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그리움따라/경남.부산.울산

경남 거창.우두산(牛頭山1046m/고견사주차장-마장재-우두산-의상봉-지남산-장군봉-주차장/10K.6시간)

산꾼 미시령 2018. 6. 4. 05:45

 전국의 어느 산을 가더라도 언저리엔 꼭 절이 있으며, 천년 고찰의 절마다 등장하는 인물에는

원효, 혹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두 스님이 전생에 무슨 공사판 노다가꾼이었나? 그 교통 불편한 시절에 전국의 그 많은 절들을

창건했을까실제 그리 되었다기 보다는 그 많큼 우리 역사와 문화, 불교에 끼친 영향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원효(元曉)617, 의상(義湘)625년 태어났으니 원효가 여덟살 형인 샘이다.

이 원효와 의상이 다른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는 '해골물 사건'이 유명하다.

 

 무열왕 7년인 661, 원효와 의상은 당으로 가서 공부를 하기 위해 당으로 떠났다가

날씨가 어둑어둑해지자 한 동굴에 머물렀다. 피곤해 지쳐 자던 중 목이 말랐던 원효는

바가지에 담겨 있던 물을 마셨다 달고 시원하게....

 

 다음 날 눈을 떠보니 하룻밤을 묵었던 동굴은 무덤이었고 달게 마셨던 물은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해골물을 마신 것을 알자 구역질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여기서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즉,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실 때는 시원했으나 그 물이 해골에 고여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구역질이 나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의상과 헤어져 경주로 돌아왔다.

그 후 원효는 불교의 엄한 계율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지내며 백성들 속으로 파고들어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훗날 이두 문자를 집대성한 학자 설총(薛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원효와 반댓 길을 걸었던 의상,

 그는 제자를 두고 교육을 하고 경연을 하는 식으로 불교를 전파했다. 의상이 둔 제자만

무려 3천여명에 육박했고. 또한 여러 저술도 있었다

 

 이를 보면 원효는 감성적인 사람이고, 의상은 이성적인 사람인 듯 하다.

 그 의상(義湘)대사가 봉우리에서 참선을 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진리를

깨쳤다는 의상봉’! 거기를 오르려면 200계단을 아득히 올라야한다.

 

 그 의상봉이 속해 있는 거창의 우두산,

 거기를 다시 간다.

 나라의 소중함을 몸으로 익히는 소중한 6월에

 정겨운 님들과 그렇게 걷는다...

 

▲ 6월..

오랜 역사의 '장수산악회'의 937차 산행...

만차되어 달려왔으니,  좀 시끄럽고 요란했으랴.

 

▲ 오늘도 '오솔길'은 6명이

동행 하였습니다.

'우리들..'팀과 함께 찍어보자고 고래고래 불렀으나...

 

▲ 대부분이 고견사 길로 올라 가고

우린 '마장재'로 향합니다.

 

▲ 마장재까지는 1.6K, 

오늘 우두산 산행 길은 여러 갈랫 길이 있습니다.

 

▲ 뜨거운 날,

 발걸음은 벌써 숨이 찹니다.

 

마장재.

여기서 '비계산'은  2.8K,

대구-광주 고속도로, 거창 휴게소 뒷산 입니다.

 

▲ 비계산 방향도 올려다 보고.

 

 

▲ 총무에서 총장으로, 2018년엔 '회장님'이

되었습니다.

 

▲ '역전의 해병대 용사'

'서 보시라' 했습니다.

좌측 광산선생님은 해병대 대위 출신입니다.

 

▲ 마장재는 넓다란 초지

옛적 같으면 목장으로 이용 했으면 좋겠습니다.

 

▲ 언제나 필자의 멘토, 광산선생님.

사진으로의 봉사와 헌신이 아름답습니다.

 

▲ 멀리 북쪽으로는 '가야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남산제일봉', 우측으론 '매화산'입니다.

 

▲ 어느 시절 바리봉-장군봉-의상봉-

그렇게 남산제일봉-매화산까지의 19K...

긴 코스를 걸었었지요.

 

 

▲ 좌측으로 죽전저수지와

매안리..세월을 묵묵히 담아 낸 들판이

경이 롭습니다..

 

▲ 시원한 비계산 방향도

다시보고.

 

▲ 가야 할 우두산 정상이 중앙으로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의상봉 꼭대기...

 

▲ 우측으로 보이는 온천지구 '가조'분지...

그 좌측으로 미녀봉,

그 너머로 황매산이 이어지지요.

 

▲ 이제 본격적으로 암릉 길이

나타납니다.

 

▲ 고인돌 바위라고

제가 붙여 봅니다.

 

 

▲ 버스에서 누가 제가 묻습니다.

그 봉들 이름은 샘이 다 붙인 겁니까?

제가 그랬죠, 다는 아니지만 대여섯개는 안되겠냐고ㅎ .

 

▲ 오늘 걷게 될 봉들,,, 우측 지남산, 중앙으로 장군봉..

그 아래 바리봉이 여기선 겸손하게 보입니다.

