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전라도

전북진안.운장산(雲長山1,125.8m)/피암목재→활목재→서봉(칠성대)→운장대(정상)→동봉(삼장봉)→내처사동 7.5Km(5시간)

산꾼 미시령 2019. 12. 15. 21:41

구봉(龜峰)'송익필(宋翼弼)'

1534년 생이니 우리보다 420년쯤 앞선 사람이다. 그의 부친은 당상관(堂上官)벼슬을

지낸 송사련(宋祀連)이다. 그가 살던 조선중기는 사림의 당쟁이 격화되어 분열과

반목의 시기였다.

 

 송익필은 천재였다. 7세에 이미 붓을 잡았고 뛰어난 시문(詩文)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스스로 책을 보고 이치를 깨우쳤고. 이십대부터 학문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들인 율곡 이이(李珥), 송강 정철(鄭澈) 등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안에 파란이 이어졌다. 부친 '송사련'은 어머니가 좌의정 '안당(安瑭)'

부친의 몸종의 딸로 비천한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안당 집안에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모의하는 것을 듣고 이를 밀고하여

신사무옥(辛巳誣獄)의 참변이 일어났다.

 

 그 결과 안당 집안은 몰살되었고 이런 밀고의 댓가로 송사련은 당상관으로 출세하며

안당 집안의 재산까지 차지하여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 가기 못했다. 안당의 신원이 회복되면서 송익필의 가문은 안당 집안의

철저한 복수에 시달리게 되었다. 밀고자의 집안이라는 세간의 악평과 천출이라는

신분의 제약 때문에 벼슬보다는 학문에만 몰두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는 학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원한 깊은 안당 집안의 복수로 말년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처지가 역전되어 이제는 안당 집안의 노비가 될 처지에 빠진 송씨 집안 사람들은 이름을

바꿔 뿔뿔이 도망쳤고 안당의 후손들은 송사련의 무덤을 파헤쳐 복수를 했다.

 

 송익필 역시 도망자 신세가 되어 율곡, 정철 등에 의지하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이듬해인 1599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 달 보름달 밝기는 하루 뿐이고 백년 인생에 화려한 날 또한 그러하리란 그의 시...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권력이 한 세대만에 다시 역전 되어버린 송씨 가문의

영욕이 그의 시에 서려 있다.

 

 진안(鎭安) 고원(高原)의 진산인 운장산(雲長山)

 원래 '주출산'이었는데 구봉 송익필의 자를 따서 '운장'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운장이 말년에 정여립(鄭汝立)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을 때 이 곳 운장산에

은거한 옛 일에 기인한 일이다.

 

 한 많은 그의 아픔이 서린 진안고원의 운장산(雲長山 1,126m)!

2년여만에 거기를 다시 걷는다.

정겨운 님들과 같이....

 

진안고원의 운장산(雲長山 1,126m)

거기를 다시 갑니다.(빌려온 사진)

 

▲ '산으로 산악회'를 따라

정겨운  '오솔길'도 동행 했지요.

 

▲ 2018년 1월 28일의 추억,

어느덧 두 해가 지나갑니다.

 

▲  운일암(雲日岩), 반일암(半日岩)으로 유명한

대불천(大佛川) 계곡을 지나 오른 

'피암목재(동상휴게소)

 

 

진안군과 완주군 경계인 피암목재에서

금남정맥을 타고 활목재를 거쳐 ..

.

서봉 정상에 올라선 다음,주봉- 동봉를 거쳐

동봉 북릉을 따르다 내처사동으로 내려서는 코스입니다.

 

동봉 북릉과 사봉 북릉 사이의 골짜기인

독자동계곡을 따르다 활목재로 오를 수도 있지만

피암목재 기점 코스에 비하면 찾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 사랑은, 그리고 우리는

숲을 닮았습니다.

 

▲ 눈 덮힌 겨울 산을  기대했지만

눈없는 겨울산의 삭막함.

 

▲ 운장산뿐 아니라

다시 찾는 산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산이 이리 힘든 곳이었나?.

 

▲ 웃고 있지만

여기까지도 '아이 구구구"를  여러번 했지요.

 

▲ 그 날은 눈이 있고,

매서운 추위가 있고,

바람이 있었지만 오늘은 온화하기 그지없습니다.

