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아! 지리산

아!, 지리에서의 하룻밤!(백무동 -한신계곡-세석-영신봉-/ 촛대봉-연하선경-일출봉-장터목-주지봉-참샘-하동바위-백무동(16K)

산꾼 미시령 2016. 9. 17. 17:27

번의 지리종주 중에

! 지리에서의 하룻밤, 별을 보고 달을 보며...

그런 날을 고대하고 고대했는데 추석연휴를 맞아 꿈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세석에서의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는 거다.

 

 ‘자네, 왜 산에 가는가?’

 조지 맬러리(George Herbert Leigh Mallory1886~ 1924)는 영국의 산악인이다.

1920년대 3번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하였는데. 19246월 제3차 원정에서 파트너

 앤드루 어빈과 함께 정상을 목표로 했지만 북동쪽 산등성이 부근에서 실종되었다.

 

 그리고 75년 후, 19995월 국제 탐색대에 의해 시신이 발견됐는데.

맬러리가 세계 최초로 등정을 완수했는지 여부는 영원한 비밀이다.

그는 왜 에베레스트를 목표로 하느냐하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

(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했다.

 

 내게도 왜 산에 가느냐 질문을 여러사람이 여러번 했다

산이 거기 있어 갑니다’ ‘산이 내게 안오니 내가 갑니다

혹은 道 닦으러 갑니다그리 웃어넘긴다.

 

 그러나 내 진실한 대답은, 뭘 보러간다거나, 뭘 얻으러 간다가 아니고..

산을 만나러 간다’...리라.

메아리도 듣도, 마루금도 보고, 청아한 바람도 다 포함하여

산을 만나러 간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이가, 머리의 모양이나, 귀걸이, 혹은 반지만 보거나 립스틱 색깔만 보지않고,

깊은 눈동자와 따뜻한 마음을 보며가슴으로 만나야 하고,  그를 쳐다만 보지않고

뜨거운 심장으로  만나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산을 사랑하여 오늘도 산에 오른다.

 

머니 품속같은 지리산,

 2만여 젊은이들의 역사의 상흔을 간직한 채, 오늘도 이런 가슴, 저런 가슴을

말없이 품에 안는 위대한 그 꿈 속이 그리워

거기를 간다....

 

▲오늘 시작은 '백무동'이다

 100명의 무당이 거처하던 골짜기라 하여 백무동(百巫洞)이 와전되어

백무동(白武洞)으로 변했다고도 하고.

또는 안개가 뒤덮고 있다고 하여 백무동(白霧洞)으로 일컫기도 한단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이다

 

▲ 입구엔 '상사화'꽃이 아름답다

전남 영광과 함평은 연실봉 산을 사이에 두고 함평은 '꽃무릇축제,

영광은 '상사화축제'를 거창하게 연다.

 

꽃과 잎이 피는 시기가 달라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데서 상사화라 했다

 

▲지리의 북쪽 백무동은 입구에서

좌측으로는 장터목(5.8K)으로 오르고,

우측으로는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6.6K)으로 오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남원 인월과,함양을 들러

여기까지 오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 지리종주를 비롯하여  올 때마다 늘 쾌청한 날들이었는데,

 근래 네차례의 모든 코스가

짙은 운무로 전혀 조망이 안되었다

오늘은 제발 열리기를 간절히 바래보지만..

 

▲ '한신계곡은 여러 설화가 있다

신라화랑 '한신'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를 만나서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 이후로 비가 내리면 혼령들 꽹과리소리가 들린다고도 하고. .

 

▲ 또 다른 설은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 해서

한신계곡 (寒身溪谷) 이라고도 하며,

 

또한 옛날 중국의 장수 '한신'이

잠시 몸을 피했던 곳이라 해서

한신계곡 (漢信溪谷) 이라고도 한다.

 

▲ 가믐탓에 수량은 적지만 맑고 청하하다

이 계곡은 '첫날들이 폭포',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등이 있다

 

아름다운 한신계곡은

2010년 국가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이 되었다

 

가내소의 전설

먼 옛날 한 도인이 12년 수행의 마지막 시험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다.

이를 본 지리산 마고할멈의 셋째 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해 물에 빠뜨렸다. 이에 도인은

 에이~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

하고 탄식하며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곳을 '가내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 그렇게 떨어진 사람들이 어찌 그 도인뿐이겠는가?

유혹말고, 진실한 사랑의 밧줄이 항구에 배를 대듯

그렇게 어느날 불가항력으로 던져진다면

그 줄 한번  잡아도  되지않을까?