 

▲ '가조'분지

그 너머로 지리종주길이 희미하고

거창읍내의 아파트 군도 보입니다.

 

▲ 이제 우두산이 저리 보이고

좌측으로 의상봉입니다.

 

▲ 아늑한 숲 길은

기대하기 어렵습니.

 

▲ 너는 내게로 걸어 왔고

나는 너에게 머물렀고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갔다.

 

▲ 직벽의 암봉은

그 활기참으로 힘을 주는듯 합니다.

 

▲ 어느 신선이 공깃돌 놀이를 하다

올려 놓았나?

 

▲ 어느 신선들은 떼지어 놀이를 가다가

그렇게 굳어 버렸나.

 

 

▲ '대물바위'라 하기엔 좀 작은듯 하고

양기바위라면 어떨까

이름들  짓기에 시끄럽습니다.

 

▲ 양기바위를 내려다 보며

한 마디씩 했던 분들입니다. 부러웠겠지요.

 

▲ 지나온 길을 돠돌아 보면

멀리 비계산이 살짝 고개를 내밉니다.

 

▲ 병아리 바위라 할까?

돌고래 바위라고 할까?

 

▲ 넘어 갈 곳을 보면

 아기자기 합니다.

 

▲ 가야산을 바라보고 있어서 일까?

만물상 코스를 연상케 합니다.

 

▲ 여러번 밧줄을 잡아야 하지만

눈 덮힌 겨울용 이겠습니다.

 

▲ 언젠가 돌아봤을 때 아쉬워 하지 않도록

아니, 돌아보고 싶은 미련조차 남지 않도록.

 

▲ 산행도, 인생도, 사랑도

불 길처럼 맹렬하게 타 올라야 해.

 

▲ 이제 의상봉도, 장군봉도

 저리 보이기 시작했습니.

 

▲ 이 바위를 처음 보던 날

 하나님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손으로 보였습니다.

 

▲ 무슨 내기를 했을까?

꿀밤 때리기 였을까?

 

▲ 이제 안 뵐 것 같아서

지난 온 길도 다시 되돌아 보고.

 

▲ 코끼리 바위처럼.

 

 

▲ 길게 들어난 '뿌리'

 밟지 않고 넘었습니다.

 

'우두산(1046m)

소의 머리(牛頭))를 닮았나 봅니다.

농경사회의 가장 큰 고마운 소..

 

▲ 마장재에서 2K를 왔고

의상봉은 600m 아래에 있습니다.

 

▲ 거기 그늘에서 점심을 나누고

이제 다시 길을 나섭니다.

 

 

▲ 의상봉 가기 전

996봉에서 되돌아 본 풍경들..

 

▲ 우측이 우두산이고

좌측 삼거리에서 매화산 방향으로 갑니다.

 

▲ 첩첩이 이어진

가야 할 방향도 보고.

 

▲ 바위와 씨름하며

넘고 또 넘습니다.

 

▲ 우측 마장재에서 길게 넘어 왔습니다.

 

▲ 북서방향으로는 수도산, 단지봉 그리고 멀리

그리운 덕유 종주길이 아련합니다.

 

▲ 이제 눈 앞으로 의상봉이 나타납니다.

200계단을 가파르게 올라야합니다.

 

▲  996봉을 넘어 암릉은 300m 이어지고

만만찮은 길입니다.

 

▲ 급하게 솟은 암릉들...

그 치솟은 기운에 경탄을 합니다.

 

 

▲ 의상봉 입구에 섰습니다.

거창인들의 의상봉에 대한 긍지가 대단합니다.

 

▲ 이제 출발입니다.

출발은 가파르지 않습니다.

 

▲ 가다가 여러번

넘어온 996봉을 건너다 봐야 합니다. 

 

▲ 거기 바위 틈에 선 '광산선생님'은

이 쪽을 찍어 줍니다.

 

▲ 제일 위, 매화산과 우두산 정상과

갈라지는 3거리 입니다.

 

▲ 여러번 뒤돌아 봐도

놀라운 풍경들...

 

▲ 오르다 내려다 보면

아찔했지요.

 

▲ 이제 마지막 오르막입니다.

황소 숨소리가 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

 

의상봉(義相峰, 1032)

 '이백'의 싯구인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별유'를 빌려

별유산으로도 불렀습니다.

 

▲ 의상대사가 이 봉우리에서 참선을 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진리를 깨쳤답니다.

 

▲ 몇 년전까지만 해도  암벽기술을 가진 전문 산악인만 오를 수 있있지만

일반인들이 섣불리 오르다 조난사고가 빈발하여

계단을 설치 하였습니다.

 

▲ 이제 내려 가야 합니다,

계단 굽이를 돌 때마다 경탄입니다.

 

 

 

▲ 다시 내려온 의상봉 입구..

이제 장군봉 2.7K를 가야합니다.

 

▲ 여기서 고견사로도 내려갑니다

고견사(古見寺)

신라 문무왕 때인 667 원효와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데,

원효가 절을 창건할 때 전생에 와 본 곳이라 해서 

견암(見庵), 견암사....

