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충청도

충북 제천. 신선봉-미인봉(상학현리-신성봉-학봉-미인봉-하학현리/9.3K. 5시간)

산꾼 미시령 2017. 5. 28. 23:42

 내 고향 충북을 간다.

 바다없는 내륙 충북은 필자가 고교시절, ‘150만 충북도민, 15만 청주시민..그랬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청주시민은 85만을 바라보지만, 충북 도민은 160만으로겨우

10만이 증가할 뿐이다.

 

 그 충북의 북부는 충주, 제천, 단양이다.

 그 옛날에는 제천, 청풍, 단양, 영춘을 묶어 남한강의 4(四郡)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청풍은 제천에 흡수되고 1980년 제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는 제원군이

되었다가 1995년 제천시와 제원군이 통합되어 현제 14만 인구에 충주, 단양과 연접한다.

 

 그러면서도 면 이름을 보자 타 지역은 남일면, 남이면, 산외면, 산내면, 그런 멋없는 이름이

붙었는데 제천은 봉양, 청풍, 한수, 백운, 송학, 덕산, 금성...멋있고 서정적이고 역사성이 스민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1974년 유래없는 대홍수로 도담삼봉의 정자가 유실되기도 했고 10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 후 충주댐이 생겨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청풍호반이 생겼고신라의 악성 우륵이 쌓았다는

의림지’. 울고 넘는 박달재’, 그리고 지난번 소개한 황사영의 배론 성지등도 제천에 소재한다.

 

 조선군대 해산 때 숫자가 8,800명인데 전국에서 일어난 세 번의 의병 전사자가 3만 내지 4만을

추산하니 그 투쟁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제천은 그 의병운동의 출발지였고, 해마다 제천의병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서울로 가는 물산의 큰 장터 목계장터, 거기엔 신경림의 시비가 강 언덕에 세워져

그 날의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

 

 <목계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하네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

제천의 신선봉과 미인봉을 간다

짙은 초록의 여름속으로 그렇게...

 

▲ 언제나 정겹고 활기찬 '창원 우리들'

그렇게 정겨운 님들과 함께였습니다.

 

▲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

거기서 산행은 출발합니다.

 

▲ 남의 '장날'에 펼침막은 좀 그렇지만

엎저버 '오솔길'은 8명이 동행하였습니다.

 

▲ 바람은 무덥고 햇살은 뜨거운 길...

그 청아한 계곡 밭엔 '노지' 오이 모종이 막 이식을 끝냈습니다.

 

▲ 400m 오르면  삼거리가 나옵니다

우린 좌측으로 올랐지만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없고 불편합니다.

우측으로 가는 걸 권합니다.

 

▲ 숲은 아늑하고

오르는 길은 가파릅니다.

 

▲ 중턱에 서서 후미팀을 기다리고

시원한 오이로 에너지를 보충합니

 

▲ 신선봉( 神仙峰 845m)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와

 수산면 능강리 경계에 솟은 산으로 금수산(1016m)

동산(896m)사이에 서북쪽 청풍면 방면으로 뻗어 내린 능선상의 최고봉입니다.

 

▲'동산' 남쪽의 학현계곡과 망덕봉 북쪽의 능강천계곡

그 아래에는 미인봉(596m)

정방사라는 고찰과 얼음골 계곡이 있습니다.

 

▲'사내'들은 빼고 공주님들을 앉혀봅니다

신선봉은 산자락에 비상하는 학을 닮은 바위가 있어

 일명 "학봉바위"로 불리며, 학현마을의 이름도

 학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오던 길을 되돌아 줄기를 타면

금수산도 2.5K 입니다.

오랜만의 우리 고향 '충청북도'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 이제 835봉 805봉 그리고 774봉과 680봉으로 이어지는

비달결 같은 숲 길 20여분을 걸어야 합니다.

 

그 봉들의 구분이 어렵습니다.

바위 이름도 봉들의 이름도 그리고

야생화이름도 척척 아는 이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 우측으로 '동산' 산 줄기가

 종일 같이 합니다

 

▲ 좌측 금수산(1015m)으로 이어지는 망덕봉(926m),가마봉(635m),

작은산밭봉(485m)을 연결하는 능선입니다.