 

가내소에서 좌측으로는

장터목에서 내려오는 '한신지곡'이 있고

세석으로는 '한신주곡'이다.

 

▲ 또하나, '가내소'는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기우제를 지낼 때면

여인들이 목욕를 하여 여인들의 목욕탕이라는데

그 목욕은 속치마만 입고 한다던가? 

언제하는지  몰래 와 보고싶다.

 

▲그렇게 5.2K의 긴 계곡을 오르내리며

여러다리를 건너면서 탄성을 지르다보면

본격적으로 1.3K의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올라야한다

 

▲ 많은 바위들을 지나다 보면 이렇게

사람 얼굴같은 상을 만나기도 하고..

 

▲ 계곡 내내 이런 이끼류와, 양치식물 천국이다

이를 키워내려면 

지리산은 운무와 구름에 덮혀 있어야 하나보다

조망이 없다고 투덜댈 일만 아니리라..

 

▲ '한신폭포'  수량이 적다

이제 폭포도, 계곡도 끝이다

이제부터 정말 깎아 지른듯한 길을 올라야한다

 

▲ 그렇게 자연은 넘어짐에도,

죽어서도 아낌없이 준다

자연의 순환에..

 

▲ 아직도 하늘의 끝자락은 아주 높은 곳에서 가물거리고

1박의 짐은 산행중 가장 무겁다

점점 길은 절벽같다.

 

▲ 몇년전 여름,  세석을 다녀 다시 내려 갈때는

이런 힘든코스가 아닌듯 하였는데,

세월 탓인가!

 

▲ 그렇게 바위와 나무, 나무와 나무,

같은 종(種)이 아닐지라도  공생한다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면서...

 

▲ 한 겨울엔 밧줄이 없으면 오르내리지

못하겠다.

 

▲ 아! 이 나무, 이제 나무 계단 조금만 오르면 세석이겠다

 제발 밤하늘이 열리고,

오랜 꿈,  '별도 달도'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아 '세석'이다

이 일대를 세석평전(細石平田)이라 부르는데

 은  의 와오(訛誤)일 것이요,

을 다시 한번 더 역()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세석평(細石坪)이라 쓴 것이 옳겠다

  ‘세석이란 것은 지금 속()잔돌밭이라 하니

세석은 분명히 세석이겠지마는

실제에 있어서 잔돌이라고는  없다니

 그 원뜻이 자못 의심스럽다

 

▲ 지리 종주길이다

수 많은 이들이 감격의 가슴을 안고

오가는 길이다.

여기서 장터목까지는 3.4K, 

  '거림'은 6K이다

 

▲ 지리종주 때마다,

 그리고 거림에서, 백무동에서 그리 올랐지만

첨으로 1박을 한다. 대피소에서..

 

▲ 어느 해 여름 '낙남정맥 보존회'는 '거림'에서 올라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삼신봉으로, 청학동으로 꿈 같은 길을 걸었었다.

벌써 그 시절이 아득하다.

 

▲ 감격된 마음으로 대피소로 간다 ..

첨에는 벽소령에 예약을 했다가

비올 걱정으로 여기로 정했다.

 

▲ 감격된 마음으로 짐을 내려놓고

운무가 없기를 기대하며

 600m '영신봉'으로 오른다

 

▲ 그 세석, 모든 길은 가을 야생화 전시장이다

숙부쟁이, 구절초, 용담, 투구꽃.....

 

▲아!, '영신봉(1652m)'

지리산 고봉 70여 봉우리중 가장 영험하단다

백두대간이 여기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으로 갈라져 삼신봉으로, 외삼신봉으로

김해 신어산까지 흘러가고, 

 지리의  남부능선으로

쌍계사, 의신마을로도 흘러간다.

 

▲ 그러나 흐린 날씨에

광활한 평원 전체가 보이지 않고

그냥 한참을  그리운 시절을 그렇게 되새겨 본다

 

▲ 아직 이른 오후인데도 반대쪽 촛대봉도 희미하니

오늘밤 달과 별을 볼 수 있을까?

 

▲ 그 모진 추위와 여름의 그 비바람을 이겨내고

어찌 저리 곱게 피어날까?

 

▲ 영신봉을 서운히 내려오며

되돌아본다. 벽소령이나 선비샘은 아니더라도

1.7K 칠선봉까지라도 다녀 올것을....

 

▲ 벌써 세석은 가을이 내려앉았다.

하긴 들판도 노랗게 되고, 벌써 추석이지 않는가?

 

아주 조용한 아침이면

풀잎에  이슬방울 방울방울  맺힐것이고

햇살 따라 

여기 저기 들꽃이 빛나리라 ...

