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아! 지리산

아! 지리(의신~삼정~벽소령~덕평봉~칠선봉~영신봉~세석~음양수~대성마을~의신 /22.2Km)

산꾼 미시령 2017. 10. 6. 17:47

현상(李鉉相)..

 충남 금산의 4백석지기 왕손인 전주 씨 양반집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나서 고창고보와

서울중앙고보, 보성전문 법학과를 다닌 수재였다 항일무장투쟁을 하다 사회주의자가 되고,

군사훈련을 받고 44세에 860명의 남부군 총사령관이 된다.

 

 5년간 전설적인 활동을 한 파르티잔(빨치산) 사령관은 19539, 49세로 지리산 빗점골에서

목에 여덟 발의 총탄을 맞고 굵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시신은 20여일간 창경원등 서울 시내에 전시된후 고향 금산으로 내려 보내지만 식구들은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낸 놈이라며 인수를 거부했고. 모친 역시 자기 아들은 죽지 않았다며,

호락호락 맞아 죽을 애가 아니니 꼭 집에 돌아올 거라며 고집을 부렸다.

 

 할수없이 시신을 끌고 지리산으로 돌아온 토벌대장 차일혁은 총 12년의 감옥 생활을 했던

이현상의 일제하 항일운동 공로와 인간적 품격을 존중해 약식 장례식을 치러준다. 유격대원

스님에게 독경을 시키고 화장한 유골을 직접 자신의 철모에 M1 소총으로 빻아 섬진강에 뿌린

후 세 발의 권총을 쏘아 경의를 표했다.

 

 북은 그의 사후 37년만에 조국통일상을 추서했고 1968년 평양 신미동에 조성한 애국열사릉에

이현상의 묘지를 1호로 만들고 근처에 막역한 동지 김삼룡과 이주하, 홍명희, 조소앙, 김규식,

조봉암, 여연구 등 5백여 명을 차례로 안치한다.

 

 이현상의 모친은 1975년 걸인처럼 홀로 살아온 옛집 문간방에서 비참하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는데 장례 며칠 후 그녀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시신은 목과 사지가 잘려 사라진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남한 빨치산의 상징인 이현상,

 북은 버렸고, 남은 외면한 현대사의 비극의 인물이다. 언젠가 통일을 이루고 남과 북,

이념을 초월하여 지리산 수많은 골짝에서 죽어간 2만여 젊은 영혼들의 한맺힌 절규를

.아를 가리지 않고 추모하며, 기념하는 시절이 오길 기대하며

 

비극의 골짝,

빗점골을 오른다.

 

▲ 화개장터를 지나 십리 벚꽃 길, 쌍계사를 거쳐서

호리병속 같은 화개동천을 따라 벚나무 터널 속을 달리면

신흥 삼거리가 나오고..

▲ 우측은 빗점골, 대성골로 이어지는 화개천,

좌측 길 목통길로 계속 오르면

반야봉 8부능선 아래에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절

칠불사를 만나지..

 

▲ 가락국 7왕자가 출가하여 아버지 김수로왕이 창건했다고 하고

여러 재난 때마다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 특히 한 번 불을 지피면 온기가 100일 간다는 '아자방'이

유명하나 볼 수는 없고..

.

▲ 서산대사등이 머물던 방이라 한다.

 

▲ 마음이라도 비취는 연못일까?

맑고 깨끗하다

여기 주차장에서 토끼봉이 4.7K 이란다.

 

▲단청도 참 곱다.

 

▲ 아들을 보기 위해 그 먼 길을 온 김수로왕과 허 황후가 

  정진중인 아들들은 보지못하고

연못 속의  그림자만 봤다던가?

 

▲ 그래서인가  인근 마을 이름이 범왕(凡王).

왕이 머물다 간 마을이라니....

가야사 복원이 기대된다.

 

▲ 서둘러 내려와 푸조나무와 세이암이 있는

범왕초교를 지나

의신마을 '지리산역사관' 마당에 주차하고...

 

▲ 지난 여름 즐거웠던 빗점골....

