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아! 지리산

아! 지리(중산리-칼바위-법계사-천왕봉-장터목-일출봉-연하봉-촛대봉-세석평전-거림(16.5K. 9H)

산꾼 미시령 2020. 8. 19. 09:36

  아! 지리(智異)

 숱한 전설과 우리 역사의 피와 눈물을 함께 해온 지리..

왜적의 침입을 받을 적마다 골 골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격전지였으며, 해방 후에는

빨치산의 본거지로 피.아간 2만의 피를 뿌린 슬픈 통곡의 산이기도 합니다.

 

196712월에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어 올해 53년을 맞는 지리산은.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 가는 높은 산으로 그 산세가 매우 웅장하며. 두류산 또는 방장산이라고도 하고,

한라산, 금강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입니다.

 

천왕봉(1,915m) · 반야봉(1,751m) · 노고단(1,502m) 등을

비롯하여 해발 1,500m를 넘는 산봉우리들이 치솟아 있고,

해발 1,000m 이상 되는 준령도 20여 개나 됩니다.

 

  2020년을 맞아 연초에 천왕봉을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1월 2일 안과수술은 두 달간 힘든 산행을 

금지시켜 부득히 취소하게 되었는데.... 어젯밤 문득 그리움이 솟구쳐서 한 줌 자고 새벽에 나서기로 했지요.  

 

 어느덧,  코로나19등, 좌우 살필 겨를도 없이 급박하게 달려온 고달픈 삶,

위로받고 싶은 가슴을 안고 엄마 품 같은 '지리'로 달려갑니다.

▲ 사무친 그리움으로 잠을 청하던 날,

쉬이 잠이 오지 않았고 두어 시간 잠들고 3시에 일어나 채비를 했으니.

 

▲안갯속 고속도로를 달려

'문산휴게소'에서 주문한 쇠고기 국밥..

힘을 내 달라고.

 

▲05시 55분,

새로 2층으로 개수한 '중산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중산리탐방지원센터'에 섭니다.

 

▲하절기는 03시, 동절기는 04시...

임시 공휴일의 연휴기간이지만, 여명의 아침시간은

한적합니다.

 

▲순두류행 버스는 7시 되어야 하고...

오늘은 칼바위 코스로 오르기로 했습니다.

 

▲200m 위 입구,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5.2K.

 

▲시원하고 너른 야영장은

조용하고 한적했지요.

 

▲통천길...

하산길 여기에 서면 흐뭇함과 감사함,

출발 길 여기에 서면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던 곳.

 

▲ 조금늦어도 쾐찮아

남보다 많이 볼 수 있으려니...

 

▲심정지 사고가 잦은 이 코스에

이제는 '전에도 갔는데...'하는 자신감이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는 나이...세월탓이겠지요.

 

▲'칼바위'

긴 지리종주 때마다 여기에 서면

다 끝났다 하는 승리감과 감사의 등대같던 바위였습니다.

 

▲계곡을 건널 필요가 없는 오늘 코스는

유일한 다리입니다.

 

▲지나가는 젊은이가 있어 사진을 부탁하고

좀 미안해 하는 얼굴.

 

▲여기서 장터목대피소는

좌측으로 4K. 곳바로 오르면 법계사 코스.

 

▲법계사까지는 2.1K.

고된 능선코스를 각오해야 합니다.

 

▲ 떠오르는 아침 해와 함께

점점 지리에 안기는 기쁨.

 

▲아침 공기가 얼마나

시원하든지.

 

▲망바위(1177m), 여기서 법계사는 1K.

 

이 코스가 좋은 것은 망바위-법계사-개선문,,,

이렇게 중간중간 목표점이 있다는 것.

 

▲어느해 겨울, 입시를 준비할  1.2학년 고교생들을 인솔하여

법계사까지 올랐었지요.

 

▲아! 이윽고 멀리 천왕봉이

머리 꼭대기로 보이고,

가슴은 뛰었지.

