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남.부산.울산

경남통영, 연대도(烟臺島)&만지도(晩地島/.달아항 -연대도선착장→지겟길→몽돌해변→출렁다리→만지봉→동백숲길-해안데크→출렁다리→연대도(7K.3H)

산꾼 미시령 2018. 9. 9. 22:06

 통영(統營)!

 깨끗한 푸른 바다와 570여개의 아름다운 섬들, 한려수도의 비경이 펼쳐지는

인구 135천의 그림 같은 도시이다.

 

 충무공의 얼이 곳곳에 숨어 있는 그 곳엔 윤이상, 전혁림, 김춘수, 박경리등

문학과 예술의 거성들이 나온 예향...그 중 박경리를 생각해 보자.

 

 

  박경리(朴景利, 1926~2008)‘

 토지를 남긴 문학적 거인이다. 1926년에 태어나 82세를 살았고,

작고한지 10년이 되었다

 

 작가는 모름지기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나는 존재인가보다

고통과 불행에 대한 자의식 없이 대작가가 될 수 없는 법이니.

 

 그는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1926년 태어난 그의 원 이름은 박금이였다

진주여고를 졸업한 그의 어린시절은 부친은 새장가들어 가버린 편모슬하에서 극심한

불행이었고, 스무살에 결혼했지만 6.25전쟁에 남편이 행방불명 되고 설상가상

아들까지 불의사고로 죽는다.

 

 그의 딸은 한 시인에게 시집갔는데 그 시인이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지하다.

이런 불행은 그로 하여금 극단적인 고독의 감정 속으로 밀어 넣었고 이 엄청난

슬픔을 이기기 위해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원래 시를 썼던 그는 우연히 세든 집이 소설가 김동리 집 이었고 그 부인은 진주여고

선배였다. 김동리 부인은 박금이 시를 남편에게 보였고 그 때마다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김동리는 시 대신 소설을 써보라 권했고 그 글들을 혹독하게 비판하여 성장시켰다.

본인도 모르게 두 번에 걸쳐 박경리란 이름으로 추천, 등단시킨다.

 

 김동리가 없었다면 박경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경리는 여러 작품을 썼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69년 시작하여 25년 걸려 작품을 완성했으니

그 유명한 토지.

 

 1980년에 서울을 떠나 원주에서 토지 4,5부를 완성하여 지금도 그 곳엔 토지문학관이 있고,

그가 강의하던 연세대 원주캠퍼스엔 그의 시비와 동상이 있으며, 토지의 작품배경이 된

하동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이 있다.

 

 그는 2008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는 통영 앞바다가 그림처럼 내려다

뵈는 곳에 조성되었고 그 입구엔 박경리 기념관 있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간다.

아름다운 통영의 그림같은 섬, 연대-만지도를 간다

그리운 님들과 그렇게 간다.

 

 

▲ 6월에 답사했던

연대도(烟臺島)만지도(晩地島).

 

▲ 만차되어 도착한 통영

 '달아항'.

 

▲ 엎저버 '강산해 산악회'

빛나는 얼굴들입니다.

 

▲ 설렘으로 배를 탑니다

왕복 10,000원.

 

 

 

▲ 15분 타는 뱃삯으로는 비싸다는 느낌.

 

▲ 벌써 연대도에 도착하고..

 

▲ 출렁다리로 연결된

의좋은 형제...동쪽이 연대도, 서쪽이 만지도입니다.

 

해안절경이 으뜸인 곳, 연대도(烟臺島),

수군통제영 시절, 섬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봉화를 올려 그 이름 얻었다지요

.

 

 

유람선이 닿는 선착장에는

마을 도서관과 작은 카페가 들어섰고.

국립공원 명품 마을로 선정되며 골목마다 벽화도 그려졌습니다

 

 

▲ 인상 깊은 바다상회

앞도 지나고.

 

 

연대도사패지해면기념비(烟臺島賜牌地解免紀念碑)

섬 전체가 1665년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셔놓은 충렬사(忠烈祠)

사패지(왕이 내려주는 전답)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소작농이 되었었지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949년에 농지개혁이 있었지만

일부 대지와 전답은 여전히 충렬사 사패지로 남아 있다가

19897월에 그 소유권이 섬 주민에게로 이전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

 

 

옛 돌담과 교회,

개성 넘치는 문패가 골목을 단장합니다.

 

 

▲ '지겟길'

어릴적 지게를 지고 땔감을 하러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지요.

 

 

▲ 연대도 8부능선을 걷는 지겟길은

2.3K, 1시간 남짓 걸립니다.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일부이지요

비진도에는 '산호길'이 있고.

 

 

▲ 나중에 갈, 몽돌해수욕장도

보입니.

 

 

섬 사람들은 세월 속에 또 다른 사연을 만들어 내며.

