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추풍령과 죽령을 잇는 고개의 남쪽 땅을 ‘영남지방’이라 했고
그 영남지방을 다시 낙동강 동쪽를 서울서 봤을 때 좌측이라 하여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 했다
지금부터 약500년전인, 1501년, 이 영남 땅 우도와 좌도에는 걸출한 학자 두 명이 탄생했는데
안동출신 퇴계 이황(1501~1570)과 합천 출신 남명 조식(1501~1572)이다.
두 사람은 분명 매우 뛰어난 성리학자 였지만 학문적 경향은 매우 달라서, 이황이 성리학
이론을 정교히하여 개인 수양을 쌓는 공부를 중시한 반면 조식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실천하는 삶에 더 비중을 두었다.
이황의 학문은 당대뿐 아니라 조선시대 내내 많은 선비들에게 영향을 주며 이른바 ‘퇴계학파’라는
큰 학맥을 형성했으며, 지금도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심도 깊게 연구되고 있다.
남명 조식은 인간의 심성과 함께 성리 철학의 핵심 주제인 의리를 평생 동안 탐구하고
당대의 사회 모순과 정치 현실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선비의 길을 걸어갔던
선비였다.
제자를 가르치는데 있어서도 이황이 성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개인 수양을 쌓는 공부에 비중을
두었다면, 조식은 이론보다는 사회적 실천을 더 중시하여 제자들에게도 실천적 삶을 강조하여
많은 개혁가나 의병 운동가등이 배출되었다.
두 사람의 삶 중 어느 삶이 학자로서 더 올바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이황은 대학자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조식 또한 실천적 지식인의 표본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남겼다.
남명은 가야산 자락 합천 삼가에서 태어났지만 유독 지리산을 좋아했다.
58세 때까지 지리산을 10여
차례 올랐으며 61세 때는 천왕봉 아래 ‘덕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리산을 동경해서다.
지리산은 실천적 유학자 남명의 사상적 고향이었다. ‘하늘이 우는’ 혼돈의 세상에서 울지 않고
의연히 서 있는 천왕봉처럼, 그는 우뚝 서서 의연히 버팀목이 되고자 했다.
남명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유두류록/遊頭流錄)>이라는 유람록을 남겼는데 그는
이 유람록 끝에 ‘물을 보고 산을 보고, 그리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았다.(간수간산 간인간세/
看水看山 看人看世)’라고 썼다. 남명의 이 여덟 자 짧은 구절은 오늘날 여행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공부를 하되 이론으로 머물지 않고 깨달은 바를 삶으로 이어가는
즉, 몸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 우리가 남명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명은 덕산에서 12년을 살다가 157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요란하지 않고 조용했다.
그러나 곽재우를 비롯한 많은 그의 제자들은 의병같은 실천하는 삶으로의 그의 가르침은 계속
천둥처럼 세상에 울렸다.
그가 젊은 시절 부친 3년상을 마친후 올랐던 산이 있다. 자굴산....
거기에 그를 기리는 탐방로가 조성되었다.
짙어가는 여름!
남명과 홍의장군을 기리며
그렇게 걷는다....
▲남명 조식(南溟 曺植)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자굴산..
거기를 걷기로 했습니다.
▲쇠목재. 1013 지방도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 만나는 고개
가례면 갑을리와 대의면 신전리 경계입니다.
▲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 궁류의 한우산과
가례의 응봉산, 그리고 용덕의 신덕산과 이어져
하나의 산맥을 이루는데.
▲ 의령을 감싸고 있는 이 거대한 산맥 전체의 형상이
마치 황소를 닮았고
▲자굴산은 우람한 황소의 머리,
한우산과 응봉산의 산 줄기는 몸통,
신덕산이 엉덩이 부분에 해당되는데.
▲쇠목재는 '소의 목'에 해당되어
이 이름이 붙었답니다.
▲가파르게 오르면 정자를 만나고
이 후에도 너른 쉼터와 벤취들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둠배기먼당.. 이름이 정겹습니다
먼당은 '마루'의 의미지요,
여기서 좌우로 돌면 둘레길 5.7K가 이어지고.
▲가파른 계단 대여섯을 숨 가프게 넘어
정상에 도착하면.
▲동서사방 지리산천왕봉, 무학산, 비슬산, 황매산, 가야산, 와룡산...
영남의 여러 산들을 다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여
비가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아쉬움.
▲ 나중 안 일이지만
여기 자굴- 한우산은 너무 많은 길들로 인하여
오히려 혼란스러울 정도.
▲자굴산( 897m)
경남 의령의 진산이요 명산.
산 이름에 붙은 '자'는 '성문의 망대'를 뜻하니,
성문 위에 높게 설치된 망루 모양으로 우뚝 선 산이란 뜻입니다.
▲정성을 다한 해설 글에서
얼마나 자굴산을 사랑하는지...
▲ 사방으로 펼져진 조망의 즐거움이
구름과 안개로 사라진 진한 아쉬움...
▲바람덤도 오르고 싶고
금지샘, 절터샘도 가 보고 싶은데....
좌측으로 향했습니다.
