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아! 지리산

지리산 반야봉.뱀사골(성삼재-노고단-반야봉-중봉-이끼폭포-뱀사골-반선(17K,8시간)

산꾼 미시령 2016. 10. 16. 22:08

리산에 들 때마다 잊지 못할 이름들이 한둘이랴만 가슴 한편에 짠한

이름 하나가 있다.

 

 필자의 대학 선배 고정희(高靜熙, 1948 ~1991)시인이다

그는 1948년 전남 해남에서 53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가난하여 초등학교 1~2학년을 건너뛰고 3학년에 편입했고 중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독학을 했다.

 

 이렇게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그녀는 틈만 나면 문학책을 읽었고 집근처의 대흥사를 찾아

사색하는 것이 어린 시절 유일한 낙이었다고 했다.

가난 속에서도 시인의 꿈을 키워왔던 고정희는 19살에 새농민에 첫 작품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는다.

 

 27세 나이에 한신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그녀가 온전히 다닌 첫 정규학교이다.

고정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이룬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80‘5월의 광주에서는 시대의식을, 수유리 한신대 캠퍼스에서 는 민족과 민중,

여성운동과 분단된 조국에 대한 현실을 배운다.

 

 시인 고정희는 1975<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15년간 <실락원 기행>,

<초혼제>,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 <여성해방 출사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등 모두 10권의 시집을 발표한다.

 

 그녀는 동인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민중과 민중을 역설하며 노동자, 농민여성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책상이나 모임 안에서가 아닌 최루탄 터지는 시위현장으로

발로 뛰며 현실을 파악하는 시인으로 존재 한다.

 

그녀는 수도승처럼 살다간 글 쓰는 노동자로 그녀의 문학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고,

그의 시 몇 편이 고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1991년 뱀사골 산장 부근에서 실족하여 급류에 휩쓸려, 43세로 요절한 고정희.

시인에게 마지막이 되었던 지리산행 바로 전날, 시인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누가 내 무덤 위의 풀들을 깎아줄까?

나 죽으면 화장을 해서 강물에 뿌려주었으면 좋겠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얘기했다. 죽음을 맞이한 장소가 살아생전에 매년 찾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좋아했던 '지리산 뱀사골'이었다

 

가슴시린 그 이름 고정희..

그 이름을 가슴에 담고

다시 그 뱀사골을 간다

오늘도 정겨운 임들과 같이...

 

지난주 왔던 성삼재(姓三)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광의면 사이의 고개이다.

지방도 제861호선의 휴게소인 성삼재휴게소가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달궁, 반선,인월 남원,함양으로 가고

서쪽으로 넘으면 구례와 하동으로 이어진다.

 

▲ 성삼재(1,102m)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장군이 지켰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리 종주시는 새벽 3시, 여기서부터 기대와 불안감으로 출발한다

 

▲ 쾌청한 날 지리산을 걸을 때는  구름바다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녹색의 숲이 조화를 이룬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기분이다.

 

▲  가도 가도 경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은 우중이다.

 

▲  성삼재에서 노고단(1507m)까지 길이 너무 좋다.

새벽에 이 길을 걸을 때의 그 시원함은 잊을수가 없다

 

  길옆으로 우거진 나무가 함께 한다. 정갈하게 잘 정비된 길이다.

마음을 열어주는 길이다. 바닥의 촉감이 좋다. 하늘로 가는 기분이다.

 

▲ 그렇게 '노고단 대피소에' 닿는다

억수같은 비에 첨으로 '방수팩'에 휴대폰을 넣고

'치즈' '김-치' 음성으로 촿영한다.

 

▲ 평소에도 별 볼품없는 모습들인데

우의 까지 뒤집어 쓰니

무슨 '멋찜'을 기대하랴!

 

▲ 노고단 고개를 향하여 마지막 길을 간다

노고단(老姑壇/ 1,507m)은 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봉이다.

 

  넓은 초원으로 구성된 약 35만평 규모의 고원지대로

신라시대 때부터 제사 지내던 제단이 있다.

'노고운해'는 지리십경의 하나이지.

 

▲ 그 노고단 고개에서 천왕봉은 25.5K이다

그 꿈 같은 길이 지리종줏길이다.

 

그 고개에서 여러 컷 촬영을 했는데

'김-치'소리를 인식 못했나보다

'꽝'이다 '치-즈'라 할걸...

 

▲ 돼지령 부근의 조망 좋은 곳이지만

오늘은 억수같은 비에...

 

▲그 조망좋던 돼지령...

돼지는 없고

우중에 그렇게 서 있있다

종주시에에는 여기서 일출을 본다.

