고 여러번 여기를 찾았다.

 
▲버스에서 소개했다
애인 생기면 진달래 필적에 꼭 다녀오시라
난 여기를 처음 다녀온 이후 사람들에게 '남지 개비리 길보다 열배 좋다' 소개했다고.


 
▲출발지는 '개호정' 정자이다.
여기서 부례관광단지까지 가서
디귿자 모양으로 위로 올라 임도로 하여 원점 회귀하면 11K된다.

 
▲ 낙동강이 달성보를 지나면서
강물은 크게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구시 달성군의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를 휘감으며 창녕보로 흘러간다.

 
▲ 건너 도동서원은 조선 초기 개혁가
'김굉필'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유네스코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되었다.

 
▲가을이면 도동서원의 은행나무와
뒷산 소나무가 인상적이었.

 
▲4.2K, 관광단지까지 이 길은 멍 때리며
걷는 사색의 길 이었으면 했.

 
▲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잃어 버리지 말자'
세네카가 그랬다. 이제 내일을 기대하지 말고 오늘을 살자.

 
▲'개산잔' 잔(棧) 글자가 생각이 안나
무슨 글자냐 누가 물어 볼까봐 빨리 지나갔다.
18세기 박이곤이 쓴 시다. 
잔(棧)은 잔도길, 바닥이 깔린 길을 의미했다.

 
▲출발지 개호정에서 부례관광지까지 같다가
왕복해도 되고 
디귿자 처럼 위로 올라 걸으면 된.

 
▲또 한 해가 흘렀고 봄이 온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렸지만 지금부터는 그러지 말다.

 
▲내일도 좋은 날 이겠지만
오늘이 좋은 날이 되는게 중요한거니까.

 
▲오늘 옆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오늘을 버리는 건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야...

 
▲오늘을 잃어버린 나에게
내일 같은 건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내일을 만나기 위해 오늘 반드시 행복해야 하니까..

 
▲여긴 '개산포 전투 전적지'..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라는 해설이다.

 
▲임진왜란 때 고령지역 의병들이
궁중의 보물을 약탈해 일본으로 가져가려던 왜선을 격파,
대승을 거뒀다는 개산포 전투 전적지.

 
▲다음달 부터 '한사람씩 더 데려와야한다'
이 엄명에 친구 전중호 부회장님은 내몫까지
'아지매'를 데려와야 한다. 그는 워낙 인기가 많으니까 나 보다.

 
▲ 어디를 걷든 미녀는 빛나는 법,
김미란, 송예진님이다
 낙동강에 서니 더 그렇다.

 
▲요가 자세라나? 저걸 100번을 해야한단다.
어이구 그냥 일찍 살다 죽는게 낫겠다.

 
▲김소월의 길에 관한 시가 생각난다.
수능 시험에 잘 나오는 시....

 
▲가는 길 /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뒤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지금은 빈터만 남은 ‘어목정 유지’ 표석이 있는
빈터가 임란 창의사 양죽당 박정완(1543~1614)이 지었다는 정자터다.
그 아래 낙동강을 등지고 어목정 유허지 경관 안내석이 있다.

 
▲출렁다리...
김해 신어산 출렁다리보다는 그럴듯하다.

 
▲어른이 되니 쉬었던 길이 어려워 지기도 하고
어려웠던 길이 쉬어지기도 한다.

 
▲지금 할 일은 지금 하기 쉬운일을,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해 버리자..

 
▲할 수 없는 때가 이르기전
그 때가 다가오기전....

 
▲'테이크, 아웃'
처음 이 간판을 봤을때  'TAKE OUT"
타케아웃? 이렇게 읽었다 저게 뭐라는 건가? 그랬다.

 
▲커피, 음식의 테이크 아웃, 현장에서 보다 맛이 덜 할수도 있고 더 할수도 있겠다
감정을 슬픔을 테이크 아웃하자,
그 자리에서 들어내지 않고 집으로 가면 아무 것도 아닐수 있고.

 
▲어제는 천지가 무너지는 큰 일이
오늘까지 테이크 아웃하면 별거 아닐수도 있으니까.

 
▲밖에서 속상했던 마음, 누군가와 감정이 부딛히거나
친구를 만났거나 마음이 상할때..
장소적으로 시간적으로 테이크 아웃해 보자.

 
▲그렇게 박이곤의 ‘낙강구곡 ’중 1곡 시비가 있는
부례관광지에 도착한다.
개경포 너울길은 여기서 끝난다.

 
▲오늘 우천을 대비하여 시산제 장소로 정한 곳은 여기서
위로 한 참 올라 청운각을 예정 했으나.

 
▲어드벤처 체험 시설등이 있던 부례관광지는
풀만 무성한 공허한 안타까운 터전이 되었다.



 
▲정성을 다하여
그렇게 시산제를 드린다.

 
"산악인의 선서'
우리 창원 장수산악회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우리 창원 장수산악회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평화사랑의
참세계를 향한 행진만이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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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창원 장수산악회 산악인은
전통과 예절을 지키며,
화친하고 상호 소통하고 가족같은 분위기를
가꾸고 만들어 갈 뿐이다.


