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전라도

전남화순.용암산(聳巖山.547m) 용암사주차장-용암사-안부-도덕산 왕복-금오산성-용암산-무명봉-불암사-우봉리(약 7㎞, 4시간)

산꾼 미시령 2018. 11. 25. 21:00

고인돌!

 유명한 만화가 박수동 씨가 그린 1970년대 만화, <고인돌>은 큰 인기를 끌어 롯데 삼강 빠삐코와,

스크류바, 아이스바의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고인돌... '돌을 괴어서 만든 것'이란 의미이다.

한자로는 支石墓(지석묘)라고, 영어로는 dolmen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 온 이름이다.

 

 옛부터 지방 호족이나 왕들은 거대한 무덤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세력 과시였는데

선사시대의 고인돌 역시 수백명의 노동력을 동원 할 수 있는 정치집단인 군장 세력의

등장을 알려주는 유물이며, 신석기시대 이래 유행한 거석 숭배 문화와 연관성을 갖는다.

 

 한국등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사이에 나타나지만,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의 고인돌은 그보다 앞선 BC.4000 ~ 5000년것으로 존재하고,

현재 인정받는 세계 최고(最古)의 고인돌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존재한다.

 

 고인돌은 전세계에 6만개가 있고, 한반도와 주변 요동, 산동, 큐슈 지역에 4만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전세계 고인돌의 60%는 한반도에 위치한다.

 

 아마도 평지가 좁고 분산 고립되어, 농경도 일찍 시작되어 일찍 집단적 촌락을 이루어

살 수 밖에 없는 한반도 지형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용도의 용도는 무엇일까?

무덤이라는 설과, 신에게 제사하는 재단이었을것으로 추정한다.

 

 그럼 어떻게 조성했을까? 먼저 양쪽 기둥 돌을 흙을 파고 구덩이에 밀어 넣어 세운다음,

그 위에 흙을 덮고, 통나무 굴대 같은 것을 깔아 인력을 동원해 경사로로 끌어올려

거치한 다음 흙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조성하였다,

 

 만화나 그림에서 보면 타잔같이 원시인 팬티 같은걸 입고 작업하는데 물론 여름이라면

웃통 벗고 빤스만 입고 그러겠지만 이 시대는 원시인 시절은 훨씬 지난 시기이니

그런 그림은 오류이다.

 

 통나무를 밸 수 있는 도구가 있었고, 직물기술이 있어 굵고 튼튼한 밧줄을

만들 직조 능력이 있었다.

 

 1997 유네스코는 대한민국의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남북한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지만 전북 고창, 전남 화순군, 그리고 인천

강화군이 유명하고 전라남도에 집중되어있다.

 

 고인돌에 매료된 많은 이들이 답사팀을 만들어 전국을 답사하며 연구하고 있다.

 

그 고인돌 유적공원이 있는 인구 65,000화순,

거기를 간다.

아득한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그렇게 걷는다.

 

▲ 겨울의 문 앞에 선 계절..

그렇게 달려 도착한,  '전남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寒泉面 寒溪里...한자로 보면 글자만 봐도 추워집니다.

 

 

▲ 용암사 주차장에서 용암산 정상까지는

2.2K.

 

용암산(聳巖山)도,  용암사(聳巖寺)도

흔히 쓰는 용 용()자가 아닌 '솟을 용()자'를 쓰는게 신기합니다.

 '높이 우뚝 솟았다'는 의미겠지요.

 

▲ 오늘의 동행자,

'장수'와 '오솔길'도 섰습니다.

 

▲ 지독한 아침 안개 속

산행은 시작됩니다.

 

용암사(聳巖寺)..

임진왜란 당시 폐사가 된 '금오사'를

1890년 '조정기'라는 분이 창건하였답니다.

 

▲ 법당은  1978년 3월, 호남탄좌의 신도들의

정성으로 무량수전을 세웠는데.

 

▲ 그 무량수전이 훼멸되자 그 후 대웅전과

삼성각을 지어 오늘에 이른답니다.

 

▲ 이제 완연한 겨울 풍경속

 산행은 시작되고.

 

▲ 700m을 올라,  땀이 날 무렵,

 능선 삼거리를 만납니다.

좌측으로 도덕산(道德山)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 약 500m를 걸었을까

도덕산(道德山) 정상입니다.

327m의 작은 산이지만 당당히 '산경표'에 등재된 산입니.

 

▲ 우리는 '개도 물을 먹나?'... 생각도 못했는데 

하 회장님은 먼저 개에게 물을 줍니다. 

용암사 소속의 이 개는 산행내내 동행했으니....

 

▲ 이것도 '금오산성'의 일부 인가?