 

여름철 천상의 화원으로 , 운무가 겹쳐 환상적이었던 곳을 지난다

여기를 지날때마다 '화개재'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화개재'는 지리산 주능선 종주 중 반드시 지나야 하는 거점이다

그 옛날 경남의 소금과 해산물, 전북의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했던 장터였다

거기서 뱀사골은 좌측으로 꺾는데

오늘은 그 코스가 아니다

 

▲피아골 3거리,

노고단 고개에서 2.5k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계곡이 이어진다. 6K의 직전마을까지...

 

임걸령 샘물 

해발 1,320m 에 있는 지리산 임걸령 샘은

많은 등산객들이 수통에 물을 다시 채우는 곳이다.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고 얼음이 꽁꽁 얼어도

 이곳은 물이 콸콸 나오는 신비의 샘이다 

 

옛날 녹림호걸(綠林豪傑)들의 은거지,

즉 주변에 키 큰 나무가 호걸처럼 많이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의적 두목인 임걸(林傑)의 본거지라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됐다고도 한다.

 

 

▲그 샘에서부터는 한동안 급한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야한다

처연한 우중에 지리의 또 다른 매력을 본다 

 

▲ 그렇게 노고단 고개에서 4.5K를 오면 '노루목'이다

귀한 분들을 '서 보시라' 했지만 방수팩 속의 카메라는

흐릿함만 남았다.

송구할 따름이다.

 어쩌겠는가 선무당이 장구 나무라야지..

 

▲ 노루목에서 계속 직진으로 1K가면 삼도봉, 

그리고   화개재로 이어지는 종줏길이고

그 화개재에서 좌측으로 9.2K로 피아골로 내려간다

 

 우리는 여기 노루목에서 좌측으로1K

반야봉으로 간다.

 

시인 '이원규'는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라고 표현했다.

 기막힌 한 줄 표현이다..

 

 

반야봉 구상나무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거대한 고사목 전시장으로 변하고 ...

오랜 세월 품어 지킨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원인이란 추정만 있다.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고사는 해발 1400~1900m 고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설악산에서는 2013년 귀떼기청봉에서 확인됐다.

지금은 대청봉과 중청봉, 소청봉에서도 확인된다.

 

침엽수의 쇠퇴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특히 가문비나무속과 전나무속에 속하는

식물들은 해발 1200m 이상의 서늘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자생한다.

때문에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건조기후와 고온현상에 아주 약하다.

 

반야봉(般若峰1,732m)

 지리산 제2봉으로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답다고 하여

 반야낙조(般若落照)는 지리십경의 하나로 꼽힌다.

지난주 조망은 천왕봉까지 사방으로 일망무제였는데...

 

▲반야봉에서 도로 내려가 삼도봉으로, 화개재로 가야하지만

우린 '선'을 넘는다

이른바 '비탐지역'으로...

 

▲시인 이원규의 '여인의 둔부'한쪽인 중봉...

거기엔 누군가의 거대한 무덤이 있었다.

날 좋은 날이면 자세히 살폈겠지만...

 

▲그 '비탐'의 길엔

거대한 '아고산대' 자연 그대로 였다

 

지리산에 들면 모든게 예사롭지 않다.

그냥 사소한 나무와 풀과 돌이 아니다. 모든게 작은 떨림과 울림을 준다.

 

그리고 마침내 장쾌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산객들은 그 위에 선 연주자들이다.

 

지리산은 그저 화두(話頭)를 위해 품만 내준다.

 산행 내내 스스로 묻고 답하길 반복한다. 즉문즉답을 저절로 터득한다.

 나무람을 통해 지혜를 배운다.

되돌아보며 홀로 하는 깨침이다. 말이 필요 없다.

 

▲절정의 단풍은 급속한 비탐의 길에서도 자꾸 불러세워

'김-치'를 하게한다.

 

▲ 그렇게 내려서면 황금색 지붕이 인상적인

한 암자를 만난다.

'묘향대'  그 위치의 깊히만큼이나 세월이 묻어있다.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지리산에 들 때마다 저미는 감정이다.

든든한 우리 대장님들 아니였으면 갑절로 더 했으리..

 

 

▲스님 한 분이 이 암자를 지키며 작은 무밭도 일구고

그렇게 살아간다

처마밑 점심자리를 구하려다가

말을 못 붙였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의 말을 떠올린다.

 "지리산에 올라야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본다."

'비탐'길의 고행(苦行) 속에 미소가 번진다.

 

▲점점 비가 세차지고

길은 더욱 가파르게 이어지는데..

 

▲김대식 시인의 '지리산 위에서' 시를 보자

'구름은 골짝마다 가득히 깔려있고

굽이굽이 산들은 펼쳐져 있는데

멀리 잿빛 산들은 구름 위에 올라 있다. ...