 

▲ 올 한 해도 저물어 갑니다.

50곳 가까이 산행중

크게 실수 하지 않고 다닐 수 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었습니다.

 

▲ 이윽고 열리는 조망...

완주군의 여러 산들입니.

 

▲ 우측이 서봉, 좌측이 주봉인데...

까마득한 오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요.

 

▲ 1.6K를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600m는 앞사람 엉덩이가

코에 닿을듯 가파름의 연속입니다.

 

▲ 바람이 있고,나무가 있고,돌이 있듯

인생도 관계들이 없다면

 

그래서 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 없다면,

전혀 아름답지 않을 겁니다. 인생은...

 

'활목재'

'함평노공원상 지묘'가 있고

여기서 독자동 계곡을 거쳐 외처사동으로도 갑니다.

 

▲ 1년이라는 세월이 빠르게 흘렀고

우리도 변했는데 삶의 현실은

아직 겨울인듯 합니다.

 

▲ 그러나 이 숲에도 봄이 오고,새가 오고,

우거짐의 숲이 되고

어느시절 그리운 님이 또 여기를 지나겠지요.

 

▲ 햇살에 언 땅이 녹듯,

삶의 고단함도, 슬픔도, 그리움도 녹는 것일까?

 

▲ 서봉은 100m를 더 올라야 하고

여기서 우측으로 연석산으로도 갑니다.

 

진안은 마이산, 부귀산, 구봉산등 주변산이 너무 유명하여

운장산은 밀렸지만.

찾을 때마다 참 좋은 산이란 생각이 간절합니다.

 

모든 산 길엔 값이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오르니 실망스런  조망은 아닐 겁니다.

 

운장산을 예찬한 전북 명승고적의 소개지 '하늘과 땅사이'에는

  운장산 삼연봉을 ...

 

'북으로는 대둔산의 기기묘묘한

바위병풍이 평지에 솟았고

  멀리 계룡산의 연봉이 실루엣을 이룬다 소개합니다.

 

▲ 드디어 서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주봉인 운장산, 좌측은 동봉인 삼장봉입니다.

 

서봉(칠성대, 1120m)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있는 ...

서쪽으로 '오성대'가 있는데 서두에 소개한 조선중종 때의 서출이었지만.

 

율곡과 함께 조선8대 문장가로 꼽힌

성리학자 송익필이 은거 했던 곳입니다.

 

그의 문하에 김장생, 김집등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고,

그 송익필의 자()가 운장(雲長) 이었기에

이 산의 명칭이 운장산(雲長山) 이 되었답니다.

 

멀리 남쪽으로는 팔공산,

지리의 천왕봉이 모이겠지만...

구분은 어렵습니다. 

 

▲  남서로는 전주시내가 보이고,,,

모악산과 무등산...그리고 덕유의 능선이 아몰거립니다.

 

▲ 우리는 상여바위- 중봉으로 갑니다.

 

▲ 아찔한 데크 길을

내려오기도 하고

.

▲ 상여바위에 올라 서봉을 되돌아봅니다,

우측으로 대둔산이 선명합니다.

 

▲ 상여바위..

좌측으로는  병풍바위라 합니.

 

▲ 후들 거리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고.

 

▲ 겨우겨우 내려왔습니다.

모양이 상여라서 상여바위일까?

 

▲ 상여바위에서 바라본 주봉,

좌측으로는 삼장봉.

 

거기서 일행을 만나 점심을 나눕니다.

비닐쉩터의 장점은

맛있는 것을 몰래 먹을 수 있는 겁니다.

 

누가 지나가면 소리를 낮추고

그래도 분수 없는 어떤 이가 '뉘 아니냐?' 물으면

 

아닌척 저음으로 '우린 청주에서 왔는데요'....

특히 오늘 같은 맛있는 날은 더 그래야 합니다.

 

 

중봉인 '운장대(1126m)에 섭니다.

동봉(삼장봉.1133m)보다 7m낮고, 서봉(칠성대 1120m)보다는 6m 높지만,

운장산 중심 산이기에 충분합니다.

 

▲ 높이만 높다고 주봉인 아닌 것 처럼

오늘  필자에게 키 갖고 주눅들게 하는 '꺽다리들'은 잘 들어야 합니다.

