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617-686)
신라의 고승 원효는 자득(自得)한 사람의 표본으로 꼽힌다.
당시 승려나 벼슬아치를 가릴 것 없이 지식인이라면 불법과 유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유학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였다.
당시 장안에는 명성과 저술로 유명한 고승들이 많았고, 신라의 청년들은
그런 고승의 설법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 탓에 한 때 신라의 유학생이 250여 명이 넘은 적도 있었다.
원효는 뜻이 맞는 여덟 살 후배 의상(義湘)과 뜻을 맞추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한 동굴에서 묵었고, 해골 물을 마신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다.
구역질을 해대던 그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원효는 결국 유학을 포기하고 노래도 부르며 무애(無碍)라는 이름의 바가지를
두들기며 돌아다녔고 그렇게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원효는 어느 날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줄 테냐.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다듬겠노라”라는 노래를 부렀다. 이 소문을 들은 태종무열왕은
“귀부인을 얻어 아들을 낳겠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무열왕은 그를 요석궁으로 불러 딸 요석공주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했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이두문자’를 만든 설총(薛聰)이다.
원효는 70세에 깊은 토굴에서 혼자 숨을 거두었다. 그는 민중이 전쟁으로 죽어가고
굶주림과 고된 노역으로 고통을 받는데도 귀족들은 사치와 호화로운 생활로
날을 지새우는 현실을 보았다.
그는 민중 편에 서서 불교를 해석하고 현실을 개탄했다. 그리고 분열의 조짐이
보이는 신라사회에 통합과 화합을 외쳤다.
그는 민중의 우상이 되었고 전국 곳곳에 원효과 관련된 절, 산, 바위들이 널려 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얽힌 소요산이 그 중의 하나이다.
12월이 간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1,000명의 스님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으로 이끌었다는 설화가 서린 ‘천성산’,,,
거기엔 원효봉도 있고 원효암도 있다 13K의 KTX 천성산 터널을 ‘원효터널’이라한다.
그 사상과 전설의 길을 다시 걷는다.
한 해 산행을 마무리하는 오솔길의 회원들과 같이...
▲ 이제부터 겨울인듯 차가워진 날에
양산시 하북면, 신라의 원효가 세운 천성산 내원사...
▲ 정겨운 '오솔길',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감사한 한 해, 집행부의 수고가 아름다웠지요.
▲ 지난 여름, 지리의 한신계곡에서 다치셔서
오래 재활치료를 받으시고 다시 산행에 동참하신
존경하는 우리 광산 선생님, 박수를 올립니다.
▲ 주차장에 위치한 익성암을 등지고
상리천 계곡을 향합니다.
▲ 매표소 앞은 좌측 상리천과, 우측 용연천의 합수지점인데
내원사-천성산 제2봉은 우측 용연천으로 올라야 합니다.
▲ 계곡은 어느덧 깊은 겨울.
▲ 아이스께끼마냥 우두둑 먹던,
그리고 칼싸움하던 그 시절이 생각 났지요.
▲ 매표소에서 공룡능선 입구까지는 1.5K,
입구를 놓쳐 한 참을 오르다 되돌아 와 오릅니다.
▲ 다리를 건너면 노전암과 성불암 갈림길이 나오고
우리는 시작부터 가파른 공룡능선을 직행합니다.
▲ 천성산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000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설법해서
▲ 모두 성인으로 이끌었다하여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릅니다.
▲ 천성산은 경남 양산시 웅상읍, 상북면, 하북면의 경계를 이루는데
기존 원효산(922.2m) 천성산(817.9m) 명칭을 바꿔
현재 천성산 원효봉, 천성산 2봉(비로봉)으로 각각 부릅니다.
▲ ♬'야 봉숙아 말라고 집에 드갈라고 ..
이 술 어떡하고 집에 간단말이고..'
구성지게 부르는 정구님.
그의 낙천적인 삶을 늘 부러워 합니다.
▲ 산행을 하며 이 표지판을 늘 숙지하고
다녀야 될듯 합니다.
100m마다 설치되었지요.
▲ 깎아 지른듯한 절벽..
보기만 해도 아찔한 곳이
여러 곳입니다.
▲ 꿈틀거리는 공룡,,,
건너 신불산 공룡이 포악한 육식성 스피노사우루스라면
여긴 초식공룡 스테고사우루스... 그러나 만만치 않습니다 .
▲ 공룡능선 코스중에 여기가 가장 아찔합니다.
어느해 여기로 내려올 때도 다리가 후들 거렸으니....
▲ 테크까지는 아니라도 발 디딜
쇠 붙이라도 박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원효가 수도하며 꿈꿨다는
화엄사상이 무엇일까?.
▲ 잘은 모르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이
각기 개성과 본질이 달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 이를 융합해서
서로 자기의 본질은 지키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사는 세상,
▲ 그것이 화엄사상이라면...
