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청주...
거기서 대전은 40K이다.
그러나 어릴적 그 길은 비포장 도로의 멀고 먼 길이었다.
하루 두 번 다니는 완행 시외버스를 타고 회덕에서 내려, 큰 누나 집에
가려면 하루 해가 짧았다.
세월따라 청주 시내버스가 신탄진까지 운행하기에 이르렀고, 신탄진에는 대전에서
오는 시내버스가 있어 연결 되었다
그 시절 신탄진은 담배제조창으로 유명했는데 금강 나루의 신탄진은 봄이면 질퍽하여 ‘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소리를 했었다.
큰 누나가 살던 대덕군 구측면 원촌리는 대전엑스포 이후 지금은 과학,연구 도시가 되었다.
큰 누나 가족은 대청댐 공사가 시작되자 미호리라는 곳으로 이사했다. 거기를 갈 때는
나룻배를 두 번 갈아타야 도착 하였다.
누님 집은 공사장에 일하는 인부들의 식사를 하는 요즘 말로 말하면 ‘함바’집을 했다.
그 마을 옆에 대청댐이 조성되었다. 그 댐은 1975년 시작되어 1980년 준공 된 우리나라
세 번째 다목적 댐이 되었다.
대전의 大와, 청주의 淸..그래서 ‘大淸댐’이 되어 양 도시의 식수원뿐 아니라
금강 일원의 생활,공업, 농업용수로 사용되었다
그 언저리 계족산(鷄足山)429 m...
닭의 다리라는 뜻으로 산의 모양이 닭의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닭발산
혹은 닭다리산이라고 불려왔다.
삼국(三國)의 역사를 간직한 계족산성은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역사를 이어온 성곽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흥군이 계족산성을 근거지로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하기도 했고,
근세에는 동학 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거기를 간다.
우리 부모님 산소는 거기서 30K가 채 안된다.
그리운 그 산하, 대청호수를 건너 고향을 그리며.. 그렇게 걷는다.
▲계족산(鷄足山)..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산.
▲ '계족'은 '닭의 다리'...
산의 모양이 닭의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닭발산, 혹은 닭다리산이라고도.
▲ 대전광역시..충남도청 소재지였던 대전은
1994년, 광역시가 되고 지금은 인구 150만의 중부 최대 도시입니다.
▲ 만차되어 달려와
버스 주차장이 없어 길에서 내려 채비를 하고.
▲ 오늘의 엎저버 '오솔길'
출발전 그리 섰습니다.
▲ 입구부터 시원한
여름 그늘이 인상적.
▲ 100m쯤 오르니 이제부터 황톳길.
벗어 놓은 신발을 보며
우리 어릴적 모두 검정 고무신 시절엔
이렇게 벗어 놓으면 다 짚어 갈건데..생각도 하고.
▲ 14.5K임도를 폭 절반을 황토를 깔고 물을 주어
질퍽하게 했으니.
가족단위 걷기엔 참 좋은 코스입니다.
▲ 오랫만에 황토 흙을 밟으며
발가락 사이의 간지럽던 추억을 느끼듯
어린아이들도 훗날 오늘을 추억 하겠지요.
▲ 산 허리 14.5km를 걷는 황톳길.
정동산림욕장 입구-원점삼거리-절고개 삼거리-장동산림욕장까지.
▲ 경남 함안의 출향인사요,
충청지역 소주회사 맥기스 컴퍼니의 조웅래 회장이
수십억 원을 들여 조성한 숲 길.
▲ 그 분이 지인들과 계족산을 찾았다가 하이힐 신고 온 여성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빌려주고
맨발로 산길을 거닐었는데 그날 밤 숙면을 취했다고...
▲ 이 행복한 체험을 나누고자 전국에서 질 좋은 황토를 가져와
물을 뿌려 대한민국 최고의 황톳길을 조성..
매년 5월에는 계족산 맨발 축제까지 열릴 정도로 인기랍니다.
▲ 한사람의 발명으로 전 인류가 혜택을 누리듯
한 분의 헌신으로 수백만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니...
▲ 한 사람의 그늘이 만 천하를 복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 효능이 나에게 딱 필요한 것이니 빨리 산성까지 돌고와서
맨발로 걸어보자고.
▲ 황톳길을 조성하고, 유지하고
딱딱해지지 않게 뒤집고 물을 정기적으로 주고...
참 헌신적이란 생각..
▲ 우리는 14.5K를 다 걷지 못하고
절고개까지 갔다가 가운데 산으로 올라 계족산성을 거쳐 내려오려고.
▲ 임도 삼거리.
동서사방 여러 곳에서 오르니 코스에 따라 사람이 북적였다
조용해졌다 반복입니다.
▲ 바람 시원한 절고개..
여기서 우리는 '계족산성' 방향으로 오르려 합니다.
▲이제 대전 시내가 조망되기 시작하고.
▲ 바위를 품은 부부 나무라..
고난을 같이 이긴다는 의미일까,
어떤 풍파에도 헤어지지 말자는 의미일까?.
▲ 이윽고 성재산 전망대.
▲ 거기서 동북으로 바라보면 대청호 상류.
저 건너는 충북 옥천, 그 너머너머로는 보은군으로 이어지고.
▲ 금강은 전북 무주, 충북영동, 옥천 방향의 물줄기가
북으로 흘러 대청호로 모이고
충남의 여러 고을을 적시다가 서해로 흘러갑니다.
▲ 저 건너 좌측으로 가면 청주의 현도면, 문의면...
필자의 고향 남일면을 감싸고 있습니다.
▲고향 앞에서...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 100대 명산일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정상이니 인증샷를 남기고.
