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몇 년전 산림청에서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무슨 나무를 가장 좋아하느냐 조사를 했는데
절반에 가까운 46%가 소나무라 답했고, 2위는 은행나무로 8% 였다니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소나무를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겠다
우리나라 어느 산을 가든지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소나무요, 또 소나무의 이름을 모르는 이도
없는 것을 보면 소나무는 우리와 함께 살아온 역사와 같은 정서의 나무이리라.
3, 4천년부터 우리나라에 있어온 소나무는 새 생명을 알리는 금줄에 솔가지 로 끼워졌고,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방에서 잠을 자며, 뒷동산 소나무 숲은 우리의 놀이터요 거기서 꿈을 키웠다.
소나무 껍질과 송홧가루는 구황식물이 되었고, 소나무 목재는 집이 되고, 가구가 되고, 우리가 죽어
관을 만들 때도 쓰여졌으니 우리와 함께 살아온 우리의 나무다.
우리 산꾼들이 어느 산을 가든 가장 멋진 풍경은 항상 소나무와 함께였고 그 기묘한 모습에 경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최고의 소나무를 들라면 단연 속리산 법주사의 정이품 송이겠지만, 더 나이든
어느 좋은 시절, 전국의 소나무를 찾아 답사하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어느덧 성하의 계절로 접어드는 이 즈음
경남 의령으로 홀연히 나섰다.
‘성황리 소나무(천연기념물 359호)’등을 찾아보려한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뒷동산 그 소나무는 아직도 잘 있는지
짙은 그리움으로.......
▲낙동강 건너 창녕 남지읍을 바라보는 '능가사',
경남 함안군입니다.
▲ 여름비 내리던 오후
하늘은 아름다운 그림.
▲ 푸른 낙동강 건너로 남지읍..
앞 수변공원은 노란 유채밭이 장관이던 곳.
▲좌측 다리는 구철교, 역사문화유산이 되었고
우측으로 새로운 다리가 놓였지요.
▲거기서 20K여를 달려 도착한 곳,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생가마을입니다.
▲'의령 세간리 현고수'(宜寧 世干里 懸鼓樹, 천연기념물 493호)
북을 매어다는 나무라는 이름이지요..
▲ 현고수(懸鼓樹),
곽재우장군이 북을 달아 의병들을 불러모은 나무..
(600년된 이 나무는 높이는 15m, 둘레는 7m).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9일 후 곽재우가 전국최초로
의병을 일으켰고 여기에 본진을 두고
남강과 낙동강을 배경으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지요.
▲이 나무는 그 현장을 봤을 것이고
임진왜란 의병의 발상지로서
매년 의령의 의병제전 때 여기에서 성화를 채집합니다.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민속사적 가치가 높은 나무입니다.
▲ 그 마을에 근래에 곽재우장군 생가가
복원되었지요.
▲ 너른 주차장과 여러 체험 시설들이
조성되었습니다.
▲망우당 곽재우(忘憂堂 郭再祐 1552~1617),
현풍곽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입니다.
▲곽재우는 현풍(玄風) 곽씨로서,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정암 곽월(郭越)과
진주 강씨의 셋째 아들이지만,
생후 3년만에 생모 강씨를 여의고, 계모 허씨의 손에서,
5남2녀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조선 전기시대까지 결혼제도는
혼인을 하면 남편이 처가집으로 와 같이 살면서 아이를 낳고
자식이 크면 남편집으로 갔지요.
그래서 '장가간다'는 말이 생긴 것이고...
▲ 오늘날 봐도 정서적으로 퍽 좋은 제도인듯한데
조선 후기로 오며 여성의 지위가 낮아지면서 오늘날과 같이
'시집간다'처럼 혼인하면 시댁으로 온 거지요..
▲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2호〉
(역시 600년된 은행나무로 높이 24.5m, 둘레는 약 10.5m)
곽재우 장군의 생가 바로 앞에 서 있습니다.
▲남쪽 가지에 두 개의 돌기가 있어
마치 여인의 젖가슴 모양이라지만
겨울엔 볼 수 있을지... 찾지를 못했습니다.
▲ 무병장수를 비는 나무,
젖이 안 나오는 산모가 기도하면
젖이 돈다는데....
▲그는 1552년 이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남달리 영특하고 기상이 웅대하며, 이목구비가 준수하여
비범한 용모를 지녔었다고.
▲곽재우는 16세에 남명 조식(曺植) 선생의 외손녀인
성산 김씨와 결혼, 대학자인 조식의 외손으로
그의 학문과 사상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8세에 한학, 10세에 이미 '춘추'를 읽었으며,
15세에는 자굴산의 보리사에 들어가 많은 책을 읽었고,
유학에 깊이 빠지게 되었는데..
▲ 번번히 과거시험엔 좋은 결과가 없어
낙심도 했겠지만 그 기간이 여러 책을 읽고, 병서과
기예를 기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강과 낙동강 합류지역에서
낚시를 즐기며 세월을 보내던중, 41세에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이어지고...
▲항상 붉은 옷을 입고 싸워 홍의 장군(紅衣將軍)으로 불리었고.
말년에 낙동강 언저리에 망우정을 짓고
세월을 보내다가 6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묘지는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
조성되어 있습니다.(빌려온 사진).
▲그의 생가는 최근에 복원되었는데
그 거대함과 아기자기한 면에 놀랍니다.
▲여기서 2K가 채 안되는 벽산 안희재 생가와
여러 양식이 비슷하여 조선과 근세의
전통양식인가 생각도 들고.
