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고향 ‘淸州(청주)’는 무지 추웠다.
거뜩하면 아침에 문을 열면 눈이 쌓여 있었으며, 먼 산은 겨울동안 만년설처럼 하얗게 있다가
봄바람이 불어야 녹았고, 바닥까지 얼어붙은 동구 밖 연못은 겨울 내내 썰매등 놀이터였다.
아침에 군불 때는 가마솥 끓인 물에 찬물을 조금 섞어 대야에 받아 마당 끝에서 이른바
‘고양이세수’를 했고, 때가 끼어 불어 튼 ‘손등’은 비누대신 ‘쇠여물’ 물에 쌀겨를 묻혀 지푸라기로
문지르기도 했다.
가끔 학교에서 예고없이 손등 ‘때’검사 할 때면 손등에 침을 발라가며 부지런히 바지 엉덩이에
쓱쓱 문지르기도 했었지.
양철통에 당김 ‘구리무’가 아쉽던 시절....
고양이 세수 후 추위에 몸을 떨며 부지런히 뛰어 방으로 들어 갈라치면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
붙었다. 그래서 어느 집은 그 문고리를 헝겊으로 돌돌 말기도 했다.
인기척이 나면 밖을 빼꼼히 내다보던 ‘작은 유리’와, 코스모스 꽃잎 붙인 그 ‘한지 문’과 그 까맣고
동그란 ‘문고리!’ 갑자기 사무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산 봉우리 이름에도 이 ‘고리’가 있다. 이름하여 ‘고리봉’(환봉還峰).
옛날에 경상도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배 끈을 묶는 쇠고리를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두었다 하여 ‘고리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南原(남원)에는 ‘고리봉’이라는 이름의 산이 두 곳에 있다.
지리산 ‘성삼재’가까이의 ‘고리봉(1,305m)’과 오늘 산행지, ‘주생면·금지면·대강면’에 걸쳐 있는
고리봉(還峰 708.9m))이다.
'한국의 산천'이 선정한 전북의 아름다운 5대 암산은 ‘대둔산,장군봉,구봉산,고정봉,고리봉’이다.
모두 소나무와 어우러진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한다.
오늘 삿갓봉(629m) 고리봉(708.9m)은 높이로야 동네 뒷산 급이지만, 동·서 양쪽 사면에 거대한
바위병풍을 연상시키는 바위 봉우리들이 거칠고 빼어난 암골미로 남원의 ‘용아장성(설악산)’으로
불리며 많은 설화와 전설을 간직한 전북의 명산이다.
특히, 고리봉(還峰 708.9m)은 남원에서 ‘지리산’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로 꼽히는 봉우리다. 東으로
지리산을 비롯하여, 곡성 동악산, 광주 무등산, 순창 강천산 등 호남 일원의 고봉준령과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은 물고기비늘처럼 반짝임으로 조망이 뛰어나다.
여름이 서서히 가려는, 늦 매미소리도 정겨운 계절,
정다운 님들과 그 산을 간다.
오늘 산행의 출발은 '상귀 3거리' 다. '고리봉'까지 6.3K라는데
중간의 이정표로는 5K, 오르내림의 '힘듦'으로는 10K 도 넘는듯 하다.j
아직은 햇살이 뜨겁다. 출발지의 마음들은 3시간이면 안되겠는가
'만만이' 생각한다.
중간중간 만나는 '밤'도 익어가고
뜨거움 속에도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이 다가옴을 몸으로 느낀다.
끝없는 '금지평야'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끝이없다.
전라도 땅들의 광활함에 다시 놀랜다.
작년여름 올랐던 섬진강을 경계로 가까이 뵈는 곡성의 "동악산" (動樂山)!
'樂'자가 '락'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즐거울 락' 이 아닌 '풍류 악'자이기 때문이다.
즉, 음악이 울리는 산이라는 뜻의 산명을 가진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렸다
.
산행내내 이어지는 금지평야 뒤로는 지리산의 장엄함이 정겹게 이어진다.
겹겹히 다가오는 마루금.. 언제나 그 아련함은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아침의 안개 자욱 함은 구름되어 저렇게 높이 떠올랐다.
포근한 마사땅과 솔비는 융단처럼 포근 하지만
그 평탄길은 길지않다. 계속 오르내림..
지나온 길도 되돌아본다. 그렇게
아래 '섬진강'을 향해 뻗은 또 다른 산줄기..
암반의 흘러내림이 가득하다
끝없는 오름과 내림이 만만한 산이 아니다
경치 못지않게 힘듦도 있다
고될수록 마음과
'파프리카' 한 조각의 나눔은 더 정겹다
지리산 서북능선(노고단.만복대.바래봉)이 선명하고
그 뒤로 반야봉도 ..
한참을 그리 오르니 드디어 '고리봉'이 조망된다.
멋진 풍광에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렇게 높은 곳에 '충장공 천만리 장군' 묘소가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병 2만명을 인솔하고 이여송을 따라왔단다
그의 임진,정유재란의 승전은 부산 울산등 전국 여러 곳에 사당, 공덕비등으로 남아있고
후에 귀화하여 '千'씨의 시조가 되었다.