 

지리산의 중심은 과연 어디일까.

  이 물음에 의신마을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명선봉~토끼봉으로 이어지는

 1,500m급의 지리산 주능선과 삼신봉으로 내려가는 남부능선이

 의신마을을 병풍처럼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 두어달 전, 그 즐겁고 시원했던 골은

벌써 짙은 가을속으로 조용하다.

.

▲ 서둘러 섬정마을로 향한다.

빗점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바위.

 

▲ 거대한 바위에 소나무 몇 그루가 신기하게 자란다

서산대사께서 명상했던 곳이라던가...

 

▲ 의신-삼정까지의 2.7K. 뜨겁고 지루하다

빗점골은 의신에서

 왼골, 산태골, 절골이 만나는 곳까지를 말하는데

 

▲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 여유를 가지고 좌측 이현상 최후의 장소를 가 봤어야 하는데

마음 급해 포기한 것이 오래오래 후회된다.

 

▲ 두어집이 남아있는 삼정마을....

여기서 벽소령은 4.1K이다.

 

여름내내 푸르름을 뽐내던 나무잎들이 옷을 갈아 입는 시월 !

이젠 자신을 타오르며 온 몸 달아오르기 시작하겠지

지리의 가을은...

 

빗점골 가는 길/ 김인호

 

지리산 단풍 참 은은하기도 하지

안개 어린 것 같기도 하고 꿈길 같기도 한

 

삼정마을 지나 빗점골 가는 길

저기 은사시나무 숲 좀 봐봐....

 

▲...

여기 좀작살나무 이쁜 열매를 좀 봐봐

여기저기 봐봐를 연발하며 쿵쿵폭포 지나

 

빗점골 너덜바위 찾아가는 벗들

함께 가는 모습 참 은은하기도 하지..

 

▲ 지리 주능선을 오르는 길중 가장 좋은 길 같다

삼정에서4.1K, 그 중 1K여는 된 비알로 오르고.

 

▲ 그 다음 1,8K는 아늑한 작전도로이.

지금은 숲이 되었지만 벽소령까지 작전차량이 올랐다니...

 

▲ 빗점골, 대성골을 생각하면

왠지 먹먹해지며 숙연하고 빚진자의 마음은 어쩔 수 없으니...

 

▲ 덕평골을 지나며 유일한 다리를 만나고

 

▲서서히 벽소령에서 내려다 봤던

그 조망이 시작한다.

 

▲ 왼쪽 벽소령으로 나있는 좌골, 선비샘쪽으로

 나있는 구,벽소령의 우골

그렇게 잠시 오르면...

 

▲ 멀리 꼭대기가 보일 것을 기대했지만 눈앞에

정겨운 벽소령이 나타난다.

지난 6월, 지리 종주시 하룻 밤 묵었다.

▲ 반가운 이정표

종주시 연하천- 형제봉에서 내려오면 대피소를 만났고

여기서 너머 음정은 6.7K이.

▲ 지리의  대피소에서 묵을 때마다 좋은 날씨가 없었다

지리 십경의 '벽소명월'을 기대했지만

오늘도 어려울듯한데....

 

▲ 천왕봉 방향의 덕평봉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오토바이능선, 그리고 덕평골...

 

▲ 노고단 방향의 우측 어린아이 엉덩이 반야봉.

좌측 형제봉...

반갑고 그리움이다.

 

▲물들기 시작하는 지리...

하얀 눈도 곧 쌓이겠지.

▲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한다

진한 외로움, 여유 있는 시간...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정채봉이 말한 '천국에서 엄마가 단 하루 휴가를 내여 오신다면

젖가슴을 만지며 그 동안 억울했던 한 가지를 일러주고 싶다'

 

 그 마음이다 지리에 들면...

포근하고 눈물이 난다.

 

▲ 벽소명월을 꿈꾸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구름 속의

저 그림이 마지막이다.

찬 새벽녘에 나와 봐도....

 

▲ 고요한 지리의 아침이 좋다

그 바람이 좋다.

 지리종주 길이 다시 그립다.