▲ 그렇게 충절의 고장 의령엔
긍지요 자랑으로 곳곳에 그의 동상등이 있습니다.
▲ 생가등을 복원하면서 비워 둘것이 아니라
체험공간등으로 활용하여 곽재우 장군의 사상과 애국심등을
전수했으면 좋겠습니다.
▲담 너머로 다시보는 은행나무...
그 장대함과 생명력 가득한 기세가
장군을 증언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세간리에서 20번국도를 따라
이병철생가가 있는 정곡면사무소 네거리까지 와서
정곡면공설운동장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직진,
월혈천교를 지나 좌회전하면 성황리가 나옵니다.
▲성황리는 의령남씨 집성촌으로
아랫마을을 탑골마을이라하는데
도보로 100m오르면 삼층석탑을 만납니다.
▲ 무슨사연으로 길도 없이
밭 한가운데 서럽게 서 있는지.
절이 있었겠지만 흔적도 없고...
▲성황리 3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114호)
통일 신라시대 석탑양식은 2층기단에 3층 탑신부가 특징인데
그 양식을 충실히 보여줍니다.
▲ 석탑에서 윗마을로 1K를 가면 주차장도 마련되어있고
의령남씨 사당도 있다는데
부잣길 간판을 보고 좌측 산길을 어렵게 왔습니다.
▲거기 작은 저수지가 있고
짙은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빛납니다.
▲부잣길로 계단등도 만들어 놓고는
막상 길은 수풀이 무성하고.
▲그렇게 오르면 입이 쩍 벌어질 규모와
숨이 멎을듯한 느낌의 소나무.
▲의령 성황리 소나무(천연기념물 359호)
300세 나이를 잡수셨고, 높이 11m, 둘레 4.7m...
▲위, 아래 어디를 보든지
신비스러움입니다.
▲ 사람도 나무도 나이들면
지팡이를 짚어야 지탱하는 것인가?...
▲ 곁에 선 소나무와 서로를 그리워 하는듯...
두 나무가 붙으면 광복이 온다더니
그렇게 되었다지요.
▲ 속리산법주사의 정2품송,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
청도 동산리의 소나무,
▲합천 묘산의 회양리 소나무, 영암 만지송등.
어느시절 돌아 볼 기회가 오겠지요.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우리의 삶과 정서를 함께 공유하며 이어온 소나무..
그 숲 길을 걸으면 위로가 되고, 동심의 세계로 젖게 합니다
.
▲뒤로 포근히 산들로 감싸고 부잣길이 지나간 마을...
저 멀리 정곡면 소재지도 보입니다.
▲이 마을을 고향으로 둔 모든 이들이 그리워하듯
그 분들의 흩어진 삶도 독야청청하겠지요.
▲'거센 바람이 불어 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 오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을 저어 가리라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곳
살아서 만나리라...
안치환이 그리 노랬했듯...
▲이제 이 곳을 떠나려합니다
모든 변란, 재선충도 잘 이겨내고
늘 푸른 그 모습 간직하기를 오래오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되돌아 보는 아쉬움.
▲성황리를 나와 함안 법수 방향으로 한 고개를 넘으면
너른 들판의 백곡리 웅촌마을을 만납니다.
▲ 마을을 향하여 1K를 들어와 만나는
놀라운 감나무.
▲의령백곡리 감나무(천연기념물 492호)
500년 연세에 높이 28m, 둘레 4m...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라니....
▲감나무 수명이 200년쯤인데 500년을 살아있다니...
다섯가지 덕을 갖춘 감나무.
▲ 그렇게 나이 들어감으로 더 빛나는 나무들을 보며
깊은 감동, 뜨거운 힘을 얻은 하루가 저뭄니다.
▲그렇게 거기를 떠나 함안 법수면으로 돌아
낙양생태공원, 석양을 기대하며.
▲하긴 몸무게를 줄여본다는게
얼마나 안되는 건지.
▲ 가을 분홍 빛을 자랑하는 핑크뮬리
여름날 그를 처음 봅니다.
▲ 풀 같기도 하고 북아메리카 원산지인
그는 핑크빛이 아름다워 그리 부르겠지요.
▲최근 조성된 공원은 봄,가을 겨울 다 좋으나
뜨거운 여름은 그늘이 아쉼입니다.
▲ 처녀뱃사공 노래가 지어진 현장이라는 그 곳,
그 강은 낙동강이 아니라 남강 줄기였다지요.
▲ 벤취에 앉아 이른바 사색이라는 것을 해보다 보면
뜨거웠던 태양은 석양으로 물들고.
▲...'울먹이는 마음일랑
나 혼자 삭이면서
웃으며 말해야지 안녕 안녕
가야할 사람이기에 안녕
안녕이라고 말해야지..'.
▲..'광야를 달렸던 말발굽 소리 멈추면
고요한 정막이 여여함에 숨을 몰아쉬듯
바람의 속삭임을 듣고
지평선에 기우는 노을을 보라..'
▲채우며 살아온 삶
채우기 위해 달려온 삶
비우고 내려놓은 석양의 빛은
여명을 열던 그모습이 아닌가.
▲시간이 가버리고 구름이 가버리고
사람들 까지도 가버린
슬픈 노래
기쁜 노래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
어느 시인의 말을 빌자면
옛날은 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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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이문구
소나무의 이름은
솔이야.
그래서 솔밭에
바람이 솔솔 불면
저도 솔솔 하고
대답하며
저렇게 흔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