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상북도

경북청도.지룡산(池龍山·659.2m/신원3거리-복호산-지룡산-산성-내원봉-삼계봉-사림암-수월교- 운문사-주차장.13K,6H)

산꾼 미시령 2024. 9. 2. 08:50

 오랜 세월이 흘렀다. 70년대 초 고교 2년시절, 600명 수학여행 단은 충북선 청주 역에서

경부선 조치원역으로 왔고, 거기서 다시 부산역으로 종일 달렸다,

작은 역까지 모두 섰던 비들기호를 타고...

 

 그 시절 청도 역은 주변으로 감이 유난히 많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청도, 산이 푸르고 물이 맑으며, 인심이 후하다는 이름 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으로

그래서 삼청(三靑)의 고장으로 불린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청도의 자랑은 청도의 역사와 문화유산의 대표,

운문사(雲門寺)를 빼 놓고 말할 수 없으리라.

어느덧 발간 된지 30년이 넘은 우리문화유산답사기 제 2권은 운문사와 그 주변에 대하여

.., 3장으로 설명하는데 거기서 유홍준(兪弘濬)교수는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가지를 이야기 한다,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있다는 게 첫째이고, 장엄한 아침예불, 입구의 소나무 숲.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 그리고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여기에서

쓰인 사실을 들었다.

 

그 중 비구니 학인 스님들을 보자.

운문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항시 사미니계를 받은 20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이 있다면서

앳된 비구니를 바라볼 때면 뭔지 모르게 눈도 마음도 어질게 됨을 느낀단다.

 

대학 선생을 하면서 나는 학생들이 가장 예쁘게 보일 때는 1학년 2학기 첫 강의에서

보이는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1학년 1학기 때 모습은 촐망촐망한 눈빛이 어질지만 어딘지

어리둥절 하는 불안이 보이고,

 

2학년이 되면 슬슬 꾀가 나서 어딘지 모르게 어진 빛이 가시기 시작하고,

3학년이 되면 알 것 다 알아서 사람이 질리게 되어가고,

4학년 2학기가 되면 아쉬움과 후회로움의 애잔한 눈빛으로 변하는 리듬이 느껴진다.

 

그래서 1학년 2학기 때, 아직은 선량하고 앳되면서도 뭔가 해볼 의욕으로 빛나는

눈빛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운문사 승가대학 비구니 학인스님들은 사미니계를 받고 2년 남짓 되어 입학하였으니 스님으로

살아가는 일생에서 1학년 2학기에 해당되는 바, 나는 그들을 마주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눈을 닦는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262-264)

 

그렇게 표현했다

학식 높은 전국의 문화답사기를 그렇게 잘 쓴 교수님도 눈도 마음도 어질다니

덜 수행된 필자는 오죽하랴...

 

무슨 아픈 사연을 가졌기에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고아서 더 서러운 순정이 넘쳐흐르는

앳된 비구니 스님을 보면 말로 다하지 못할 그런 아름다움이 있고 왠지 모를 가슴 떨림이

있음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그 바구니 학인 스님들이 있는 운문사,

그 운문사를 품고 있는 지룡산, 거기를 다시간다.

 

 

 어느덧 9년의 세월히 흘렀다.

무더운 여름 날 운문령에서 시작하여 상운산, 배넘이재, 삼계봉, 내원봉, 지룡산, 복호산,

신원3거리까지의 15K6시간은 참으로 고된 기진맥진한 길이었다

 

폭염의 여름날에 역으로 이 코스를 걸어보려 한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비구니 스님들을 만난다면

그 또한 가슴 떨림이 아닐런지...

▲추석을 앞둔 분주한 계절, 20여명의 산우들로

산행을 시작했다.  .

▲신원3거리, 여기서 운문사는 1K,

 우측으로는 운문령을 넘어 언양-울산으로가고,

좌측으로는 운문땜등으로 간.

▲오늘은 밀성 손씨 벌초 날...

기계화되었고 너른 묘소...

우애스런 집안의 작업자들이 다복했다.

▲시작하자마자

된비알의 산행은 시작되고.

▲그래도 시설들이 9년보단 낫겠지 했던

기대는 무너진다.

▲슬랩처럼 후들거리는 길들

뜨거운게 낫다,

바람 없음이 천만 다행이라고.

▲북쪽 사면의 아찔함은 공포스러울 정도.

▲그래도 맑은 날,

저기가 출발지 신원3거리.

