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統營)!
깨끗한 푸른 바다와 570여개의 아름다운 섬들, 한려수도의 비경이 펼쳐지는
인구 13만5천의 그림 같은 도시이다.
충무공의 얼이 곳곳에 숨어 있는 그 곳엔 윤이상, 전혁림, 김춘수, 박경리등
문학과 예술의 거성들이 나온 예향...그 중 박경리를 생각해 보자.
박경리(朴景利, 1926~2008)‘
토지’를 남긴 문학적 거인이다. 1926년에 태어나 82세를 살았고,
작고한지 10년이 되었다
작가는 모름지기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나는 존재인가보다
고통과 불행에 대한 자의식 없이 대작가가 될 수 없는 법이니.
그는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1926년 태어난 그의 원 이름은 ‘박금이’였다
진주여고를 졸업한 그의 어린시절은 부친은 새장가들어 가버린 편모슬하에서 극심한
불행이었고, 스무살에 결혼했지만 6.25전쟁에 남편이 행방불명 되고 설상가상
아들까지 불의사고로 죽는다.
그의 딸은 한 시인에게 시집갔는데 그 시인이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지하다.
이런 불행은 그로 하여금 극단적인 고독의 감정 속으로 밀어 넣었고 이 엄청난
슬픔을 이기기 위해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원래 시를 썼던 그는 우연히 세든 집이 소설가 김동리 집 이었고 그 부인은 진주여고
선배였다. 김동리 부인은 박금이 시를 남편에게 보였고 그 때마다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김동리는 시 대신 소설을 써보라 권했고 그 글들을 혹독하게 비판하여 성장시켰다.
본인도 모르게 두 번에 걸쳐 박경리란 이름으로 추천, 등단시킨다.
김동리가 없었다면 박경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경리는 여러 작품을 썼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69년 시작하여 25년 걸려 작품을 완성했으니
그 유명한 ‘토지’다.
1980년에 서울을 떠나 원주에서 토지 4,5부를 완성하여 지금도 그 곳엔 토지문학관이 있고,
그가 강의하던 연세대 원주캠퍼스엔 그의 시비와 동상이 있으며, 토지의 작품배경이 된
하동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이 있다.
그는 2008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는 통영 앞바다가 그림처럼 내려다
뵈는 곳에 조성되었고 그 입구엔 박경리 기념관 있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간다.
아름다운 통영의 그림같은 섬, 연대-만지도를 간다
그리운 님들과 그렇게 간다.
▲ 6월에 답사했던
연대도(烟臺島)만지도(晩地島).
▲ 만차되어 도착한 통영
'달아항'.
▲ 엎저버 '강산해 산악회'
빛나는 얼굴들입니다.
▲ 설렘으로 배를 탑니다
왕복 10,000원.
▲ 15분 타는 뱃삯으로는 비싸다는 느낌.
▲ 벌써 연대도에 도착하고..
▲ 출렁다리로 연결된
의좋은 형제...동쪽이 연대도, 서쪽이 만지도입니다.
▲해안절경이 으뜸인 곳, 연대도(烟臺島),
수군통제영 시절, 섬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봉화를 올려 그 이름 얻었다지요
.
▲유람선이 닿는 선착장에는
마을 도서관과 작은 카페가 들어섰고.
국립공원 명품 마을로 선정되며 골목마다 벽화도 그려졌습니다
▲ 인상 깊은 바다상회
앞도 지나고.
▲연대도사패지해면기념비(烟臺島賜牌地解免紀念碑)
섬 전체가 1665년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셔놓은 충렬사(忠烈祠)
사패지(왕이 내려주는 전답)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소작농이 되었었지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949년에 농지개혁이 있었지만
일부 대지와 전답은 여전히 충렬사 사패지로 남아 있다가
1989년 7월에 그 소유권이 섬 주민에게로 이전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
▲ 옛 돌담과 교회,
개성 넘치는 문패가 골목을 단장합니다.
▲ '지겟길'
어릴적 지게를 지고 땔감을 하러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지요.
▲ 연대도 8부능선을 걷는 지겟길은
2.3K, 1시간 남짓 걸립니다.
▲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일부이지요
비진도에는 '산호길'이 있고.
▲ 나중에 갈, 몽돌해수욕장도
보입니다.
▲ 섬 사람들은 세월 속에 또 다른 사연을 만들어 내며.
이 길을 다녔겠지요.
▲ 북바위 전망대에서 ..
