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설악산

아! 설악(雪嶽/ 장수대 - 대승폭포- 대승령-삼거리- 12선녀탕계곡- 남교리탐방지원센터(12km.6H)

산꾼 미시령 2019. 10. 7. 09:30

 아!, 설악(雪嶽)!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하는 이야기 중 '지리산 파''설악산 파가 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산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지리산 파'가 스케일이 큰 편안한 분위기의 육산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설악산 파'는 바위산의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구분해 부르는 말이리라.

 

 설악에 들 때마다 밤새 달려와 새벽별이 총총한 설악에 안겼었다. 바람 소리가 윙윙

나는 시원한 동해 바람결에 가을을 타는 감성일까

 

 몸부림치듯 설악 품에 안겨 가슴을 달래 보고픈 고독 서린 감성이 오늘도 홀연히

그리운 설악의 능선을 그린다. 가슴이 설렌다.

 

 내게 설악은 지리(智異)’처럼 언제나 가슴 한 구석에 사무치는 그리운 고향같은

아련함으로 그렇게 서 있다.

 

 화려하지만 감성적인 산 '설악' 

화려한 암봉과 빙폭을 오르며 산에서 부대끼던 경험이 하나둘 쌓이면

자연스럽게 설악은 추억과 동경으로 바뀐다.

 

 ‘대청이 그렇고, ‘중청, 소청이 그렇고, 최고의 아름다운 답사 길 공룡이 그립다.

연인 또는 친구의 조난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이들이 지은 설악의 노래,,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는 계곡의 여운을~~

저 멀리 능선위에 철쭉꽃 필적에

그녀의 손을 잡고 걷던 계곡 길~~~~

 

 모닥불 옆에서 '설악가'를 들으며 눈물짓는 산꾼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다.

오래전 가족들과 들었던 설악의 골골이 그립고, 졸업여행 때 올랐던 대청의 여운과,

가슴 아린 연인과 걸었던 백담사 단풍 길,..,

 

 아스라이 먼 듯한 기억들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손가락처럼 설악의 어느 자락 언저리에

닿기만 하면 전율처럼 솟아나 골골마다 새겨진 추억들이 영화처럼 흘러간다.

먹먹함으로..

 

 ‘한계령에서 남교리까지(19K),그 혼미스런 경험은 벌써 4년이 흘렀고

대청을 마지막 오름도 2, 그렇게 세월은 지났다

 

 오늘은 새벽별 총총했던 그 길을 반만 걷는다.

설악의 바람의 성지 귀때기청1408봉을 바라보며 서북능선 천안삼거리 대승령을 올라

그 아래 펼쳐질 ‘12선녀탕’, 가슴 아픈 조난사고의 아픔을 지닌 그 계곡 길,,,

 

 아! 거기를 가는 거다. 이 가을에....

 

▲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수대 將帥臺'

설악을 향한 아련한 마음은 한 가지겠지요.

 

▲  '설악산 국립공원 장수대 분소'

건너 편에 6.25때 설악산을 수복한 국군 용사들이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이 곳에서의  그 옛날을 회상하며 휴양소를 짓고..

.

전몰 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장수대 將帥臺'라 명명했는데. 어려웠던 시절 설악산의 개발을 위하여

 건립되었는데 지금은  폐쇄 되었지요,

 

▲ 수백년도 더 된 것 같은 소나무 숲이 울창한

  분소 뒤로 대승령으로 오르는 출발문이 있습니다.

 

▲ 대승령의 옛 이름 한계산,

한계산의 찬가가 입구에서 부터 반겨주는데

이런 모습은  대승령까지 계속해서 전시되어 있습니다.

 

▲ 좋아진 교통 여건에도 5시간을 달려야 하는

남부 지방사람의 설악 출발 때는

언제나 새벽별 총총했던 어둠이었는데 오늘은 10:30 출발합니다.

 

▲ 야무지고 탕찬 소녀 '금원'錦園 金氏 (김 금원)

 1817(순조17) 원주 봉래산 자락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허약하여 규방일 대신 글을 읽었습니다.

 

14세 때  남장을 하고 세상 구경에 나섰는데  

제천 의림지, 금강산, 관동 팔경과 설악산,

평양, 의주, 한양을 유람했으니....

 

14세에 떠났던 여행을 34세인 1850(철종1) 봄에 이르러

한문으로 글을 남긴 것이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

 

여기서 호()는 충청도, ()은 관동의 강원도, (西)는 관서의 평양과 의주,

()은 한양.....