 

▲ 잘 있거라 벽소령.

다시 만나자.....

 대피소중 120명의 시설도 적당하고  난 여기가 제일 좋다.

 

▲ 작전도로의 무너지는 낙석은 언제나 위험하다

낙석방지용 담벼락 공사가 한참이었다.

 

▲지리의 아침...

지리에 서면 인간의 삶의 무게란 무엇이었던가.

다 부질없는 것을...

 

▲벽소령에서 세석까지는 6.3K

종주시에는 뛰어 다녔지만

오늘은 최대한 와유(臥遊)의 마음으로 걸으려 한다.

 

▲ 반가운 단풍이 거기에 있었으니...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제목의 지리산 시인

 이원규님 작품 「​단풍의 이유

단풍의 이유/- 이원규(1962-)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 이라도 타 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  ...너는 붉은 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 몸이 달아오른 줄 알기 때문이다 .....

 

...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 이원규 시인이 시가 늘 좋다

풍성했던 여름날이 가고

이제 서리가 오고 눈도 쌓이겠지.....

 

▲ 지리는 그렇게 세월이 다시

흐른다.

▲ 지리십경 '노고운해'은 아니여도

어딘가 운해를 바랬지만 ...

 반야봉 뱀사골 능선방향이다.

 

▲ 덕평봉 아래 선비샘을 만난다.

 

▲아래 덕평골 살던 李 고인은 평생 누구에게

 절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절 한번 받아 보는게 소원이여서

유언으로 그 묘를 선비샘 위에 쓰라한다.

 

▲ 노인의 소원대로 입 대고 마신다면 모두가 절하는 형상 이겠지만

누군가 표주막을 갖다 놓았고 하필  자루가 길어

뻣뻣이 서서들 물을 마신다.

난 일부러 허리굽여 마셔본다.

 

▲ 덕평골...

역사의 아픔을 뒤로한 채 고요하.

 

▲ 세석으로 가는 길은 거기가 거기 같다

오르고 내리고 같은 풍경이니...

 

▲'이 가을에 한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쌍하다'

 

시인이 언어는 이다지 아름다울까

 

▲ 이 가을에 한번  타 올라 볼까?

그 정열이 점점 부러워지니..

세월이 아프다.

 

3개도 5개 시·군에 걸쳐있는 민족의 영산 지리..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이 만들어 낸 자연의 조화에

경의를 표한다

언제나.

 

우두커니 세상을 한탄하며 붉은 선혈이 흐르며

 조국 이라는

순고함으로 함성을 지르던 어리석음들도

 

 긴 세월 앞엔 무용지물 인것을...

극렬한 이념도 인간이 만든 추악한 마음 이라는걸.....

 

▲ 1475봉.

천왕봉을 아주 가까이 조망했던 곳이지만

오늘 날씨는 어림없다.

 

▲ 영신봉에서 흘러내린 남부능선도

구름 속에 가렸고.

 

▲ 좌측 천왕봉, 제석봉.연하선경..

그리고 우측 촛대봉, 시루봉도 

상상으로 본다.

 

▲산은 산 대로, 물은 물 대로

지리는 수 수만년 그렇게 흐른다.

구름처럼.

▲ 아름다운 칠선봉(1558m)에 선다.

 

하늘은 높고

높게 솟은 바위절벽은 높이를 가늠 할 수 없다....

 

▲거기서도 덕평골, 대성골은 선명하고

 

▲ 산 너머 산이 있고

바람의 끝에서 다시 바람이 분.

 

▲ 이제 영신봉도 올려다 보고.

 

 

▲ 불타는 지리는 여전하다.

 

▲ 짙은 단풍은 계곡 길을 따라

빠르게 내려가고 가을비는

재촉하는듯....

 

▲이제 영신봉을 오르는 까마득한 계단.

 

▲ 오르다 힘들면

 백무동 방향도 내려다보며

 

 

▲그렇게 오르면 영신봉(1,651m),

남부능선, 낙남정맥의 시작점이.

 

▲ '용담'도 짙은 빛을 품었고.

