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아! 지리산

아! 지리.한신계곡(智異山 韓信溪谷/ 백무동-첫나들이-가네소-오층폭포-백무동(왕복, 11K, 4H)

산꾼 미시령 2019. 8. 12. 06:48

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리게 되었고,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는 지리산...

 

  계곡과 절벽 사이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자랑하고 수 많은 계곡과 폭포를 끼고 있는데,

구태여 7대 계곡, 7대 폭포를 열거한다면 뱀사골, 칠선, 한신,대원사,중산리,피아골,

화엄사계곡과 폭포로는 불일, 구룡, 무재치기, 칠선, 가내소, 법천, 용추폭포을 들 수 있겠다.

 

  그 중 명승 제72호 지정된 한신계곡(韓信溪谷)!

  함양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평전까지 약 10에 이르는 계곡으로 계곡을 따라가자면

첫나들이·가내소·오층·한신폭포 등의 폭포와 계곡을 감싸는 울창한 천연림이 경승을 이루는 곳이다.

 

  한신계곡은 한 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끼는 계곡이라는 의미에서 불린다고도 하고,

계곡물이 차고 험난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심하다고 해서 한심계곡이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고도 하며,

 

  옛날에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영롱한 구슬이 구르는 듯 맑고 고운 물 줄기가 사철 변함없이 이어지는

한신계곡,  거기를 간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세석으로, 영신봉으로 그리 올랐던 그 계곡을...


▲ 여름이 짙어진

'말복' 아침, 정겨운 '오솔길'은 백무동에 섰습니다.


백무동 위로  세석까지의 한신계곡과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


▲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 골,

장터목 방향에서 흘러내리는 한신지계곡등 네 갈래가 모입니다.


▲ 오솔길의 주역들... 굽은 나무가 집안을 지킨댔으니

좀 굽은 나무들처럼 보이지만 

오솔길을 지키는 영웅들 이지요.


▲ 어느시절, 여기에 승용차를 두고 택시로 성삼재(45,000원)로 올라

지리종주를 하기도 했고

여기서 천왕봉으로 하여 중산리로, 또 한신계곡으로 하여  세석으로 오르곤 했습니다.


▲ 여기서 좌측으로는 장터목(5.8K)-1.7K -천왕봉으로 오르고,

우측으로는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6.6K)으로 갑니다.


'백무동'

100명의 무당이 기거하던 골짜기라 하여 백무동(百巫洞),

무사를 많이 배출하여 백무동(白武洞),


또는 안개가 늘 자욱하게 뒤덮고 있다고 하여 백무동(白霧洞)..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 세석길은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평전에 이르는

6.6K길... 가파른 마지막 1.3K길이 마의 구간 이었습니다.


'한신계곡은 여러 설화가 있습니다

신라화랑 '한신'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를 만나서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 이후로 비가 내리면 혼령들 꽹과리소리가 들린다고도 하고. .


▲ 한 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 해서

한신계곡 (寒身溪谷) 이라고도,

 

옛날 중국의 장수 '한신'

잠시 몸을 피했던 곳이라 해서 한신계곡 (漢信溪谷) 이라고도....


백무동에서 '첫나들이폭포'까지의 넓은 오솔길은

가족 등반이 가능할 정도로 잘 닦여져 있습니다.


19639월에 마천면 강청리·삼정리·추성리 일대

국유림 고사목에 대한 벌목을 시행하였는데,

당시 목재 운반을 위해 만든 임도가 이 오솔길 이랍니다.


메아리도 듣도, 마루금도 보고, 청아한 바람도 다 포함하여

산을 만나러 가는 길...

   

▲ 아득한 세월의 화석과도 같은 너덜겅...

문득,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으로 가던 길이 그리워 집니다.


▲ 너덜겅, 너덜지대...먼 옛날 빙하기 시절이라니

1억년이 넘은 세월,,,추웠던 절벽에 풍화작용으로 쪼개졌으니...


▲ 한신계곡은 '첫날들이 폭포',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등이 있는데


▲ 첫나들이 폭포...여기까지는 오솔길처럼 수월하고

여기서 1K쯤 더 오르면 가내소폭포가 나옵니다.

.

아름답고 청아한  한신계곡은 2010

국가문화재인 명승72으로 지정 되었지요


애인을 만날 때는, 머리의 모양이나, 귀걸이 반지만 보거나

립스틱 색깔만 보지않고,



깊은 눈동자와 따뜻한 마음을 보며, 가슴으로 만나야 하고

 그를 쳐다만 보지않고

뜨거운 심장으로 만나듯..



