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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가야(非火加耶)의 창녕을 찾아(관룡사,고분군,석빙고,만옥정공원, 영산...)

산꾼 미시령 2020. 6. 15. 20:11

비화가야(非火加耶)의 옛 고을 창녕....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관통하는 창녕은 대구현풍과 경북 고령과 연접하고

동으로 밀양, 남으로 함안, 그리고 서쪽으로는 의령과 합천으로도 연결되는

내륙중심지역이다.

 

 70년대까지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부곡온천도 창녕이고,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우포늪,

그리고 억새밭으로 유명한 화왕산을 '배산'으로 너른 들판 끝에 낙동강을 '임수'로 풍요가

넘치는 고장이다.

 

 국보, 보물, 사적만해도 20개나 되고, '유리 고인돌'과 '송현, 교동고분군', 또한 계성면과 영산에도

여러 고분군이 산재하고 무엇보다도 비화가야가 멸망하고 신라로 편입되는 것을 증명하는

'진흥왕척경비(국보33호)' 로 대표되는 역사문화는 제2경주 비사벌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화가야(非火加耶)-

 가야(加耶)BC 1세기~서기 6세기까지 경상도 지역의 고대 국가인데

로 삼국유사에서는 6개의 가야국인 금관가야(金官加耶), 아라가야(阿羅加耶), 성산가야(星山加耶),

비화가야(非火加耶), 대가야(大加耶), 소가야(小加耶)가 알려져 있다.

 

 6월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그 곳을 홀연히 달려가고 싶은 그리움에 나섰다.

그 찬란한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 관룡사,

관룡산(740m)의 암릉을 병풍처럼 끼고

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 다산초당의 뿌리길이 생각나는 길을

500m오르면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만납니다.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

통일신라신대의 석조여래좌상....

 

▲화왕산에서 허준세트장 앞을 지나

관룡산애 올랐다가

여기로 내려옵니다.

 

▲근래 좌대에 새겨진 명문이 발견되어

8세기초, 그러니까 경주의 석굴암보다 앞서 조성한 것이

확인되었지요.

 

▲3.18m 대좌와 불상으로 근엄하고 화려합니다.

뒤로 용의 등줄기 산자락을 타고, 멀리 영산의 영축산줄기와

 

아래로 펼쳐진 옥천계곡의 화려함이

오늘은 비안개로 꽝입니다.

 

▲철책을 두른 모습이 타이타닉같다하여

타이타닉 부처님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시원하게 비가 내리던 날

관룡사 뒷쪽 송림은 생명력이 가득하고.

 

▲구절양장의 계곡 위에 가람배치가 아름답고,

속이 깊은 절집이라는 인상을 주는 관룡사.

 

▲대웅전, 관룡사사적기에 숙종38년(1712)에 중건했다고 쓰였으나

1965년 보수공사 때 상량문이 발견되어

태종 원년(1401)에 창건되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영조25년(1749)에 중창했다고....

 

▲대웅전(보물212호), 벽화(보물 1816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대좌(보물제1730호)

 

 

▲명부전의 아담함도

아름답기 그지없고.

 

▲명부전 안의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경남유형문화재 제576호).

 

▲원음각.. 비오는 날 대웅보전을

마당 건너로 올려다 보며

기도하는 모습들이 자못 성스럽고.

 

▲약사전(보물제146호)

중생들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를 모신 건물..

 

▲약사전 안에 모셔진 하얀

석조여래좌상(보물519호).

 

▲약사전 앞의 삼층석탑

(경남유형문화재 11호).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11호).

석탑은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

고려 전기시대의 모습입니다.

 

▲약사전(보물146호)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은 유일한 건물

그러니 관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 대웅전 서쪽으로는 종무실이 보이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

애잔한 그리움입니다.

 

▲ 대웅전 동쪽으로는 칠성각이

그 조형미의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명부전..

주어진 지형을 그대로 끌어 안으면서

배치된 아름다움.

 

▲산영각..

작은 조각품 같은 앙증스럽기까지한 모습입니다.

 

▲대청마루 같은 원음각(경남유형문화재 140호)

비오는 마당 건너 대웅전을 바라보고.

 

▲관룡사 사적기(경남유형문화재 183호)

역사의 소중한 자료입니다.

