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살아있는 한국역사 스페설’ 30시간 원격연수를 받은바 있는데 그 중
‘팔만대장경’에 관하여 아주 감동적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다.
지금부터 750년전, 고려사람들은 목판 8만여 장에 글자 수 ‘5천만자’로 깨달음의 진리를
새겨 넣었는데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이지만 경판 수가 8만여 장에 달한다하여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8만장의 경판.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분량일까? 경판 한 장의 두께는 4cm, 따라서 8만장을
전부 쌓으면 그 높이는 3,200m에 달하며 백두산(2744m)보다도 훨씬 높은 셈이다.
글자 수를 한번 보자! 경판엔 漢字가 빼곡히 앞 뒷면에 모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한 면의 글자 수는 대략 300자 정도, 전부 합치면 5천만 자나 된다.
흔히 우리가 뜻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하루에 넉넉잡아 4-5천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전체를 읽어내는 데는 ‘30년’이란 세월이 걸리게 된다.
특히 준비에서 완성하기까지, 총 1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1-2m짜리 통나무 1만 5천개가 필요했는데, 벌목에 동원된 인원, 목판에 필사하는 인원이
하루에 한 사람이 천자 정도 쓸수 있다고 보면 5천만자를 전부 써 내자면 연인원은 5만명이
필요하다.
필사에 소요된 한지도 꼭 필요한 양만도 16만장, 실제론 그 3배인 50만장쯤
있어야 했고 한지 제작을 위해서도 연인원 만명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판각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새길 수 있는 글자는 40자 정도로 보면 경판의 총 글자수가 5천만자이니
필요한 조각가가 연인원 125만명에 달한다.
그밖에도 경판에 옻칠을 하기 위해선 대장경판 전체에 필요한 옻액은 총 40만g! 이 정도 양을 채취하자면
연인원 천명이 동원돼야 한다.
이 외에도 내용을 교정보고, 구리 장식을 만드는 것, 게다가 제작을 뒷바라지하는 사람들까지고려하면
그 수는 엄청나다. 이렇듯 팔만대장경의 완성은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그것은 고려 5백년간 가장 큰 국책사업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경판들은 오랜 세월도 비켜간양,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이 처럼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것 외에도, 질적으로도 아주 우수하다는거다.
마치 숙달된 한 기계가 이 모두를 만든 것처럼 판각 수준이 일정하고, 오자나 탈자도 거의
없다. 그래서 이것은 '목판 인쇄술의 극치다','세계의 불가사의다' 이런 찬사를 받고 있다.
이 모든 비밀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성“이리라... 밤새워 부채질로 약을 다리더라도 현대 과학기술의 기계에 비하면
성분이 못 따라 가리라... 그러나 자녀나 부모님의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며 기우린 엄마나
자녀의 정성을 어찌 수치로 논할 수 있을랴...
정성의 값어치가 점점 과학이 주는 편리성과, 성과위주의 물결에 밀리지만 오늘도 우리는
’우보천리‘, ’정성‘! 그 소중함을 기억하며 산행을 준비하고 오늘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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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가믐의 즈음에 단비가 온다고 예보 되었다.
아쉽지만 봄 날의 산행은 포기해야 했고, 가까운 둘레길이나 비를 맞으며 걸어보자...
그렇게 경북 고령으로 달렸다.
경북 고령군 개포리는 처음에는 ‘산이 열린다’는 뜻인 개산포(開山浦)라 불렸다는데
그러다가 강화도에서 배로 도착한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면서
‘경전이 도착한 포구’라 해서 개경포, 또는 장경나루라 했다가 일제강점기에 개포로
바뀌었단다.
개경포는 철도와 도로가 발달 하기전 근대까지 낙동강으로 올라오는 물산의 집결지로
영남 내륙에 곡식과 소금 등을 운송했을 만큼 큰 나루터였으니 주막등 시끄러웠을 포구..
지금은 산업화에 밀려 북적이던 나루는 옛이야기가 됐다.
비오는 날 ‘너울길’은 최고의 경관이었다.