 

▲ 여기서 ,북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으로 유입되고

서쪽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만경강, 금강으로 흐릅니다.

 

▲ 동봉으로 가는 600m는

깊에 내렸다 다시 곧게 올라야합니다.

 

눈을 돌리면  골골이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날씨 좋은 날에는 군산앞 바다까지 조망되기도 한답니다.

 

금남정맥에 자리잡은 운장의 조망은

어디를 봐도 아름답습니다.

 

▲ 그렇게 깊게 내려와 만나는

소나무.

 

여기를 지날때마다 생각납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

샛바람에 떨지마라'

 

민주화 데모시절 목놓아 불렀던 노래....

안치환이 생각납니다.

 

▲ 까마득히 내려왔지요.

 

▲ 그 해 겨울 그리운 님들은

이렇게 벌벌 떨었습니다.

저요? 용감하게 저벅버벅 내려왔지요 저는.

 

▲ 거기 기막힌 조망터에

서 보기도 하고.

 

▲ 앉아보기도 하지만

안 떨리는 척 하는 겁니다.

 

▲ 젊은 분들이 오르며 '78학번'이란 소릴 해서 되돌아 보며

78학번이요? 제가 78학번인데....

그러니 78년생이랍니다.

 

▲ 동봉인 삼장봉은

저리 아찔합니다.

 

필자도 서 봅니다만

훨씬 더 무서운 곳....

 

남쪽 으로는 부귀산 너머로

마이산 두 귀가 보입니다.

 

동봉인 삼장봉(1133m)

중봉인 '운장대(1126m)보다  7m높고,

  서봉(칠성대 1120m)보다는 13m 높은 최고봉입니다.

 

이제 떠나려 합니다.

 우측이 서봉, 가운데가 상여바위, 좌측이 중봉...

 

 되돌아보면 다 멋진 것을..

우리의 삶도 그러겠지요.

 

▲ 백두대간을 제외하면

연석산~운장산~구봉산 종주코스는  

전북 일원에서 가장 장쾌한 능선 종주 코스입니다.

 

▲ 이제 우리는 내처사동(2.8K)으로

내려갑니다.

 

▲ 계속된 내리막의 연속

눈 덮힌 산죽 터널 길들....그리움이 되었습니다.

 

▲ 종일 동행하며 필자의 폰으로만 사진을 찍었어야

여러번 올릴건데 아쉽습니다.

 

인생은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것

세월이 흐르듯, 삶이 흘러가듯

시간도 그렇게 가고, 인연도 그렇게 갑니다.

 

머물고 싶은 순간들..

바람을 질투하는 햇살이 아름답습니다.

 

이 나무들이 하늘 위로 뻗어 나가고 있지 않다해서

잎이 풍성하게 돋아있지 않다 해서

 

그리고 탐스런 열매가 때론 없다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나무가 아닐 것일테니....

 

그런 사색으로 걷다보니

종착지 내처사동.

 

동네 이름을 그냥 안처사골, 바깥처사골,,,

리 부르면 더 정겹겠습니다

 

▲  일제 강점기는 아름다운 이름들을

억지로 한자어로 바꿔

우리말의 멋을 잃었습니다.

 

누군가의 그리운 고향, 진안....

인삼의 고장에서의 행복했던 하루가 저뭅니다.

 

▲ 한 많은 생을 살다간 조선의 문장가

구봉(龜峰)'송익필(宋翼弼)'

그의 자를 따 이름 세겨진 운장산...

 

산이 첩첩 쌓여 있고,물이 겹겹으로 흐르는

그리운 진안,

그렇게 정겨운 님들과 함께 했던 감사한 하루...

 

  한 햇동안의 안전한 산행...

그리운 애인처럼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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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月(망월)/ 宋翼弼(송익필)'

未圓常恨就圓遲 (미원상한취원지)

圓後如何易就虧 (원후여하이취휴)

三十夜中圓一夜 (삼십야중원일야)

百年心思總如斯 (백년심사총여사)

 

보름달이 되기 전에는 더디기만 하더니

보름달이 되고 나서는 어찌 그리 쉬 기우는가

서른날 가운데 둥글기는 단 하루 뿐

우리네 인생 백년도 이와 같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