내겐 짙은 그리움이 물든다.

 

▲ 비구름은 세석 평전도

촛대봉도 시루봉도 덮었.

 

▲ 세석 갈림길,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이 눈물겹다

여기서 3.4K의 장터목,

그리고 장터목에서 1.7K를 오르면 천왕봉인데..

▲ 백무동으로 가는 길도 눈물겹다

6.5K의 그 길은 너머 한신계곡으로

그렇게 이어진다.

▲ 지난 여름 종주시 봤던 세석...

그렇나 오늘은 운무속에 가렸다.

 

▲ 맑은 날이면 촛대봉을 오르려 했는데

포기한다.

 

▲ 여유있게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셨으니 이제 떠나려한다.

 

▲물드는 세석...

잘 있거라...

머잖아  다시오리니...

 

▲ 거림으로, 삼신봉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거림에서 세석은 6K, 삼신봉.청학동은 10K이다.

 

▲ 이제 청학동, 삼신봉, 쌍계사, 대성골

그 방향으로 아늑한 길을 간.

 

우천 허만수 (宇天 許萬壽) 선생

 기도처에서 바라본 남부능선.

 

우천 허만수 (宇天 許萬壽)선생 기도처

지리에 머물다 자취도 없이 사라진 그 삶이 부럽다

 

▲ 바로 아래는

해발 1,450m 의 세석고원 음양수다.

 

옛날 지리산 대성계곡에서 '호야' '연진'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자녀를 갖지 못했다

 

  어느날 남편이 산열매를 따러 간 사이 검은 곰이 연진 여인에게

 세석고원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연진 여인은 곧장 음양수로 달려가 샘물을 실컷마셨고,

  그 사이, 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호랑이가 이를 지리산 산신령께 고해 바쳤다

 

지리산 산신령은 크게 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게 하였고,

 

음양수 샘물을 훔쳐 먹은 연진 여인에게도 무거운 벌을 내려

 평생토록 잔돌 평전의 돌밭에서 외로이 철쭉을 가꾸게 하였다

 

연진은 슬픔에 젖어 흘러내리는 눈물과 닳아 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 뿌리며 애처롭게 언제까지나 꽃밭을 가꾸었다

 

그녀는 또 밤마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 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 빌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으며,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바로 가련한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이라

전해지고 있다 (함양군 홈피 지리산 전설에서)

 

▲ 이제 1.7K 편안한 길을 왔고

청학동, 삼신봉, 쌍계사는 남부능선따라 흐른다.

 

지리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

시끄럽게 먼 곳, 가까운 산들을 찾아  오르내리다

 때가 되면 다시 그리워 찾는 곳. 지리가 아닌가.

 

 

▲이제 지리산 계곡 중에서 

 방대한 산세와 깊은 골짜기, 그리고 유난히 둥근 바위와

시원하고도 장쾌한 물줄기가 돋보이는 대성골로 향한다.

 

대성골은 6·25 전쟁 중 토벌대와 파르티잔 사이의

 최후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다.

 

 

▲ 삼거리. 쌍계사, 삼신봉, 청학동은 직진하고

대성골은 갈라져 우측으로 간다.

 

▲ 지리산록은

단풍으로 물들고

 

▲ 유난히 둥굴등굴한 돌들의

너덜지대는 

계곡내내 이어진다.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서서히 오른쪽 저 멀리서

시원한 물소리가 다가오고.

 

산죽 길과 지그재그

산 길을 반복하면.

 

▲수곡골, 작은 세개골, 큰 세개골등

골골의 물들이 모여 대성골로 흐른다.

 

대성골은 3일 밤낮으로 쏟아진 포탄과 화염으로

 피로 물든 죽음의 계곡이었다.

60여년이 흐른 지금 말없이 고요하다

 

▲큰 세개골 다리

이제 의신은 3.9K가 남는다.

 

집채 만한 바위가 대부분 둥글다.