 

▲7시30분, 로터리대피소,

1978년 로터리 클럽에서 기금을 모아 설치, 2000년 환경부로 기증해서

이 이름이 붙었답니다.

 

▲ 현재는 35명 숙박이 가능한 대피소로

국공에서 관리 운영합니다.

 

▲법계사앞 약수터

물병도 채우고, 마음도 시원함으로 채웁니다.

 

법계사(法界寺).

544년 신라 진흥왕 시절, 연기조사에 의하여 창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1,400m).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아픈 사찰이지요.

 

▲시원한 바람,

청명한 날씨... 설레는 기분.

 

▲거기서 바라보는 남해 앞바다, 진주방향...

구름은 그리움 처럼 골골에 걸렸고.

 

▲우측으로 아침햇살에

빛나는 푸르름.

 

▲그래도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 2K는

심장을 아껴야 합니다.

 

▲자주자주 쉬어야 하고

메스꺼움이나 가슴 울렁임은 절대 금물.

 

▲발전기를 돌려

용접을 하며 계단을 만듭니다.

 

▲그 높은 곳에서 야영을하며 공사를 하는 분들...

감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지요.

 

개선문(1700m)

아침 햇살에 빛나지만

사진 쩍어줄 분이 없습니.

 

▲여기서 천왕봉은 800m

장터목에서 오를 때 '통천문'이 있듯

여기에 개선문이 없다면 천왕봉 가는 길은 더욱 힘들듯....

 

▲아! 멀리 노고단과 반야봉이 보이고...

지리 종주시 그 그늘에서 배낭 털이하던

구상나무는 지난번 헬기추락 사고로 허리가 잘렸습니다.

 

▲어릴적 엄마를 마중 달려가던 그 가슴일까

천왕봉을 향하는 환희의 가슴.

 

▲거기 너른 휴식공간에서 쉽니다.

 

▲지난 5월 여기에서 심정시 상황으로 구조되던 남편과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헬기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처음 천왕봉을 평생 소원으로 오르셨던 부부

명복을 빕니다.(옮겨온 사진)

 

▲그래도 여기는 최고의 포토 포인트.

언제나 여기를 오면 서 봅니다.

 

▲ 순수 자유로운 사람으로

아예 애련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삶을 다짐해 봅니다.

 

▲천왕샘... 한 모금이 가슴까지 시원했지요

남강의 발원지려니...

 

▲어느 해 겨울, 눈보라 바람찼던

이 곳을 지났지요.

 

▲천왕봉 -200m 앞.

사무친 그리움,  지리는 항상 그 모습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다양한 모습이려니....

 

▲어느덧 지리에는 쑥부쟁이,

구절초가 지천...

 

▲가장 추웠던 그 곳에서 어찌 이기고

이런 고운 빛깔을 품어냈느냐? 오이풀....

 

▲ 눈 덮힌 겨울, 여기는

언제나 장관이었으니.

 

▲거기 데크에 앉아 흠뻑 젖은 머리띠도 풀고,

모자를 꺼내어 정장하듯 바르게 쓰고, 마스크를 쓰고, 옷 매무새를 고치고..

가슴을 진정 시켜 천왕봉을 맞을 준비를 했으니.

 

▲천왕봉 이정표... 우측으로 가면

중봉-하봉- 치밭목- 유평- 대원사...

11.7K의 그 길은 멀고 고된 길이었지요.

 

오전9시, 3시간만에 선,

아! 천왕봉(1,915m)

 

한라산에 이어 남한 두번째 높이의 산.

백두대간의 끝입니다.

 

▲뒷면은 처음엔 '영남의 기상'그랬다가

'경남의 기상' 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한국인의 기상'이 되었답니다.

 

모든 인간적인 집착과 욕심을 내려 놓고

무욕의 평안으로 살자고

바람처럼 자유함으로 그리 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북쪽으로 보이는 그리운 덕유종주 길..