벌들이 꿀을 따니 부는 바람도 달콤하겠다

 

▲ 내일 아침은 더 안개가 짙을 것이니

이 너른 평원을 못 볼 수도 있다니...

 

▲ 다시 대피소로 내려와 배정 받았다

2층으로 된 남자방은 50명은 넘는듯하다

군대 내무반 같은 마루에 간격이 50㎝ 될까?

 

그래도 오랜만에 버너를 피워 '햇반'를 데우고

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 저녁을 먹고..

 

▲촛대봉 오르는 곳, 습지, 거기를 올랐다

거기에 너른 데크를 봐둔적이 있다

거기에 누워 하늘을 볼 작정이다

 

데크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본다

달, 별도 빛되어 우수수 떨어질 ..

..

...

아! 너무도 아쉽다.

 

산 아래 산장에는 늦은 식사하는 소리가 즐겁고

건너편 영신봉 쪽에는 늦게 도착하는 전등 불빛이

하나 둘, 내려올뿐...

 

▲ 8시,  할 것이 없다 잠을 청해보지만 

코고는 사람, 재채기하는 사람, '분수통'의 전화벨소리

잠이오질 않는다. 

왜 한밤중 '요의'라는

'쉬'  느낌은  먼 화장실을 다녀와야하는지..

 

'지리에서의 하룻밤'

그렇게 오랜 꿈의  현실은 불편하고 고달팠다.

 

▲  아 그런데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잔인하게...

라면과 '햇반'에 불안히 아침을 해결하고 

뜨거운 커피가 아니였으면

 더 쓸쓸 했으리라..

 

▲ 길을 나선다. 잔뜩 채비를 하고...

조망없음을 탓한 어제는 참 '호사소리'였으니...

맑은 날씨였으면 헤드렌터를 쓰고

'일출봉'으로 벌써 갔어야 하는데...

 

▲  촛대봉을 오르며 가을 빛으로 물든 세석평원을

그래도 보여줌을 감사하면서..

'잘 있거라 내 다시 오리니..'

 설악가의 마지막 노랫가사가 생각났다

 

▲ 어젯밤 데크에 누워

환한 달도, 쏟아지는 별들도

가슴으로 한없이 안던 그 습지를

지난다.  그 곳을 ..

 

▲ 촛대봉(1703m)

여기에 오르면 천왕봉이 눈앞에 있는듯 떠오르고

남으론 멀리 진주, 광양바다도,

 

북쪽으로 마천까지 거침이 없는 곳이었는데,

세석평전의 철죽의 향연과,

초록연두의 새봄의 빛은 또 어떻했던가!

오늘은 비가 하염없이 온다

그래서 '배 호'는 노래했나보다

....

내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  다시 길을 나선다

 끝없이 떨어지는 내리막 길에는

그 보다 더 서운함의 가슴이 되고..

 

▲  200mm 이상의 비가 예보된 길은

천왕봉 마져 오르지 못할까

두근거리기도 하는데...

 

▲ 용담(龍膽),

약재로 쓰이는 용담이 용의 쓸개처럼 쓰다하여

용담이란다 

투구꽃과 색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해보고..

 

▲ 여러개의 비닐로 덮으며 그렇게 촬영을 해보지만

사진을 다시볼 겨를이 없다

빗속길은..

 

▲ 수많은 종주 길손들이 오갔을 길..

겨울이면 눈속에 파묻히겠지..

 

▲ 아!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기대하지 않던 저 너머 천왕봉도 보이고

연하선경 오르는. 지리종주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던 길도

빗속에 보인다

 

그 곳..

 구절초, 숙부쟁이...

아 천국가는 길도 이 같을 것일까?

 

▲ 비오는 길에 이런 꽃들이 있고

가끔씩 조망이 열려 위로가 되니

역시 지리는 위대한 어머니이다.

 

▲ 방금 넘어선  길도,

좌우의 거대한 계곡도 세찬 바람도..

모두가 '지리'인것을..

가슴 벅차다.

 

▲ 빗속에 렌즈를 닦어가며,

비닐로 카메라를 싸며..

그렇게 담는다.

 

▲ 연화봉에 닿는다

'연하선경(煙霞仙境)'이 펼쳐진다.

 연기가 노는 듯한 풍경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나는 선녀들이 노는 곳 같다

 

▲ '오이풀'도 저렇게 꽃이 피는구나

 

▲ 연화봉(1721m).

여기에 서니

유치환의 '바위'가 다시 생각난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다시 일출봉을 향하여 오르내리면

선명한 가을은 비 맞은 렌즈에도

그대로 그려지고...

