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충청도

충북보은.속리산(俗離山·1,058m/화북탐방지원센터→문장대→신선대→세심정→세조길→법주사→오리숲→주차장(12K. 5시간)

산꾼 미시령 2019. 1. 20. 21:28

 속리산 [俗離山,1058m]

 나에겐 절절한 고향그리움과 어린시절 추억이 묻어나는 가슴 시린 이름이다.

청주에서 보은을 지나 법주사까지, 오늘날 네비게이션은 65K, 1시간이면 닿는다고

알려주지만 어린시절 비포장 그 길은 참 멀고, 힘든 길 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소풍부터, 중학교 시절 1박의 졸업여행, 그리고  그 후 여자 친구만

생기면 시외버스를 타고 법주사를 갔다.청주에서, 서울에서..(손만 잡았음)

 

 비포장 말티고개를 넘어 갈 때는 내려서 버스를 밀고 올라간 적도 있고 주차장에서

오리숲을 지나고, 법주사로 하여 복천암, 문장대-신선대-입석대를 돌아오는

산행의 추억은 지금도 내게는 속리산은 최고로 힘든 산, 최고로 큰 산으로 남아있으니...

 

 산행대장을 하면서 이 고향의 산, 속리산과 그리고 묘봉을 안내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속리산을 가는 산악회를 만나 절절히 그리움이 솟는 그 마음으로 동참하였다.

 

 아련한 추억과 아픔이 있는 그리운 속리산. 법주사

거기를 간다.

 속세 넘어 왕이 거닐던 길을 따라서,

 

▲ '화이트 산악회'와 동행한 날,

설레는 마음으로 경북 상주의 '화북주차장'에서 

산행은 시작합니다.

 

▲ 여기서 바라본 속리산 능선,

그리고 너머 법주사 방향에서 바라본 그 그리운 능선들...

 

▲ 여러 방향의 그림들이 아름답습니다.

 

▲ 청주에서 오는 버스도 있고

상주에서 오는 버스도 있네요.

 

 

▲ 화북 대형주차장에서

문장대까지는 3.5K, 2시간을 잡아야 합니다.

 

▲ 속리산은 고운 최치원의 시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에서

그 이름이 연유됩니다.

 

▲ 존경하는 멘토, 이성묵 회장님과 여러 해를 함께했고

단둘이 동행은 참 오랜만의 일입니다.

 

▲ 좌측으로 성불사와 오송폭포가 있지만

그냥 스쳐갑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속리산은

우리 땅의 큰 산줄기 13개 가운데 한남정맥, 금북정맥이 가지를 뻗어

김포 문수산까지, 그리고 충남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뻗어가고,

 

한강과 금강, 낙동강 세 물 길이 나뉘는 분수령.

 최고봉 천왕봉, 문장대, 입석대 등 장대한 바위가 솟구쳤습니다.

 

천황봉(1,058), 비로봉(1,032), 문장대(1,033), 관음봉(982),

입석대 등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 장쾌하고.

 

봉우리가 아홉 개 있는 산이라고 해서

신라시대 이전에는 구봉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 막바지 2K 길은 여러번 쉬어야 하는

고된 길입니다.

 

▲ 겨울철 둔한 옷차림은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하고

모양도 나지 않습니다.

 

▲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한국 8경중 하나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 어린시절 동네 어른들이

벼르고 별러  나들이를 하면 속리산 법주사를 다녀왔습니다.

 

▲ 다음 날부터 온 동네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목탁을 들고 나와 놀았습니다.

부자집 아이는 큰 목탁, 가난한 우리는 쪼그만 목탁...

 

▲ 오르다 힘들면 쉬어가고.

 

백일산제단

바위가 돌출해 천장을 이루는 처마바위 쉼터입니다.

 

▲ 세상엔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은

우리를 기다리는 좋은 산 들이 많고.

 

▲ 우리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나를 기다리는 좋은 사람들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 목놓아 울게했던

삶의 애환의 아픔도

흘러가는 시간 앞에는 무뎌지고, 잊혀지고, 견뎌 지는것.

 

▲ 그러니 실패의 경험도

아쉼의 이별도,

아직도 결별하지 못하고 아파하는 모든 것들.

 

▲ 산을 찾아 걸으며 훌훌 떨어냅니다

스쳐간 명예도, 돈도, 사랑했던 사람도...

 

▲ 그렇게 2시간을 땀 흘리면

문장대 입구, 법주사 방향에서 올라온 이들과 만납니다.

 

▲ 여기서 신선대는 1.1K/

천왕봉은 3.2K 입니다.

 

▲ 법주사는 5.6K입니다

 

문장대(文藏臺)

 바위가 하늘을 향해 우뚝솟아 있어서

 "항상 구름이 가득 서려있다"고 하여.

 

일명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하는데,

 이 곳에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 흔히 속리산하면 '충북 보은'인데,

문장대는 경북 상주에 속하니 그 주소를 새겼습니.

 

▲ 모자를 하나 새로 사봐도

겨울의 차림은 영 볼품없게 합니다.

 

▲ 단풍의 계절엔 이 계단을

떠밀려 오르고 내려옵니다.

