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시절 필자는 충북도청 감사관실에서 3년여를 근무한 적이 있다. 70년대 초반이다.
그 때의 도청 곳곳의 캐치프레이즈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이었고
지금도 충북은 그렇게 쓰고 있다
내 고향 충북의 대처(大處)는 청주와 충주이고, 명산대찰은 보은 속리산과 법주사이며,
대표적인 서원은 괴산의 화양구곡에 있는 송시열의 화양서원이다,
그리고 청풍명월의 고장은 ‘제천’과 ‘단양’이다.
이런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의 골에 1985년 남한강 유일의 다목적댐, '충주댐'이
준공되었는데 만수위 3,000만평에 이른다.
이 건설을 위하여 단양은 단양읍 전체와 3개면 26개리가, 제천은 5개면 61개리가
수몰되었는데 특히 청풍면은 전체 27개리중 25개리가 물에 잠겼다
그러니 충주댐이라고 ‘충주호’라고 불리는 것을 제천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주민청원등을 해오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자 그냥 ‘청풍호’, ‘청풍호반’,그렇게 부르고
도로이름등도 그렇게 지었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답사기에서 세 지역 주민의 말을 적고 있는데
먼저, 제천 관계자에게 물으니
‘충주호라고 하는건 행정명칭일 뿐유, 세상에 애칭도 있구,
별칭도 있는거 아뉴? 그러니 ‘청풍호’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쥬’
다음으로 충주 관계자는
‘말도 안되쥬, 충주댐이면 충주호지 충주호가 어디 청풍만 수몰됐나유?
충주는 읎구, 단양은 읎대유? 그렇게 나오면 충주댐 수문을 확 열어서 청풍물을
다 빼버릴 모양이유‘
이에 이번엔 단양군 관계자에게 물으니
‘냅둬유 충주호면 어떻구 청풍호면 어때유? 관광객만 많이 오면되쥬
어짜피 배타면 다 단양으로 오게 돼있어 우린 신경 안써유.‘
하여간 한 지역이 수몰된다는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든 고향을 수몰시켜야하는
애잔함이 있는 사건이다.
이런 내륙의 호반 제천,단양을 다시 한 달만에 찾는다
청풍호가 내려다 보이며, 학현리를 사이에 두고 한 달전 올랐던
신선봉, 미인봉을 건너다 보며
그렇게 걷는다.
▲ 단양휴게소...
그 뒤에는 가슴 설레는 국보 제198호,
' 신라단양 적성비' 가 있습니다.
▲ 1978년 1월 단국대 사학과 학생들이
'성산'을 조사하려왔다고 군청에 신고하자
'그 동안 여러 대학에서 다녀갔기에 별거 읎을거유'...
역시, 종일 조사했지만 별로여서 4시쯤 슬슬 정리하려는 순간
한 학생이 땅속에 삐죽이 고개 내민 바위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동안 산객들이 신발의 흙 털던 그런바위 였습니다.
사학계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었죠,
1년후 국보가 된 이 '신라 단양 적성비' 는
북한산, 마운령,황초령,창녕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척경비) 5개중
가장 먼저 세워진 것입니다.
▲ 청풍 문화단지가 가까울 무렵 한 휴게소 앞에
멋진 '금월봉'이 있습니다.
▲ 어느 건설업자가 흙 작업을 하다가
발견 하였답니다.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 합니다.
▲ 오늘은 '창원 우리들 산악회' 산행 일 입니다.
'무암계곡'을 따라 오토캠핑장에서 부터 걷습니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입니다.
▲ 정겨운 '오솔길' 님들도
8명이 동행했습니다.
▲ 이제는 한 가족과 다름없는 '장수'
멋진 분들도 같이 였습니다.
▲ '산악체험장과 오토캠핑장'에서 내려, 아스팔트 길을 따라
2K여의 '무암사'로 오르는 길엔
멋진 숲들이 이어집니다.
▲ '대 가믐' ...전국의 가뭄이 극심합니다.
이 깊은 '무암계곡'도
완전히 건천이 되었습니다.
▲ 좌측의 작성상은 여기서 좌측으로 오르고
▲ 작성상 아래 '안개바위'
그래서 '무암'(霧岩) 인 모양입니다.
▲ '작성산'아래 배같이 생겼다하여
배바위랍니다. 높이가 160m 폭이 130m이라니...
13개의 루트가 있답니다.
언제 한번 올라보고 싶습니다.
▲ '장군 바위'는 여기서 우측으로 오릅니다.