▲자리를 탓하지 않고

굿굿한 자태.

▲이제 어느 엉덩이 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없다

앞 사람 엉덩이도 들어 올려줘야 했고.

▲오금이 저린다란 표현이 절실했다.

 

▲'클리프 행어' 신세들이 된다.

여유를 찾을 처지는 아니지.

▲바위턱을 부여잡고 낑낑,

이런 직벽들과 씨름해야한다.

▲스틱들은 죄다 팔에 걸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돌아갈수 있을까?'

슬슬 겁이 났.

▲좀더 착하게 살거를...

생각한 이도 있을거.

▲ 한 참을 오르면 또 직벽이 가로막는다.

그 수직 직벽들이

한꺼번에 뵈지 않는게 다행.

▲사랑은 목적지가 아니고 길이야,

그래서 사랑 속에는 모두가 길을 잃는다.

▲필자도 누군가가 찍어 줬다.

후들 거림은 어쩔 수가 없고.

▲늙어 간다는 건 외로운 일이고

나이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이야.

▲이제 수직 직벽은 끝났다란

착각을 하고 있는 여유로움.

▲나이들어 감에따라 책임의 가짓 수가 늘어가고

무게도 더해간다.

▲사람이 네 발로 기어갈 수도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건지.

▲아쉽지도, 아프지도 않게

보통의 속도로 멀어지다.

▲다시 나타난 직벽

이제는 좀 더 담대 해 진다.

▲시원스런 풍경, 우측 운문령 방향

긴 게곡의 물은 한반도 지형같은

휘돌기를 한다음 저 멀리 운문땜으로 흘러간다.

▲위에서 아래를 향하여 사진을 찍는 것도

후들거리는 상황.

▲적응 이라는 건 조금 더 느긋함,

혹은 나긋함을 준.

▲사진이 뒤집힌 건지,

방향이 원래 그런 건지.

▲아찔한 암봉, 짜릿한 암벽.

밧줄에 매달려 오르며 암벽등반가들을 부러워도 했다.

▲그렇게 너덜지대에 누웠다,

삶의 속도도 늦추고, 생각의  여유도 찾고.

▲한 시절엔 '날이 선 사람'으로 살았던 시절도 있겠지만

이제는 사람을 찌르고 베는 일 없이

그저 수더분한 결로 살아가는 삶.

▲예민하다에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필터에서 독한 커피가 부드러움으로 걸러지듯

우린 그렇게 살아가자고.

▲'거기가 정상'이겠지

그렇게 오르고 보면 저 만치 정상은 멀어져 있다.

▲체력이 떨어지지만 빨리 달릴 일도 없으니까

걸음을 늦추면 풍경이 보이니까

들꽃도, 바람의 향기도 보이니까....

▲이렇게 걸으면 남은 청춘의 날들도

조금은 더디게 갈거니까.

▲조금 느긋하게 걷자

서서히 스며들듯이 보통의 속도로 사랑하자.

▲곳곳에 산성의 흔적도 발견한다.

견훤이래

고난의 세월을 견디어 낸 강산이니...

복호산(伏虎山·678m)

20여분을 가파르게 오르니 나타난다.

▲호랑이와 관련된 이름이런가?

운문사를 '호거산 운문사' 라는 걸 보면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다.

▲버스에서 유홍준이 기술한 

'운문사의 다섯가지 아름다움'을 소개했.

▲아픈 발에  집중하면 산행은 힘들어지듯

 이별도 아픈 것에 집중 하지 않는다면 쉽게 지나가는 것.

▲한참을 고되고 오르내리며

'땅벌 쏘임'을 여러번 감수해야 다음 봉우리를 오를수 있었다.

▲거기서 다시 만난 지룡산(池龍山·659.2m).

조망이 없고 낮은 숲 같음에 실망한다.

▲후백제 견훤의 탄생 설화에 기원을 둔

'지룡' 명칭이란다.

산 곳곳에 견훤이 신라침공에 대비하여 성터를 조성했다.

▲거기에 화기애애, 한 상이 차려진다

산행의 피로는 시끄러운 유머속에 날아가고.

▲지룡산의 이름은 문헌에 없다. 암봉인 호거대를 호거산으로

여기를 지룡산으로 불렸다.

 

오랜만에 만난 이진희님,

날렵한 산행의 도사쯤 되는....

▲다시 길을 간다.

벌 쏘임의 여러 후유증들이 나타나 긴장도 했.

