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로 널리 알려진 사천.
사천은 왕의 고을이다. 고려태조 왕건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 전국의 호족세력을 규합하는
수단으로 무려 29명의 부인을 얻어 아들 25명, 딸 9명, 총34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중 한 왕자가 왕욱((王郁)이고 그의 아들 ‘왕순’은 훗날
6대왕 현종이 되었는데 경남 사천의 고자실(학촌) 마을과 왕욱(王郁)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는 권력을 남에게 내주기 싫어 근친혼이 성행했는데
헌애왕후가 자식이 없으므로 궁궐을 나가 사가에 살았고, 이웃에 살던 왕욱(王郁)과
자주 왕래하다보니 정분이 났다.
이 일로 왕욱은 두 달된 아들 왕순과 사천으로 귀양을 와 서로를 그리며 왕래하면서 아들을
되돌아보며 갔다하여 ‘고자실’ 마을이 되었다
또 하나의 왕의 자취는 태실(胎室)!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사람이 태어나면 태(胎)를 항아리 등을 이용해
땅에 정성스럽게 묻어두는 풍습이 있었다.
그 태를 묻어 둔 곳을 태실지, 묻어져 있는 봉우리를 태봉(胎峰)이라고 했다.
특히 왕의 태실은 즉위하는 그 해에 만들어졌는데, 왕의 치세는 태실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전국적으로 태를 묻을 길지를 찾았고 왕이 직접 선택했다. 심지어 그 곳에 이미 민묘가 있는 경우
왕이 직접 즉시 이장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 중,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가 사천시 곤명면에 있다. 세종은 우리나라 역대 왕중
가장 업적을 많이 남긴 최고의 성군이다. 그럼에도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파손되었다.
1929년경 일제는 조선왕조의 맥을 끊고, 우리나라를 완전히 식민화하기 위해 전국의 태실에 있던
태항아리를 서삼릉으로 강제 이전시키는 만행을 자행했다.
이 때문에 세종대왕의 태실도 자기 자리를 빼앗긴 채 여기저기 흩어져 떠도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탓일까? 왕을 상징하는 ‘용’
그 용이 누운 산 ‘와룡산!
세월 속 굽이굽이 사천을 품고 있는 와룡산은 ‘한 마리 누운 용의 형상’으로 주위에 구름이 모인 것처럼
많은 산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수문장 형세를 하고 있다는데 낙남정맥 남쪽에서 형성된 산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크다. 산세는 읍면과 동을 잇고 있어, 화합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 동안 와룡산 정상은 해발 798m 민재봉으로 알려져, 영산의 반열에 끼지 못했다.
몇 해 전국토지리정보원이 와룡산을 위성으로 정밀 측정한 결과 새섬바위가 민재봉보다 약 2m가
더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09년께 이 사실이 알려졌고, 이후 2010년께 801.4m 새섬봉에
정상 표지석이 세워졌다. 800m가 넘어야 100만 분의 1 대한민국전도에 등재된다.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났다.
거기를 다시 걷는다....
▲지칠줄 모르는 세월은
어느덧 5년이 흘렀습니다. '용두공원'!
거기를 다시 왔지요.
▲가족단위 시원한 공원이었던 그 곳은
인적이 끊겼고.. 오랜만에 보는 추억의 토끼....
▲테크를 따라 오르면 와룡마을을 만납니다.
양팔벌린 모양의 와룡산 줄기안에 안긴 평안한 마을...
▲나중 알게 된 일은 산 중턱에 임도가 생겨 지금은 용두공원에서 오르는 모양인데
도암재로 향하는 입구를 못찾아 헤맸지요.
▲경운기를 타고 오시는 노인의 안내 덕분에 입구를 찾고 도암재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좌측으로 상사바위.....암벽등반 훈련장으로도 이용되는 곳..
'상사바위'.. 전해오는 이야기로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떨어져 죽은 일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죽을 신념으로 대시해 보아도 될텐데.
얼마나 사모했으면 제 목숨하고 바꾸었을까?
