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기다림’ 의 추억이라면 어찌 한 두 가지랴!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낡고 해진 훈련복 무릎팎에 희미하게 달력을 그려놓고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 가며 종료일을 기다렸고, 가슴 저린 사람과의 약속 전날 밤은 뒤척이며
꼬박 밤을 새워야 했다.
무엇이든 ‘빨리’의 시절에 우린 산다 점점 기다림이 줄어든다. 밥도 뜸들이는 기다림이
점점 생략되고, 건강검진도 속성으로 결과가 나와야한다. 누구와의 약속도 문자로 수없이
주고받으니 ‘기다림’은 없다. 더구나 가버린 옛 연인은 다시 기다리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천년을 넘어 ‘2천년의 기다림’의 여인이 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끝내
망부석(望夫石)이 된 여인...
‘백제의 여인’이다.
■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멀리 멀리 비쳐 주십시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무 뜻없는 후렴구)
져재 녀러신고요/ (시장에 계신가요?)
어긔야 즌대를 디디욜세라./(위험한 곳에 발을 디디실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아무 곳에나 행상 물건 두고 오십시오.)
어긔야 내 가논 데 점그랄셰라./
(내 남편이 가는데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井邑詞)!,
고교시절 외우느라 무던히도 힘들었던 이 노래는 ‘백제’의 노래다.
행상인의 아내가 남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남편이 무슨 해나 입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달님에게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노래이다.
‘어느 시장에 있습니까? 다 물건 놓고 오시라’를 ‘어느 여인에게 빠져있습니까
다 두고 오시라’ 로 해석하기도 한다
기다리며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덩그라니 혼자임을 느낄 때 내가 누군가에게 기다림의 존재됨을 꿈꿔 본다.
‘정읍사(井邑詞), 그 천년 기다림의 도시 정읍! 거기에 자리한 최고의 단풍절경 ‘내장산’을 간다.
정겨운 님들과 같이,
떠나는 만추의 아쉼을 안고....
내장산 [內藏山/763m)]
단풍나무가 많아 붉은 단풍으로 단풍명산의 대명사인 내장산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산림,
맑은 계류가 어울어진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는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이다
백제여인의 사무친 그리움 때문인가?
종일 아련함으로 안개 빗속을 걸었으니...
언제나 정겨운 '오솔길' 님들..
1코스는 '대가'에서 시작된다. 사람도 풍경도 단풍이다.
내장산은 여러 코스가 있다
3년전 이 코스에서 올랐다. "대가", '순창군 봉덕리' 이지만 "대가(大佳)"이다
'큰 아름다움' 이란 의미일까?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전북 정읍시, 순창군, 장성군에 걸쳐 있는 내장산은 내장사(內藏寺)를 중심으로
월령봉·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에
이르기까지 산줄기가 말발굽처럼 둘러쳐져 마치 철옹성 같은 특이지형을 이룬다.
안개 속에 조망은 전혀 안된지만
정겨운 님들과 함께이니 즐거움은 배가 되고..
송산대장님..늘 잉꼬 모습에 난 심술이 난다.
버스에서 잠이 들어도 같이 든다.
언제나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 그 걸 컬러로 프린트하여
나눠 주는 일을 수년동안 하고 계신 '광산' 선생님..
늘 나의 '나중'도 이런 모습이었으면...간절하다
조망은 안되어도 그림같다 '수묵화'..
그리움의 그림이다
맑은 날이면 조망이 단풍 속이었을 전망대..
아쉼 속에 그래도 님들을 단풍처럼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으리..
오늘 많은 긴 코스를 포기했지만
단풍 못지 않은 정겨운 여인들로하여
백제의 여인으로 인한 아련함 속에서도
종일 즐거웠으니...
'솔'도 그리움일까?
가랑비속 질퍽한 길을 따라
내장산 최고봉 '신선봉' 오른다.
여기서 우측으론 연자봉,장군봉/
좌측으론 까치봉,연지봉,망해봉,불출봉,서래봉으로 간다
내장산은 기암절벽, 계곡, 폭포와 단풍으로 유명하며 월영봉,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장군봉 등의 봉우리로 이어져 있다.
기기묘묘하게 솟은 기암절벽 깊은 계곡 그리고 특히 단풍이 아름다운 천혜의 가을 산이다.
최고봉 신선봉에 서다...
안개비에 급히 점심을 먹고 '까치봉'으로 간다.
내장산의 가을을 대표하는 것은 핏빛처럼 붉은 단풍이다.
이곳에는 국내에 자생하는 15종의 단풍나무중 11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들 나무가 빚어내는 색은 온 산을 비단처럼 수놓는다
이렇게 안개빗 속 오감의 산꾼들이
그림속 한 풍경같다.
어느 여인이 '빨간 모장에 빨간 옷'을 입어
'단풍 같습니다' 그래 놓고는 이내 후회한다.
실수한 건가?
크지는 않지만 오르막 내리막도 적당하고..
비에 젖고, 그리움에 젖고
즐거움에 젖는다
그래도 미끄러운 길을 한 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고
그렇게 종일 '백제여인의 마음'을 헤아린다.