▲한참을 오르내리면 나타나는 내원봉- 삼계봉...

저기를 다시 올라야 한단 말인가!.

▲어느덧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운문령에서 상운산- 배넘이재로 하여 여기를 걸었다.

참 힘든 15K의 넘나듦 이었다.

▲내원봉 가는 길은 다시 험하다.

역으로 오르는 오늘의 코스는 시간이 갑절 걸렸다.

▲거기에 그림처럼 내려봐 뵈는 운문사.

하얀 눈이 세상을 덮을 때 여기서 바라보는 운문사가 가장 아름답다.

▲이제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겠는가

가보자, 다시.

▲그릇을 보니 맛있는 비빔밥을 먹었을 자리,

입도 닦았고, 그릇도 이미 닦은 다음이다.

▲이제는 암릉길 오르내림의 도사가 되다.

날렵해지기 시작했다.

▲당겨본 운문사....

유홍준의 표현대로 평온한 자리매김이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힘들게 오르다가 되돌아 본 오늘의 여정,

저 멀리 복호산, 가운데가 지룡산이다.

▲대부분 님들은 아래 내원암 방향으로 내려갔다,

우린 사리암을 꼭 가보고자 힘들에 오른다.

▲버스에서 유홍준의 운문사의 아름다움을 소개했.

첫째, 거기에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200여 학승스님이 있다는 것

▲둘째로, 장엄한 새벽예불, 250여의 낭랑한 무반주 목소리는 장엄하고 숭고하며

음악의 원형질이라는 것.

▲셋째는, 운문사 입구의 1k여의 아리따운 홍송.

그것을 보며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

▲네째로는 험한 영남 알프스의  끝자락에 어찌

이 편온한 자리매김이 있는지

그 안온한 분위기를 꼽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여기서 썼다는 것,

발간된 곳은 인각사 였지만 그가 주지로 있던

5년간 여기서 집필했다.

▲삼계봉인가 했더니 내원봉(823m)이다.

오늘 어느곳도 호쾌한 정상다운 조망은 없다.

▲동쪽으로는 시원스럽게 흐른

문복산이 나타나고.

▲그렇게 오르내리면 삼계봉(805m)에 닿는다.

그 시절 배넘이 재에서 얼마나 힘들게 올랐던가.

▲고찰과 암자를 여럿 품은 오늘 능선은

의외로 매섭고 힘겹다.

▲거기서 한참을 내리면 매직으로 쓴 '사리암봉'이 나타난다

창원제일산악회 작품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틀지 않으면

배넘이재로 흐르고 학심이 골로 내려오는 고된 산행길.

▲가파르게 내려간다,

오래오래 걸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미셀 투르니는 소심하게 바다로

발걸음을 내딛는 커풀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쉽게 추위를 타기에 늘 사랑의 담뇨를 덮는걸 두려워 하지.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가난하다면

나에게 버텨낼 힘이 없다면

그냥 걸어 나오는게 맞는듯 하다.

▲그렇게 고된 가파른 미끄러짐 길 끝에

신기루 처럼 나타난 사리암..

▲여기저기 가득 앉아 의식이 한창이다.

'나반존자'... 내려오는 내내 이 독경이 흘러나왔다.

인터넷 검색을하며 무슨 의미인지 헤아렸다.

▲나반존자를 모신 사리암은 여수의 향일암, 남해의 보리암과 더불어 

이름난 기도도량.

사시사철 밤낮없이 기도객이 끊이질 않는다.

▲사리암의 역사가 대단하다.

사리암을 포함하여 운문사보다 먼저 산문을 연 복대암, 조망이 빼어나며 개울건너 약사여래불을 모신 내원암,

청신암은 돌탑에서 기도하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있다.

▲세 암자는 입구까지 차가 올라가지만 사리암은 어떻게 짐들을 날라 지었는지

가파른 자리에 놀라운 건축물이다.

▲끝없는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올려다 본 사리암,

인간의 힘도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어진 끝없는 계단....

여기만 다녀가도 기도의 정성은 삼천배를 능가하는 평가를 받겠다.

▲내려오면 주차장 입구에 이런 지팡이가 준비되어 있다.

아무리 젊은 무릎이라도

지팡이 없이는 오를 수 없을듯 하다.

▲그렇게 내려선 주차장....

우측으로는 배넘이재에서 내려왔던 학심이 골이다.

내려오다 보면 통제구역이라 당황했었다.

