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전라도

무주 적상산(서창-향로봉-적상산-안렴대-안국사-적상호-전망대-치목마을(12.2K/ 4.시간)

산꾼 미시령 2015. 11. 2. 09:12

번에 출간 된 유홍준의 문화답사기 8강물은 그렇게 흘러 가는데 (남한강편)에는

영월. 제천. 단양. 충주. 원주가 소개 된다.

  그 중, ‘단양의 여러 곳을 답사하면서 강선대에 서린 가슴 저린 퇴계(退溪)와 두향(杜香)’

사랑이야기를 소개하는데...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탓인지 열여덟 관기(官妓),

두향(杜香)과 사랑에 빠진다.

 9개월 후 풍기군수로 떠나는 퇴계는, 지역을 떠날 수 없는 관기의 신분인 두향과 결국

생이별을 하게 되고,

 

 그 밤 두향은 두보의 시, ’꿈에서 이백을 보다를 노래했다.

     [죽어 이별은 소리가 나지 않고(死別己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生別常惻測)]

 

  지금은 풍기와 단양이 터널 하나 거리인데 이후 둘은 21년 지나도록 영영 만나지 못했고

퇴계는 두향이 이별의 선물로 준 매화 화분을 고이 간직하다가 죽을 때

저 매화에 물 줘라유언하고는 70에 세상을 떠난다.

 

  퇴계를 그리다가 초췌해진 얼굴로 인하여 관기에서도 빠진 두향은 퇴계와 추억이 서린

강선대에 움막을 짓고 오매불망 선생만 그리다가 퇴계의 사망 소식 얼마 후

강선대 아래 묻어 달라

유언하고는 남한강에 몸을 던진다.

 

  강선대 아래 있던 두향의 묘는 충주댐 수몰로 조금 위로 이장, 조촐한 비가 세워졌고

지금도 퇴계 종가에서는 시월시묘가 끝나면 이 묘에 와서 제사를 드리고, 단양에서는

해마다 두향제가 열린다.

 

외로운 무덤하나 두향이라네. 點孤墳是杜香

강선대 그 아래 강변에 있네. 降仙臺下楚江頭

어여쁜 이 멋있게 살던 값으로/ 芳魂償得風流價

경치도 좋은 곳에 묻어주었네‘/ 絶勝眞娘葬虎丘

-(숙종 때 문인 임방’(任埅)의 시)

 

  동서고금 사랑이야기는 왜 그리 아픔 일색일까?

사랑은 원래 아픈 까닭일까?...언제 한번 나도 두향의 묘를 찾아가 보련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슴시린 시월은 그렇게 지나고........

 

상산(赤裳山/ 1038m)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유래했고, 덕유산국립공원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적상산..

만추의 계절, 정겨운 님들과 그렇게 간다.

 

오늘의 들머리 무주군 적상면 '서창마을'이다.

무주의 최고의 맛집이 뭐냐?  중국집 '천마루' 탕수육이라는 대장님..

'무주IC  건너에 있었다. 버스에서 하도 그 곳을 자랑하여

 '대장님 처가인가?' 내가 그랬다.

정겨운 님들! 그렇게 산행은 즐거움과 함께 시작이고...

적상산에는 장도바위’, ‘장군바위등 자연 명소와 적상산성’(사적 제 146)이 있다는...

예쁜 해설판이 맘에 들지만 어디든 해설이 조금 요약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입구에서 서창마을까지는 가파르게 1K 올라야한다. 다른 산악회버스는 여기까지 와서 내려주는데

왜 우린 걸어 올라오나 불평들을 해본다.즐거운 마음으로...

급속히 치오른 적상산을 뒤로 둔 이 마을은 참 아늑하단 느낌. 

무주! '무진장'(무주.장수.진안)은 내륙 고원이다. 강원도를 연상시키는 무주는

1읍 5개면이 있고 26,000명의 인구를 가진 군으로 전북.충남북.경남북등 5개도와 영동 김천

장수.거창.함양.금산등  6개군과 접한다.

오늘아침 검색해본 결과이다...

누군가의 꿈속 고향이겠지... '무주'인들의 건투를 빌며, 종일 그 땅을 걷는다.

그 중심에 백두대간, '덕유산국립공원'이 자리한다.

오늘 적상산도 그 일원이다. 

올 겨울은 꼭 설산 덕유를 걸어 볼 것이다.