종일 시끄럽습니다. 만지도를 가면 만지는 거냐고...
▲ 안내판과 섬을 번갈아 봅니다.
▲ 오늘도 헌신적인
광산 선생님.
▲ 스토리텔링이 있는
지겟길입니다.
▲ 만지도에 가도
몸이야 어디 만지겠습니까?
▲ 마음을 만지는 섬, 만지면 행복도 커지고
사랑도 커지고, 꿈도 커지는 섬...
▲그래서 행복만 듬뿍 커져 가는 섬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 지는 ..그런 섬.
▲ 고달펐던 섬 사람들이
나무하러, 그리고 작은 뙈기 밭 경작을 위해
허기진 걸음으로 오갔을 길.
▲ 푸른 물결이 치는 쪽빛 바다에 펼쳐진 작은 섬들,
우리네 부모님의 산전수전 고생하신
삶의 터전 이겠지요
.
▲ 애환 서린 흘린 눈물이 떨어져 작은 섬을
이루었습니다.
▲ 예쁜 여성들이 말합니다. '여기에 작은 집을 짓고, 염소도, 개도, 닭도 키우고...'
그래서 그랬지요 '마당 쓸고, 보초설 남정네로 제가 어떻냐'
나도 키우시라고..
1초도 지나지않아 합창합니다. '아.. 사양합니다'.
▲ 큰 상처를 받습니다.
정겨운 님들...
어떤 사람에게도 한 가지 이상의 배울 점은 있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배워야겠지요.
▲ 시원한 한 잔을 나눠마십니다.
즐거움이 짜르르 흘러내리고.
▲항상 미소를 그리고 여유로움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통하여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가며
발전적인 삶을 지향하자고..
▲ 길을 갑니다.
하늘에 구름이 가고,
푸른 바다엔 그리움을 싣고 배들이 오갑니다.
▲ 그렇게 다시 도착한 연대마을....
▲ 누군가의 아늑한 그리움의
고향 바다겠지요.
▲ 출렁다리 가로지르면 만날 수 있는 이웃 섬
연대-만지도.
▲ 마을 남쪽을 넘어서면
고요한 몽돌해변, 반대편으로 향하면 에코체험센터
▲이국적 풍광과 원시적 아름다움 공존하고
한가롭고 여유있는 해변입니다.
▲ 나중에 건너 갈 만지도 해안 절경도
보입니다.
▲ 거기 깨끗한 몽돌에 앉아
점심을 나눕니다.
정을 나눕니다.
▲ 가족단위, 연인과의
아름다운 시간.
▲ 태고적 자연사 역사를 담고
오늘도 그렇게 서있는 해변.
▲ 이제 포만감을 가지고
다시 길을 갑니다.
▲ 소박한 간이 매점도 지나고.
▲ 사방이 바다지만 요즘처럼
양식과 고기잡이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해초나 조개를 캐는데 만족하는 소박한 삶 이었겠지요.
▲ 그렇게 자연 앞에 공손하고
베풂에 기꺼워했던 섬사람들...
▲ 그 아름다운 송림에서
일행을 만납니다.
▲ 만지도로 건너는 출렁다리
형제의 섬, 삶 위에 연대도 -만지도는 마음으로 이어졌지요
▲만지도(晩地島)
인근의 다른 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사람이 입주한 섬
이라는 데서 유래해 늦은 섬입니다.
▲만지도와 연대도를 연결하는 출렁다리
2015년 1월, 13억2000만 원이 들어갔답니다
길이 98..1m, 폭 2m 규모.
▲ 만지도의 테크 길..
우린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다리에 오르면 내 마음도 출렁이고
두 섬 사이에 숨겨놓았던 마음의 그리움도 함께 춤을 춥니다.
▲연대도- 만지도
태초부터 그들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살았지만
마음은 하나가 되어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겠지요.
▲ 어느 날 외로움에 젖은 섬과 섬사이에
다리가 생기고 그 다리는 가슴과 가슴을 모아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정지된 시간 속을 외로움 머금고
살아온 섬에는 사람들의 발 길이 이어지고...
▲ 이용악 시인의 '그리움'이 생각납니다.
'연달린 산과 산사이
너를 남기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 누군가의 눈물겨운
그리움 집 이겠지요.
▲ '' 눕지말고, 속지말고
그리고 다투지 말고...
▲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이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 ''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570여개의 통영의 섬들..