남덕유-삿갓봉-무룡산-중봉-향적봉이 아련하고.

 

▲지리종주 길, 선명한 그림인지

그리움인지.

 

▲멀리 중앙 아기 엉덩이 같은 반야봉(1,751m)

그 좌측 삼각뿔 노고단(1,502m)...

우측으로 서부능선 만복대-바래봉...

 

 

▲ 시원한 바람따라

잠자리도 날아다닙니다.

 

▲ 내게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큰 행운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만난 것,

그 다음으로는 지리산을 만나 설레고, 그리워하고, 사랑한 것.

 

▲ 100K만 달려가면 언제든 안길 수 있는

지리산에 기대어 인생의 외로움과 울분과 고단함을 위로 받고

삶의 보람과 환희를 꿈꾸며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것...

 

▲ 서울에서 처음 지리산에 왔다는 흥분된 젊음이들에게

지리 주능선25.5K포함, 35.5K의 지리종주 길

꿈을 가지고 꼭 해보라고 권유했지요.

 

▲ 바람 시원한 청량한 정상에 앉아

그리운 분들께 천왕봉 정기 담아 톡도 날려보고.

 

▲요기도 하고, 뜨거운 포토 커피도 마시고

40여분여를 그렇게 혼미하게 앉아

깃털처럼 가벼운 가슴 뿌듯함으로....

 

▲추운 비바람을 이겨 아름다운 야생화로 피어난

그 싱그런 모습도 살피고.

 

▲제석봉- 장터목을 향하여

길을 나섭니다.

이 민족을 불쌍히 보시고 평온한 평상의 삶을 지켜 달라고..

 

▲모두들 일어 설 줄을 모릅니다.

동서사방 어디서 올랐던지

가슴은 하나겠지요.

 

▲천왕봉을 나서며 삶의 여로에서

숯한 시름들을 날려보내고

 

삶의 아픔과 그리움, 추억의 조각 조각들조차

그리움따라 바람처럼....

 

▲ 늦게지만 지리를 만났고 저 능선길을 여러번 종주했고

구간구간 골골을 누볐으니

 

이만하면 감사한 것, 세월이 흐를수록

그 추억과 그리움은 아픔으로 더 한것을....

 

천왕봉을 사랑하여 61세에 산청 시천으로 거쳐를 옮겨

천왕봉이 보이는 덕산에 산천재를 짓고

 

학문을 연구, 제자 양성에 힘쓰다가 72세에 별세한 

남명(南冥) 조식(曹植, 15011572)

 

▲ 그가 지은 시 한편을 봅니다.

 

 請看千石鐘 (청간천석종)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오.

 

爭似頭流山 (쟁사두류산)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찬 겨울바람 앞에서 푸르름외엔 상상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긍지요, 자랑인 구상나무.

 

▲ 그 푸름이 좋고, 기상과 지조가 좋은

살아백년 죽어천년의 구상나무도 한라, 지리, 덕유 할것 없이

지구 온난화에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으니...

 

▲ 통천문을 지납니다.

언제나 섰던 그 자리에 기다려보지만

사진 찍어줄 사람이 오지않고.

 

▲ 이윽고 두 사람이 올라 오는데 하필이면 외국인 남녀...

그냥 '플리이지 포토, 플리이즈 포토' 할 것을...

지나치고 맙니다.

 

▲지난번 비바람치던 그 곳...

속절없는 세월은 어느덧 그리움이 되었으니...

 

▲어느해 가을의 모습

 

▲500m를 내려서서 올려다 보면

 지나온 길은  저 만큼 멀어지고.

 

▲눈 덮혔던 그 곳은

어릴적 서황당을 지날 때의 경외감을 느낍니다.

 

▲홀로 걷는 그리운 길...

그 시절 넘나들던 그리운 님들도

홀로 걷던 그 세월도 아득한 그리움으로 피어오릅니다.