 

▲ 가을 야생화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고..

발걸음은 느리다

 

▲오늘 마지막으로 천왕봉을 본다

- 천왕봉-

(문효치·시인)

 

산은

을 쓰고

의젓하게 앉아 있더라.

 

수많은 풍상이

할퀴고 지나갔지만

산은 꿈쩍도 아니한 채

잔기침 몇 번으로

꼿꼿하게 앉아 있더라.

 

기슭에 가득

크고 작은 생명들을 놓아기르며

수염 쓰다듬고

앉아 있더라.

 

긴 장죽에

담배 연기 피워 올리며

스르르 눈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라

 

 

▲ 빗속의 사진은

렌즈에 물방울이 맺히기도하고

이렇게 비닐을 완전히 벗기지 않은 사진도 나타나고..

 

▲ 그렇게 돌고 돌아 3.4K의 '장터목' 대피소를 만난다.

한달전 올랐던 대피소... 여기서 천왕봉은 1.7K..

아, 그러나 200mm 예보의 산행은 아쉼으로

여기서 하산 해야한다.

 

▲아! 거기서 기적처럼 아주 잠간

조망이 나타난다

저 멀리 중앙 삼각봉이 노고단이고,

우측 어린아이 엉덩이 같이 생긴 것이

 '반야봉'이다..

 

▲ 여러 사람이 몰려들어

 사진으로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모든 아쉼을 보상받는다

그렇게 ...

 

▲ 천왕봉을 오르는 그 길,

바람이 거세고 비가 세차다

그렇게 아쉼으로 바라보며

 좌측 백무동으로 내려가련다

진한 아쉬움..

 

▲ 지난 2월 초, 눈 세상 그 맑던 그 날에

정겨운 님들과 올랐던 길을

오늘은 비를 맞으며

그렇게 처연히 내려간다

5.8K 그 길을..

 

▲검색은 '참회나무열매'로 답변하는데

열매가 아니고 꽃인데...

 

유치환은 왜 '바위'에서 

결연한 의지로 죽어 바위가 되겠다고 했을까?

 나약한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지만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저 바위처럼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에서 일까?

 

▲ 필자라면 나무가 되겠다

특히 소나무로... 묵묵히 거기에 그렇게 서 있는..

 

▲빗속 산죽도 처연하다

겨울이면 눈속에 몸 전체를 파묻고

그 끝만 내민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 '소지봉' 장터목에서 3.5K를 내려왔다

지난 겨울 백무동에서 오를 때

여기는 너른 안부였다. 즐거움이 시끄럽던..

 

▲ 그 백무동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돌 계단.

지루하고,  쥬라기 공원 같은

원시림 숲을 지난다

 

▲'참샘' 물맛이 시원하다

그 겨울은 꽁꽁 얼음속이었다

 

▲그렇게 다시 내려오면 '하동바위'이다

함양 원님과 하동 원님이 산 좋고 물 좋

지리산상의 장터목 장날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가

내기 장기를 두게되고 

 함양 원님이 져서 이 바위를 하동 원님에게 줬다던가?

 

설마 바위를 가져갈 수 있겠는가?

머리를 썼겠지만 하동 원님은 이에 뒤질세라

 고맙다며 그 자리에서

이 바위를 하동의 지명을 따 하동사람들의 바위란 뜻으로 하동바위」로

 요즘말로 '등기'했나보다

그래서

함양 땅에 있으면서도 산 너머

 하동바위가 되고 만 것이다.

 

▲ 이제 그렇게 오랜 꿈의

'지리에서의 하룻밤'을 마치려한다

큰 아쉼음으로...

 

▲ 그렇게 빗속의 5.8K를 내려 와

출발지 '백무동'에 닿는다.

진한 아쉼은 어쩔수가 없고..

 

▲아! 지리산..

큰 아쉼속에서도 여전한 감동과 감사가 가득했던 길...

196712월에 제 1호의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내년이면 50년을 맞는가?  

 

다시 눈오고, 또 다시 신록의 향연이 되고,

그렇게 그리움으로 이어지겠지..

'내 다시 오리니...' 내 다시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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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권경업)

  오를수록

가슴 저린 산

서럽게 서럽게

눈물나는 산

 

쫓기던 이 좇던 이

영문 없이 끌려간

핏덩이까지

아물어간 상혼에도

고통은 남아

유월 짙푸른

한을 삭이고

용서하고 용서받을

하나됨을 바라

 

초로에 반백이 다 되도록

골마다 영마다

바람으로 흐느끼는

지리산은 서러운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