우리는 '장군'보다 '남근석'을 기다립니다.
▲ 지도안내판,...청풍호반을 안고있는
동산, 작성산 그리고 금수산에서 뻗어내린 신선봉, 미인봉...
보배로운 산들입니다.
▲ 1K여 아스팔트 길을 따라 힘겹게 오르면
'무암사'가 나타납니다 신라 문무왕 3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현재는 속리산 법주사 말사 랍니다.
▲ 절을 둘러보려니 너무 가파르고 힘이 듭니다.
우린 우측, 남근석 루트를 따라
숨이 턱턱 막히는 가파른 길을 오릅니다.
▲ 쉬어야 할 무렵,
건너다 보면 작성상의 여러 바위들이 나타나고
그 아래 '무암사'도 보입니다.
안개 자욱한 모습으로는 정말 신비롭겠습니다.
▲ 막바지 테크는 길고도 가파르고
▲ 천년고찰 '무암사' (霧岩寺)
암릉이 병풍처럼 둘러쳐지고, 청풍호반의 안개가
어우려진 풍경으로 안개무, 바위 암자를 써서
이 이름이 붙었나 봅니다.
▲ 건너 신비로운 바위를 당겨봅니다,
해골모양 같기도 하고
봉준호 감독의 '옥자' 인듯도 합니다.
▲ 아직도 데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숨이 찹니다.
▲ 사람이 별로 오르지 않는 코스인가봅니다.
우리들 뿐입니다.
▲ 남근석의 '희망'이 없다면
더 힘들었을 겁니다.
▲ 흐미....대단합니다. 남근석.
잘 생겼고,,,,다들 이 곳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아들이라도 하나 더 낳을 모양이죠?
▲ 일부러 누가 조각하여 세운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벌떡' 일어서 있으니
모든 임들의 건강도, 하는 일들도 이렇게
발기찼으면(이런 표현 써도 될까?) 좋겠습니다.
▲ 그 우편 능선의 '장군바위'도 당겨 봅니다
왜 장군바위일까?
의좋은 형제바위면 더 좋겠습니다.
▲ 저 길을 따라 600m를 올라야합니다.
나중 안 일이지만 1K의 가파른 길은
여러번 발을 멈춰야 하는 가파름입니다.
▲ 되돌아 본 남근석.
아직도 거기에 머물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 뭔가 '시원 찮아서'
간절한 개인기도라도 올리는 모양입니다.
▲ 그 바위 위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이제는 고목되어 서 있습니다.
▲ 박두진의 '도봉'시를 생각했습니다.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뿐..'
▲ 그냥 첨탑바위라고 즉석에서
작명을 해봅니다.
▲ 흙이라고는 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센 바람과 그 황량한 눈보라는 어이 이기며
저렇게 바위에 발을 딛고
세월을 세고 있을까?
경외 스럽습니다.
▲ 대슬랩의 암릉 길을
아슬아슬 그렇게 오릅니다.
▲ 여러번 밧줄을 이용하여 오릅니다.
그러나 그 힘겨움의 끝은 있겠지요
우리네 삶의 길처럼.
▲ 이윽고 청풍호가 아련히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청풍대교가 있고,
골골마다 누군가의 눈물겨운 그리운 고향이겠습니다.
▲ 유치환의 '바위'
그 시를 좋아합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隣)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이 시를 대할 때마다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부분이 좋습니다. 뭘 하나 이뤘다고 시끄럽게 자랑하고
뭘 하나 잃었다고 억울함을 소리하는 삶이 부끄럽습니다.
▲ 거기에 앉아 건너 바위를 당겨봅니다
'몽키 스패너'같다 했더니
제천을 처가로 둔
李 회장님은 '게 앞발 같다'고 합니다.
오! 그 소년적 감성....
놀라워 했습니다. 그리 생기지 않은 분인데..
▲ 잔뜩 먹을 것, 신선한 회까지 짊어진 '정수'님은
오늘도 늠름합니다.
▲ 아직도 장군바위는 저렇게 보이고
그 힘을 얻어볼까하여 필자도 서 봅니다.
▲ 짜릿한 기분이기도 하고,
오돌오돌 떨리는 기분이기도 하고
오늘은 오장육부, 모두를 써야하는 길인듯 합니다.
▲ 언제나 지나온 길은 아름답고
스스로 대견스러워 합니다.
▲ 오늘 지천인 '꼬리 진달래'
충북, 경북,강원 그리고 중국 북부에 식생합니다.
▲ 오늘은 남근석 이야기에
남녀가 없습니다.