 

.

▲ 등산로 초입의 '견암폭포'는 여기서 이름이 유래합니다.

한국전쟁 때 불 타고 이후 차츰 중건했고. 대웅전 안에 보물 제1700호인

 

고견사 동종과 대웅전 오른쪽 범종루 뒤에

경남도 유형문화재인 석불이 있습니다.

 

 

▲  고견사의 수령 1000년의 은행나무와

견암폭포, 그리고 쌀굴들을 보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 그 시절 여기를 넘어 매화산으로 갈 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왜 염소나 다니는 길을 우리더러 가라하느냐'고.

 

 

▲ 2.7K 암릉 길..

여름 날이 아니어도

넘고 넘다보면 녹초가 되기 십상입니다.

 

 

 

▲ 의상봉은 점 점 멀어지고, 우측이 우두산, 좌측이

남산제일봉과 매화산등으로 가는 삼거리.

 

 

▲ 암릉 길은 끝없이 오르내려

인내를 테스트 합니다.

 

 

 

▲ '의자 소나무'

저는 70Kg가 넘지 않으니 안정감이 있지만

윗 이 회장님은 좀...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박남수의 시, '새' 입니다.

 

 

▲ '지남산'에서 바라 본 장군봉이 중앙에 있고

저 멀리, 더 멀리 지리산도 보입니다. 그리운 그 곳.

 

 

▲ 지나온 길들을 다시 되돌아 보고.

 

 

▲'지남산'..

1018봉이라 부르던 봉에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내려 가기만 해 봐라

시원한 맥주 두 병, 그것도 1.5리터 짜리를 마시고 말거야'

그리들 말 합니다.

 

 

▲ 바람이 시원해서

한참을 앉았습니다.

 

 

▲ 우측은 888봉,  좌측 아래로 '바리봉'이고

저 멀리 좌측으로 거창휴게소에서 건너다 뵈는 미녀봉, 오도산,

그 그 너머로는 황매산이 이어집니다.

 

 

▲ 그렇게 힘들게 오른 길을

허무하게 가파름으로 내려갑니다

 

 

▲ 얼마나 또 진땀을 빼는 오르막이 있으려고...

 

 

▲ 암릉 곳곳에 점점이 박힌 소나무..

'어우러짐'의 의미를 탄성으로 거너다 봅니다.

 

 

▲ 이렇게 우두산은  아홈개의 크고 작은 봉들을 거느리고

바리봉,장군봉,의상봉에게 명성은 양보.

정작 우두산은 초라합니다.

 

 

▲ 우측 마장재부터 그렇게

돌고 돌아 넘나 들었습니다.

 

 

▲ 장군봉 삼거리를 만납니다.

120m를 다녀와야 합니다  가파른 길을..

 

 

▲ 아래로 온천지구 '가조'들판

그리고 이어진 저 멀리 지리종주 길까지..

 

 

▲ 장군봉 오르는 길도 놀라운 풍경입니다.

 

 

장군봉(956m)

옛 바다였던 이 곳에 표류하던 한 장군이 탄 나룻배를  구하기 위해

옥황상제가 도력이 뛰어난 딸을 보냈는데 둘이 사랑에 빠졌다.

 

 노하여 영원히 산으로 변해 있으라는 벌을 내렸고

딸은 저 멀리 미녀봉이 되고, 또 하나는 여기 장군봉이 되었다니....

(잘 뵈지않는 빗돌을 읽으니 그렇습니다)

.

 

▲ 바리봉까지는 1.3K를 더 가야하고

병산마을에서 여기로도 오나봅니다.

 

 

▲ 미녀봉은 비계산에 가려 잘 뵈지 않겠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리 아픈건가?

 

 

▲ 많은 이들이 지루하게 기다린다 하여

할 수 없이 비리봉은 아쉽게 포기하고...

 

 

▲ 그렇게 내려선 출발지 고견사 주차장...

장군봉에서  2.6K를 걸었다.

 

 

▲ 그리고 몰래 '알탕'을 합니다.

벌금이 나올까봐 동료 4명이 함께였습니다.

 

 

▲ '우리들...팀'

따뜻한 갈비와 새우로

제게 더 먹이려는 마음이 참 따뜻합니다.

 

 

▲ 그렇게 내려와 즐거움을 나눕니다

그 녹초였단 몸과 마음은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 올려다 본 우두산...

우측 마장재에서 좌측으로 원점회귀한 10여K,

 

 

▲ 그렇게 그리운 님들과 함께한 암봉과 기막힌 조망,,,

걷는 맛에,  보는 맛을 진하게 새긴 하루....

 

 

▲ 신라의 원효와 의상 그리고 고운 최치원,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전설을 쌓아둔 9홉봉들의 웅장한 우두산...

 

'여기는 인간 세상이 아리나 별천지(別有天地非人間)라

 외칠만 합니다.

 

그렇게 그리운 님들과의 뜨거운 하루는

저물었으니...

감사한 시절, 그리운 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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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