공적 400년후, 순종때 '충장공'이란 시효가 내려졌다
'천'씨 후손들의 정성과 자긍심이 산소에 가득하다.
뒤로는 고리봉을, 앞으로는 광활한 금지평야와 지리산을 바라보는
이 곳은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천하 명당인듯하다.
이윽고 처음만난 이정표, 고리봉이 이제 1K 남았다
여기서 만학동 계곡으로도 내려간다.
이제 훤하게 '고리봉'이 조망된다.
우측으로는 '삿갓봉' 코스이다.
조망되는 '고리봉'에서 '삿갓봉' 가는길
여기서 보는 길은 저리 평온한데 암릉길의 오르내림이
후들거릴 정도였다.
산 곳곳에 산성의 흔적이 있다
치열하게 살다간 조상님들의 고달픈 삶도 쌓여 있겠지
그 오르내림은 곳곳에 위험한 코스가 기다리고.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표지판을 무시하고
우쭐하여 3명이 그 길로 갔다가
겨우 전깃줄 의지하여 위험하게 내려왔다.
살아온것이 다행이다.
더 겸손해야겠다 마음 먹는다
이제 마지막 고리봉 오르막이 남아있다
포기하고 만학골로 내려가는 이들도 있다.
산행 내내 조망되는 평야의 광활함은
경탄 그 자체였다.
그렇게 힘들게 기어 가다싶히 고리봉을 향한다.
아! 그 정상엔 잘 관리된 김씨들 묘소가 차지한다.
그 후손들의 정성이 놀랍다. 정상석은 비켜나 있고
동서사방 거침이 없는 '고리봉'에서
그렇게 폼을 잡아본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삿갓봉'을 포기하고 '만학골'로 내려선다.
좌측으로는 '약수정사'로도 내려간단다.
힘든 오르내림은 '고리봉'으로 마치는 줄 알았다.
그 기대는 더 가파라진 길에서 사라진다.
곳곳이 참 위험스럽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내려오다 되돌아 본 고리봉이다.
그 평야와 지리산 마루금의 동양화 그림은 끝없이 이어지고
들판은 어느덧 가을이 내려온듯 노랗다
밧줄잡으며 그렇게 '삿갓봉'을 향한다.
앞뒤로 동행자가 없어 걱정스럽게
'삿갓봉'그너머 '문덕봉'도 조망되고
안개로 썩 좋은 조망은 아니라도
이게 어딘가! 비온다던 날 이었는데..
감사한 날이지..
내려온 고리봉을 다시 올려다 본다
보기에는 편한 길 같은데 그리 위험한 내리막이다.
반대쪽 섬진강의 멋진 'S라인'!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천송이 전지현' 만큼은 아니라고 힘주어 부인하지만
멋지긴 멋진 모습이다. 자꾸 전지현으로 향햇던 마음이 흔들거린다.
이윽고 3.53K를 오르내려 '삿갓봉'이 30미터다
다녀와야한다.
반대코스 문덕봉쪽에서 출발하여 엄청 달려온 李대장님과
반갑게 '삿갓봉'에서 만나고
이 분들은 '비홍제'에서 출발하여 역으로 왔다
대단한 산꾼들이다. 겉으론 자신만만하지만 '죽을 뻔' 했을거다
언제나 존경스러운 대장님들..
든든하다.
이제 내려가자
다른 코스로 내려간 분들이 기다리겠다
건너다 본 '문덕봉'.. 언젠가 나도 '그럭재, 고정봉으로 이어진
그 길도 가봐야 한다.
내려올수록 그 풍광은 더 선명하고
내려갈 골의 산들은 더욱 푸르르다
고리봉을 배경으로 자세를 가다듦고
아! 그런데 길이없다.
길을 만들며 미끄러지기도하고..
이제 안연한 땅으로 내려온다.
오래오래 잊지못할 멋진 풍광의 조망이 가득한 산행이었다.
오늘 동행한 '장수'의 회장님이 거금을 들여
유명한 남원의 '추어탕'을 전회원들에게 대접한다.
비싸기도(8,000원) 하지만 우거지 가득한 뚝베기 추어탕은 일품이다.
회장님과 산행대장님 그리고
친절한 총무님과, 정겨운 회원들의 헌신이 가득한 산악회이다.
산행내내 그리고 오면서 버스안에서도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다.
정들 것 같다 점점..
오늘 산행지도는 그렇게 간단히 보였는데...
산행내내 평온했던 '금지평야'를 다시 모아본다.
어느 산꾼은 '엉덩이 크고 뚱뚱한 사람'은 고리봉을 가지말라고 하여
무슨 소린가 했더니
아름다운면서도 경외스럽게 느껴지는 골산, 육산 자락은
그렇게 길고 낮게 늘어뜨려 사람을 받아들인 다음, 그 안에 숨어 있는 대자연의 험난함과
멋스러움을 함께 보여준다.
멋진분들과 그 또다른 추억이 된 하루..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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