▲이윽고 도착한 도암재.
좌측으로 500m의 상사바위를 다녀와야 하지만
비가내리기 시작하고 ..포기하기로 합니다.
▲ 도암재, 거기는 한창 봄의 아름다움이
수 놓았고.
▲거기서 바라보는 가야 할 새섬봉도
수채화 빛깔을 자랑했지요.
▲많지 않은 등산객들도 모두 우비로 갈아 입고
길들을 나섭니다.
▲도암재에서 새섬봉까지는 1K.
그 길은 바윗길이요 가파른 연속 길입니다.
▲ 와룡산은 여러 곳에서 오르는 등로가 있고
민재봉에 서면 좌청룡, 우백호의 긴 산 줄기가 이어지지요.
▲다시 건너다 보는 상사바위(천왕봉)....
저기에 오르면 삼천포 앞바다, 삼천포-창선대교가 눈 앞으로 펼쳐지고.
▲비 맞으며 반기는 아름다운 꽃들...
류시화 시가 생각납니다.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5년전 올랐던 건너 상사바위 위용...
추억과 상념이 스멀스멀 기어 오릅니다.
▲그 시절 함께 한 늘씬한 '박창건' 대장님
참 멋진 분이신데 보고 싶답니다.
▲ 별꽃도 비를 맞으며 바위틈에 빛나고.
▲어느 산이든 곳곳마다 보는 돌탑...
그 분들의 신념과 정성에 경의를 표합니다.
▲ 바위는 빗물에 미끄럽고
바람은 세찹니다.
▲짙어가는 비안개..마지막 조망일지 모릅니다.
우측 상사바위(천왕봉), 그 너머로 삼천포-창선대교가 있고
중앙은 삼천포 시내...우측 산 줄기는 5년전 용강 저수지에서 올랐던 용두봉...
▲ 왕관바위는 세찬 바람으로 포기하고
새섬봉으로 오릅니다.
▲아까운 조망....화창한 날씨에는
삼천포 앞바다 그 점.점... 남해의 섬들이 떠 있을건데...
▲ 힘쎈 사내의 근육질 같은 바위...
종종 내려가는 산꾼들은 '바람이 위험해서 포기하고 내려간다'
나도 그래야 하나? 걱정..불안.
▲그래도 새섬봉까지만이라도 일단 가보자...
▲주변에는 물푸레나무가 솜털같은 하얀 꽃을 피우며 열정을 불태우고
철쭉과 뒤섞여 산을 더욱 매력 넘치는 산으로 보이게 합니다.
▲여기를 오를 때마다 제일 힘든 코스라는 생각...
아름다운 여인 뒤를 따르면 덜 힘들 곳.
▲등 뒤로 민재봉..
그 줄기로 내려 갈 계획입니다.
▲가운데 와룡저수지, 그 건너로 용두봉...
5년전 '장수산악회'는 거기서 부터 오늘 역순으로
걸었지요.
▲바람은 세차지고
안개는 가끔씩만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 시절 맑은 날
그렇게 만킥했던 풍경들...
▲ 오늘은 세찬 바람속
눈 앞만 보입니다. 그게 덜 무서움을 갖게도 했지요.
▲주변 풍경이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도 반감 될테고
꽃이 없다면 비오는 이 날의 삭막함에 견딜 수 없을 거지만....
▲단단히 기어 지나갑니다.
나무를 잡고 바위를 쥐고 ...
▲점점 짙어지는 풍경
오늘 이것이 마지막 이었답니다.
▲암릉 길을 걸어 우뚝 선 바위 봉우리, 새섬봉....
이 곳이 새로 정해진 정상입니다. 이전에는 민재봉(旻岾峯 799m)이 정상이었는데
실측 결과 새섬봉이 801.4m로 2.4m가 더 높다는 결과를 얻어 와룡산의 정상이니....
▲새섬이라는 이름은 천지개벽이 일어나서 홍수가 졌을 때
다른 산들은 다 물에 잠기고 이 봉우리에 새 한 마리 앉을 자리만 남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한자로는 조도봉(鳥島峯)이라고 하는데 부르기가 민망하여
우리말로 부르게 된 것이라니.... 좀 민망하긴 하네요 조도봉...