둥근 바위들은 깊고 넓은 소()의 물 속에 박혀 있고

더러는 솟아올라 불룩한 배로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해발 550m인 대성마을

 현재 2가구만 살고 있으며 대성계곡과 가장 인접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본 물은 제법 깊이가 있는데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 이제 의신마을은 2K 

골은 깊고 숲은 열대림 같다.

 

▲ 대성마을에서 의신의 길은

아늑하고 평온하다.

 

▲그렇게 돌아 산 길을 나오면.

 

▲의신마을에 도착한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한국전쟁중 어느 추운 겨울날

토벌대에 쫓긴 빨치산들은 날이저물면서

 

빗점골,거림골 등지에서 대성골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정보를 입수한 토별대의 포탄 세례에

하얀 눈이 덮힌 계곡은

 피와 불바다로 변한다

 

▲ 하룻밤 사이에 수십, 수백

 많게는 일만 여명의 젊음은 아비규환속에

스러져간다.

 

소용돌이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오늘도 고요한 의신마을....

 

▲ 그 산 언덕엔 설명이 따로 없는

항일투사 17인총도 있고.

 

▲ 작은 역사유적관

연휴 휴관이란다. 지난 여름 둘러봤지만..

 

▲ 그렇게 숙연하고

가슴 찐한 현대사의 아픔이 서린 빗점,대성골을

걸었으니....

 

▲ 하동의 가을은 분주하다

평사리 최참판댁을 오랜만에 들르니

인산인해.

 

▲ 서희, 길상이등의 이름이 생각나는 평사리 들판...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말없이 오늘도 비가 내린다.

외로운 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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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내 마음 속의 빗점골/이원규

 

어느 모퉁이엔가 웅크리고 앉은 사람

성큼성큼 검은 산으로 들어간 산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흔들리며 일어서는 검은 산 지리산

그 아래 아카시아 뿌리 내린 돌무덤 속

하얀 발가락 마디마다 꿈꾸는 별

절망하거나 다시 절망할 때

혁명의 날개를 잃어 가 닿을 수 없는 독백들이

끝내 바둥거리다 곤두박질치는 지점마다

지고 또 피는 홀아비바람꽃들

 

고단한 분단 반세기의 표류 속에서 끝내

서러운 꿈 하나 낚아 올릴 수 없는 밤

별의 꼬리를 부여잡고 한없이 꿈틀대며 승천하는

내 남루한 기억 속의 빨치산

 

지금 여기는 어디쯤인가

언제나 혁명을 꿈꾸면서도

지순한 노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지금

눈물 속으로 다시 눈물이 고여 오고

허물을 벗겨 보면 다시 허물이 도사리는

지금 여기는 어디쯤인가

 

곳곳에 하나씩의 비밀 아지트를 남겨 두고

모두들 살해당한 지리산 빗점골

그곳에서 나는 무련, 그대를 만난다

 

도리어 새장 밖으로 갇혀 있는 세상을 위해

새장 속의 새는 결정적으로 날개를 버린다

무덤 밖으로 묻혀 있는 세상을 대신해

잠들지 못하는 주검의 두 눈에도

마침내 눈물이 흐른다

 

비틀거리는 나의 그림자를 밟으며 바짝 뒤따르는

음울한 바람의 눈초리

그대 21세기의 꿈은 새로워지는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하늘은

이내 무너져 내리고 내 회상의 지리산 빗점골

어느 모퉁이엔가 웅크리고 앉은 산사람이

더 깊이 고개 숙이는 늦가을 저녁 무렵

 

뜨거운 나의 이마를 떠나

끝없이 질주하는 한줄기 별빛

나는 정녕 나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나는 정녕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는가

 

여태 매듭 하나 풀지 못한 예지의 더듬이를 보듬고

여백으로 비워둔 내 오랜 잠의 속살

그 속으로 수많은 잔뿌리를 내리며

먼저 나무처럼 굳게 서는 법을 배우며

 

뒤늦게 빨치산 위령제를 올린다

그대 산사람의 타는 듯 메마른 입술 사이로

한국 현대사의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도 내 심장의 자물쇠를 잠근다 열쇠를 버린다

 

산 너머 산이 있고

바람의 끝에서 다시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