 

▲원음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범종루

그 청아한 소리가 온 골골에 퍼지겠지요.

 

▲화왕산이 명산으로 꼽히는 것은

관룡사라는 작지막 모든걸 갖춘 명찰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룡사는 산중의 분지가 아니라

산비탈의 경사면에 가람배치되어 경내는 작아보이지만

 

위로 올려다 뵈는 경관은 장엄하고,

아래로 보는 경관은 통쾌합니다.

 

▲느긋한 돌 길에서 만나는 돌 장승...

나무 장승은 수명이 짧아 오랜된 것이 없는데

여기 돌장승은 원형을 잘 간직한 모습입니다.

 

▲풍화가 심한 당간지주에 영조49년(1773)에 세웠다는

명문이 있어 추정합니다.

 

수수깡 안경잡이 왕방울 눈..

온화한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둘다 벙거지를 쓰고

콧잔등에 주름이 나 있습니다.

부부싸움이라도 했는지 굳게 다문 입술들....

 

▲ 어느 해 한 장승을 잊어버렸다 찾아온

에피소드도 있지요.

 

▲이제 옥천 골짝을 떠나려 합니다

태풍 매미 때 엄청난 상처를 받고

제는 인공미가 자연미를 압도한 모습.

 

▲창녕읍내 밀양으로 가는 국도24호선 옆에

교동고분군 70여기,

송현동고분군 80여기, 목마산 아래 20여기가 있지요.

 

▲ 이들 고분군은 5- 6세기에 축조된 비화가야의

지배층 무덤입니.

 

▲신비롭고 아름다운 역사의 설치미술, 대지의 젖무덤의 곡선...

잃어버린왕국 비화가야의 애잔함..

 

제15호에서 출톤된 인골을 컴퓨터로 가야의 아름다운 소녀,

'송현이'를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명덕초등 건너편으로 옮기면

석빙고(보물 310호)를 만납니.

 

▲겨울에 하천에서 얼음을 떼어 보관한 냉동고..

1742년 영조때 축성된 것입니.

 

▲그 역사성과 과학적 원리에 놀라고.

 

▲바람의 방향과 배수등의 원리를 놀라워합니다.

비사벌의 옛 모습이 얼마나 고급스러웠는지....

 

▲창녕경찰서 인근의 만옥정 역사공원...

거기엔 역사유물이 즐비하고

그 중 최고는 '진흥왕 척경비'입니다.

 

▲국민학교시절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창녕'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곳을 달달 외웠지요.

 

진흥왕 척경비(국보33호)

통일신라시대 창녕은 나라의 중심부.

 

▲여느집 댓돌로 쓰여지는 것을

1914년 일제 일본인 교사가 발견했다고...

 

▲643자 가운데 400여자가 해석되고

나머지는 마모되어 해석이 불가하지만.

 

▲신사년 2월에 세웠다는 내용과 함께

신라6부의 명칭과 지방관청, 관직등

그 시대의 정치 경제 군사 모습을 알수 있는 자료입니다.

 

▲이외에도 창녕은 화왕산성(사적64호), 목마산성(사적65호)

읍내의 술정리 東삼층석탑(국보34호),

西삼층석탑(보물520호)등등.

 

▲그런 즐비한 국보, 사적, 보물등으로

제2의 경주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퇴천리 3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10호)

 

▲그 안정된 조형미를

한참 바라봅니다.

 

▲원래는 퇴천의 한 민가에 방치된 것을 수습

여기로 옮겼는데 그 양식이 통일신라 모습.

 

척경비도, 객사. 삼층석탑도 모두가 옮겨온

장소의 역사성이 짙은 아쉬움,

 

▲그 역사공원에는 여러 현감들의 공적비가 있지만

이 자체가 백성들의 원성의 산물인 것도 있겠지요.

 

▲창녕은 조촐한 군이지만

술정리 삼층석탑 부근이나, 석빙고 그리고

여기 만옥정 공원 조성은 박수받을 만한 일입니다.

 

▲ 폐사지들과 여러 유적들을 계속 발굴하고

복원해야겠습니다.

 

▲창녕객사(유형문화제231호)

관아의 부속건물로 외국사신이나

출장 온 벼슬아치들의 숙소였답니다.