 

▲제석봉 오르기 전, 언제난 이 길을 오갈때면

푸르름을 꼭 확인해야하는 정겨운 소나무...

여전히 고된 삶 이겨내고 있으니 박수를 보냅니다.

 

제석봉(1806m)

지리산에서 세번째로 높은 봉.

 

주위에 산신에게 제를 올린 제석단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

장터목에서 오르는 길에 고사목 지대를 지납니다.

 

▲ 仙人들의 유람길

최치원은 개혁을 못이루자 지리산으로 와 은둔했고,

 

김종직은 함양수령으로 쑥밭재-천왕봉-세석-백무동으로 4일간,

조식선생은 열두번 올랐다고 그의 '유두류록'에 남겼습니다.

 

▲여기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제단을 쌓았겠지요.

 

▲언제난 싱그러운 구상나무 군락지...

 

10시 20분이라.... 예상은 장터목에서

중산리 하산이지만 시간이 남으니 세석으로 갈까?.

 

▲여기 고사목 단지는

1950년데 울창했던 숲이었는데 도벌꾼들의 방화로

태워졌다고 안타까워했는데.

 

▲지금은 방화보다도

지구 온난화로 자꾸만 죽어가니 안타까울 따름.

 

▲ 장터목 대피소.(10시 30분)

 

지리 최초의 '지리산 산장'이 세워진 곳,

우리나라 대피소중 가장 높은 곳(1,750m).

 

 

현재의 건물은 1997년 건축하였고

155명을 수용합니다.

 

 

▲여기서 동쪽으로는 중산리로 내려갑니다(5.3K)

백무동은 5.8K. 천왕봉은 1.7K.

 

▲대피소 예약시 가장 치열한 대피소(155명),

코로나19로 모든 대피소에 안내원 하나없이 조용합니다.

 

옛 산청사람들과함양인들이 5일에 한번씩 올라

물물교환의 장이 섰다는 곳.

 

맨몸으로 올라도 이렇게 힘든데..

참 고단한 삶 이었겠습니다.

 

▲지난 3월 정기검진에서 '비알콜성 지방간'과 '혈당'수치가 높으니

감량하시요'.... 5개월간 6K감량, 이제는 63.2K...

 

얼굴은 골이 더욱 깊게 패였고, 허리띠는 헐렁하니...

세월은 곱던 우리 누이만 할머니로 만드는줄 알았더니

 

가을 단풍 잎 마냥 세월은 잔인하게 만들어 가나봅니다.

 

▲거기 앉아 산청시천 택시에 전화를 걸어

'거림으로 가면 중산리까지 택시비가 얼마요?'

'3만원이요'.

 

▲디시 국공단 경남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예약없이 거림으로 내려갈 수 있나요?'

 

'오실 수 있고 시간은 충분한데 체력이 어떨지요?'

 걱정스런 여직원의 대답이 고마웠으니....

 

▲지난 겨울 이 대피소에서 1박 했을 때

석양의 모습....반야봉, 노고단이 선명합니다.

 

▲서둘러 세석으로 향하면

일출봉에 닿습니다.

 

▲세석에서 1박을 한 이들,

장터목에서 1박을 하고 세석으로 향하던 이들이

일출을 염원하는곳.

 

▲장터목에서 세석을 향하는 3.4K 길은

지리 종주길 중에서 가장 꿈 같은 길입니다.

 

연하봉(1,721m)

지난 가을 빗 속에 그렇게 그리움이던 그 곳,

어느 겨울 눈 속에 황홀했던 그 곳을 다시 왔습니다.

 

▲남쪽 도장골에서 오르면 지리산 최대의 바위지대

지리의 공룡능선 연하봉은 바위로 만든 동물원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연하봉은

'연하선경' 길로 늘 황홀합니다.

 

▲지리능선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천국가는 길이 있다면 이 길 같을 거라고.

 

▲ 꿈 같은 그 연하선경 길에 앉아

한참을 넋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안아보고.