 

바위위 작은 소나무와 함께

오늘 사진중 최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 그 너머 멀리 월악의 '영봉'이 조망되는데

오늘은 뿌연 연무로 흐릿합니다.

 

▲ 복 많은 분이다 생각되는 작은 무덤이 있고

처음으로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 수직 벼랑에 기둥을 세우고

그렇게 만든 전망대가 참 아름답습니다.

 

▲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정겨운 님들...

같이하는 시절이 감사하고 오래오래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예쁜척들 해 보지만 필자를 빼고야 무슨 최고작이 되겠습니까?

 

▲ 이번에 계간 '시와늪' 잡지을 통하여

시인으로 넉넉히 인정 받은 손순옥 시인.

'사량도', '자운영의 사랑', '산사의 봄', '봄 안개 꿈속을 걷다'

'아 !연하봉이여'등 5편이

추천을 받았습니다. 축하를 드립니다.

 

시도 시려니와 추천심사위원들의 평과

 당선소감이 탄복의 정도였습니다.

 

▲ 아름다운 충주호.. 가믐의 현상을 봅니다

멀리 월악산 영봉이 희미합니다.

 

▲ 이제 수직 벼랑을 내려가면

명품 소나무들과 암릉이 이어집니다.

 

▲ 겨우 필자도 기회를 얻어 서 봅니다.

 

▲ 이 전망대는 신선봉에서 1.3K를 왔고

미인봉까지는 3.4K를 더 가야합니다

 

▲다시 봐도 아름다운 충주호,

태백, 정선 영월에서 이어 온  남한강의 상류입니다.

이 강은 여주 이천을 지나 '양수리'에서 화천, 춘천방향에서 내려온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을 이룹니다

 

▲ 부지런한 분들은 벌써 건너 가

이 쪽을 봅니다.

 

▲ 명품 소나무들....

'정이품송'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줄을 잡고 미끄러지며

저렇게 오르내립니다.

 

▲ 기암과 수백년 연륜의 소나무들의 어울림...

신선들의 길 답습니다.

 

▲ 줄을 잡고  이어졌던 곳에

좁지만 데크가 길게 이어져 있고.

 

▲ 능선은 험하고 가파른 암봉의 연속입니다.

이제까지는 두 발만 있으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네 발'이 필요합니다.

 

▲ 곳곳에 어지러이 매달려 있는 밧줄이

그리 고마운줄 몰랐습니다.

 

▲  '조가리봉(562m)'도 보입니다만

오늘은 거기까지 가지 못할듯 합니다.

 

▲ 죽어 포토존이 된 소나무.

모두들 사진 찍기에 빨리 방을 빼라고 난리입니다.

 

▲ 짙고 푸른 여름은 여전하고...

평화롭습니다.

 

▲ 즐거움으로 시끄럽습니다.

학봉에 서니 모무들 고고한 자태입니다.

 

▲ 마치 조각가가 정성들여 빚어 놓은 듯한 기암들...

킹콩 바위, 손바닥 바위,못난이 바위, 물개 바위, 학 바위...

여러 이름들이 있지만

느끼는 대로 붙이면 되겠습니다.

 

▲ '엉덩이'를 닮았다하여 와 보니

심한 짝 궁댕이입니다.

 

▲ 금수산을 등받이로 하여

펼처지는 오늘 코스는 참 아름답습니다.

 

▲ 신성봉과 미인봉 능선은 암벽과 노송과

사람이 어우려져 시원하고,  충주호의 물즐기는 덤입니다.

 

▲ 바위 틈에 뿌리내려 수십, 수백년...

견디다 견디다 죽어가는 나무도 있고..

오래오래 거기 있어 아름답게 자라기를 기원해 봅니다

 

▲중간 중간 암벽을 옆으로 트래버스 해야하고.

수직 절벽은 밧줄에 의지합니다.

 

▲ 거대한 손바닥 같기도 하고...

누가 세워놓은 듯도 합니다.

 

▲ 하늘로 바라보는 거북의 머리 같기도하고

간절함을 담아 올리는 기도의 마음 같기도 합니다.