강하게 발음하면 안되겠지요.
▲5년전 11월엔
나도 이렇게 인기 많은 시절이 있었지요....
▲숨 거친 파도를 가슴에 끌어안고/
우뚝 발기해 서 있는 새섬봉/
돌아올 새 한 마리를 기다린다/
올리브 어린 새잎은 아니더라도..../
▲포근히 잠든 남해바다 봄빛을 물고 와/
상사봉 물푸레나무 꽃잎 피워 놓고/
철쭉 붉은 열정으로 몸치장한 뒤/
가슴에 삼천포항 들여놓고 다독거린다./(강원환 시인 글)
▲ 800m미터가 넘어야 100만 분의 1 '대한민국전도'에 등재되고 명산이 되는데
와룡산 정상의 민재봉 799m이니 얼마나 애석했을까?
최근의 실측으로 새섬봉이 801,4m 이 되었으니 그 1.4m 는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천인들의 애향심 덕분이 아닐런지...
▲거기서 민재봉까지 1.6K는 포근한 꽃 길...
오늘은 바람이 세찹니다.
▲다시 되돌아 본 새섬봉...
다시봐도 아찔한 암릉 길입니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추억을 호출하는가....5년전 5월
멘토와 함께왔던 여기서
삼천포 친구가 정성껏 주고 간 갑오징어 회를 먹었습니다.
바람 고요한 햇살 따뜻한 이 능선에서.....
▲빗속에 밥을 먹으며 그 시절 그 음식이 그리운게 아니라
함께했던 시절과 그 사랑이 고마웠지요.
▲금붓꽃일까 노랑붓꽃일까?
그래도 세찬 봄비속에 그 아름다움은 빛났고.
▲노랑무늬 붓꽃?...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듯...
꽃들도 그럴까?.
▲ 청초한 빗속 철쭉...
'먹으면 죽는 꽃' 어린시절은 그랬지요.
▲민재봉(旻岾峯 799m)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 철쭉이 한껏 자태를 뽐내며 산빛을 치장하더니
꽃빛에 젖어 가다 꿈속같이 나타납니다.
▲남쪽으로는 남해에 떠 있는 섬들을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곳..
사량도, 욕지도, 두미도, 수우도, 신수도 등과 남해 금산, 각산, 망운산 그리고
지나온 천왕봉과 새섬봉까지 선명하게 다가섭니다.
▲새섬봉이 뾰족한 암봉이라 사람도 비켜서야 하는 곳이라면
민재봉은 넓은 여유 공간을 가진 봉우리라서 한껏 조망에 취해 볼 수가 있습니다.
▲ 하늘과 땅이 맞닿은 봉우리란 뜻의 민재봉
동서남북 막힌 곳이 없을 뿐 아니라
키 큰 나무도 바위도 없어 시야를 가릴 것이 없어 좋지요.
▲맑은 날... 여기저기 걸터 앉아 풍광에 젖어 종일이라도 앉아 있고 싶던 곳...
오늘은 빗물이 흐르고 손가락이 따갑게 시려
거기를 서둘러 떠납니다.
▲5년 전 7월, 멘토와 여기를 오르며, 멘토는 손주 탄생의 전화를 받았고..
그 주간 토일 가야 할 지리종주를 기대와 걱정반으로 이야기 했었지요.
▲5년전 11월,, 장수산악회 가족들...
얼마나 시끄러웠던지...즐거움으로.
▲북쪽으로는 금오산, 백운산, 봉명산, 지리산 천왕봉, 남덕유산,
지리산 웅석봉, 봉대산, 산청 둔철산, 의령 자굴산, 고성 월아산,
함안 방어산 등이 가까운 듯 조망되는 곳이지만... 아쉬운 마음.
▲민재봉에서 북쪽으로 '백천사'으로 내려가기도 하지요
몇년 전 저기를 갔을 때 거대한 '臥佛(와불)'과 목탁소리 내는 소가 인상적이었는데...