 

▲ 오르다 바라본 칠형제바위.

 

▲ 정상엔 세찬 바람이 붑니다.

안내판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 시베리아를 가 본적이 없지만

다들 시베리아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 우측으로 관음봉, 그리고 묘봉

상학봉이 그리움으로 이어집니다.

 

▲ 앞 삼각봉이 관음봉, 그 줄기로 따라가면

암릉이 일품이었던 묘봉, 상학봉...

 

▲ 저 아래로는 법주사가

우측 너머로는 낙영산, 도장산, 백악산, 군자산

그리고 대아산까지 그리움으로 들어옵니다.

 

▲ 좌측으로는 문수봉, 신선대, 입석대

그리고 천왕봉으로 이어지고.

 

기암고봉, 울창한 수림, 깊고 수려한 계곡,

폭포 등의 뛰어난 자연경관

 

▲법주사를 비롯한 수 많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고

 이 일대가 1969년에 국민관광지로,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

 

▲ 저 앞 봉이 천왕봉,

3.2K를 오르내려야 합니다.

 

▲ 다시 내려와 어느 예쁜 여성분이 사진을 찍어 준다하여

다시 서 봅니다.

 

▲ 내가 처음 여기를 올랐던 어린 시절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구름 속에 갈무리 져 운장대(雲藏臺)라 하다가

세조(世祖)가 이 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하여 문장대(文藏臺)라 했답니다.

 

▲ 그 시절 이 아래엔 거대한 휴게소가 있어

먹고 마시고 시끄러운 잔치집 같았는데

잘 정비 되었습니다.

 

▲ 문수봉 방향으로 오르다 되돌아 본

문장대.

 

▲ 이제 우리는 신선대 방향으로

오르내립니다.

 

▲ 다시 되돌아 본

그리움과 추억의 문장대...

 

▲ 속리산의 기반암은

화강암·변성퇴적암입니.

 

▲ 여기를 올 때마다 만나는 멋진 소나무,

그 힘든 정상의 바람속에 굿굿하게 자람이 사랑스럽습니다.

 

▲ 지나온 문수봉,,,,.

올 겨울은 어디를 가든지 소담스레 눈 덮힌 모습를

보기 어렵습니다.

 

▲ 신선대에서 서서

멋진 풍경을 봅니.

 

▲ 산행과 씨름은 멘토를 이길 수 없지만

폼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속으로만 그리 생각도 합니다.

 

▲ 신선대 거기엔 화장실도

휴게소도 있습니다.

 

신선대 (1,026m)

백학이 날고 신설들이 노닐었다는 ...

안내석 위치가 영 그렇습니다.

 

▲ 어떻게 재료들을 지고 올라와

음식을 만들까?

참이슬 5,000원, 캔맥 4,000원....

 

▲ 이제 우린 능선에서 내려가야 합니다.

진한 아쉼..

 

▲ 여기 삼거리에서 천왕봉은 2.1K

아래 경업대는 400m, 법주사는 5.1K입니다.

 

▲ 한참을 가파르게 내려와야 합니다

단풍의 계절은 만산홍엽의 절정이었습니다.

 

▲ 올려다 본 신선대.

그 시절 그 친구들도 같이 올려다 봤던,,,

저 봉은 나를 기억할까?

 

▲ 올려다 본 입석대(1,016m)

임경업 장군이 7년 수도끝에 세운 것이랍니다.

 

 

임경업, 광해군때 급제하여 인조반정을 거쳐 이괄의 난,

병자호란등을 거친 명장입니다. 순천의 낙안군수를 지내기도 했고

 

▲ 병자호란후 모함으로 52세에 죽어

충주에 그 묘소가 있습니다.

 

▲ 그가 7년 수도했다는 경업대에서

그렇게 사방을 둘러봅니다.

 

▲ 산은 언제나 그렇게 있지만

그 산을 오르는 인생의 마음은 세월따라

삶의 애환따라 다르게 다가옵니다.

 

▲ '충북'표시한 트럭만 봐도

고향어른을 만난듯 반가운 내고향 '충북'!

 

'행복한 산행, 잘사는 충북'일까?

'행복한 보은,

잘사는 충북'일까?

 

▲ 신선대에서 내려가는 가파른 철계단.

 

▲ 절정의 단풍 시절엔

긴 줄의 정체가 심한 곳입니다.

 

▲ 그 철계단을 내려가기전 우측으로

'관음암'을 갑니.

 

▲ 젊은 시절 이 바위틈을 통과 할 때면

갑자기 바위가 붙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 그 속에 약수가 흐르지만

지금은 얼었고.

 

▲ 그 작은 터전에 세워진 암자

관음암.

 

▲ 남쪽방향으로

호쾌한 조망은 시원하기도 합니다.

 

▲ 수천명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겨라....

 

▲ 저 아래 계곡 끝에

세심정-법주사가 있습니.

 

▲ 작지만 아름다운

기도처 이겠습니다.

 

▲ 거긴 얼마나 추운 바람이 불었던지

볼이 얼얼 합니.

 

▲ 먹이를 갖다 놓은 걸 보면

늘 여기서 사나 봅니.

