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통일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2박3일 동안 김포, 한강하류에서부터
문산, 연천, 포천 그리고 철원평야에 이르기까지 민통선과 철책선을 넘나들며 통일의
문제를 답사하며 토론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 여러 유적에 대한 전설과 역사적 사실 등을 공부했는데 그 중 놀란 것은
연천 민통선 안에 ‘경순왕릉’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라 왕의 무덤이 왜 여기 있을까,
그리고 왕의 무덤치고는 너무 초라한 모습에 놀랐었다.
지금은 거대한 복원공사가 이뤄졌고 민통선도 제외되었으며 사적 244호
‘연천 경순왕릉(敬順王陵)로 지정,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거대한 왕릉이 되었다
신라는 BC 57-935년까지 992년 동안 56대 임금이 통치한 나라요. 경순왕(敬順王)은
그 마지막 제56대 임금이었다
9세기말 신라는 진골왕족의 권력 다툼에 휩싸여 약화되고 지방호족은 독자세력을
형성하여 각 지방을 지배했는데 그 가운데 견훤과 궁예의 세력이 가장 강성하여
전라도 일대와 중부지방에서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며 후삼국이 성립되었다.
후백제의 침공으로 경애왕(景哀王)이 죽은 뒤 견훤에 의해 즉위한 경순왕은 9년
재위 동안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으며 국토는 날로 줄어들고 민심은 고려로 기울었다.
이에 왕은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고려에 귀속하기로 하였고, 935년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는 국서를 전했다.
이렇게 나라를 넘겨주고 경순왕은 왕건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아내로 맞고
정승(正承)에 봉해졌으며, 녹 1,000석을 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경주 사심관(事審官)에
임명되는 등 40여년간 호사와 천수를 누리다 978년 사망, 임진강변 연천에 묻였다.
신라의 유민들이 경순왕 시신을 경주가까이로 모시려했으나 반란을 걱정한 고려는
개경 100리안에 무덤을 쓰라했고 그 결과 연천에 묻혀 잊혀진 인물이 되었으나
1973년 한 중대장이 수색중 비문이 발견되어 오늘날 왕릉으로 전해진다
그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는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는데 어찌하여 민심을
모아 싸우지도 않고 천년사직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느냐며 반대했으나, 마침내 신라가
고려에 병합되자, 개골산(금강산)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풀뿌리·나무껍질을 먹으며
여생을 마쳤다.
나라가 망하기전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는 제천 월악산 덕주사에 머물러그 전설이 남아있고
그 곳엔 지금도 덕주산성, 덕주골이 남아있다.
천년 신라의 경주,
그 중에서도 가장 유적이 많아 산 전체가 지붕없는 박물관, 남산! 거기를 간다.
노랗게 가을이 내려앉은 천년신라의 한과 영광이 서린 그 곳에
정겨운 님들과 그렇게 간다.
▲ 가을이라 하지만 아직 무더운 날씨.
언제나 활기찬 '우리들...'과 함께한 날..
▲ 가을의 전령사는 천년 신라의 고도에도
피어나고.
▲ 오늘의 업저버 '오솔길..'도
함께섰습니다.
▲ 이제 용장 1리에서 산행은 시작합니다.
금오봉(468m)과 최고봉인 고위봉(494m)이 있는 '경주국립공원남산지구'는
남북10K, 동서 4K입니다.
▲ 공원지킴터를 지나 오르면
'천우사'가 나오고
아침햇살이 신비로움을 더 합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산행은 시작 되고..
남산의 지정문화재는 150여 곳의 절터, 129구의 석불과
99기의 탑, 그리고 답사코스만 70가닥으로 다채롭습니다.
▲ '장수...'의 정겨운 님들도 함께 였습니다.
언제나 듦직한 분들이죠.
▲ 고위봉까지의 '이무기능선'은
밋밋하지만 한참을 암릉 길, 황소바람을 내며 올라야 합니다.
▲ '우리들....'에서 제일 잘 생긴 분들입니다.
▲ 드디어 조망이 열립니다.
우측이 쌍봉인 태봉이고 ...
▲ 건너 용장사지 능선이 아름답습니다
하얀 석탑(보물 186호)이 조화롭고.
▲ 당겨보면 백옥같이 흰 빛의 자태를 들어내며
앙증맞고 먀무진 지붕선의 모습이
앞산의 훨친한 경관과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 지금의 철 계단도 엄청 힘들어 하면서
아닌척하고
전에는 밧 줄이 있었고, 그 때가 좋았고...
허세를 좀 부립니다.
▲ 우측 빨간 티, 그 분이 오늘 총책, 박기봉 총무입니다.
그 분이 빠졌어야 그나마 좌측의 필자가 기를 펼텐데....
같이 서자고 안했는데 달려왔습니다.
▲ 이제 고위봉이 저리 뵈지만
가 보면 또 한 봉이 숨어 있습니다.
▲ 좌측 아래가 출발지 용장1리이고
올라 온 이무기능선을 되돌아 봅니다.