 

▲ 그렇게 다시 되돌아 삼거리에 닿고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서둘러야 합니다.

 

▲ 거기서 부터 가파르고

안개 속을 뚫고 햇살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도 눈이 덮히겠지요.

뜨겁고 시끄럽던 여름 산은

 이제 깊은 침묵 속에 잠들고..

 

▲ 작은 암봉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용암산(聳巖山)[547m]

 화순군의  한천면과 춘양면,

그리고 이양면의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금오산과 남북으로 붙어 있어

금오산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 평온한 육산 위에 갑자기 나타나는 암릉들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 우측으로 100m,

전망대를 가 보기로 했습니다.

 

▲ 좌측 낮은 봉이 도덕산이고 우측봉은

방금 지나온 봉입니다.

 

▲ 그 전망 좋은 곳에서

즐거움을 나눕니다.

 

▲ 전국에 금오산(金鰲山)이 많습니다.

 ‘금오(金鰲)’는 산 위에 있는 샘에서 하늘로 올라간 '금 자라'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그 때문에 이 산도 금오산이라 불렸습니다.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금오산성지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18호)

 

금오산성은 용암산의 자연 암벽과 작은 계곡을 이용해 축조한

포곡식 산성(성 안에 골짜기를 포함해 축조한 성)입니다.

 

▲ 여기 바위들은  '용암산층'이라는 지질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층은 중심 배사부

(습곡이 위로 향하여 구부러져 지층이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 진 곳)

이루었고,

 

 오랫동안 변성을 받은 유백색의 규암질로 이루어진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멀리 '금전 저수지'가 희미하고

무등산 방향의 조망은 안개 속에 갇혔습니다.

 

▲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칠형제 바위' 나타납니다.

 

▲ 조용했던 산에

어찌 이 엄청난 암릉 단애가 생겼을까?

 

▲ 겨울 산을  덜  외롭게 늘 푸른 산죽..

 겨울 눈 속에 파묻히고도 그 싱싱함을 잃지 않는..

그래서 좋습니다.

 

▲ 칠형제 바위,

아득한 곳에 서 봅니다.

 

▲ 거기서 안개 속에 희미한

지나 온 봉들도 봅니.

 

▲ 가까운 계곡도 조망이 안되는 안개가

못내 아쉽습니다.

 

▲ 가파른 철 계단...

좀 뚱뚱한 사람은 통과가 빠듯합니다.

그가 누구라고는 말 안합니다.

 

▲ 계절의 순환은 속임이 없습니다.

겨울의 문턱의 모습...

 

▲ 이제 정상은 저렇게 보입니다.

 

용암산(聳巖山/547m)

어느 산이든 그 정상에 서면

세파에 찌든 고달픔은 잊혀집니다.

 

▲ 거기 햇살 좋은 곳에서 점심을 나눕니다.

조금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 하산 길도 조망은 희미합니다.

세파의 고달프과 억울함을 다 받아 주는 곳 ..

산은 그런 곳입니다.

 

▲ 화순! 광주광역시를 연접하는 고을입니다.

경남으로 말하면 창원을 곁에 둔 김해시 같은 곳이지요.

 

▲ 화순은 '화순 팔경'이 유명한데

우리 산꾼들이 자주 찾은 '백아산'도 그 중 하나이고.

 

▲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유적지,

그리고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천불천탑의 사찰 운주사.

 

▲ 그러나 가장 유명한 1경은

'화순적벽'입니다.

 

▲ 우리가 무등산 하면 광주를 떠 올리지만

그 산자락,  입석대, 규봉암은 화순군에 속합니다.

 

▲ 가파른 가을 낙엽의 길은 여러번

엉덩방아를 찧어야 합니다.

 

▲ 나무가 위대한 건

싹을 틔울 때부터 썩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불가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 안하기 때문입니다.

 

▲ 늘 불가능을 먼저 생각하는 건

사람 뿐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 거기 자리잡은 의성 김씨 묘소...

그 후손들의 선택과 정성이 감동입니다.

 

▲ 어찌 거기에 자리를 잡았을까?

왕릉 못지 않은 안연함 입니다.

 

▲ 그렇게 한 참을 미끌려 내려오면

길은 평온해 지고.

 

▲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

고백은 아무리 늦어도 빠른 것'

.

▲ 그렇게 내려서면 임도를 만나고

우측으로 불암사를 다녀와야 합니다.

 

▲ 생각보다 시간은 덜 걸린

오늘의 산행.

 

▲ 가파른 산 기슭에 축대를 쌓고

작은 '불암사' 사찰이 위치합니다.

 

▲ 1980년의 사찰이지만 법당자리 뒷쪽으로

바위가 불끈 솟아있고 건너 쪽으로는 불암봉이 보입니다.