단풍은 마을 까지 내려왔고

오를수록 등산객들이 점점 많아진다.

예쁜 여인이 가까이 오면 찍어주고 싶으나 오질 않는다..

이윽고 본격적인 산행시작이다.

길을 잘 정비되어 있지만 '향로봉 3거리'까지 3K,  가파른 길이다. 

길은 가파르지만 '지그자그'로 되어 있어

적당히 땀도나고, 숨소리도 가프지만

이내 평온한 길로도 이어지고..

한 주간 전 즈음에 단풍은 절정 이었을듯 하다.

포근히 낚엽은 쌓이고

풀벌레 소리는 이미 조용하다. 깊은 겨울의 적막의 시작인가!

멋진 바위도 만나고

이름은 모르지만 낯익은 산꾼들도 여럿 만난다

이윽고 올라선 전망대..

올라온 서창마을과 건너 산 마루금이 정겹다  

아래로 대전 통영 고속도로와 19번 국도가 시원스럽고

왼쪽 봉은 '안렴대'가 정상으로 있는 봉이다

겹겹히 이어진 산 줄기들...

꿈속 그리움의 몽상적 추상화 같다.

다시 나서니 융단을 깐 듯한 길도 만나고..

'장도바위'를 만나는데...

  장도바위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단다.

 

마치 공연장에서 티켓 구매 줄을 선듯

그리 '지그자그'로  산꾼들은 오른다

최영 장군이 건의하여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 146).

현재의 성은 조선 인조6(1628)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가 8.143에 이른다.

 적상산성 안에는 고찰 안국사 등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운치를 더해 준다.

 

그리고 막바지 오르는 3거리까지의 긴 행렬

아름다운 가을 산행의 모습이다.

삼거리에서 0.7K을 안연히 오르면 "향로봉'이다

오늘 오른 '향로봉'도 '적상산'정상에도 '안렴대'에도 정상석이 없다

시급히 세워야 할 과제인듯..

북쪽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마루금...

연석산.운장산.구봉산...그러나 구분은 못하겠다.

정상에서 만난 정겨운 대장님들과 '장수' 가족들...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빨리 찍으라 아우성이다.

이제 다시 내려가자 오늘 산행의 '오름'은 끝인듯 하다.

반대방향 '안국사'까지 차량이 올라오고 거기서 1.7K이면 향로봉을 오르니

가는 이 오는 이 줄을 서야한다.

다시만난 3거리, 서창에서 2.8K, 안국사에서 1K이다.

여기서 우린 '안렴대'로 간다. 

 

 

 

방금 다녀온 "향로봉'이다.

막상 '적상산' 정상은 통신시설이 자리하고

정상석을 찾아도 없다

'안렴대'!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안렴대'는 사방이 낭떠러지로.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불려진다.

 

또한 병자호란(1636~1637) 때는 적상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흐린날 그래도 이런 운해가 있어 다행이고

당겨서도 바라보는데

어디쯤 될까?

겹겹히 그림처러 펼쪄지고..

 

반대쪽으로 덕유산 줄기가 가깝다

중앙이 '향적봉' 왼쪽으로 '칠봉'과 '거칠봉'

그리고 오른쪽으로 '망봉'이 선명하다. 

이제 내려서니

 벌써 '안국사는 200m란다.

계단을 내려서니 '안국사'다. 여기까지 차량들이 올라오니

인산인해다.

안국사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천년고찰이다.

원래는 지금의  적상호 주차장 부근 인 것을 옮겨왓다는 해설... 

향적봉을 건너다보며 자리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수많은 발걸음이 이어진다.

안국사에서 '적상호'까지는 1.5K이다.

수많은 차량,인파...정신이없다

실록을 보관하는 '적상사고'(史庫)이다.

 적상호로 인하여 위로 이전하여 정비했단다

세종 때 4대 사고(춘추관, 성주, 충주, 전주)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주사고본 실록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었다.

 

광해군 때 전주사고본의 실록들을 토대로 하여 5대사고

(춘추관, 오대산, 태백산, 마니산, 묘향산)정비했다.

 그러나 춘추관 사고는 1624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함락되면서 불에 타 버렸고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간토 대지진으로 일부만 남게 되었고

2006년 국내로 돌아왔다.

 

 또한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부산 국가기록보관소에 있고 ,

마니산 사고 실록은 정족산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있다.

그리고...