▲ 산은 아침나절에는 검고 두텁게 보이지만
정오가 지나기 무섭게 밝은 햇살을 받은 화강암 준봉들이
영롱한 빛을 발합니다.
▲ 이 산을 신라인들은 남산이라 했고
혹은 큰 '자라'같다하여 '금오산(金鰲山)'
이라 불렀습니다.
▲ 막걸리가 한 병에 밖에 없어
길 옆 한적한 곳에 몰래 앉았습니다.
위 사진은 다른 사람 더디 올라오게
사진 찍어준다고 포즈을 취하게 한 겁니다.
▲ 소나무도, 필자도 척박한 삶의 터전에서 태어나
늙어가는게 아니라 익어갑니다.
▲ 세월과 인내, 그리고 자연...
뱀처럼 똬리를 튼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 나무는 있는 자리를 탓하지도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도 않습니다.
▲ 고위봉(高位峰·495m),
남산의 최고봉입니다. 우측 창원대 학생들이
체험활동 차 동참했습니다.
▲ 용장마을에서 2.65K를 오른겁니다.
이무기 능선은 보물 두점, '삼륜대석불좌상'(보물187호)와
보물 913호인 '미애여래좌상', 그리고 남산을 대표하는 '삼층석탑'이 있는 '용장사지'을
보지 못함이 종일 아쉽습니다.
▲ 한참을 능선따라 가노라면 백운재를 만나는데
여기서 용장리로 원점회귀 할 수도 있고, 더 간 다음 '이영재'에서
내려가도 됩니다.
▲ 거기서 짐들을 벗어 놓고
가파른 '칠불암'을 내려갑니다.
▲ 마침 좁은 마당에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조용해야했고, 사진 촬영이 어려웠습니다.
▲ 맑은 햇살 아래 낭낭한 말씀이 선포됩니다.
▲ 깎아지른 듯한 좁은 면적에
아담한 암자입니다.
▲ '칠불암 마애석불군', 국보 제 312호 이며
6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습니다.
남산의 불상들은 비록 머리가 없고, 팔은 잃었지만
모두 몸짱, 얼짱입니다.
▲ 재주 좋은 분들은 비빔밥을 얻어 먹습니다.
하긴 눈치 빠르면 절에서도 새우젓을 먹는다는 말이 있지요
필자의 주변머리는 그렇게 못하고 맙니다.
아 여기에 참기름을 넣고 비비면 그만이겠습니다.
▲ 다시 힘겹게 오릅니다.
▲ 한 참을 올라 다시 우리는 신선암으로 갑니다.
▲ 오르며 건너보면, 가야 할 금오봉 방향이 보입니다.
▲ 등로에서 60m의 신선암에서
방금 다녀온 칠불암, 법회광경을 내려다 봅니다.
▲'마애보살반가상' 보물 제199호 입니다.
기도하는 여인들도 아름답고
얼굴은 두툼하고 두 눈은 지그시 감은 보살상은 얇은 스판 옷을 입은듯
신체의 굴곡이 아름답습니다.
▲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이 궁벽한 벼랑까지 마애불을 깎은 신라인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 그렇게 한 참을 올라 다시 배낭을 메고
점심 자리 이영재까지 한참을 넘나듭니다.
▲ 지나온 고위봉과 그 줄기도 되돌아 보고
▲ 가야 할 금오봉도 건너다 봅니다.
뿌연 날씨가 못내 아쉽습니다.
▲ 저 아래 출발지 용장리와 좌측이 오늘 오른, 이무기능선
우측이 쌍봉이었던 태봉입니다.
▲ '이영재' 그 바람 좋은 곳에서 점심을 나눕니다.
산악회마다 독득한 문화가 있는데 '
우리들..'은 여러 문화중
'먹는데 목숨 거는' ..그 문화가 참 좋습니다.
▲ 그 문화 중심에는 박기봉 총무님이 있습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한번 사귀어 봤을 겁니다.
▲ 전어회, 족발,....이 엄숙한 남산에서
너무들 포식합니다.
▲ 이제 포만감을 가지고 대부분 용장리로 원점회귀 하고
우린 급격한 봉들을 넘나들며 금오봉을 찾아 나섭니다.
▲ 거대한 '아산 현충사' 비슷한 '통일전'으로 가는 삼거리...,
과연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것이 기념 될 만한 일인가
필자는 평소 좀 비판적입니다.
▲ 전망좋은 곳에서 건너다 봅니다.
▲ 중앙 아래가 태봉, 가운데가 고위봉입니다.
고위봉 우측으로 열반재를 지나 황발봉으로 이어지고
▲ '삼화령'에서도 전망을 봅니다만
흐릿한 날씨입니다.
▲ 책의 표지모델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용장사지 3층석탑,,,,보물 제186호입니다.
.
▲ 저 아래로 용장골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경주의 푸른 들판은 노랗게 가을 빛으로 익어갑니다.
▲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 시처럼 언제가 가지 못한 길은 아쉽습니다.
불원간 다시 비파골과 용장사지를 돌아 봐야겠습니다.
▲ 금오봉(金鰲峰·467.9m)
삼릉계곡으로 오르면 여기가 정점입니다.
