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錦山
충남의 최남단으로 전북의 완주, 무주, 진안과, 북쪽으로는 대전광역시와 충북 옥천 등과 접한
인구 6만이 안되는 고을이다.
인삼의 고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이 자자한 이 고을에는 가슴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는데 이른바
‘칠백의총(七百義塚)’ (사적 제105호)..
임진왜란때 조헌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의사의 묘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호남 순찰사인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 36년(1603)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1647)에는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현종 4년(1663), 이 사당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왔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횡당촌 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 선생과 무명의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여 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다.
광복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그후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게 하고 있다.
역사라는 것, 피와 희생의 연유로 오늘이 있느니..
어찌 우리가 기억하는 희생만 있었으랴..
아프고 억울한, 그러면서도 숨겨지거나 왜곡된 일들은 부지기수이려니...
거기, 금산의 ‘진악산’(進樂山)를 간다.
처연한 그 역사의 땅을..
▲ 오늘은 '푸르뫼 산악회'의 정기 산행일..
만차되어 3시간을 달려 도착합니다.
▲ 오늘 산행 출발점은
'수리넘어재 진악산 휴게소'
(충남 금산군 금산읍 양지리 221-26).
▲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정상까지는 2K.
▲ 약속이라도 한듯
'장수'와 '오솔길'도 만났지요.
▲'수리넘어재'
금산군은 우리고향 청주처럼 남일면, 남이면이 있습니다.
우리 모교 '남이초등학교'를 검색하면 청주와, 금산 두 곳이 나오지요.
▲ 폰 탓인지, 사진사 탓인지 너무 작게 나와
다시 한 장을 올립니다.
▲ 자주는 못 오지만 '푸르뫼'를 찾으면
활기 넘치는 회원들과, 절대 헌신적인 집행부의 봉사에 반합니다.
.
▲ 눈 없는 겨울산...
이틀전 대전에 눈이 쏟아진다하여 큰 기대를 했건만...
▲ 가을이 치열하게 휘갈기고 간 자리엔
차가운 탄피처럼 낙엽이 수북히 쌓이고.
▲ 길은 아름다웠고
우리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아름답겠지요.
▲ 요즘은 큰 벌집을 자주 만납니다.
국민학교 시절 오재미 던지기 둥근 바구니 처럼.
▲ 내 앞에 놓은 길을 걷습니다. 평온의 길도
베토벤의 광기어린 소나타 같은 길도...
▲ 어느 길이든 같이 걷는 길이니
그 동안은 결코 외로움은 내게 스며들지 않을 것입니다.
▲ 너른 금산읍의 안연한 풍경.
충남의 최남단으로 전북의 완주, 무주, 진안과,
북쪽으로는 대전광역시와 충북 옥천 등과 접했습니다.
▲ 인구 6만이 안되는 고을..
오래오래 풍요롭고 평화롭기를!
▲ 가야 할 길은
저리 남았습니다.
▲ 인삼의 고장, 금산錦山
사방으로 둘러쳐진 산 울타리 속, 분지형입니다.
▲ 1장령산.2대성산.3천태산.4천앙산.5자지산.
6부엉이산.7갈기산.8월영산.9성인봉.
(옮겨온 사진 입니다)
▲ 중앙 좌측 볼록한 산이
충남의 최고봉 서대산(西大山) 904m..
▲ 제일 뒤로 진안고원의 운장산,
그 우측으로 구봉산도 조망되고.
▲ 좌측 아래로 관음굴이 있는
최고의 조망터.
▲ 휘몰아 치는 겨울 바람 앞에서도
독야 청청할뿐...
▲기후, 토양, 일교차 등 인삼재배를
위한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고장.
▲ 인삼의 역사가 1500여 년이나 되며,
지금은 전국 인삼유통량의 80%가 유통됩니다.
▲ 좌측 함지막 엎어 놓은듯한 곳은 천등산.
우측은 대둔산(大芚山.878m)
전라북도 완주군과 충남 논산시과 금산군에 걸친
‘호남의 금강산’입니다.
▲ 1은 공주의 계룡산과/
2는 대전의 도덕산.
(옮겨온 사진입니다)
▲ 지난 온 길들...
산이 별로 없는 충남에서 금산은
산악고원 진안, 장수, 무주와 연결됩니다.
▲♪ 별과도 속삭이네 눈웃음 피네
부풀은 열아홉살 순정 아가씨
향긋한 인삼내음 바람에 실어
어느 고을 도령에게 시집 가려나
총각들의 애만 태우는 금산 아가씨
새하얀 꽃잎처럼 마음도 하얀 ♬
열아홉 꿈을 꾸는 순정 아가씨
산 넘어 구름 아래 누가 산다고
노래마다 그리운 정 가득히 담아
♩안보면은 보고만 싶은 금산 아가씨
(조미미가 노래한 금산아가씨 노래입니다.)