 

▲안전하기는 하지만 펜스없던

그 시절이 더 아름다웠을 거라고.

 

▲구름 한점 없던 천왕봉은 신비로운 구름속에

가렸습니다.

▲그 그리운 시절 서리내린 가을 아침

연하선경 길은 이랬습니다.

 

, 나무, 바위, 구름..

언제나 이렇게 반깁니다. 위대한 지리는...

 

연하선경의 그 아름다움..

어느 6월 지리종주시 이 길은 고사목 사이로

 

바위에 붙은 연분홍 진달래, 철죽은

차라리 아픔이었습니다.

 

▲여기를 오를 때면 생각났던 고향 고갯길...

겨울엔 비료 푸대가 생각났던 길이지요.

 

촛대봉(1,703m)

마치 슬픈 촛농들이 눈물처럼 떨어져 흐른 모습 같다하여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여기를 오를 때면 늘 확인 하는

거북바위에 앉은 돼지바위...

이름은 제가 지은 것입니다.

 

통제되기도 하지만, 종주 시마다

정신없이 스쳐지나야 했던..

오늘은 몰래 그 통제선을 넘어 올라 봅니다.

 

▲거기서 보는 세석평전...위 낙남정맥의 출발지 영신봉.

그 능선은 삼신봉- 외삼신봉으로 흐릅니다.

꿈 같은 풍경... 그리움으로 눈물이 납니다.

 

 

▲거기서 바라보는 천왕봉 마지막 모습,

 중산리 구름이 백무동으로 넘어서지를 못합니다.

 

▲ 복돼지 너머로는 함양의 마천,

백무동, 한신계곡이 흐르고.

다시 북쪽을 보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백두대간 '오도재'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 계절, 지천으로 피었던 야생화는

다시 위대한 생명의 씨앗을 포근히 품으려

고운 빛깔로 물들였습니다.

 

▲나무들의 산, 꽃들의 산, 짐승들의 산

그들에게 안겨주는 따뜻한 위안.

 

▲ 머물고 싶은 순간처럼

그 빛깔들도 계절따라 변화하는 위대한 모습에서

경외감을 느낍니다.

 

세석평전 습지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고지(1500m)의 습지랍니다.

 

▲습지 가운데로 길게

늘어섰던 탐방로는 없어지고

그 곳의 추억도 지워진듯하여 ...아쉼입니다.

 

▲수수 만년동안 목마른 동식물들의

물을 공급하던 곳,

생명의 성지겠지요.

 

▲가을에 서면 그 넓은 평원에는 하얀 구절초와

연보라빛 쑥부쟁이가 비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지천으로 피었었는데....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에

안연히 들어 앉은 세석 대피소...

언제나 추억과 그리움입니다.

 

! 반가운 '세석대피소'.

 

영신봉(1652m) 바로아래 이 대피소는

지리 8개 대피소중 제일 규모가 큽니다.(240명)

어느덧 여러 밤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다시 서서

안타까운 구상나무를 공부하고.

 

▲한라산, 덕유, 지리산의 구상나무들이

더 말라가지 말고 이겨갔으면....

 

▲세석 갈림길...주능선은 노고단 방향(21K), 동쪽으론 장터목(3.4K)

그리고 바로 너머로는 백무동(6.5K)로 갑니다.

모두가 추억으로 서린 곳.

 

▲역시 사람으로 북적이던 대피소는

폐쇄되어 조용하고

추석무렵 다시 문을 열도록 코로나 19가 진정되면...

 

 

▲세석은 지리 여러방향에서

오가는 이들의 마음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 체력, 몸상태, 장비, 기본식량...

겸손하게 늘 점검해야 할 나이...

 

▲ 세석은 백무동- 한신계곡으로 오르기도 하고,

거림에서 오기도 하지요.

 

▲그 시원한 샘물 가에서 요기도 하고

물을 채우고 그리운 평전을 마지막 올려다 봅니다....