2025년 3월 2일 
우리 창원 장수산악회 가족 일동

 

▲온화한 봄바람

행복한 마음.... 배를 두들기며 먹고, 마시며  친교를 나눈다.




 
▲ 그렇게 아름다운 날에  좋은 이들과 함께 걸었던 ‘개경포 너울길
 최고의 경관이었다.
솔 숲 오솔길 아기자기한 운치 모퉁이 돌 때마다 낙동강 비경...
흘러가는 인생의 길처럼 길은 그렇게 흘러갔다.

 
▲버스에서 다시 5분 강의를 했다.
일제에 의하여 축소되고 무시된 가야사 이야기....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 고성의 소가야,
그리고 여기 고령의 대가야...이야기.

 
▲대가야의 긍지  고령은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바꾸기도 했다는 이야기.

 
▲ 지금의 가야사 연구는 성주, 남원까지 넓혀졌고
고분군들은 유네스코 등재가 되었다는 이야기.

 
▲ 대가야는 가야중 마지막까지 이어져
가장 늦게 신라에 병합되었다는 이야기.

 
▲조용한 봄비가 내리는 날,
거기를 걷는다.
모두들 이런 곳이 있었나 놀라워 했다.

 
▲이런 횡재한 날은 인생의
'조커' 한 장 얻은 기분.

 
▲앞으로의 인생에도 이런 일들이
자주 많이 일어 났으면
쾐시리 신이 난 걸음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오래전 계획이

 
▲애쓰고 노력해도 되지 않아서
마루거나 포기 직전까지 갔던 일들이.

 
▲ 엉겹결에 이뤄지기도 하더라..마음이 가벼워진다.
봉분 정상에 오른 이는 조대호 행님,
올라가지 말라 버스에서 분명히 안내했다 나는 ㅎ.

 
▲여기는 오늘 처럼 비오는 날이 오름이 제격이다.
화창한 날도 멀리뵈어 좋은 거지만....

 
▲버스에서 44호 고분을 설명했었다.
왕이 죽었고, 그를 지키던 호위병, 비서실장, 수종들던 이들 37명 이상이
'순장' 되었다.

 
▲내세에도 현세의 삶이 이어진다니
살아있는 참모들을 같이 데려 가야했고
현세에 쓰던 그릇, 옷, 왕관, 무기들이 함께 묻혀져서 문화재가 된다.

 
▲맑은 날이면 여기 앉아 한참을 멍 때리거나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시 한편 읽고 싶다.

 
▲역사를 생각하고 삶을 생각하고
오늘을 생각한다.

 
답사는 무조건 두 시간을 채워야 한다.
왕릉 전시관도 가고 박물관도 가고...
두 시간 전에 돌아오면 너무 일러 저녁 안주고 집으로 간다 뻥을 쳤다.

 
▲나이 듦을 원망하지 않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내 주름의 의미를 아는 것, 그런 것.

 
▲조대호 행님, 존경하는...
우리는 오늘 여기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함께 있다.

 
▲우리는 서로서로 오래오래
옆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으로 살자.

 
▲고마운 사람,
아름다운 장수 가족분들이여...

 
▲영화 '웨딩싱어'에서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때 최고의 프로 포즈라 생각했다.
그것은 ...

 
▲'당신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 .

 
▲그 어느 날처럼 거기 앉아본다.
그 시절이 그립단 생각.

 
▲ 웨딩싱어인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노래한.

 
▲'관절이 아프면 업어주고,
배탈이 나면 약을 사다 주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리모컨을 주고,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그렇게 내려와 44호 고분내부를
전시해 놓은 전시장을 둘러본다.

 
▲수 많은 생사람들이 순장으로 함께
누웠던 시절의 그 사람이 아팠다.

 
▲ 축소되고 무시된 가야 역사를 다시 복원하고
우리 역사를 명실공히 5천년 역사로 밝혀야 한다.

 
▲ 문화의 융성,
그것이 국력이라는 인식이 최근에서야 생겼으니.....

 
▲다시 내려와 박물관으로 간.

 
▲대가야 시대와
고령을 중심으로한  역사문화가 수 많은 자료와 함께 전시되었다.

 
▲그렇게 역사의 향기의 현장을 몸으로 체험한 시간
앞으로 애인들이 생기면
여기에 우륵 박물관까지 둘러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고속도로를 달려
함안 산인의 '산더미 오리고기'를 다시왔다.

 
▲수중한 장수 가족들....
오래오래 건강하여 함께 이자고.

 
▲무릅 튼튼하여 그렇게 같이 걸어가자고
다짐도 하고 염원하고 .

 
▲나이듦을 원망하지 않고
함께 나이들어 가는것
내 얼굴의 주름의 의미를 아는 것, 그런 것..
.
 
▲우리는 그곳에 있었단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함께.

 
 그렇게 봄 비 내리던 날,  바쁘게 걸었던 역사의 고장 고령...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며...
하루를 접었지 정겨운 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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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내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고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