▲그 주차장에서 운문사까지는 2.5K....

고된 산행 후의 그 길은 '차를 여기까지 좀 오라하면 안되나?' 연속이다.

▲이윽고 운문사가 그림처럼 나타나고 저기 올려다 뵈는 곳이 복호산이다.

저기를 우리가 올랐단 말인가..

▲호거산 운문사..

호랑이가 살았던 산인가 보다.

▲신라 진흥왕 시대 중앙에 대작갑사, 동쪽에 가슬갑사,

남으로 천문갑사, 서에는 대비갑사, 북으로 소보갑사등

5갑사가 시작이라는....

▲일주문을  넘어오면 평온한 가람배치가 아름답.

▲5백년된 처진 소나무, 운문사의 상징이.

높이 6m, 둘레 3.5m,  봄에는 막걸리를 자시는 나무.

▲명부전 앞을 지나며

댓돌이 정스럽단 생각도 하고.

▲여기는 관음전.

▲유명한 '작압' 

작압이라는 말은 보양스님이 까치떼가 땅을 쏘는걸 보고 

여기를 터전 삼아 절을 지었다.

까치 작자를 쓴다.

▲여기 안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317호),

그리고 좌우에 사천왕 석주(보물 318호)가 있다.

▲그리고 대웅보전 앞에 삼층석탑이 동서로 나란이 있고

그 앞으로 석등이 두 개 서 있다.

 

▲통일신라 시대 양식의 동서 3층 석탑

보물 678호.

▲그 섬세함에 놀란다.

▲대웅보전도 보물 제835호.

▲뒤로 또다른 대웅보전

최근의 건축물 같다.

▲만세루..

봄 가을에는 여기에 앉아 쉬는 분들이 많았다.

▲잘 생긴 사내의 근육질 같은 나무..

1년에 한번 막걸리를 자시는 나무라니...

▲다시 선 일행,

처진 소나무는 싱싱한데

하루 산행길에 지친 얼굴.

▲꽃이많은 운문사

한여름 꽃은 수국이었다.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 기슭에는...

▲이제 서둘러 돌담길을 나가

1K여 주차장으로 향한다.

▲보라 조선의  소나무, 송탄유의 흔적을 상처로 않으채

죽지않고 살아서 사시사철 푸르름을.

▲솔 바람 길이라 했다.

거기를 걷는다 홍송의 자태에 감탄하며.

▲마음을 비워둔 하루

오늘 하루 만이라도 바람의 소리를 듣자.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유홍준은 여기 소나무를 연상하며.

▲이대앞 의상점의

도발적인 마네킹 다리를 연상했단다.

▲힘들게 전투적인 산행말고

나도 여기 코스에 끼어 미녀들과 걸어 볼거를.....

끼워 줄지는 미지수.

▲다시 복호산 정상을 올려다 보며

저기를 올랐단말인가

감탄사와 함께 아름다운 운문사 거기를 떠난다.

▲운문사를 떠나 중턱으로 새로난 운문터널을 빠져나가

석남사방향으로  나왔고

긴 가지산 터널을 지나 밀양의  산외면 한 식당에 도착했지.

▲거기에 차린 진수성찬...

잔잔히 내리는 석양의 햇살 사이로.

▲정겨운 님들이 앉아 즐거움을 나눈다.

마음을 다해 대충 사는 삶도

여간 행복한게 아니라고 생각도 하고.

▲마음을 풀어 놓자 모든 것이 여유로워졌고

마음도 게을러지자, 시간도 천천히 가자.

▲산행 길 직벽, 암릉 길도

정상에서 내려다본 운문사의 아름다움도

다시 추억으로 간직하고.

▲'맑음과 청정', 운문사에서 받아온 책자는 그렇게 제목을 붙였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라고 법정스님은 말했다.

 

어느덧 9월 선들거리는 조석의 바람결에

가을은 묻어오고 있겠다.

오늘 하루의 정겨운 걸음 자국마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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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비구니/이동순

 

운문사 비구니들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메주를 빚고 있다

 

입동 무렵

콩더미에선 더운 김이 피어오르고

비구니들은 그저

묵묵히 메주덩이만 빚는다

 

살아온 날들의 덧없었던 내용처럼

모두 똑같은 메주를

툇마루에 가지런히 널어 말리는

어린 비구니

 

초겨울 운문사 햇살은

그녀의 두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

서산 낙조로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