  

▲....능선마다 울긋불긋 피어나는 단풍들

계곡마다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

산길마다 사람들의 활짝 핀 모습들 ...

 

▲....'생사고락은 산에도 있는 것

풍상에도 꿋꿋이 지켜온 신념

고사목이 되어서도 그 기상 변함없네...

 

구상나무는 희귀종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다.

지리산과 한라산, 덕유산 등에만 서식하는 토종이다

. 국제적인 보호종이다. 토종 특산종답게

학명(Abies koreana WILS)에도 '한국'이 들어 있다.

 

▲점점 길은 험해지고 희미하다

비는 억수로 내리고..

 

▲ 서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길을 재촉한다.

'비탐'길은 이정표도 안전시설도 없다

 

▲ 불안한 마음을 보듬어 주는

자연 ..원초적인 모습이 이어지고..

 

▲ 그렇게 끝없는 혼미한 단풍길은

이어지는데.

 

▲ 시간은 흐로고

동료중 한 분이 몸이 한계에 다달아

걱정은 태산이다

 

▲ 길고도 험한 길이

계속이었다

 

▲아! 처음으로 계곡을 만난다

이제 다왔나?

그러나 이제부터 '생사'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길이었다.

 

▲ 길이없어 물을 건너고 다시 내려오고

다시 오르고 ....

기도가 나왔다... '부디 살아가게 해 주소서'..

 

▲ 이제 길이 없어도 할수없다

더듬더듬 만들어 가는 수밖에..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생존' '생사'란 단어가 떠오르고..

 

▲ 좀더 물이 많았으면 어찌 할뻔 했나?

여러번 위험스레 물길을 가로질러야 했으니..

 

▲ 불안을 떨쳐버리려 웃어보라 했지만

그거였다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 이끼바위들과 이끼폭포

과연 장관이었다

 

▲ 왜 사람들은 벌금을 각오하고

생존을 위협받으며 넘나드는지

이해가 갔다.

 

▲ 고목에 뿌리를 내리고

단풍이 든다. 자연의 신비,

'공존'이 아름다움이 되었다

 

뒷 일행을 위하여 나무 가지를 꺾어 표시해 가며

길을 만들어간다

 

▲비오는 날 이끼낀 바위를 건넌다

길을 만들며..

 

▲아 이제 살았나보다

뒷 동료들도 만나고 넓은 길도 만나니

'생존기념'사진을 찍자

 

세월에 묻힌 숱한 비화들

적도 동지도 한겨레인데

지리산은 말없이 안개만 깔고 있다.  

 

▲ 화개재에서 내려온 길과 만난다

이제부터 '뱀사골'이다

 

뱀사골의 유래를 보자

  옛날 뱀사골 입구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매년 칠월 칠석날 밤이면 주지 스님이 사라져

마을 사람들은 스님이 부처로 승천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서산대사'가 이 소리를 전해듣고는

사람이 부처가 되어 승천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아여,

 

어느 해 칠석날 장삼 속에 비상(극약)주머니를 달아

 주지 스님에게 입혀 예년과 똑같이 독경을 하도록 시켰다

 

새벽녘이 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큰 뱀이 송림사에 왔다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이에 서산대사가 뱀을 따라 올라 가 보니

용이 못된 이무기가 뱀소에 죽어 있어 뱀의 배를 갈라보니

주지스님이 죽어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고 하였고

 끝내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일러 반선(半仙)이라 부르다

어느 때부터인가 반선(伴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전설속에 등장한 송림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며

그 터에 빨치산 소탕 전적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뱀사골 단풍은 9km의 긴 계곡 따라

 노란색이 많은 단풍이 계곡과 어우러진다.

 

남원시 반선리 집단시설지구에서

 지리산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까지 12km.

 

()와 담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뱀사골 단풍은

 오룡소, 탁룡소, 병풍소를 지나 간장소까지 절정이다

 

뱀사골 단풍만을 보려면 뱀사골 입구에서

오룡소-탁룡소-병풍소를 지나 간장소 까지만 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날은 어둬지고

지친 몸은 단풍도 여러개의 폭포와

'소'들도 그냥 지나쳐야한다.

 

▲그렇게 내려서면 '와운(臥雲)마을이다.

여기서 시멘트 언덕을 10여 분간 올라서면 천년송이 있다

 할아버지 소나무. '할머니 소나무'가 일품이었다..

여기서 반선주차장까지는  2.1K...차량이 다니는 포장된 도로이다

 

▲ 그렇게 장대비속의 어둠에 반선에 도착하고

더많은 고생을 한 일행은 7시 다되어 도착...

그래도 큰 사고없이 모두들 도착하신 것은 하늘의 도우심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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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봄1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 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

  -고정희의 시 <뱀사골에서 쓴 편지>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