내 다시 오리니....

 

▲물이 풍부했던 그 세석의 길...

같이했던 그리운 이들을 기억합니다.

 

▲또 하나의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음양샘-삼신봉으로 하여 청학동으로,

 

아픔의 곳 대성골로 하여 의신마을로..

모두 10K가 넘는 아득한 길 이있지요.

 

▲거림으로 가는 길은, 노고단 고개에서 노고단과 더불어

탐방로예약제가 실시되는 생태계의 보고 입니다.

 

▲ 물소리도, 원시림 같은 숲 길도 아름다운

6K길 이지요.

 

▲맑은 물은 청하한 소리로 흘러가고.

여름 매미소리도 싱그러웠지요.

 

마치 내 살아온 날들의 인생길 처럼

비탈진 길을 몇 굽이 돌아 돌아 '세석교'가 반깁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세석은 완전히 멀어지는걸까?

아쉼고 아픈 마음은 어쩔 수 없고.

 

▲그렇게 세석에서 1K를 내려오면,

'돌마리영'포인트가 나오는데.

 

멀리 청학동 뒷산,  삼신봉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외삼신봉으로 낙남정맥이,

 

우측으로 내삼신봉-쌍계사-성제봉이 흘러갑니.

 

▲이제부터 '북해도교'까지

거림길이 이렇게 험했나 힘든 길입니다.

 

▲거의 다왔나 했더니

아직 절반도 아니온듯.

 

▲여기 거림골은 아픔의 현장입니다.

 기록들을 보면 한국전쟁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시절.

 

▲토벌대에 쫓기던 빨치산들이 날이 저물면서

 도장골, 거림골, 벽소령 아래 빗점골등지에서

이 넘어 대성골로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토벌대의

포탄들은 하얀 눈위에 피와 불마다를 만들고

하룻밤 사이에 일만여명의 젊은 목숨들이 처참하게 쓰러졌습니다.

 

▲이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시절에 태어나

젊은 시절을 지리산에 몸을 숨겨 불안했던 그 삶

 

꽃다운 젊디젊은 청춘들을 묻었으니...

언제나 숙연히 명복을 빕니다.

 

▲어느시절 거림마을-길상암-그리고 도장골..

이영희부대가 악양보급투쟁으로 유명한 비탐지역을 돌아

청학연못을 가봐야 하는데... 세월이 급합니다.

 

▲반가운 멋진 소나무,

거림마을에 다 왔다는 이정표입니다.

 

'거림계곡'은 세석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연하봉, 촛대봉에서 발원한 '도장골'

서로만나 이뤄진 계곡입니다.

 

그 입구엔 '천황사'란 큰 사찰이 있고,

탐방지원센터 옆에는 '길상암'이란 절도 있습니다.

 

▲오후 3시,

6시 중산리를 출발하여 9시간을 걸었습니다.

 

거림(巨林), 큰 숲이 있다는 의미일까?

소박한 탐방지원센터.

 

산 새도, 등산객도 조용한 '거림계곡'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지난번 있었던  안내판이 없었습니다

'도장골' 1951-1953사이 공비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곳,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 역사의 아픈 여인의 삶도

이 골짜기에서 이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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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청명한 여름 날에

혼자 걸은 뜨거운 그리움의 길...

홀로 걷는 산행, 누가 홀로이기를 원하겠는가!

 

하루빨리 코리나19가 안정되어 스스로

고립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을 염원하며..

감사한 길을 마감합니다.

감사한 날, 가슴벅찬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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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권경업


오를수록
가슴 저린 산
서럽게 서럽게
눈물나는 산

쫓기던 이 좇던 이
영문 없이 끌려간
핏덩이까지
아물어간 상혼에도
고통은 남아


유월 짙푸른
한을 삭이고
용서하고 용서받을
하나됨을 바라
초로에 반백이 다 되도록


골마다 영마다
바람으로 흐느끼는
지리산은 서러운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