▲ 1서대산.2장령산.3대성산.4천태산.
5천앙산.6자지산.7부엉이산.8월영산.
(옮겨온 사진입니다.)
▲ 가던 길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듯, 아주 가끔은 뒤로 보면..
묵묵히 나를 따라오는 기특하고 고마운 내 발자취가
나를 응원합니다.
▲ 두터운 점퍼를 벗길래
왜 산에서 옷을 벗느냐 그랬더니
'설레라구 설레보시라고 ..'
나더러 그리 말해준 고마운 분들..
▲ 남쪽으르는 원효암에서 2.1K를
올라오는 길이 아득하고.
▲ 관음굴에서 줄을 타고
오르면 닿는 봉.
▲ 좌측 170m,
관음굴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 아득한 절벽에
제비집 모양, 자리 잡은 관음굴...
▲ 총무님을 찍었다고 찍었는데
나중 보니 늘 동작 빠른 그는 벌써 일어났으니...
▲ 많이 미안하여 사진 하나를 만들어
게재 합니다. 미안한 마음...
▲ 하루 묵어 가고 싶은 아늑함이지만
같이 앉아 촬영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1개 소대는 머물것 같은 규모이지만
크게 신비스런 마음은 글쎄요....
▲ 아마 갈급한 자의 기도터 이거나,
역사의 환란마다 의인들의 도피처 이었으리니...
▲ 李 회장님은 저리 올라간다는데
아마 봐주는 여인들이 없었다면 그리 안했을 겁니다.
▲ 아, 백제의 강처사가
여기서 기도하여 인삼의 씨앗을 얻었다는 군요....
▲ 겁 많은 필자는 밧줄은 사양하고
오던 길을 가파르게 다시 갑니다.
▲ 이제 거기서 내려와
100m남은 정상으로 갑니다.
▲ 산마다 수풀 속에 있는 경계작전 참호..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가 도래하여
문화재로만 남기를 바래봅니다.
▲진악산 관음봉(進樂山 732m)
금산을 수호하는 진산(鎭山)
'풍류가 크게 일어나는 산'입니다.
▲ 서대산(西大山 904m). 계룡산(鷄龍山 845m).오서산(烏棲山 790m)에 이어
충남에서 4번째로 높은 산 이지요.
▲ 진악산(進樂山)
'樂' 자가 '락' 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즐거울 락' 이 아닌 '풍류 악' 자이기 때문입니다.
▲ 주변산을 비교하며
공부해 봅니다.
▲ 무엇보다도 진악산의 진가는 조망일듯.
대둔산, 속리산, 서대산, 천태산, 계룡산, 민주지산, 덕유산,
갈기산, 운장산 , 멀리 마이산까지 조망이 되고
▲ 산 줄기가 이루는 구비구비 능선의
마루금이 아름다운 그리움 선으로 이어집니다.
▲ 개삼저수지. 그 아래로
개삼터 공원이 보입니다. 거기서 출발하여
정상으로 오르기도 합니다.
▲ 삼형제 바위같은
암릉 길도 걸었지요.
▲ 저 멀리 진안 고원은 이어지고
마이산 두 귀가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 저 뒤로 좌측 운장산과,
우측 크라운 같은 모양의 구봉산.
▲ 서북쪽으로
천등산과 대둔산을 다시 봅니다.
▲ 1천등산.2대둔산.3인대산.4오대산.
(옮겨온 사진 입니다)
▲ 저 651봉까지 가는가 했지만
오르기 전, 우측으로 내려갑니다.
▲ 정상에서 1.8K를 오면
물굴봉.
▲ 물굴봉을 설명하지만
문장을 조금 다듬었으면 하는 교만한 생각도 합니다.
▲ 진악산의 실제 정상인 물굴봉.
조망이 트이지 않고 지세가 별로라 정상의 높이만 가지고 있고
▲ 실제 주봉은 관음봉이 차지하고 있지만
관음봉보다 5m가 더 높습니다.
▲ 그 정상에 앉아 쉬면 좋을 나무...
필자는 왜 자궁 모양으로 보일까?.
▲ 저 멀리 덕유의 주 능선이 아련하고
흰 스키장도 보입니다.
▲ 이제 '보석사' 방향으로
깊게 내려서고.
▲ 거기서 거대한 바위 하나를 만납니다.
이름하여 '도구통 바위'.
▲ 어릴적 우리고향 충청도에서는
절구통을 '두구통', 절구대를 '도구대'라 했습니다.
▲ 아련한 추억의 이름 '도구통'
보리고개 시절 보리도 찧고,
그 밤에 호랑이 온다던 메주 쑤던 날, 삶은 콩도 찧었습니다.
▲ 고향도 생각나고
엄마의 품도 그리워지는 그 이름 '도구통'....
▲ 좌측으로는 개삼터공원으로 가는길,
우린 보석사 방향으로 갑니다.