 

▲ 현대화된 오늘날도 14세에 그리 다닐 수 있는

젊은이를 찾아볼 수 있을까?.

대단한 여인입니다.

 

대승령 들머리 좌측  일대는 한계사지, 그러니까 한계사가 있었든 절터입니다.

 지금도 금당지 주춧돌과 삼층석탑, 곳곳에 기와의 흔적,

파손된 불상과 광배 등이 남아있으며 북쪽 50여미터 지점에 북 삼층석탑이 남아 있고

.

1985년 정비가 이루어졌으며 강원도기념물 제 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북 삼층석탑과 남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지금은 출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 여러번 계단이 있으나 크게 힘들지 않지만

앞에 여인 이었다면 덜 힘들겠지요.

 

한계폭, 한계폭포는 대승폭포의 예전 이름인데,

'한계폭 367언'이라는 시가 보입니다,

 367 글자로 만든 시 라는 뜻일까?

 

▲ 아! 열리는 조망, 서북능선 종주 길에 종일 건너다 보인

건너 가리봉(1519m), 주걱봉, 삼형제봉등 원통방향의 산자락과

좌측으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너울처럼 굽이쳐 흘러내립니다,

 

▲ 아! 설악... 그 한 마디면

힘듦도, 고난의 삶도 다 용인되는 곳..

 

▲ 여러 구절 중

"우아한 성품이 자연을 좋아하여, 일종의 벽이되여 늙어도 고처 지지않네

천길 높게 펼처저 있는 푸른 절벽에,

 

 물줄기가 꺼구로 매달려 날듯이 쏫아진다,"

인상적입니다.

 

저 멀리 '계령'이 보입니다.

거기서 좌측으로 오르면 서북능선 길로도, 백두대간 길로 끝청- 중청-대청으로 가고

 

한계령 너머로는 흘림골-주절골도, 오색으로도, 

우측으로는 점봉산으로 그리 눈물나는 그리운 이름들로 이어집니다.

 

장수대 입구에서  평지 길 300m와, 계단 길600m 등  900m를 오르면

 대승폭포에 닿습니다.

평상복 차림으로도 오는 이들도 많지요.

 

개성의 박연폭포(朴淵瀑布), 금강산의 구룡폭포(九龍瀑布)와 함께

한반도 3대 폭포중 하나랍니다.

 

높이 800m 지점에서 88m의 낙차로 떨어지는

물기둥이 장관을 이룹니다.

 

흘러 내리는 물 줄기가 시원하고 

 우뢰같은 소리가 요란합니다.

 

▲ 가믐의 시절엔 저리 보이는데

아쉽긴 해도 속살을 보는 의미도 있지만

산부인과적 상상을 하는 필자로서는 여전히 수준이 형이하학 입니다.

 

▲ 하긴 이런 폭포도 있습니다. 이름하여 '여심폭포'

한계령 너머 오색으로 내려가다 우측으로 시작되는

흘림골-주전골 탐사 길에 만났었지요.

 

금원(錦園이 설악산을 유람하며

대승폭포에 대한 경치를 시로...

 

千峯突兀䅤天餘

(천봉돌올집천여)

천봉 우뚝 서 하늘을 찌르네

 

輕霧初敍畵不如

(경무초서화불여)

가벼운 안개 퍼지니 그림 같지가 않네.

 

好是雪岳奇絶處

(호시설악기절처)

좋구나 설악산의 기이한 절경이여

 

大乘瀑㳍勝庭廬

(대승폭포승정려)

대승폭포 곁에 초막 하나 지었으면.

- 금원당 김씨(錦園堂金氏).

 

대승폭포 전망대가기 전

바닥바위에 선조때 '양봉래'가 쓴 '구천은하'(九天銀河),

 

폭포수가 날아 흘러 삼천척이나 곧장 떨어지니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 지는듯 ...

 

필자도 양가이니 얼찌나 자랑스러운지....

 

설악산의 지질과 대승폭포의 생성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고지도등 대승폭포에 대한 갖가지 안내도 있습니다,

 

임석경, 그리고  1778년인 240년전

양양부사를 지내신 정범조의 詩 등의 대승폭포 시도 있습니다.

'천길폭포 사랑스럽나니 외진 골자기에 방아 찧는 소리 들리는 듯 ...

 

▲장수대 입구에서 900m오르면 대승폭포,

대승령은 거기서 1.8K를 더 올라야합니다.

 

▲ 대승암도 있었고

거기서 하루 묵으며 시를 쓴 이도 있었답니다.