이 길을 다녔겠지요.

 

 

▲ 북바위 전망대에서 ..

종일 시끄럽습니다. 만지도를 가면 만지는 거냐고...

 

 

▲ 안내판과 섬을 번갈아 봅니.

 

 

▲ 오늘도 헌신적인

광산 선생님.

 

 

▲ 스토리텔링이 있는

지겟길입니다.

 

 

▲ 만지도에 가도

몸이야 어디 만지겠습니까?

 

 

마음을 만지는 섬, 만지면  행복도 커지고

사랑도 커지고, 꿈도 커지는 섬...

 

 

▲그래서 행복만 듬뿍 커져 가는  섬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 지는 ..그런 섬.

 

 

▲ 고달펐던 섬 사람들이

나무하러, 그리고 작은 뙈기 밭 경작을 위해

허기진 걸음으로 오갔을 길.

 

 

푸른 물결이 치는 쪽빛 바다에 펼쳐진 작은 섬들,

 우리네 부모님의 산전수전 고생하신

 삶의 터전 이겠지요

.

 

▲  애환 서린 흘린 눈물이 떨어져 작은 섬을

이루었습니다.

 

 

 

▲ 예쁜 여성들이 말합니다. '여기에 작은 집을 짓고, 염소도, 개도, 닭도 키우고...'

그래서 그랬지요 '마당 쓸고, 보초설 남정네로 제가 어떻냐'

나도 키우시라고..

 

1초도 지나지않아 합창합니다. '아.. 사양합니다'.

 

 

▲ 큰 상처를 받습니다.

 정겨운 님들...

어떤 사람에게도 한 가지 이상의 배울 점은 있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배워야겠지요.

 

 

▲ 시원한 한 잔을 나눠마십니다.

즐거움이 짜르르 흘러내리고.

 

 

▲항상 미소를 그리고 여유로움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통하여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가며

발전적인 삶을 지향하자고..

 

 

▲ 길을 갑니다.

하늘에 구름이 가고,

푸른 바다엔 그리움을 싣고 배들이 오갑니다.

 

 

▲ 그렇게 다시 도착한 연대마을....

 

 

▲ 누군가의 아늑한 그리움의

고향 바다겠지요.

 

 

출렁다리 가로지르면 만날 수 있는 이웃 섬

연대-만지도.

 

 

마을 남쪽을 넘어서면

고요한 몽돌해변,  반대편으로 향하면 에코체험센터

 

 

이국적 풍광과 원시적 아름다움 공존하고

한가롭고 여유있는 해변입니다.

 

 

▲ 나중에 건너 갈 만지도 해안 절경도

보입니다.

 

 

▲ 거기 깨끗한 몽돌에 앉아

점심을 나눕니다.

정을 나눕니다.

 

 

 

▲ 가족단위, 연인과의 

아름다운 시간.

 

 

▲ 태고적 자연사 역사를 담고

오늘도 그렇게 서있는 해변.

 

 

▲ 이제 포만감을 가지고

다시 길을 갑니다.

 

 

▲ 소박한 간이 매점도 지나고.

 

 

사방이 바다지만 요즘처럼

양식과 고기잡이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해초나 조개를 캐는데 만족하는 소박한 삶 이었겠지요.

 

 

▲ 그렇게 자연 앞에 공손하고

베풂에 기꺼워했던 섬사람들...

 

 

▲ 그 아름다운 송림에서

일행을 만납니.

 

 

▲ 만지도로 건너는 출렁다리

 형제의 섬, 삶 위에  연대도 -만지도는 마음으로 이어졌지요

 

 

만지도(晩地島)

 인근의 다른 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사람이 입주한 섬

이라는 데서 유래해 늦은 섬입니다.

 

 

만지도와 연대도를 연결하는 출렁다리

2015년 1월, 132000만 원이 들어갔답니다

길이 98..1m, 2m 규모.

 

 

▲ 만지도의 테크 길..

우린 돌아오는 코스입니.

 

 

다리에 오르면 내 마음도 출렁이고

두 섬 사이에 숨겨놓았던 마음의 그리움도 함께 춤을 춥니다.

 

 

연대도- 만지도

태초부터 그들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살았지만

 마음은 하나가 되어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겠지요.

 

 

어느 날 외로움에 젖은 섬과 섬사이에

  다리가 생기고 그 다리는 가슴과 가슴을 모아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정지된 시간 속을 외로움 머금고

살아온 섬에는 사람들의 발 길이 이어지고...

 

 

▲ 이용악 시인의 '그리움'이 생각납니다.

'연달린 산과 산사이

너를 남기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 누군가의 눈물겨운

그리움 집 이겠지요.

 

 

▲ '' 눕지말고, 속지말고

그리고 다투지 말고...