▲개삼터공원에는
금산인삼의 유래를 가지고 만든 테마공원이 있습니다.
▲강씨 아무개가 모친의 병환을 고치고자
진악산 관음굴에 올라 기도를 하는데
.
▲ 산신령님이 현몽하여
모처에 있는 빨간 열매 달린 풀을 다려 드려라, 하여
그대로 하니 병이 나았다고...
▲이 풀이 빨간 열매가 셋이고
사람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인삼(人蔘)이라
불리워졌다고 합니다.
▲영천암..
영천이 고향인 하 회장님은 바위 이름이냐, 암자이름이냐
출발 때부터 궁금해 합니다.
▲영천암은 영천(靈泉)으로 유명한 암자.
이 샘물은 1500여년전 극심한 가뭄으로
모든 물이 말라 온 산하가 타들어갈 때
이 곳에서 수도하던 노승이 백일기도를 했고
이에 산이 갈라지고 하나의 물 줄기가 나타나더니
▲ 물이 펑펑 쏟아지며 가뭄을 말끔히 해갈시켜 주었다고...
또한 이 영천은 병을 낮게 하는 영험함이 있어
많은 병자들이 이 곳을 찾는다고.
▲ 공주가 고향인 나태주 시인은
금산에 관한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 단풍이 드는 이유라...
치열하게 여름을 이긴 용사의 숭고한 자취이겠지요.
▲ 금정산의 샘물처럼, 가야산의 상왕봉에도
지난주 올랐던 남해 금산의 상사암에도 '구정' 샘물이 있었지요.
▲보석사 은행나무
천연 기념물 365호.
▲ 수령이 1080년 ..
30년 전에 그리 적었습니다.
▲ 높이 40m. 둘레 10.4m..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울음소리를 낸답니다
▲ 충북 영동의 천태산 안국사 앞에도,
경기도 양평의 보문사앞에도 ....
▲ 보석사(寶石寺).
885년(헌강왕 11)에 조구(祖丘)가 창건하였으며
,
▲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 했다고...
▲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고.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 했답니다.
▲ 아름다운 진악산을 배경으로
너무 크지 않은 정감있는 아담한 사찰...
▲ 천연기념물 은행나무외에 여러 유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 은행나무 - 전나무 숲 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 아! 거기서 뜻 밖에 상처 입은
비석하나를 만납니다.
▲ 임진왜란 당시 금산벌 싸움에서
중봉 조헌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하신 기허당 영규대사의 의병 숭장비.
▲ 1940년 일본경찰이 비각을 헐고
글자를 훼손하여 땅에 묻은 것을
광복 후에 다시 세웠습니다.
▲ 금산의 700의총의 서정으로 시작한 오늘 산행..
그렇게 처연한 조국 사랑의 마음으로 끝을 맺어가고
▲'진악산 보석사' 일주문을 지납니다.
▲보석사 입구의 전나무숲,
천연기념물 365호인 1,1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천년사찰 보석사와 영천암,
도구통바위, 봉화대, 관음암과 관음굴...
그렇게 능선 따라 걸은 아름다운 산.
,
▲ 인삼의 고장, 금산읍내로 돌아와.
▲ 수삼 시장도 둘러봤지요.
▲ 선물용, 믹서용,
떨이 상품등...
▲ 밍서용으로 한 봉다리 샀지요
누가 알아? 나도 회춘 하는 기회가 될런지.
▲ 인삼 막걸리도 1병 3000원,
인삼 튀김은 1만원에 8뿌리....
▲ 그리고 이어진 푸르뫼의 저녁식사 대접.
잘 끊인 콩나물 순대전골엔 고기도 넉넉했고
국물은 담백했으니....
▲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을
가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을..
찬란해 보이는 삶도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한 날 이었으니.
▲ 그렇게 고향 가까이 금산 땅에 함께 했던 하루,
넉넉한 건강이 감사하고, 포근한 산우님들의 정이 감사하고
주최한 '푸르뫼산악회'의 훠에버를 축복하던 날,,.
▲칠백의총(七百義塚)’ (사적 제105호)..
역사라는 것, 피와 희생의 연유로 오늘이 있느니..
어찌 우리가 기억하는 희생만 있었으랴..
아프고 억울한 그러면서도 숨겨지거나 왜곡된 일들은 부지기수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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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길 /나태주
산내 지나 추부 지나
쪼보장한 골짜기 따라
사람 마음을 자꾸만 제
가슴속으로 끌어당기는 길
옷 벗은 감나무
진노랑 한복 치마 저고리
갈아입은 은행나무
두 손 맞잡고 맞아주는 길
오늘밤엔 찬 서리라도 치려는가
하늘 가득 몰리는 구름
벼 벤 논에 김장 채소밭에
어른대는 구름 그림자
이 길로 끝없이 가고 또 가면
손바닥 거칠지만 눈 웃음결
살가운 젊으신 고모님 한 분
나 찾아오기 기다리고 계실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