 

▲ 같이 걷던 그 시절, 그  친구들..

어느 골에선가 나처럼 세월의 나이를 먹어 가겠지요.

 

▲ 그리고 한참을 내려오면

겨울엔 비어있는 금강골 휴게소.

 

▲ 그 시절이 그립고

서러운 옛 추억이 밀려옵니다.

 

▲ 그 추억의 '금강골',  돌고 돌아

내려옵니다.

 

▲ 화강함 그리고 변성퇴적암이란 설명을

실감 합니다.

 

▲ 이 계곡의 단풍 시절엔

정신이 혼미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선비들의 별서정원이 떠오르는 비로산장

 고 김태환 씨가 지은 개인 산장으로, 52년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은 대를 이어 가족이 운영합니다.

 

▲ 바람 좋은 계절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계곡 물소리 벗 삼아 하룻밤 묵어가고 싶습니다.

 

▲ 속세를 떠나는 속리산 이름처럼

어느 날 삶의 모든 시간을 로그아웃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 그렇게 내려서면 세심정.

문장대에서 중사자암,냉천골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과 만납니다.

 

▲ 어려웠던 13세기

골마다 수행하는 자, 고승, 도인들이.

 

▲ 이 절구로 하여

한 그릇 밥을 얻었겠지요.

 

▲ 좌측은 문장대에서 냉천골로 내려오는 길,

우측은 방금 내려온 금강골 길.

 

▲ 여기서 부터 법주사까지

'세조 길'이 조성되었습니다.

 

▲ 여기는 세조가 목욕하다가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이 나았다는

목욕소.

 

▲ 세심정 위엔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시원한 '복천' 물맛의

복천암이 있습니다.

 

▲ 겨울은 그렇게

식수원 저수지도 꽁꽁 얼리고.

 

▲ 이 호젓한 세조길은

최근에 조성되었습니다.

 

▲ 곳곳에 세조와 관련한

스토리텔링을 설명합니다.

 

▲ 눈섭바위... 어디가 그런지 잘 안보입니다.

 

법주사((法主寺/사적 명승지4), )

553(신라 진흥왕14)에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법주사에는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 국보와

사천왕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 보물등

 문화재가 많습니다.

 

▲  2층 대웅보전, 보물 915호입니다.

6학년 국민학생시절

처음 감격으로 봤던 그 건물, 국보, 보물들..

 

▲ 쌍사자 석등, 국보 5호입니다.

그 시절엔 누각이 없었지요.

 

▲  20186월 30일,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는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등 7곳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란 이름으로 등재를 결정했습니다.

 

▲ 쌀 400가마로 밥짓던 대형 쇠솥

보물1413, 어린시절 봐던 그 모습 그대롭니다.

 

법주사 석련지

국보 제64호입니다.

 

 

▲ 당간지주...

내고향 청주에도 옛 '청주극장' 광장에

이 문화재가 있습니다.

 

▲ 추래암

제 어릴적에는 저 위에 500년된 작은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 그 옆에 미소짓는 고려시대 마애여래좌상

보물216호입니다.

 

속리산은 법주사의 문화재뿐 아니라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과  속리산의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

 

▲ 어린시절 단체사진 찍던

일주문 '호서제일가람'.

 

▲ 주차장까지의 '오리숲(2K)

추억과 행복의 길입니다.

 

▲ 그 시절 '속리산관광호텔' 앞의 소나무 숲..

레이크힐스 호텔로 바뀌었지만

소나무는 그대롭니.

 

▲ 추억이 서린 아름다운 법주사 그리고 속리산..

그렇게 하루 해가 찬바람과 함께 저물어 갑니다.

 

정이품송 [正二品松.천연기념물 103]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조의 이야기와 함께

 

수령 600여년 지났지만 세월엔 장사가 없는듯 우람한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속리산의 상징입니다.

 

속리산을 가려면 비포장 12구비 '말티재'

차에서 내려 차를 밀면서 넘어야 했습니다.

 

포장되면서 많이 길이 넓어지고 구부러진 길이 바로 서더니

최근엔 터널이 생겨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  그렇게 며칠전부턴 설렘속에 기다렸던

내 고향 충북의

속리산,법주사 산행길...

 

다시금 아픈 추억을 남기고

남으로 남으로 달려온 하루.

내 고향, 속리산...

 

영원히 거기 그렇게 있을 것입니다

추억과 그리움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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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산길에서 / 정희성

눈이 내리네

바람 맞서 울고 섰는 나무들이

눈에 덮히네

 

그대와 걷던 산길

북한산 기슭의 그 외딴 숫막

함께 앉던 그 자리에도

눈이 내려 쌓이네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와도

굳은 맹세 변함 없건만

괴로워라 지금 여기 없는 그대를 위해

나는 술잔을 채울 뿐

 

눈이 오는 날은

울고 싶어라

그러나 기약한 그날은 갑자기

눈처럼 오는 법이 없기에

 

빛나는 아침을 위해

나는 녹슨 칼날을 닦으리

눈보다 차갑고

눈보다 순결한 마음으로

깊이깊이 사랑을 새겨 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