메아리도 듣도, 마루금도 보고, 청아한 바람도 다 포함하여

산을 만나러 갑니다.

더구나 ‘어머니 품속같은 지리산


2만여 젊은이들의 역사의 상흔을 간직한 채,

오늘도 이런 가슴, 저런 가슴을


말없이 품에 안는 위대한 그 품속이 그리워

거기를 갑니다 오늘도..


▲ 인생도처 유상수라 했던가!

작은 글귀에도 교훈을 얻습니다.


1등만 기억하고,  앞선 사람만 박수하지만

뒷 사람, 늦어진 사람도 배려하며 기다리며 살아야겠지요.


▲ 어느덧 지리에 태풍 폭우가 지나간지 3주,

그 풍성했던 계곡은 가믐의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 이제 이 지곡을 오르면

'가내소 폭포'를 만납니다.


'가내소 폭포'

 15m 높이, 50여 평의 검푸른 소를 만들고 있어 매우 웅장한데

. 이 폭포는 예로부터 '기우제' 장소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먼 옛날 한 도인이 12년 수행의 마지막 시험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는데.


이를 본 지리산 마고할멈의 셋째 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해 물에 빠뜨렸답니다.



이에 도인은

“아~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

 탄식하며 떠났고 그 후 사람들은 이 곳을 '가내소'라고 불렀답니다.



그렇게 떨어진 사람들이 어찌 그 도인뿐이겠는가?

유혹말고, 진실한 사랑의 밧줄이 항구에 배를 대듯


그렇게 어느 날 불가항력으로 던져진다면

그 줄 한번 잡아도 되지않을까?.



가내소에서 좌측으로는 장터목에서 내려오는 '한신지곡'이 있고

세석으로는 '한신주곡'입니다.



'가내소'는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기우제를 지낼 때면여인들이 목욕를 하였는데



그 목욕은 속치마만 입고 한다던가?

상상만 해도 전기가 짜릿 했으니...

그 기우제 날짜를 알아봐야겠어요, 소문나지 않게.



그렇게 자연은 넘어짐에도,

  죽어서도 아낌없이 줍니다.

  자연의 순환에.


계곡 내내 이런 이끼류와, 양치식물 천국

이를 키워내려면 지리산은 운무와 구름에

덮혀 있어야 하나봅니다


▲ 여기 어딘가 오층 폭포가 있어야 하는데

수량적은 계곡은 구분이 어렵습니다.


▲ 가랑비를 맞으며 그 길을 걸었지...

지리의 그리운 그 길을.


▲평범한 곳에서 낯선 일상이

낯선 곳에서 마추친 평범한 일상이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마추듯....


▲ 지리의 역사 상흔을 다 봤을 나무..

말없이 길 가에 서 있습니다. 둥치만 남긴채...



▲ 갑자기 나의 일상에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

나를 위해 한번쯤 로그아웃은 어떨결에 하게된 충전.


제주의 곶자왈(Jeju Gotjawal)이 생각났으니..

평범한 땅 위의 나무는 곧은 원뿌리를 깊히 박아 자기몸을 지탱하지만


이런 바위들 위 나무는 자기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바위을 감싸안고 자라갑니다.


이제 여기서 되돌아 가렵니다

여기부터 세석까지의 1.3K는 사다리를 오르는듯

가파르기 그지없는 힘들었던 길..


▲ 그 시절의 '한신폭포'

여기부터 이제 폭포도, 계곡도 끝이고

이제부터 정말 깎아 지른듯한 길을 올라야합니다.



▲ 내려가는 길..

바람이 시원했으니.


▲ 거기서 점심을 준비하는 일행을 만나

건너갑니다.


▲ 시원함과 정겨움의 자리에서

어느것 하나  맛 없는게 있었을까...


▲ 벌금은 멘토가 내 줄터이니

홀로 계곡에 몸을 던집니다.


▲ 한 주간 열대아로 뜨거워진 몸을

속속까지 씻어 냈으니...


▲ 위로 받고 싶은 삶...

지리는 이렇게도 품어 줍니다.


▲ 장대한 폭포는 푸른 소를 향하여 곤두박질 치고

우렁찬 포말은 시원함을 더 했으니...


▲ 즐거운 여인이 선녀처럼 다가오고.