▲ 많이 다니지 않는 좁은 길들을 가파르게
내려옵니다.
▲'바람덤' 바위인가?
'덤'이란 큰 바위란 의미입니다.
▲ 금지샘을 지납니다.
여성 성기를 닮은 금지샘은
어떤 가뭄과 폭우에도 솟구치는 물에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약 3m 깊이의 천연동물 샘으로 왼쪽은 사람이,
오른쪽은 짐승이 먹었다고 하는데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가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자
물이 말라버렸답니다.
▲ 우측은 내조전망대- 달분재- 석불입상등이지만
오늘은 좌측 절터샘 방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 자굴산은 순우리 감성의 이름들이 많습니다.
벼룩콧등, 베틀바위, 질매재,
바람덤, 절터재, 둠배기먼당....
▲ 질마는 소나 말의 등에 얻는 안장을 의미하고
덤은 큰 돌, 그러니 '망덤'은 망을 보는 바위겠지요.
▲'티'는 터를 위미하고
먼당은 마루를 의미합니다.
▲ 오늘 산행의 아쉬움은 사진 저장이 장애가 생겨
꼭 있어야 할 사진들이 사라지고
순서도 아쉽기도 합니다.
▲이제 조금씩 안개와
구름이 걷히는듯.
▲자굴산은 남명 조식선생((南溟 曺植1501∼1572)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합천 삼가면이 고향으로 부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와 3년상을 치루고
▲자굴산에 들어 명경대(明鏡臺)에서 글을 읽었는데
그 명경대를 추측만 할 뿐입니다.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조식선생 스토리텔링
탐방로로 만들었지요.
▲ 아! 드디어 안개와 구름이 걷히고
건너 한우산 마루금이 나타납니다.
▲왜 산을 갈까?
어떤 이는 정상이 목표이지만
가로로 걷는 즐거움도 쾌감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 저기가 명경대(明鏡臺)일까?
어느 시절 저기를 한번 올라봐야겠습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정상을 향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올라
정상에 섰을 때 밀려오는 거대한 희열...
▲노각나무.... 사슴 뿔처럼 웅장하고
황금빛을 가졌다하여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멋진 나무처럼
우리나라도, 우리도 오늘을 극복하고
다시 솟아 오르겠지요.
▲짙은 여름산은 가을 단풍에서 봤던
그 경이로운 풍경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 종일 걸은 자굴산은 우거진 숲과, 나무,
이낀 낀 돌들과 함께 수국이 지천이었습니다.
▲ 마지막 둠배기먼당을 오르던 길...
▲다시 둠배기 먼당에 왔습니다.
둘레길을 온전히 돌기 위해서는
정상을 올랐다 다시 내려왔어야...
▲그렇게 다시 출발지 쇠목재에 닿습니다.
관광도로는 여기서 대의, 칠곡방향으로 내려가고.
한우산을 넘어 벽계방향으로 넘는 길은 주말엔 통제를 합니다.
▲한우산을 오르며 내려다 본
칠곡, 대의방향의 관광도로.
▲2K여를 뜨겁게 오르면
생태학습관이 자리합니다.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나,
아이스께끼 파는 곳인줄
기대했던 아쉬움.
▲그러나 그 안에는 자굴-한우산의
생태학습관으로 여러가지 전시물이 놀라웠습니다.
▲여러 새들도 배울 수 있고.
▲깃털만 봐도 무슨 새인지
알 수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홍의송... 곽재우 장군의
여러 마음을 하나로 묶어낸
그 충정으로 나라를 구한 의령군민을 닮은 나무.
▲바람 세찬 산마루에서
자라다 보니 여러 갈래로 갈라진 나무.
▲ 봄철 한우산 정상에서 벽계방향으로 산록은
불타는 풍경입니다.
▲창문을 통해 건너다 본 쇠목재..
이젠 완전히 조망이 열린듯합니다.
▲엉덩이만 보고도 알아 맞히는 재미.
하긴 사람도 '뒤태'를 따지기도 하지요.
▲곤충들의 표본도
여럿이었습니다.
▲우리가 딛는 흙속에도
수 많은 미생물이 있고 역사가 있으니....
▲알들에게 온기가 전해지면
그 주인공의 새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내 속에 감추어진 아이의 본성이
살아나자 작은 행복감에 젖습니다.
▲소나무의 식생도 공부하고.
▲우측은 도로로 올라가는 길이지만
이제 좌측 숲길로 하여
한우산으로 향합니다.
▲숲속 길, 호젓한 흙 길...
행복감은 이어지고.
▲어느덧 여름 야생화는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건너다 뵈는 풍력 발전기...
산 아래 주민들이야 애로가 있겠지만
대관령-선자령 풍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저 아래
'한우정' 주차장에 주차하고
정상을 오르지요.
▲한우정에서 내려가면 갑을리로도 가고
벽계야영장- 일붕사, 궁유 방향으로도 갑니다.
▲구름과 함께 포근한 한 가족이
그림같습니다.
▲거기서도 안뵈는 산이 없을 정도의 시원한 조망
지리천왕봉, 가야산, 황매산, 비슬산,
남지읍, 창녕읍도....
▲한우산(836m)..