원효 사후 1,30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세상은 오지 않은듯합니다.
▲ 저 멀리 우측으로부터 영축산 줄기가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 천성산은 원효가 89암자를 지어
수 많은 스님들에게 화엄경을 강론했는데
그가 강론했던 화엄벌도,..
▲ 은수고개-원효봉을 너머 오르면 축구장 17.4배의
광대한 화엄늪도 펼쳐집니다.
▲ 바위 한쪽을 끌어안고
굿굿하게 세월을 버티고 선 소나무들...
묵묵히 견뎌온 세월이 경이롭습니다.
▲ 수많은 로프...아슬아슬한 맛이
그만큼 짜릿합니다.
▲ 곱게 빗어내린 소년의 머리칼처럼
낙엽을 다 떨군 깨끗한 산들...
토끼가 뛰어가도 보일듯 합니다.
▲ 중앙 저 너머로 영축-신불-간월 능선이 흐르고
우측으로는 운문-가지-상운산들이 이어집니다.
▲ 산 길이란 참 묘합니다. 멀고 높게만 여겨지던 능선이나
봉우리도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면
어느새 그 곳에 서게되니....
▲ 그래서 조선 시대 필자와 종씨,
양사언은..
.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필자의 양가(梁)들은 안시성 장군 양만춘,
양사언.최초의 금매달 양정모, 탁구선수 양정자...
별로 크게 기억에 남는 인물은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역사의 죄인도 없습니다.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워졌다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듯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성급하게 흐릅니다.
▲ 시간은 곱던 우리 얼굴에 주름을 보태고
우리의 머리에 흰 눈을 뿌리는 주범입니다.
▲ 곱던 우리누이를 할머니로 만들어 버리고
첫 사랑 그 소녀는 멀리멀리 ..세월은 그런 겁니다.
▲ 세월앞에 재잘대던 아이들은 둥지를 떠나고
가끔
'애비다. 잘 지내니? 그냥 한번 걸어봤다'.
▲ 다 해주지 못함이 늘 미안한 아이들에게
전화 거는 것도 미안해서 ...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닌건데...
▲ 이제 한 봉만 넘으면 '짚북재'
원효대사가 곳곳의 암자에 흩어진 스님들을 모으려고
짚으로 만든 북을 울렀다는 설화의 고개이지요.
▲ 싸이렌과 호각을 불어도 어슬렁 거리는 현대인들에게
짚북을 울리면 듣기기나 할련지..
▲ 아! 거기서 회원 한 분이 심한 통증이 오고
두 다리가 마비가 되어가고...
구조대를 불러놓고 2시간 반여를 주무른 야전병원....
▲ 두 시간 반만에 6명의 구급대가 도착하고
할 수없이 다시 헬기를 부르고 후송되었습니다.
▲ 산행을 하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풀어 해결해야
더 큰 고통이 없겠습니다.
▲ 시간은 어느덧 일몰 2시간이 남았고
힘들게 오르던 공룡의 그 길을
서둘러 내려옵니다.
▲ 우리는 멘토와 보다도 좀 더 친한척 하자고,,,
맨토는 성의 없이 사진을 촬영합니다.
▲ 석양의 하산길은
바빴고 더 아름다웠으니....
▲ 가장 큰 고비였던 그 길을
다시 바들거리며 내려왔습니다.
▲ 공룡능선을 타는 산군들은
여기 봉을 오를 때 가장 조심해야 될듯합니다.
▲짧은 겨울 석양은
어느덧 산마루에 걸렸고.
▲류시화 시인이 그랬습니다.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 원효 관련 설화가 깃든 그 능선에서
겨울 어느 날의 석양을 보던 추억.
▲ 정상은 가지 못했더라도
오래오래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 그렇게 가파른 그 길을 다시
돌고 돌아 내리면.
▲ 어둠이 시작되기 전,
솟은 달과 함께
편안한 길을 만나게 됩니다.
▲ 그 계곡은 점점
겨울의 서정으로 채워지겠지요.
▲ 그렇게 조금은 아쉽고도
그래도 감사한 그 길, 천성산.
▲ 여름이면 부산, 양산사람들이 붐비던
내원사.
▲ 우측 용연천을 따라 오르면
내원사가 나옵니다.
▲ 아파하던 그 회원도 응급 치료를 받고
다시 합류하여 감사했고,
점심을 굶어 허기진 차에 뜨거운 동태찌개를 같이 나누니...
▲ 사랑하는 오솔길,
훼 에버....
▲ 그렇게 2019년 저물어 가는 계절에
정겨운 오솔길 님들과 함께 했던 하루,,,
날마다 건강과 평안도 감사하고,
또 고난 중에 깊은 우애를 몸으로 나누었으니
산이 좋아 친구된 아름다운 님들의 송구영신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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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류시화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