솔숲 오솔길 아기자기한 운치… 모퉁이 돌 때마다 낙동강 비경...
흘러가는 인생의 길처럼 길은 그렇게 흘러갔다.
▲강화판당에 있던 대장경은 여기 장경나루까지 배로 왔고
여기서 40K, 해인사로 이운 되었다.
▲경북 고령군 개포리는 처음에는 ‘산이 열린다’는 뜻인
개산포(開山浦)라 불렸다는데
▲ 그러다가 강화도에서 배로 도착한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면서
‘경전이 도착한 포구’라 해서 개경포, 또는 장경나루라 했다가
일제강점기에 개포로 바뀌었단다.
▲여기 개경포공원에서 해인사까지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40K)이 조성되었다.
▲개경포에서 부례광광지까진 5K.
애마는 건너에 세우고,
▲ 역사는 흐르고
강물도 흐른다.
▲'개경포 너울길' 출발점 개호정.
11K. 길을 돌와온다.
▲ 조선 선조 때 송암 김면, 옥산 이기춘, 청휘당 이승 등
‘낙강칠현’으로 불리던 선비들이
▲ 봄은 거기에도 와 있고.
▲ 개산의 험한 길을 뜻하는 지촌 박이곤(1730~1788)의
‘개산잔(開山棧) 시비’.
▲산의 굴곡에 따라 들고나는 오솔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강물에 비친 낙동강의 비경은 펼쳐지고.
▲ 묵은 낙엽이 수북한 길을 걷는다.
삶도 인생의 길도 이러하리라
▲지금은 빈터만 남은 ‘어목정 유지’ 표석이 있는 빈터
임란 창의사 양죽당 박정완(1543~1614)이 지었다는 정자터
▲비가내린다
빈터만 남은 처연한 쓸쓸함처럼.
▲솔 갈비 수북한 오솔길
어린시절 나무하러 간다는 형들 따라 다녔던 길 같다.
▲개경포 너울길 안내도와
박이곤의 ‘낙강구곡 ’중 1곡 시비가 있는 부례관광지.
▲ 어드벤처 체험장 부례관광지
▲ 개경포 너울길은 여기서 끝나고
임도를 따라 걷는다.
▲넓은 청운각주차장.
거기서 조망을 즐기고
▲그러나 안개는 강물을 덮었다.
▲청룡산 MTB(산악자전거)길은
4대 강 자전거 길 중 아름다운 곳 20선에 선정될 만큼 경치가 빼어나
▲ ‘2016년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자전거 길 100선’에 선정됐다.
▲개경포 너울길 최고의 전망...
멀리 북동쪽 큰 산군은 비슬산이며, 물돌이하는 낙동강,
▲고령의 옛 '대가야' 박물관.
ㅣ
▲그 뒤로 신비로운 고분군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적 제79호 '고령지산동 고분군'
대가야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5세고 초엽부터
멸망하는 6세게 후엽꺼자지의 지배층의 묘역이다.
▲700여기의 봉토분.
▲신성한 공간임과 동시에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그 시대의 정신세계가 반영되었다.
▲순장문화의 흔적..
그 시절이나 오늘날이나 지배층들의 횡포를 보기도 했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드른
'대가야왕릉전시관'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최대규모의
순장무덤인 44호를 재현해 놓았다.
▲전설이 된 대가야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모습,,,.
▲ 가야의 이름들은 자료마다 다르다 대략 오늘날 성주는 성산가야
김해의 금관가야/ 고성의 소가야/ 창녕의 비화가야/함안의 아라가야 등.
▲대가야 박물관.
▲해는 지고 서둘러 찾아간
우륵박물관.
▲ 우륵, 왕산악, 박연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이다.
▲이미 문은 닫히고.
▲ 가야금 전수 교육관, 가야금줄 제작 체험장,
연주 체험실등 시설이 갖춰졌다.
▲ 금장지..
한민족의 악기가야금을 만들던 고을이란 의미.
▲ 선생님 한 수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봄비내리던 날, 바쁘게 걸었던 역사의 고장 고령...
영원한 발전을 기워하며 거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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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내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고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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