▲ 참나무 종류를 한참을 공부합니다.
짚신 안에 깔았다고 신갈나무,
잎이 크고 두꺼워 떡을 싸서 먹었다고 떡갈나무등...
▲ 그러고 보니 바위가 거의 없는 이 산에
이 작은 바위도 전설이 있으니.
▲ 바람 시원한 곳에 앉아 점심을 나눕니다.
이만하면 감사한 인생이란 느낌.
▲ 리기다 소나무가 일본거라고 미워했던 것도 미안하고
잣나무는 5개, 리기다는 3개라는 사실도 정리합니다.
▲ 이제 계족산성을 향해 오릅니다.
▲계족산(鷄足山/423.6m은 충남 공주와 대전을 잇는
계룡산(鷄龍山‧높이 845m)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운 숲과 골짜기 등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산성에 오르기 직전 거대한 느티나무
고향 생각으로 더 가슴 애리게 합니다.
▲계족산성(사적 제355호)
백제시대 당시 돌로 쌓은 계족산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짙은 초 여름 산들,,
건너가 성재산.
▲계족산성은 테뫼형 산성으로
현존하는 성벽의 안쪽 높이는 3.4m, 외벽 높이는 7m,
상부 너비는 3.7m의 규모를 자랑합니다.
▲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흥군이 계족산성을 근거지로 해서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하기도 했고..
▲ 조선 말기 동학 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역사를 이어온 성곽...
근대도시로 성장한 대전은 과학도시, 교통도시 이전에
성곽(48개)이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계족산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발달된 능선을 따라
1,037m로 축조됐으니.... .
▲거기서 바라보는 조망은
계족산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 그리운 저 건너 우리 고향..
여기서 30K가 채 안됩니다.
▲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옹산성'을
계족산성으로 보는데...
▲ 그게 사실이라면 당시 전투상황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 옹산성을 포위한 김유신은 성을 함락하기 전
사람을 보내어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하고 부귀를 기약하라"고 전했지만
▲ 백제 부흥군은
"싸우다 죽을지언정 신라군에게는 항복하지 않겠다"며
임전의지를 다졌고...
▲ 결국 수천 명이 전멸 당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백제 민초들의 넋이 깃든 중요한 유적이겠지요.
▲ 하긴 어느 산하, 어느곳인들
아픈 역사가 없는 땅이 있으랴...
▲ 그래서 별처럼 슬픈 꽃
달 처럼 서러운 꽃 찔레꽃이라 했던가!
▲ 그래도 이중환 택리지의
'대를 이어 살만한 고장 충청도' 가 바로 성곽 아래였다니...
▲ 지도를 봐가며 지역을 익힙니다
어릴적 추억이 깃든...
▲ 좌측으로 대덕연구단지. 갑천...
우측으로 금강 건너부터는 충북 청주시입니다.
▲ 시원한 바람이 참 좋은 곳...
▲ 역사 공부가 절로 되는곳.
▲그 구름의 가족단위 풍경은
동화도 생각나고, 동요도 생각나게 합니다.
▲ 되돌아 봐도 아픈 성곽,,,
그 역사의 흔적이.
▲ 요란한 TV 리포터 였다면
'가슴이 뻥 뚫린다'고 하였을 것을.
▲ 파란 하늘처럼
티없는 행복한 가족이 되기를.
▲ 가운데 갑천이 흐르고
그 너머는 공주, 우측너머로는
세종시로 이어집니다.
▲ 그냥 떠나도 괜찮아
너무 힘들어 할 필요없어.
▲ 아쉽게 긴 데크길을
내려옵니다.
▲ 그리고 만나는 임도, 입구까지 3K여를
황톳길로 걸어보려고...
▲ 부드러운 황토가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싸주어 발 마사지는 물론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삼림욕까지 한꺼번에 누릴 수 있습니다.
▲ 수년을 산을 다녀도 언제
등산화를 짊어져 봤을까?.
▲ 거기서 한참을 걸으면
숲속 음악회장을 만납니다.
▲매년 4월- 10월까지 주말(토‧일 오후 3시)마다 열리는
'맥키스오페라 뻔뻔한클래식 공연' 등 다채로운 콘텐츠
시민들의 문화‧힐링 공간이기에 충분합니다.
▲ 중간중간 마른 곳은 딛기가 힘들지만
촙촙한 황토 길은 꿈의 길.
▲ 이미 앞에서 소개한
2006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계족산 황톳길
지역 향토기업인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이야기.
▲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
'5월에 꼭 가 볼만 한 곳',
여행전문기자들이 뽑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33선'에 선정되기도.
필자가 그렇다는게 아닙니다.
▲ 황톳길을 걸으며...,
발가락 사이로 미끌어지듯 황토흙이
비집고 올라오는 간지러움, 어릴적 추억에 모두들 즐거워합니다.
▲ 오후들어 부쩍
신발은 많아졌고.
▲ 그리 깨끗히 씻지않아도
괜찮을 것을...
▲ 조용한 가랑비가 종일 오는 날엔
황토의 부드럽고 찰진 느낌을 제대로 볼 수 있겠습니다.
▲ 그렇게 행복했던 하루 길이 마감되고.
▲ 버스를 기다리며
한 젊은 성실한 청년의 치즈 판매를 응원합니다.
▲ 고향,
고향을 아름답고 행복한 공간으로 회상하고 기억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본연의 자세이겠지만
.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고향은 아직 그렇지를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게 고향앞에서의 하루 산행...
가슴 애리는 추억과 기억이 공존한 하루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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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앞에서 /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잿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 하며 오가는 길에
흑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