   '묘향산 사고' 실록은 이곳 '적상산'을 거쳐

 현재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니까 묘향산 실록이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왔다가

지금은 북한에 있는거다... 실록의 이동과 과정을 봐도

 우리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적상호'에 내려선다.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전망대'를 가야하는데 우린 왼쪽으로 한참을 돌아 일주를 한다.

어느 여름 가족과 함께 여기를 왔는데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양수 발전을 위한 상부댐이다. 전기를 '저수지'처럼 보관할 수 있다면

이런 시설은 필요없으리라

아 그런데 둑을 통제한다. 어찌 다시 되 돌아 간단말인가! 둘은 몰래 통과하기로한다

가다보니 CC 티비가 있고 부지런히 건너 철조망을 통과하고

 

'잡으러'올 것을 대비하여 급히 점퍼을 꺼내 입어 다른 사람인척한다.

붙잡히면 '난 아주 도덕적인 사람이다 이게 다 대장님 책임이다'

그리 둘러 대려고 했다...

거기에 '적상호 전망대'가 있었다. 무슨 전망대를 시멘트 공장 굴뚝처럼 해 놨나?

투덜거리며 올랐는데..

 동서사방 조망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향로봉, 안렴대에서 구분 못했던 것을 이제야 할겠다

덕유산 '향적봉'을 멀리 바라보며 풍광에

넋을 잃는다

산 아래로 '하부댐'이 보인다. 전력이 남을 때 물을 퍼 올리고

전력이 부족할 때 물을 아래로 흘려  전기를 생산한다.

 

저 도로를 따라 수 많은 차량들이 적상호,

그리고 안국사까지 올라온다

적상호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30여대 있었으니...

그 전망대에서의 풍경은 땀 흘려

산에 오름을 무색케한다.

방금 뚝을 따라 도망 온

 댐도 바라보고..

여기서 정겨운 님들을 만난다.

산에 잘 안오르는 '오솔길'의 님도 만났는데

언제든 여인들은 내 곁보다 모두 이대장님 옆으로  간다

그러니 나는 늘 주눅든다.. 

모자를 빨간 것으로 사 볼까?

이제 돌아돌아 '치목 마을'로 내려가자

정상의 바람이 손끝을 아리게 한다.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을 비교해 보자

역시 '박 대장님'의 '훤칠한' 외모는

영원한 나의 부러움이요 '컴플렉스' 다

그렇게 적상호의 걸음을 끝으로

 이제 '치목'마을로 하산한다. 2.7K

어유있는 발걸음에

 마지막 단풍이 반기고

때론 가파르지만 풍성한 낚엽 길이 정겹다

여러 산꾼들도 단풍의 일원이 되고

누구가 뒤에서 가수처럼 노래한다

이런 바위와 단풍에

 탄성을 지르기도 하며

송대! 그러나 가믐으로 풍경은 덜하다

 물이 별로없다

여름철엔 참 좋겠단 생각..

다시 넋 잃는 풍경은 이어지고

경기도 어디서 왔다는 앞 여인을

한 참을  졸졸 따라 내려가니 행복이 더 하다

건너다 뵈는 ..

이게 '병풍바위'인가?

이런 좋은 풍경을 두고 우리 이대장님은 어느사이 안보인다.

설마 나보다 '막걸리' 생각이 앞선 건 아닐거다

거의 도착할 즈음, 멋진 소나무에

아쉼을 달래보고

이윽고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한

'치목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 사람들의 추억이 서렸을 '동구밖' 멋진 소나무들...

고향생각이 났다.

여기서 정겨운 님들이 소박한 안주로 정을 나눈다.

존경하는 '총장'님이 안 오셔서 즐거움은 반감되고...

앞뒤로 거대한 산에 쌓인 아늑한 마을...

자손대대 행복함이 이어지리라..

그리고... 서두에 소개한 '두향' 묘소도 올려본다 (단양, 강선대)

언젠가 가봐야 하지않겠는가?

 

그렇게 시월을 아쉼으로 보내고 11월 첫날의 '적상'의 발 길...

언제 다시 돌아오련다 그리움을 안고... 

 

가을 그리움

이성진

 

단풍이 물들어 산이 예뻐요

어쩌려고 이리도 고운지요

은은한 꽃송이 갈색나뭇잎은

숨이 막히게 멋져 그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

잘 보이질 않아요

 

가을 달에 그대 얼굴 걸려 더 은은한 물빛

마음도 몰라주고 어쩌려고 이리 곱디곱기만 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