누군가 그리 표현했지요 점.점.점....
▲ 여기가 고향인 이들은
이 바다에도 눈내리는 광경을 떠 올리겠지요.
▲ 잠깐 있다가 사라진 만지분교
이야기.
▲견우직녀가 만났다는 견우직녀길...
물레방아간도 없던 작은 섬에 순박한 청춘들이
어디 데이트 장소가 있었을라구.
▲ ‘통영의 한려수도’는 한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듯
'만지도의 나폴리’.
▲ 하늘이 바다에 뿌린 눈물일까?
아름다운 섬 풍경에 경탄합니다.
▲ 오면서 버스에서 5분 강의를 했지요
예향 통영, 그리고 박경리에 대하여.
▲ 만지도에 오니 '마져도-오'로 해석하여
뭘 그리 만지려고 시끄러울까?
▲ 200년 해송을 만났지.
▲ 그 곳의 빛나는 풍광,
시원한 바람... 오래 각인되었으니...
▲ 지친 어민들께 200년동안
시원한 그늘로 위로했겠습니다.
▲ 심신의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
만지도를 가라. 마음이 수평선처럼 힐링이 될 것이니.
▲만지봉
해발 99.9m 10 Cm를 채우기 위해
마음을 담아야 하겠지요.
▲ 10여분 내려가면 욕지도전망대.
▲ 바다없는 내고향 충북,,,
바다를 고2 수학여행 때 처음봤던 필자.
▲ 그렇게 내려온 만지봉.
▲ 통영의 시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욕지도 전망대..
욕지도에서 통영육지로 들어올 때 처음 만나는 곳이라 해서
들머리전망대라고도 합니다.
▲ 아름다운 풍광을 끼고
걷는 길은 언제나 환상적.
▲ 추우나 더우나, 바람 부나
눈이 오나, 바다로 나가야 했던
척박한 환경의 산물이며, 엄숙한 삶의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 '돌이어라, 나는/
여기 절정.
바다가 바라뵈는꼭대기에 앉아
종일을 잠잠한 돌이어라.'.
▲ 어느 땐들 맑은 날만 이었으랴만...
모두가 나날이 편안하고 행복하시기를 .
▲ 우린 동백숲 길로 갑니다.
▲그늘 시원한 동백숲 길 1K.
▲ 그렇게 나오면 다시
통영방향의 그리운 섬들이 이어지고.
▲ 편안한 물결이 흔들립니다.
마음도 따라 흔들거리고
▲ 산과 산이 함께 어우러진 곳
지루하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코스가 힘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은...
▲ 보면 볼수록 그리고 걸으면 걸을수록
매력이 넘치는 섬....
▲ 스토리가 담긴 주민의 문패.
▲ 이웃을 형제처럼 여기며,
부질없는 자리 욕심 한번 내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문패에 새겨놓은 그 자존감.
▲ 그래서 부럽고
세상의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거겠지요
▲ 연대-만지도는 2016년 국립공원 명품마을 14호로
선정 되었습니다.
▲ 엄숙한 삶의 상징이 담겨 있는
문패를 다시봅니다.
▲해안데크 길를 갑니다.
마음이 어루만져진 행복함으로..
▲ 한가롭고 여유있는 섬에서
행복을 만끽한 하루.
▲ 다시 연대로로 건너갑니다.
마음도 출렁거립니다.
▲ 거기 넉넉한 그늘에서
간편 뒷풀이가 이어지고.
.
▲ 오랜 마을 역사와 함께했던 나무.
넉넉한 그늘이 되어줍니다.
▲ 언제나 꽃단장하는
아름다운 여성님들..
▲ 진정한 꽃은 계절의 변화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 행복과 기쁨의 발로(發露)인 웃음이 바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꽃이란 생각을 했지요.
▲ 다시 육지, 통영으로 향하고....
▲ 시원한 장소
'김미경님의 경상낚시점' 마당에서 다시 잔치는 벌어집니다.
▲ 그렇게 정겨운 님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섬, 연대-만지도....
가슴마다 오래오래 그리움이 될 것입니다.
▲ 10년전 82세로 작고하신
'토지'의 박경리 선생 묘.
▲ 아름답게 조경된 주변 모습.
▲ 그리고 입구에 위치한
박경리 기념관.
▲ 인구 13만5천의 아름다운 동양의 나폴리
통영,,,
그 가슴 찡한 그리운 곳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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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박 경 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지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