▲ 두 선녀와 함께 폭포 속에 몸을 담으니...

카메라를 맡긴 멘토의 '아무렇게 찍는'

성의 없음은 그냥 이해해야 하는 일....


▲ 나뭇꾼의 옷 감춤은 당연하다고

이 시절 필자도 옷을 감출거라고 생각도 합니다.


▲ 몸은 적시려 않는 노란 선녀는

여기보다 갈 곳이 정해진 선녀인듯.


▲ 어디서 늦게 또 하나 나무꾼이 나타났지만

'키만 내보다 컸지 뭔 볼품이 있나'

깎아 내려봅니다. 속으로만...


▲ 내려가는 곳은 곳곳에 인파들...

누어있는 이,  앉자있는 이,  멍하니 두둥실 하늘을 바라보는 이.. 


▲ 몸을 담그는 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이들...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 오늘 하루 완전 해방입니다.


▲ 같이 폭포 속으로 들어갔던 선녀들...

그 폭포 속에서 뭘 교감했는지는 모를 일입니.


▲ 다시 가내소 폭포를 만나고.

상상은 자꾸 홑치마만 입고 목욕재게 했다는 곳에 멈뭄니다. 


▲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한 바람과 검은 구룸에

생각난 조지훈의 파초우(芭椒雨)...




외로이 흘러간 한 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초 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주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외로움속에 비오는 저녁 자연 속에서

느끼는 애상적 정서가 스며든 시어 이지요.


그리운 산아! 조지훈의 외침이 떨립니다.

 산을 물질적으로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산이 지닌 그 너그러움과 관용의 자세를 바라는 공감 가슴을 안고.


▲ 그랬지요.  사랑은 겨울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거치게 타는 목마름으로 무엇이든 집어 삼킬듯


▲ 뜨거운 태양아래 말고,

순간의 열정으로 타오르기 보다는.


▲ 한 겨울, 사랑은 한 겨울에 시작되는게 좋다고..

얼어붙은 가슴 서로 안고.


▲ 두 손 가득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인생의 계절에 찾아온 그런 사랑....


▲ 하기야 그것도 배부른 소리이지

굶주린 사람이야 어느 계절이면 어떻겠나

여름이든 겨울이든.


▲ 홍수처럼도 괜찮고,  안개처럼 다가옴도

귀한 것인 거잖아...


▲ 그렇게 다시 백무동으로

되돌아 섭니다.


▲ 백무동은 전국 여러 곳에서

'지리산 가자'할 때 홀연히 떠나올 수 있는 시외버스가 있습니다.


▲ 동서울, 남부터미널, 대전,안양,부천 등등


▲ 가까운 부산,창원, 마산에서야

함양까지 오는 버스가 많고, 함양에서 백무동은

수시로 버스가 있습니다.


▲ 백무동을 출발한 버스는 돌고 돌아

함양군 수동면 외산마을에 닿습니다.


▲ 우람한 세월을 안고 있는 우리 고향의 당산나무 같은

그 곳 에  김경환 산대장님의 고향집이 있습니다.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785-1..

배산임수의 거기에 연로하시지만 건강하신

 어진 어머님이 계시고..


▲ 고추, 대추, 정겨운 고향 과,채들이 익어가는

풍경이 아늑합니다.


▲ 뜨거운 날에 어머님의 수고하심으로 흑돼지 수육이

부드럽기 그지없고, 상추, 양파, 고추, 마늘,,,

정성의 손길로 길러내신 것들로  한 상이 채워졌으니.



황송하기 그지없는 잔치상 이었답니다.

제공하신 전양태 총무, 김경환 산행대장님들의 정성이

감사한 자리였지요.


배산임수의 푸른 마을,

그 시원한 바람속 잔치는 오래오래 정겨운 님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려니....


▲ 그렇게 그리운 여름,  한신계곡에서의 하루.

아스라이 하늘의 실구름 속에 푸르던 날

그 길을 오른  정겨운 님들속에 삶의 원동력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운 가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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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문효치 

산은

을 쓰고

의젓하게 앉아 있더라.

 

수많은 풍상이

할퀴고 지나갔지만

산은 꿈쩍도 아니한 채

잔기침 몇 번으로

꼿꼿하게 앉아 있더라.

 

기슭에 가득

크고 작은 생명들을 놓아기르며

수염 쓰다듬고

앉아 있더라.

 

긴 장죽에

담배 연기 피워 올리며

스르르 눈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