 

▲단층 맞배지붕의 단아한 모습

못을 쓰지 않은 조형미가 아름답습니다.

▲역사공원 안이니 현대사도 괜찮지만

좀 덜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지요.

▲ 10월 24일을 '유엔데이'라 하여

공휴일이었던 시절도 살았으니...

▲서둘러 창녕읍과 남지읍 중간의 영산으로 갑니다.

왕년에 영산현으로 현청이 있던 고을..

거기에서 만나는 만년교(보물 564호)

 

▲ 동네 개울다리 만년교는 정조4년(1780)에

처음 쌓은 다리.

 

▲눈 내린 날

냇가에서 썰매타는 모습이나.

 

▲능수 벚꽃 피고, 개나리 노랄적에

한복 입은 아낙네가 빨래하는 사진은

여러번 카렌다에 등장합니다.

 

▲실제로 이용한 다리였으니

여러번 수리하였고 복원하였답니다.

 

▲수리 때 시주한 내용, 그 공사책임자등

경자년 3월의 내용입니다.

 

▲이 다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글 줄마다 영산인들의 애정이 가득합니.

 

▲매우 튼튼한 무지개다리

그 이름처럼 만년의 세월을 증언하길 기대합니다.

 

▲ 화왕산에서 흘러내린 남천를 가로지은 역사의 다리

그 이어짐이 옛인과 오늘로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겠지요.

 

 

▲만년교를 건너면 작은 호국공원이 있습니다.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영산, 함안 여항산 서북산,

 

그리고 인근의 박진의 치열한 전투는

칠곡의 다부동 전투에서 처절했지요.

 

▲어김없이 영산현의 공적비, 애휼비....

 

▲여기를 올적마다 눈에 거슬림은

전두환 대통령시절 그 조상 '전제'의 충절 사적비를

이 지역 유지들이 세웠는데 ... 아쉬운 부분입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지.

 

▲ 그 역사를 잠시 읽어보며

비오는 날 침울하기도 했지요.

 

▲ 여기서 10키로 더가면

박진이라는 낙동강가 마을이 있는데

거기엔 전쟁기념관도 전적비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옛 영산현의 아름다운 고을,,,

좌측의 '연지'도 걷기 좋은 명소이고.

 

▲뒤로는 영취산.. 암릉의 묘미가 굉장했지요

거기를 걸어 부곡으로도, 화왕산으로도,

그리고 앞 함박산으로도 종주합니다.

 

▲만년교에서 500여m를 오르면

거기에 또 석빙고가 나옵니다.

 

▲영산석빙고(보물 1739호)

만년교와 함께 영산현의 생활유적이겠습니다.

 

▲ 이 외에도 정월대보름 영산줄다리는

주요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되었고

 

요즈음은 3.1운동 발상지를 추억하는

3.1민속줄다리기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몇해 전 창녕소재 초중고 교사들중 외지인을 대상으로

한 주간 창녕 알기 연수를 다니며 속속들이 공부할 때

영산의 3.1민속문화재 보존회를 방문하여

 

소싸움놀이 소품을 제작해보는 프로그램에 많은 관계자 분이

얼마나 정성을 다하시는지

그 긍지와 노력에 경탄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청녕... 그 속속을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오래오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포등 생태학적 아름다움을

잘 보전하는 고장이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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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의 노래 오 세창

 

우뚝 솟은 화왕산

억새풀 평원 지붕삼아

이곳에 자리 잡은 창녕 땅

칠백리 젖줄 낙동강

14개 읍면에 배불려 주고

구비구비 흘러만 가는구나.

 

산허리 감돌아

관룡사 덮은 흰 구름은

허준 선생 한숨어린 입김이로고

태양빛 작열 하는 옥천 골은

신돈의 절터

불타는 화염일 지어다

 

신비속의 우포늪 침전 바닥은

1억 4천만년

비밀을 간직 하고 숨 쉬고 있다

고을의 자존심

군데군데 고분(古墳)은

진흥왕의 아름다운 향기였어라

 

화왕산 자락 부곡온천

78도 유황열탕은

삼일운동 열사의

피 끓는 열기로 끝없이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