가장 가파른 길인듯 하다
그래도 '호남의 금강'을 걷는 거다
여기서도 조망은 안되지만
멋진 소나무로 달래보고
'까치봉' 에 다다른다.
정겨운 님들과 더 걷고 싶어 '연지봉'까지만 더 가보자고 조르지만
이내 접는다. 하긴, 어딜가도 조망이 없을 것이니..
'까치봉', 신성봉에서 1.5K 안개속
꿈 길을 왔다.
이제 내려가자
'한계령'의 양희은이 이 마음 이었을까?
그 길은 제법 많이 가파르고
길다.
8부능선에 내리니 안개가 걷히고
단풍의 절경이 기다린다.
이런 풍경은 '내장사' 아래의 인공적인 풍경과
'질'이 다른 것이니...
휘파람을 불러본다
한참을 부르며 생각하니 조영남의 '모란동백'이었다
조영남의 모란 동백은 가사가 사뭇 가슴이 찡하다
''♬ 또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 나를 잊지마세요...'
'거기 좀 서 보시라'
사진 찍어 드리는 것도 '사정'을 해야한다
원낙 출중한 인물들이니...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여
마치 '양의 내장' 속에 숨어들어 간 것 같다 하여
'내장산'이라고 전해진다나?
어느 세월 다시 이런 풍경을 볼수 있겠냐고
지나가며 누가 그런다
탄성은 이어지고
단풍에 정신이 혼미하여
동행자 '미시령'은 잊은지 오래인 가을 여인들..
이렇게 찍어줘도
내겐 '주목'을 안한다 세월 탓이려니...
그러니 나도 단풍이나 보련다.
혼미한 눈으로..
겨우 지나가는 어떤 분이 자청하여
찍어준다고 하여 나도 가서 서 보는데
"먼저 셋을 찍고나서 왔냐고" 내게 따진다...
인기가 그리 없다 내가..
방금 내려온 까치봉도 올려본다...
점점 길은 평온 해 지고...
`'만산홍엽(滿山紅葉)
이 말이 맞던가?
한자가 틀리면 망신인데...
이윽고 내려선 계곳...절경이다
사방에서 내려온다
사람도 풍경도 한 그림이고
이럴 줄 알았으며 더 독서하고 공부할 건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고 싶지만
곁에 뉘 있으랴!
'꿈도 야무지다' 그럴거다
영화처러 흘러간다
그 풍경들이...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라하여 찍어본다.
이 나무를...
내가 나인지 혼란스럽다
꿈속을 걷는듯 하여..
술취해 본 경험이 없으니 ..
그 기분이 이 기분일까?
"두 길이 노란 숲에 갈라져 있었다.
두 길 모두 갈 수 없어 섭섭했다.
한 길을 가야 해 한참 서 있었다"...
고교시절 배운 '가지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라는 미국 시인의 시가
이젠 외워지지않는다.
아 세월이여!
이윽고 '내장사'...
언어 표현력에 한계, 그것이다..
풍경을 찍는다
아래 두 여인은 모르는 분이고...
우측 위로 '서래봉'이 보인다. 3년전 저 봉까지
여러봉을 걸었다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슬 무게에 떨어지는 건 도리가 없어도...
사방 어디을 눌러 봐도 그림이다.
이런 풍경을 두고
무슨 말이 필요하랴...
시인,작곡가, 화가 이 셋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가슴의 그리움을 글로, 곡으로, 그림으로
풀어 낼 수 있으니...
사진을 찍으려니 왼쪽 귀퉁이가 자꾸 바람에 흔들려 촬영이 안되자
지나가던 아저씨가 잡아준다.
고맙긴 하지만 '여인'이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이제 정겨운 님들과도
하루 마감하나 보다.
뒤로 다시 산을 보기도 하고..
'우화정'
멋진 풍경 이지만 정자가 좀 안 어울린다
경복궁 '향원정'풍으로 지었으면 좋겠다
'정자가 승천.하여 '우화정'?
그렇구나 '향원정' 풍은 취소다 무거워선 안되는 거구나...
셔틀 버스가 오가지만 걷는다
좀 천천히 님의 손을 잡고 걸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팔짱' 까지는 욕심이고
정겨운 님과 손잡고 1키로 말고 100 미터만 걷고 싶단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게 다 단풍 때문일까? 이슬비 때문일까?
"백제의 여인' 때문일까?
이렇게도 서 보고
그리움을 달래본다
'같이 찍자' 그런 소리 할 분들이 아니다
처음으로 체면불구 붙어 서 본다.
미안하여 웃는다.
내려오면서 누가 찍어준 거다
누구더러 '같이 서자' 그럴 용기가 없다
내 '주변머리'로는...
그렇게 하루를 접어보면서
종일 같이한 고마운 님들을 모아 보고
오랜 세월후 모두 이 풍경을
추억으로 회상하겠지
내고향 충북의 옥천 출신 '정지용'
어릴적 이 시가 '이발소 액자'에 그림과 휘어진 글씨로 있었다.
그 그리움의 노래 둘을 적어보며
하루를 접는다
향수/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뀡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 불던 뿔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 높푸르구나
동백아가씨/ 한산도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처서 울다 지처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못할 그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山行..그리움따라 >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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