찬비가 내리는 시원한 산이겠지요.
▲자굴산에 비하여 60여m가 낮지만
호쾌한 조망은 그만입니다.
▲조금 더 여유롭자..
조금 더 여유를 즐기는 삶이 되었으면.
▲뒷 구름이 아까워
버릴 수 없던 사진.
▲조망의 즐거움, 시원한 바람
행복이라는 것,
맘껏 내게 가르쳐준 오늘의 산행이었으니...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사는 이가 있을까?
그 그리움을 그리면 그림이 되고
긁으면 글이 되는 것을...
▲이 방향은 가을 억새의 평원.
▲거기서도 홍의송은
멋지게 자랐습니다.
▲한우산 정상에서 건너다 보는 자굴산.
▲그렇게 내러서면
한우정, 주차장도 있고.
▲ 한우산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요.
▲한우도령과 응봉낭자에 관한 이야기...
홍의장군도 망개떡도 등장합니다.
▲철쭉 설화원 아래로
도깨비 체험 곳곳도 이어지고.
▲도로와 다 기억할 수 없는 숲 길들이
오히려 너무 산만하단 생각도 합니다.
▲ 좌측능선에 활공장이 있고
우측 능선길을 따라 쇠목재로 가려합니다.
▲한우정- 쇠목재, 그 1.5K 생태숲 길은
꿈결같은 아름다운 길.
▲ 짙은 녹음의 길따라
한 계절이 한창 지나가고 있었으니...
▲나에게 솔직했고
내 감정에 충실했으니
모든걸 시도했던 내게 박수를 보내고 픈 생각도 하고.
▲아래로 보는 너른 갑을리, 우측으로 경남 소방교육원도 있고
경남교육청 청소년 수련원도 있습니다.
▲건너 자굴산, 좌측 산 기슭으로
야영장이 조성되고 있지요.
▲ 생태 탐방로의 아름다운 길을 내려서면
출발지 쇠목재.
▲그렇게 걷다가, 쉬다가, 누웠다가..
유유자적했던 하루.
▲돌고돌아 의령읍내를 지나
남강 물줄기가 경남 의령과 함안을 나누는
'정암'으로 왔습니다.
▲함안과 의령을 잇는 정암철교,
1935년 일제강점기에 준공되어
한국전쟁으로 파괴되기도 했던 문화재가 된 다리입니다.
▲옛 부터 구전으로 불리워진
정암 뱃사공 노래.
▲정암루, 솥바위를 내려다보며
경치좋은 곳에 위치합니다.
▲홍의장군 곽재우, 솥바위의 전설들이
소개되는 곳.
▲ 최초의 의병장 홍의장군, 그 승전지가
여기 정암나루터입니다.
▲ 최초의 솥바위를 중심으로 8㎞ 이내에서 큰 부자(인물)가 나고,
그 지점은 솥바위 밑의 다릿발 세개가 뻗어난 방향인데
의령 사람들은 이 전설이 현실화 되었다고 흥분하면서 '실례'를 드는데...
▲솥바위 이야기와 홍의장군 승전지...
아기자기한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 솥바위의 유래를 알리기 위해
솥을 만들어 놓기도 했고.
▲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의 출생지가 정곡면 중교리(솥바위에서 8㎞)이고,
LG그룹 고 구인회 회장은 진주시 지수면(7㎞),
효성그룹 고 조홍제 회장은 함안군 군북면(5㎞)이 고향이랍니다.
▲ 그 분수 조형물에는
별자리도 설명되고.
▲임진년 5월 전개된 '정암진전투'
그 역사성과 지리적 중요도가 설명되었습니다.
▲작은 성곽도 축조되었고.
▲함안에서 남강을 건너 의령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멋지게 섰습니다.
▲곽재우 장군을 중심으로 17장군들의 모습에서
그 늠릉함을 보여주고.
▲충의의 고장 의령.
그 9경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강을 내려다 보고있는
정암루도 올라보고.
▲솥을 빼닮은 바위. 정암(鼎巖)
반쯤 물 위에 드러나 있는데,
물 밑에는 세 개의 큰 기둥이 받치고 있답니다.
▲오늘도 정성으로 기도하면
그런 소원이 이뤄지려나...
.
▲철교의 다리 교각이 될뻔한 정암..
일제는 그 바위에 교각을 세울 설계를 했었다네요.
▲바위뿐아니라 멋진 나무도
한 나무 몸통에서 세 그루 자랍니다.
▲거기 한 작은 여각이 있는데.
▲함안 여씨 시조를 위한 제단이랍니다.
그렇게 바람과 햇살과 함께
자굴산-한우산과 의령의 곳곳을 순례한 하루
산행과 역사 그리고 감성의 답사 길...
오래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하루였으니...
----------------
'정암 뱃사공 노래'/ 구전 뱃노래.
정암에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우리님 오시는디 마중을 갈거나
너이가 날같이 사랑을 준다면/
까시밭 천리라도 맨발로 갈거나
간다 못간다 얼매나 울었던고/
정거장 마당이 한강수 되노라
(후렴) 아이고 되이구 뚜댕구 뚜댕구 성화가 났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