▲어쩌면 저렇게 고운 꽃잎에 아름다운
무늬를 수 놓을 수 있을까?.
▲피지않은 봉긋한 꽃망울이
아름다운 처녀 모습일듯도 하고.
▲화려한 철쭉과 늦은 진달래들..
그리고 울컥울컥 물소리가 들릴듯한 건강한 연두잎은
생명력으로 일렁입니다.
▲그리운 빛 '노랑섞인 연두'와 신록과 철쭉의 향연...
그 길을 포근히 갑니다.
.
▲짙은 민재봉은 아주 잠깐 반쯤 열어 주었고.
▲기차바위....
삼천포 사람들은 일찍 기차를 봤으니 이 이름이 붙었을까?.
울릉도 사람이나 제주도 사람들이라면 이 이름을 붙일 줄 몰랐겠지요.
▲어릴적 우리도 '기차 타 봤다'가
요즘 비행기 타 봤다는 소리보다 더 큰 자부심이었으니....
▲하기야 독일의 괴테도 그 토록 영국의 기차를 흠모했는데
자기 조국에서는 그의 사후 2년후에나 기차가 생겼으니 타보지 못했지요.
▲그리고 만난 사자바위
왜 이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 거대한 바위정상엔
그 바위를 수반삼아 자라는 꽃의 생명력도 있으니.....
▲그 시절 대장님은 우회하거나,
게단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그렇게 암릉길을 좋아했었지요.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위에
피는 꽃이라 했는데...
▲종종 혼동되는 ‘청춘 예찬’과 '신록예찬'
민태원의 청춘예찬이 뛰어난 수사와 힘찬 문체로 청춘의 피 끓는 정열,
원대한 이상, 건강한 육체를 예찬하고 있는 수필이라면...
▲이양하의 ‘신록 예찬’은 1947년 “이양하 수필집”에 수록된 작품..
신록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 아름다움, 풍요함 등을 찬양하고 있지요.
▲맑은 날이면 용두마을까지 더 가련만...
이미 신발에 빗물은 반쯤 고이고...
여기서 와룡마을-용두공원으로 가려고 합니다.
▲작가들은 무슨 복이있어 이런 아름다운 글들을 풀어 내는지...
5월의 신록을 보며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색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는 그 주옥 같은 수필을...
▲신록을 통해 번잡한 세상에서 잠시라도 떠나
순수하고 맑은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
초록 빛은 인생에 대한 깊고 확고한 태도와
자연에 대한 심미안적 통찰력이 드러내고 있지요.
▲잠시 구름이 흘러가고 좌측 상사바위,
가운데 잘록한 부분이 도암재... 그리고 우측으로 오늘 걸은 새섬봉-민재봉...
▲거기 작은 암자 앞의
꽃들도 아름답고.
.
▲풍성한 자태도 고운 빛깔도
연초록 잎새 사이로 햇살이 투과되면 더 눈부시게 아름답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되돌아 온 용두마을...
아름다운 저수지와 오래된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대변합니다.
▲그 저수지 뚝 저 아래에
아름다운 용두공원이 있고.
▲비 내리는 와룡저수지... 뒤로는 방금 내려온 산 줄기
우측 잘룩한 곳에 활공장이 있지요.
▲용두공원은 꽃 세상이고
다시금 이 강산에 일상의 행복이 찾아오길 빌었습니다.
▲봄을 움추 리게 했던 바람은 이제
시원한 실록의 계절로 접어든 오늘...
추억의 그 길 빗속을 걸었지요
그리운 이들을 가슴으로 회상하며....
---------삼천포 아가씨 /은방울 자매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 놓고 떠나가는 내님이여
이제가면 오실 날짜 일년이요 이년이요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
조개껍질 옹기 종기 포개놓은 백사장에
소꼽장난 하던 시절 잊었나 임이시여
이 배타면 부산 마산 어디든지 가련만은
기다려요 네 기다려요 네 삼천포 아가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