 

▲ 예로부터 학현리는 경계가 아름다워

 학현취적(鶴峴吹笛) 이라는

청풍팔경의 한 승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가파른 비탈 길을 갑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갑니다.

 

▲ 아득한 길을 오르기도 하지요.

 

▲ 운무 깊은 날 이런 봉들을 보면

또 다른 장관이겠단 생각도 했습니다.

 

▲ 밧줄로프, 때로는 발 디디는 곳만 붙여진 철판들..

고마운 시설들 이었습니다.

 

▲ 모두들 혼미합니다.

기암과 명품 소나무의 풍경에 취하여..

 

▲ 그렇게 세월을 몸으로 이겨 낸

그 모습들이 경이롭습니다.

 

 

▲ 이제 학봉, 거기 널다란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뜨거운 햇살쯤이야 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충분합니다.

 

▲ 참 많이들 싸왔단 생각을 합니다

즐거움의 시끄러움도 여전하지요.

 

▲ 어디에 뿌리를 붙이고 저리 있을까?

경이롭습니다.

 

▲ 이제 다시 길을 나서야지요

미인봉이 기다린다니...

 

▲ 안그런척 하지만 좀 떨고 있겠지요?

 

 

▲ 하늘을 행해 그렇게 서 있고

신경림이 그랬습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 이제 미인봉까지는 2.1K를 더 가야합니다.

 

▲웅성웅성 시끄러워 당겨봅니다

이름하여 '남근석'이라 하네요.

 

▲ 그 남근석을 멀리 바라보는 즐거움..

남녀가 없습니다 그 관심엔.

 

▲ 오를 수 없는 거대한 바위에

소나무는 그렇게 자라고...

 

▲ 웬만하면 통과 하겠는데

너무 좁아 되돌아 내려옵니다.

 

▲ 옆으로 하여 곧게 오르면

미인봉이 기다립니다.

 

▲ 멀리 바위 위에 있는게 뭐냐

부처손이냐 산삼이냐... 그래서 당겨봤습니다.

 

▲ 우측 '동산'이 바라보이는

멋진 조망터입니다.

 

▲ 너머로 '작성산', 우측으로 '동산', 아래로 '작은동산' ,

아래 좌측으로 '외출봉'이 보입니다.

 

미인봉 (美人峰.596m)

 저승봉(猪昇峰) 이라고도 합니다.

과거 멧돼지가 많아 돼지 '()'자를 써서 이름이 붙었다고 하고

 저승봉 북쪽 학현리로 난 계곡을 저승골이라 합니다.

 

.

 

 

▲ 우리는 하학현으로 내려갈 겁니다.

 

▲오늘 가보지는 못합니다만

'정방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정방사는 신라 문무왕 2(662) 의상대사의 가르침으로

 정원이라는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조계종 법주사의 말사입니다 

.

▲ '조가리봉(582m)' 저기를 넘어

'영아치'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 마지막 가방털이로 요기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오르내림은

마지막 발길을 무겁게 합니.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더디게 오릅니다.

 

▲이제 '하학현리'로 내려가는 삼거리....

아쉽지만 여기서 하산합니다.

 

▲ 1K여 그 길은 가파르고

그런 다음 이어지는 아늑한 숲 길은 꿈 같습니다.

 

▲ 마을앞 소박한 정류소..

우린 우측으로 돌아 단양으로 넘어갑니다.

 

▲ 어릴적 이런 상황당이나 '상여집'을 지날 때면

어른도 아이도 경외감의 두려움으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지요.

마을의 큰 인성 스승이었지요.

 

▲ 늘 아름다운 단양,

거기서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한 후  시장구경을 합니다.

 

그렇게 정겨운 님들과 함께한 하루..

깊은 추억으로 남기고...

몇 분의 사진이 흐리게 나와 올려드리지 못한 송구함과 아쉼이 큽니다.

 

 

그렇게 고향 충북 땅을

종일 혼미한 맘으로 걸었습니다.

.............................

 

현재 고교 교과서 내용중 수능 출제빈도가 가장 높은 소월의 접동새

시입니다. 오늘따라 그의 서정성이 종일 가슴에 닿습니다.

 

 

접동새/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