집에도 하나 누워있다나?
실없는 유머에 시끄럽습니다.
▲ 그래도 다시 힘을 내 봅니다
저 멀리 하늘이 보이니...
▲ 오늘 느낀 것은 이정표가 영 성의가 없습니다.
2.4K인것을 보고 한참을 가다
다시 이정표를 만나면 2.5K 남았다고도 합니다.
▲ 그렇게 힘들게 올라와 점심을 나누고
소나기가 오려나? 길을 서둘러야 합니다.
▲'성봉(804m)에 도착합니다.
'동산'은 1.65m남았고
우리는 누운 남근석을 향해 도로 내려갑니다.
▲ 그 성봉에 쌓여진 돌 탑..
이 곳에 쉬어가는 산객들의
하나, 둘 쌓은 정성 이겠지요.
▲ 포만감의 행복인가
한 잔 자신 행복인가...하여간 행복하기 그지없는
얼굴, 얼굴들 입니다.
▲ 소나기 구름이 휘몰아 친 사이로
조망이 잠시 열립니다. 한 달전 올랐던 신선봉, 미인봉,,,
학현리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두 산줄기는 청풍호로 달려갑니다.
▲ 이제는 내려가는 암릉길이 이어지고
▲ 우측으로 신성봉 그 너머로 금수산이
비구름 속에 쌓입니다.
▲ 바위와 소나무..
천년궁합 같습니다.
오래오래 그렇게 살아가길 빌어봅니다.
▲ 좌측으로 신선봉, 저승봉이라고도 불리는 미인봉,
그리고 우측으로 조가리봉입니다.
▲ 아래로 청풍랜드가 보이고,
번지점프시설도 안개구름 속에 희미합니다.
앞에 뵈는 망월산,
좌측으로 월악의 영봉이 보입니다만 오늘은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 거기에 '무쏘바위'(누워있는 남근석)가 있습니다.
힘으로는 세계최고 일듯합니다.
나름대로 리얼리티를 갖춘 변강쇠급 바위임에 틀림없습니다.
미인봉을 향하고 있다든가?
▲ 코스상 오늘 보지는 못했지만
외솔봉(481m)오르는 곳의 '청송암'(靑松岩),
언젠가 그 코스로 올라 꼭 봐야겠습니다.
▲ 아쉬운 소나기에 그래도
초목이 춤을 추는듯합니다. 흠뻑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 30m는 족히 될 대스랩.
한참을 사지를 긴장하여 하산을 합니다.
▲ 그렇게 모래고개에 닿습니다.
작은동산은 500m이고
거기로 하여 교리마을로 내려 갈 계획 이었지만
빗속에 교리 주차장으로 하산 하려합니다.
▲ 비맞은 초목은 싱그럽고
▲ '커단 가슴 가득한
바위
풀향기
덤덤한 얼굴빛
침묵의 성자....
▲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달래다
호통도 곧잘 치시는
오라버니산
오늘도
끛없이
산에서 큰다'
이해인 수녀님은 그렇게 노래했습니다.
▲ '산'은 언제나 찾아가도 거기 있습니다.
그 넉넉한 포용력과
우리의 삶터 같지 않은 적막함과 고요함...
그래서 오늘도 산을 갑니다.
▲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읍 전체가 수몰되고
다시 신도시로 이주한 내 고향 충북의 최북부 '단양'
거기에서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 그 수려한 남한강의 푸른물과 남쪽으로는 소백산이 높히 솟은 단양
평화롭고, 복된 고장이 영원히 계속되길 빌어봅니다.
▲ 잠깐의 비가 그친 사이
한 달전 그 자리에 장을 펼칩니다.
해는 져도 일어설 줄를 모릅니다.
즐거움에 취해서...
그렇게 함께한 하루는
다시금 추억이 되고
오랜 가믐끝의 단비을 몰고 남으로 남으로 달립니다.
정겨운 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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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반에 달뜨면/안재식
청풍호반에 달뜨면
달 타고 고향을 찾아가네
고샅길 내려앉은 호수속에
낡은 은수저 한 벌,
정붙여 살던 동무들 그리워라 그리워
흔적이 깊게 배인 그옛집 처마끝에
하이얀 모시적삼 사그락 사그락
나그네 반달이 걸려 있네
마지막 봄나들이 춤사위도
재넘이 바람불어 불어와
희뿌연 물안개 자우룩이 덮이고
눈물로 가득 메운 청풍명월
오늘도 달뜨기만 기다리네
아~~ 아 달뜨기만 기다리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