 

▲ 위 대승암과 아래 대승암의 '승'자가 다른 것은

역사 이겠지요.

 

▲ 단풍이 아쉬웠던 길에

위로가 됩니다.

 

▲'보고 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에 단풍/

물드는 /

 

사랑/

안도현 시입니다.

 

▲ 안도현의 이런 시도 있지요.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 죽여야 겠다고/

가을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 이윽고 도착한 대승령.

서북능선은 대청봉에서 13.6K를 달려옵니다.

 

대승령(大勝嶺 1,260m)!

원통에서 장수대를 향해 가다보면 왼쪽으로

설악산의 뭇 봉우리중 처음 눈에 들어오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암봉입니다.

 

원통쪽에서 보면 설악산 서북능의 첫 봉우리에 해당됩니다.

 

 이 대승령이 내설악으로 들어가는 첫 고개인데

 이 고개를 넘어 백담사 또는 12선녀탕계곡 쪽으로 다녔겠지요.

 

▲ 조인영의 벽찬 가슴의 시가 남아있습니다.

그 설악에 든 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나봅니다.

 

▲ 남교리에서 12선녀탕 계곡으로 여기로 오르고

장수대에서 올라 대청봉을 바라봤겠지요.

 

▲ 거기서들 점심을 하지만

우린 1.1K의 삼거리까지 오르기로 했습니다.

 

▲ 서북능선 종주 길에

지치고 힘들었던 그 시절 1.1K 오름 길.

 

▲ 필자보다 10년을 더 사신 조대호 선배님.

검정 고무신에 스틱도 없이 넘나드십니다.

언제나 꼿꼿함으로.

 

▲ 그 선배님의 수년 동행중 한번도 주저 앉거나

숨가파 하시는 걸 본 일이 없는

전설이요, 필자의 희망이십니다.

 

▲ 건너 가리봉, 주걱봉(1386)

 설악의 '마터호른' 입니다.

 

▲ 매달 산행을 마치면 동영상이 크게 기대되는

손낙원님. 카폐지기로 헌신중입니다.

 

국립공원인 설악산은 높이 1,708m

남한에서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산..

 

음력 8월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하는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하였지만 요좀 기후로야...

 

아 그리운 설악!

중앙 오똑한 봉이 대청, 중청 형님에게 대들었다가 귀때기 맞고 쫒겨 났다는 

귀때기청봉(1,578m)!  그 앞으로 1408봉...  좌측으로 끝청, 중청, 대청...

 

▲ 오늘 산행중 유일한 아쉼은

대승령이나 여기 삼거리나 탁트인 조망이 없다는 것.

높다란 바위하나 아쉽습니다.

 

▲ 우측 대청봉(1,708m)은 중앙에 백두대간으로 뻗은 공룡능선,

그 우측으로 화채봉으로 이어져

케이블카 타고 오르는 권금성으로 이어지고

 

화채능선과 공룡능선 사이엔 풍경이 혼미했던  천불동계곡...

공룡 좌측으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1,244m)에 위치하는 봉정암(鳳頂庵)을 품고 있는

용아장성이 흐릅니다.

 

▲ 그 아래로 영시암(永矢庵)은 수렴동계곡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약 6지점에 5세 된 신동이 성불(成佛)했다는 전설과

김시습이 머물렀다는 오세암(五歲庵), 그리고 백담사로 이어지지요. 

 

▲ 삼거리에서 점심을 나누고 겨우겨우 조망터를 찾아

아쉽게 담아본 그리운 설악...

눈물이 납니다.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오리니....

.

삼거리에서 출입금지 선을 넘으면 '안산'으로 가고,

7.6K의  12선녀탕-남교리는 우측으로 내려갑니다.

 

그 안산은  2032년까지 출입통제이니.

13년이 남았습니다. 내가 13년후 여기를 오를 수 있을까?

 

▲ 4년전 그 선을 넘어 안산을 갔었으나

오늘은 시간도, 동료도 없습니다.

 

▲ 사랑하자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단풍들고 낚엽지듯.

 

▲ 사랑을 알아볼 수 없는 날이오고

달려갈 수 없는 날이 오고

사랑을 잡을 힘이 없는 날이 곧 오니까

 

▲ 아쉬운 '안산'이 저리 보입니다.

거기에 가보면 대한민국봉이 있고, 안산이 있었습니다.

 

▲ 4년전 거기서 내려다봤던 혼미한 풍경들.