 

예전에 어떤 도승이 절을 지으려고 이 곳으로 왔는데

법당을 지을 뒤편이 너무 훤해 아깝다고 생각하며

하룻밤을 쉬었다 합니다

 

▲  밤 사이에 바위가 불끈 솟아올랐다는 것인데

 그 바위를 배경으로 '금오사'를 창건했지만

 정유재란 때 불탔다고 전합니다.

 

▲ 다시 되돌아 내려와.

 

▲ 용암상 정상에서

1.2K를 내려온 것입니다.

 

▲ 벚꽃의 계절이면

더욱 좋을 길을 갑니다.

 

남도 오백리 역사숲 길..

전라남도 6개군(해남.강진.화순.곡성.구례)를 연결하는 294k의

역사 숲 길입니다.

 

여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갔어야 하는데,

'백구'를 따라간 몇명은 빼고는 '큰 길'로만 내려갑니다.

 

▲ 되돌아 본 오늘의  용암산.

 

▲풍산 홍씨 '세장산(世葬山)'

대대로 묘를 쓰고 조상을 매장하는 산을 말합니다.

 

▲ 그 기름진 전라도 땅에서 자란

우람한 배추.

 

▲ 할머니와 아들과 손자

3대가 정겹게 작업을 합니다.

 

▲ 우람하고 노란 속살이 가득찬

꽃과 같은 배추란 생각을 했습니다.

 

▲ 늦은 가을 햇살에

고추들도 말라가고.

 

▲ 정겨운 돌담과 맑은 실개천....

 

▲ 정지용의 '향수'가 생각나는

마을 입니다.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 갑자기 내 고향

충청도 그 곳이 사무치게 그리워 집니다.

 

▲ 춘양면 우봉리...

그 언덕에 멋들어진 정자가 있어 올라가 봅니다.

 

▲ 기품있는 현판과 현액이 즐비하고.

 

▲ 그 품격과 멋으로

 마을의 전통과 삶을 자랑하지만 

저에겐 한자 해석이 어림 없습니다. 

 

▲ 거기서 내려다 본 마을 회관과

보호수.

 

▲ 그 앞의 배롱나무가 기품을 더 합니다.

 

▲ 원 계획은 '논재 삼거리'까지 가야하지만

길을 잘못들어 버스를 여기로 부르고는...

유유자적.

 

▲ 앞 들은 넓은 기름 진 들판이요

뒷 용암산 기슭은 다랭이 전답이 정겨운 마을.

 

▲ 어릴적 우리 마을에 있던 나무 같은

420년의 느티나무.

 

▲ 거기에 풍산 홍씨의 효행비와 공적비

 

 

▲ 그리고 그 내용이 자세히 새겨진 비석이

눈 길을 끕니다.

 

▲ 앞 넓은 들과 뒷 정겨운 다랭이 전답을 일구며

전승된 농요(農謠)가 '우봉 들 소리' 무형문화재..

 

▲ 2008년 최우수 상을 수상 했습니.

 

▲ 그 전통 문화가 오래오래

이어지고 전수되기를 기원했습니다.

 

 

▲ 따뜻한 햇살아래 즐거움을 나누며.

 

▲ 남도의 바람과 다복한 우봉리 마을의 향기를 뒤로한 채

이젠 우린 떠나려 합니다.

 

▲ 그 우리들의 고향 같은 마을이 오래오래

존속되고 이어지기를 기원했습니다.

 

▲ 그렇게 돌아 '능주면 복지회관'의

목욕탕을 찾았습니다.

 

▲ 저렴한 요금에 놀라고

깨끗한 시설에 다시 놀랐습니다.

 

▲ 늦은 여탕의 회원들을 기다리는 동안

아기자기한 시장을 돌아봅니다.

 

▲ 대추도 사고, 생강도 한 '봉다리' 샀습니다.

겨우내 차를 끓여 보려고....

 

▲ 어찌된 비결인지 동태 뼈로 우려낸  국물에

만두 몇 개를 다시 넣고...

 신비로운 맛에 놀라고, 그 정성에 감동합니다.

 

▲ 그 즐겁고 시끄러움은

 옆 시장통보다

더 진하게 울립니다.

 

▲ 그렇게 남도의 '화순'으로 달려가 함께한

겨울 문앞의 하루, 가을 끝자락의 어느 날..

 

사랑을 흩어 놓기 위해

이별이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별과 사랑은

처음부터 함께 출발하는 것처럼....

 

겨울도 가을도 그러 하려니

정겨운 님들, 걷다보면 다시 걸어지겠지요.

오래 오래. 더 오래도록

-----------

 향 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 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