 

 

▲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이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 ''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570여개의 통영의 섬들..

누군가 그리 표현했지요 점.점.점....

 

 

▲ 여기가 고향인 이들은

이 바다에도 눈내리는 광경을 떠 올리겠지요.

 

 

▲ 잠깐 있다가 사라진 만지분교

이야기.

 

 

견우직녀가 만났다는 견우직녀길...

물레방아간도 없던 작은 섬에 순박한 청춘들이

어디 데이트 장소가 있었을라구.

 

 

통영의 한려수도는 한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듯

'만지도의 나폴리.

 

 

하늘이 바다에 뿌린 눈물일까?

 아름다운 섬 풍경에 경탄합니다.

 

 

▲ 오면서 버스에서 5분 강의를 했지요

예향 통영, 그리고 박경리에 대하여.

 

 

▲ 만지도에 오니 '마져도-오'로 해석하여

뭘 그리 만지려고 시끄러울까?

 

 

▲ 200년 해송을 만났지.

 

 

▲ 그 곳의 빛나는 풍광,

시원한 바람... 오래 각인되었으니...

 

 

▲ 지친 어민들께 200년동안

시원한 그늘로 위로했겠습니다.

 

 

심신의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

 만지도를 가라. 마음이 수평선처럼 힐링이 될 것이니.

 

 

만지봉

 해발 99.9m 10 Cm를 채우기 위해

마음을 담아야 하겠지요.

 

 

10여분 내려가면 욕지도전망대.

 

 

▲  바다없는 내고향 충북,,,

바다를 고2 수학여행 때 처음봤던 필자.

 

 

▲ 그렇게 내려온 만지봉.

 

 

▲ 통영의 시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욕지도 전망대..

욕지도에서 통영육지로 들어올 때 처음 만나는 곳이라 해서

 들머리전망대라고도 합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끼고

 걷는 길은 언제나 환상적.

 

 

추우나 더우나, 바람 부나

눈이 오나, 바다로 나가야 했던

척박한 환경의 산물이며, 엄숙한 삶의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 '돌이어라, 나는/

여기 절정.

 

바다가 바라뵈는꼭대기에 앉아

종일을 잠잠한 돌이어라.'.

 

 

▲ 어느 땐들 맑은 날만 이었으랴만...

모두가 나날이 편안하고 행복하시기를 .

 

 

▲ 우린 동백숲 길로 갑니다.

 

 

그늘 시원한 동백숲 길 1K.

 

 

▲ 그렇게 나오면 다시

통영방향의 그리운 섬들이 이어지고.

 

 

▲ 편안한 물결이 흔들립니다.

마음도 따라 흔들거리고

 

 

산과 산이 함께 어우러진 곳

 지루하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코스가 힘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은...

 

 

보면 볼수록 그리고 걸으면 걸을수록

매력이 넘치는 섬....

 

 

스토리가 담긴 주민의 문패.

 

 

이웃을 형제처럼 여기며,

부질없는 자리 욕심 한번 내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문패에 새겨놓은 그 자존감.

 

 

▲ 그래서 부럽고

세상의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거겠지요

 

 

 

▲ 연대-만지도는 2016년 국립공원 명품마을 14호로

선정  되었습니다.

 

 

엄숙한 삶의 상징이 담겨 있는

문패를 다시봅니다.

 

 

해안데크 길를 갑니다.

마음이 어루만져진 행복함으로..

 

 

▲ 한가롭고 여유있는 섬에서

 행복을  만끽한 하루.

 

 

▲ 다시 연대로로 건너갑니다.

마음도 출렁거립니다.

 

 

▲ 거기 넉넉한 그늘에서

간편 뒷풀이가 이어지고.

.

 

▲ 오랜 마을 역사와 함께했던 나무.

넉넉한 그늘이 되어줍니다.

 

 

▲ 언제나 꽃단장하는

아름다운 여성님들..

 

 

진정한 꽃은 계절의 변화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기쁨의 발로(發露)인 웃음이 바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꽃이란 생각을 했지요.

 

 

▲ 다시 육지, 통영으로 향하고....

 

 

시원한 장소

'김미경님의 경상낚시점' 마당에서 다시 잔치는 벌어집니다.

 

 

 

 

▲ 그렇게 정겨운 님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섬, 연대-만지도....

가슴마다 오래오래 그리움이 될 것입니다.

 

 

▲ 10년전 82세로 작고하신

'토지'의 박경리 선생 묘.

 

 

▲ 아름답게 조경된  주변 모습.

 

 

 

▲ 그리고 입구에 위치한 

박경리 기념관.

 

 

 

▲ 인구 13만5천의 아름다운 동양의 나폴리

통영,,,

그 가슴 찡한 그리운 곳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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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박 경 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지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