건너 가리봉-주걱봉-삼형제봉들의 골골들...

 잘 빗어내린 소년 머리칼 같았지요.

 

비탐지역 안산(鞍山 1,430.4m)

'안산'의 정상석은 누가 매직으로 써서 갖다놨고.

그렇게 갔었습니다.

 

▲ 그 시절 벌금 낼, 그리운 얼굴들...

 

이 분들과 필자, 그리고 안 내려오고 주저앉아

풍광에 넋잃은 한 분등 9명등.

건강하게 잘들 계시겠지요....그립습니다.

 

▲ 이제 아쉽게 내려가는 길..

그래도 단풍이 있어 위로가 되었습니.

 

'설악가'의 마지막 부분

'내어이 잊으리요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 장수의 하광효 회장님,

그 분의 노고로 '장수'는 오늘이 있지요.

 

▲ 무거운 나뭇잎을 다 털어내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비워갑니다. 버리고, 내려놓고

이제는 단촐하게, 그렇게...

 

▲ 설악의 어느 골

아름답지 않는 곳이 있으랴만.

 

▲ 긴 12선녀탕 계곡의

시작점은 이렇게 소박하고 싱싱했지요.

 

▲ 계곡은 점점

이골 저골 물을 모아가고.

 

▲ 가을 장마철 같은 계곡은

어디든 폭포 모습이었지.

 

가만히 필자의 인생(人生)을 생각해 봅니다.

때로  금수저로는 아닐지라고 작은 사다리 될어 줄 집안에 

태어나지 못했냐고 아쉬워 했지요

 

▲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요,

사람으로 태어 낳되 문명, 도덕 낮은 곳에 태어나지 않고

 

▲ 우리나라 같은 문명국에 태어난 것도 감사할 일이요,

그 고달픈 임진왜란 시절이나.

밀정이나 독립운동해야 할 시절이 아닌 것도 감사한 일이요.

 

▲ 이 산, 저 산 숨어야 했던 민족상잔의 혼탁한 시절이 아닌

평화롭게 산을 오를수 있는 이 시절이 감사한 일입니다.

 

▲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지 못하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것이 불행일까?

 

▲  그러나 이 평화의 시절에  산수(山水)를 즐기는  성품과

눈과 귀로 듣고 볼 수 있는 능력, 경탄할 감성의 마음을 갖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잘 쓰지는 못하지만 산행을 마치면

       이렇게라도 정리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총명한 재주를 주셨으니

 

▲ 어디 그것 뿐이랴

산 위를 넘나드는 산 노루처럼 이 산, 저 산 오르내릴 튼튼한 무릎을 주셨으니

 그져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조금은 지루 할

7.6K의 긴 길.

우뢰 소리 같은 폭포와 걸었지요.

 

▲ 설악은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란 뜻으로

설산(雪山설봉산(雪峯山)이라고도 했고

 

▲  수려하면서도 웅장한 산세, 울산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

계곡의 맑은 물과 수 많은 폭포 및 숲,

그리고 백담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 등이 조화를 이루어 사시사철 경관이 뛰어납니다.

 

설악은 내설악(內雪嶽)과 외설악(外雪嶽),

그리고 남설악으로 구분하는데,

 

북쪽 미시령(826m)에서-황철봉-마등령-공룡능선을 거쳐

신선대에서 가파르게 솟구치는 산등성이를 따라 중청과 대청봉에서

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와 끝청을 지나, 서북능선을 타고 서진하다가

한계령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계령'까지 내려오는 경계로.

 

▲ 동쪽 속초방향을 외설악, 서쪽 인제방향을 내설악

그리고 남쪽 양양방향을 남설악이라 부릅니다.

 

▲ 12선녀탕의 하일라이트

 '복숭아 탕'가는 길은  가파르고 .

 

▲ 단풍철이면 위 아래서 몰려오는 인파로

'상습 정체'구간 입니다.

 

'복숭아탕'

 어느 세월 그  긴 긴 물 줄기에 깎이고 깎아 이런 풍광을 자아낼까?

 

▲ 물이 적을 때 더 선명하게

복숭아 모습을 보여줍니다.

 

▲ 이 계곡엔 가슴아픈 사고가 있었습니다.

19681025일 카톨릭대 산악부 9명이

12선녀탕 산행 중.

 

급작스런 기상 악화와 폭우로 인해

이 곳 복숭아탕(8)에서 겨우 하룻밤을 버티고

.

