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金炳淵‘
1807년에 태어나 1863년에 죽었으니 우리보다 150년 먼저 산 사람이다.
조부인줄도 모르고 과거시험에 문제로 나온 김익순(金益淳)를 조롱하는
시로 장원급제했다가 그게 조부인줄 알고 고통을 토해내는 방랑생활하며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시를 남긴 기행의 시인.
그가 태어난 양주에 유적지 조성되었고, 그의 무덤이 있는 영월은 ‘김삿갓면’이
생겼고 문학관도 건립되었다.
전국을 방랑한 그가 특히 애착을 가진 곳이 전남 和順이다. 그는 쉰일곱에
거기서 죽었다.
그런 ‘화순’에 오랫동안 가보기를 원했던 한 사찰이 있다.
운주사(雲住寺). ‘구름이 머무는 곳’...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운주사를 그리 가보고 싶었던 것은 가슴에 박힌
시 한편 때문이다.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의 이 시는 서울 광화문의 교보빌딩 벽에 내걸려 더 유명해졌다.
거대하고 황금 찬란한 위압적 모습이 아닌, 민중 친화적이고
퇴근 무렵 사가지고 간 만두나 찐빵이라도 내어놓으면 당장이라도 둘러앉아
다들 맛있게 웃으면서 먹을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석불들...
그러면서도 새 세상을 바라는 민중의 염원을 담고 있는 와불!
천불 천탑(千佛千塔)의 거기를 가 보려한다.
위로의 풍경소리,
그리움의 그 풍경을....
운주사 와불/ 강우식
부처님도 남녀가 같이 누우니
아름다웠다.
온돌방 같은
돌판 위의 운주사 와불.
사랑이었다.
캄캄 눈먼 사랑이었다.
사랑도 눈먼 사랑이 좋았다.
부처님도 중생도 같았다.
나는 천리 먼 길을
이 와불 한 쌍을 보기 위해
그녀와 왔다.
사랑이 돌이 되어 변치 않고
그저 남녀가 누워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사랑이 돌이 되어 변치 않고
그저 일심동체면 되는 것을 보기 위해
사랑이 돌이 되어 변치 않고
그저 부처님도 남녀인 것을 보기 위해
사랑은 비움으로써 환해지는 것이 아니라
있음으로써 없음을 채우는
물상임을 보기 위해 예까지 왔다.
사랑은 둘이어야 됨을
부처님은 묵언하고
행실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죽어서도 저 와불처럼
천만년 남아 있으리.
내 마음속 소망을 그녀에게
말없이 보여주기 위해 왔다.
그녀가 내 손을 가만히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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