▲ 통상 산(山)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포괄적인 전체영역 이고
봉(峰)은 그 산 중의 높은 구체적인 봉우리이니..
남산의 금오봉, 고위봉이라 부름이 합당합니다.
▲ 저 멀리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는
바위가 보이며 그 앞 계곡이 삼릉계 하산 길입니다.
.
▲ 건너 능선도 바라봅니다.
▲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터....
그 뒤로는 상사바위가 염라대왕 궁전이라 할 만큼 기괴합니다.
▲ 바둑바위...
이렇게 앉아 바둑을 두면 신선이겠지요.
▲ 아래로는 상선암이 보입니다.
저리로 하산해야 합니다.
▲ 통제되어 가보지 못하고 당겨 봅니다.
절벽을 뚫고 거대한 부처님이 튀어 나온 것 같은 모습니다.
석공이 깎거나 새기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숨겨진 부처님을 드러내게 하는듯 합니다.
▲ 높이 8.8m의 거대한 석가여래좌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158호 입니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적으로 깊게 조각한 반면
아래로 갈수록 입체감이 덜하며 선각으로 처리하는 기법,
고려시대의 특징입니다.
▲ 경주 들판이 보이는 곳에서
신라천년의 한과 영광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 수 많은 왕들과 수 많은 애틋한 사람들이
저 벌판에서 사연을 안고 살아 갔겠지요.
▲ 이제 우리는 삼릉곡으로 하산합니다.
▲ 석조여래좌상 터도 지나고
▲ 가슴을 넙게 펴고 당당하게 결가부좌를 틀고
있는 아름답기그지 없는 석조여래좌상입니다.
▲ 앞에서 보면 그리 편안한데 뒤로 보면
무거운 돌판을 등지고 있음이 힘겨워 보입니다.
▲제6사지의 석탑 터입니다.
▲ 내려오며 되돌아 봐도
참 아름답습니다.
▲ 남산의 동쪽과 서쪽의 불상의 모습도 상반되는데
귀족들이 주로 넘나 들던 東남산은 화려하고 세려된 반면,
백성들이 불공을 드리던 작은 절이 많던 西남산은
질박한 불상들이 많습니다.
▲ 선각으로만 새겨진 여섯 분의 불상이 특이합니다.
▲ 1500여년전 신라인들의 정성의 신앙심이
선 하나 하나에 담겨진듯합니다.
▲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그리고 수 많은 전란의 참화 속에서
머리와 손이 잘려 나갔지만
그 당당함과 편안한 자세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이제 길은 평안해 지고
신라인들의 숨결을 느끼며 삼릉으로 향합니다.
▲ 제1사지 탑재와 불상들...
남산의 불적들은 여러 골짜기에 산재되어
답사 코스가 분산 되는게 안타깝습니다.
▲ 삼릉...
신라 8대 아달라/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왕릉입니다.
신비로운 숲 속 한 가운데, 햇살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삼릉은 참 신비롭습니다.
▲ 릉도 능이지만 만고 풍상을 겪은 소나무 숲이 장관 입니다.
아침 안개 속의 그 모습을 언젠가 경주에서 아침을 맞을 때
꼭 와 봐야겠습니다.
▲ 수수백년 연륜의 삼릉계 솔밭은
신라 천년의 타임캡술을 여는 그런 시비로움 입니다.
▲ 한 구비를 돌면 갖은 박대 속에서도 미소 잃지 않고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마애불 미소처럼
정겨운 님들의 삶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게 아쉬운 감흥의 계곡은 끝이 나고
지진의 공포가 남아있는 오늘의 경주를 만납니다.
오래 오래 안전한 경주로 보존 되길 기원합니다.
▲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에 들어서면
드넓은 서라벌 들판 남쪽에
강변의 모래톱처럼 길게 뻗은 산 줄기 남산....
▲ 용장골, 약수골, 절골,탑골, 불곡, 삼릉계등 36개의 골짜기가
부채살 처럼 펴져있고,
그 골마다 탑과 불상으로 가득한 남산
그래서 '남산을 보지 않고서는 경주를 봤다고 말하지 말라' 합니다
.
▲ 그 신라문화유산의 찬란한 보고, 남산에서
같이한 정겨운 님들...
남산을 돌아보며 어느 탑, 어느 불상이든, 환경을 능가하거나
압도 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롭게 조형하여 천년의 아름다운으로 이어져옵니다.
세상사 너무 안달하여 얻지못한 것, 가지 못한 길을 아쉬워 말며,
가졌다고 위세당당 하지 말고,,
그렇게 이웃과 우리와 순응하며
살아야겠다는 깊은 교훈을 얻습니다.
.
▲ 신라의 흥망성쇠...
역사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깊히 사색했던 하루가 저물고...
감사한 세월, 과분한 삶을 감사한 가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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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달밤 /유호.詞, 박시춘.曲/현인(玄仁)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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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 위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아 신라의 밤이여
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워라
대궐 뒤 숲 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
님들의 치맛 소리
귓 속에 들으면서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