더 이상 산행이 불가능해지자 리더가 하산을 지시,

각각 흩어져 하산하던 중 실족추락, 급류추락,저체온 등으로

 

9명중 7명이 사망하였지요.

산행을 계속하여 대승령까지 불과 1시간 남짓임에도

.

리더는 복숭아 탕이 8폭이니

상부에 폭포가 4개가 더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더 이상 오르면 위험하다고 전 대원에게 하산을 명령했다지요.

 

12선녀탕 입구 1K지점에

작은 위령비가 있습니다.

 

▲ 그 긴 12선녀탕 계곡은

수없는 폭포, 소들로 이어지고.

 

▲ 청정한 소리는

귀뿐 아니라 마음도 정화시키는듯 합니.

 

▲ 바위 하나, 돌 하나, 나무 하나, 버릴게 없는

설악은 그런 곳입니다.

 

▲ 같은 시간 우리를 장수대에 내려놓고 돌아

역으로 올라오신 분들...

 

▲ 누가 그랬는지 'B코스'라 구분 해 부르지만.

산뜻한 선녀님들이 있어 늘 부럽습니다.

 

▲ 산을 힘들게 오르며 가끔

'왜 우리 산악회는 이런 예쁜 분들이 없냐' 투덜댔지만

B코스에 가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 여유, 순수, 휴...

그런 단어들이 생각 났지요.

5년만 젊었어도 여기에 끼워 달라 해 보겠지만..

 

▲ 아침마다 정겨운 안부 카드를 보내주는 전중호님, 

가끔은 호기심 가득한 영상도 

남 몰래 공유 합니다.ㅎ ㅎ

 

▲ 처음 장수와 만나고 사람 구분이 힘들 때

내 전화번호에 '장수 신사'라 입력했던

오임세님.

 

필자는 그 분 얼굴에 웃음이 없는 순간을 본 일이 없습니다.

 

▲  '동행'..

동행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게 아리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

 

▲ 한 사람은 세상을 향해,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나기 위해 동행 한다지요..

 

▲ 한 사람은 세상을 배우기 위해, 한 사람은 세상을 알려주기 위해

함께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 골골에 사무친 그리움과 추억의 설악이라 그런지

그런 생각이 간절했던 그 길...

 

내설악은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이 많고

맑은 물이 흘러 뛰어난 경승지를 이룹니다.

 

▲ 그렇게 그리움 처럼

계곡의 길을 끝이 날 무렵.

 

▲ 마지막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위령비가 있어 조용히 묵념을 올렸습니다.

 

▲ 조용히 잠드소서

젊은 산악의 용사들이여!

 

▲ 산행은 여름에도 얼어 죽을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 이제는 차가워진 마지막 계곡에서

손발, 머리를 씻고.

 

▲  설악산 일대는 196511월에

설악산천연보호구역(雪嶽山天然保護區域천연기념물 제171호)으로,

 

▲1982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UNESCO

세계생물권보존지역(世界生物圈保存地域)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쉼을 남기고 걷고 걸어

 입구 '남교리'에 닿습니다.

 

'남교리'에서 더 올라가면 백담사입구

'용대리'가 나오고 좀더 가면

 '미시령'으로 갈라집니다.

 

다시 더 오르면 '진부령'이 나오는데

거긴엔 '알프스 스키장과 리조트'가 있어

우리집 아이들 어릴 적에 동료의 카드를 빌려 여름 ,겨울 여러번 그 곳을 갔습니다.

 

그 진부령 넘어가면 간성, 고성, 통일전망대가 나오지요..

한 때 그리 좋았던 그 알프스 스키장과 리조트는 몇년전 가 보니 폐쇄 되었는데.

더 좋은 최신 시설들에게 밀렸겠지요..

 

▲ 젊은 신병 장정들이 '인제가면 언제오네 원통'해 하던

인제군 북면 원통리, 거기서 잘 끓인 뜨거운 동태찌개로

'위하여'를 외치니 그 소리 한층 요란하였으니...

 

그렇게 다시 찾은 아쉬운 설악에서의 하루는

 다시 추억이 되고...

 

설악의 그 감격은 여러 날 가슴저리게 아파야 잦아지겠지여.

 

그 정겨운 분들과 같이....

아 그리운 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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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가 / 신현대

1.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는 계곡의 여운을

내어이 잊으리요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

2.

저멀리 능선위에 철쭉꽃 필적에

그녀의 손을 잡고 걷던 계곡길

내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

3.

저높은 봉우리에 백설이 필적에

나는야 생각난다 친구의 모습

내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