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i
‘어머니의 정과 한글을 사랑한 사람이다(母情國文)’
1637년 인조 15년에, 강화도를 떠나 한양으로 가는 출렁이는 뱃전에서,
20일 전에 병자호란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출산을 하였는데 그 아이가 서포였다.
그 아이는 윤 부인에게는 남편을 잃은 전쟁터에서 얻은 귀한 자식이요,
조선 소설사에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라는 걸작을 남긴 사람이다
만중의 아버지 ‘익겸’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부인과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갔지만
강화도가 적의 수중에 넘어가자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강화도 남문에 올라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혼연히 앉아 폭사했는데. 겨우 스물세 살이었다.
만중은 1665년(현종 6)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숙종 때 대제학,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유명한 ‘희빈 장씨’일가를 둘러싼 일들로 인해 ‘선천’에 유배된다.
그의 다섯 살 위 형의 딸이었던. ‘인경 왕후(仁敬王后)’가 일찍 죽자 숙종은 후비를 얻었는데,
이 여인이 바로 비운의 ‘인현 황후’다.
자신의 조카딸을 이어 국모가 된 인현 왕후를 김만중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이 ‘인현 왕후’와 적대에 선, 희빈 장씨를 못 마땅히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이 선천 유배 중에 〈구운몽〉이 집필되었으며, 1688년 11월에 왕자(경종)의 탄생으로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몰락하자 그도 왕을 모욕했다는 죄로
‘남해 노도’로 다시 유배되어 3년만인 1692년. 결국 그 곳에서 56세로 죽었다.
김만중의 삶을 바꿔 놓은 ‘희빈 장씨’는 그 후 왕비가 되고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죽은 지,
겨우 2년 뒤에 후궁으로 강등되고 그로부터 7년 후 숙종으로부터 자결을 명 받아 죽음을 당한다.
김만중의 재주는 뛰어났다. 그는 시문집인 《서포집》 《서포만필》, 〈구운몽〉,〈사씨남정기를
남겼다.
〈사씨남정기의 저작 장소를두고 경남 남해 망운산(望雲山) 언저리, 또는 노도(櫓島) 저작설로
갈렸는데 《서포연보》를 통해 남해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해군 서면 ‘망운산’
언저리임이 밝혀졌다.
만중은 어머니를 그리는 애절한 〈사친시〉를 남겼는데 이 사친시를 짓고 석달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이 소식은 한 달이 지난후남해 귀양지에 있는 김만중에게 전해졌다.
어머니의 영결조차 못 본 그의 비감 어린 심정이 오죽했으랴! 김만중은 이로부터 2년 뒤
1692년 4월 30일, 56세를 일기로 이승에서의 삶을 그렇게 접고 영면하였다.
남 녘으로부터 ‘우수’의 훈풍이 부는 그런 날에 5년전 걸었던 그 남해의 남쪽끝,
응봉산, 설흘산을 간다
고달폈던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가천다랭이마을’ 뒷산,
그 곳을 간다.
정스럽고 아름다운 님들과 같이.....
▲ 바람도 잔잔한 '우수'의 계절.
산행 길에 오릅니다
'남해군 남면 선구리'...보물섬 남해의 최남단입니다.
▲ 산야의 초,목만이 아니라 사람의마음에도 봄이 오는가?
사진찍자는 말에 만차였던 지난번보다
배나 더 줄을 섭니다.
▲ 바람도 햇살도 좋고,
우측은 고운모래가 많아 이름 붙여진 '사촌해수욕장'의 사촌마을,
좌측은 팬션이 엄청나게 들어서는 '향촌마을' 입니다.
▲'바래다랭이 지갯길'
서쪽의 평산항에서 시작하여
총 8코스 120K에
조성된 문화생태탐방로 입니다.
▲ 350년된 팽나무,
이 곳을 고향으로 둔 이들은 어느 곳에서나 이 나무를
그리워 할 것입니다.
▲ 거기에 봄이 이미 와 있습니다.
매화를 전령사로.
▲ 남해의 마을은 전국 생산량의
7%를 차지한답니다.
인터뷰를 하면 그럴겁니다.
'해풍을 맞고 자라...
맛이 달고, 식감이 좋으며, 정력증진, 피부미용에 좋고....'
▲ 이제 본격적으로 산행은 시작됩니다
오늘은 '응봉산'을 거쳐 '설흘산'으로 갈 겁니다.
▲ 의미 모를 굴이 하나 있습니다.
저마다 과거에 수행했던 곳이라 시끄럽습니다.
모델의 화려함에 카메라도 놀랐는지...
▲ 그 바다 건너에
여수 시내와 오동도가 잡힐듯 합니다.
▲ 오늘도 '장수'의 늠늠한 '젊은' 님들은
놀라운 날렵함으로 더 젊은 분들의 기를 꺾습니다.
▲ 부족한 필자의 블로그에
늘 응원을 해주시는 '진주님'
덜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업어 줄 수는 없고..
▲ 그래도 어쩌겠는가 바다로 치솟은
날카로운 암릉미를
맛보려면 올라야 하는 것을..
▲ '사진을 찍어 주면
오늘도 아이스크림을 돌리시려나?'
그런 생각은 안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맛있기는 했습니다.
▲ 그래도 전보다
시설이 많이 보완 되었습니다.
▲ 좌측의 '향촌마을',
저기 뵈는 다섯개 부지를 하나씩 사고
옆 밭에 시금치를 심어 길 가에서 팔자
아니다 토끼를 키워 담백한 토끼탕집을 할까?
온갖 사업 구상에 시끄럽습니다.
▲ 더 좌측으로는 멀리
여수의 오동도, 그리고 돌산의 금오산 향일암..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인구 30만의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 거기에 오르다 앉아보기도 하고
▲ 카메라 맨을 생각해 주는 고마운 님으로 하여
필자도 앉아봅니다.
▲ 그리고 본격적으로 암릉길을 갑니다.
좌,우측은 천길 암벽인데...
▲ 그 시절 바람이 엄청 불어
바닥에 기어갔었습니다.
그뿐입니다 뭘 쌌느니..그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남자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 여수로 향하는 엄청난 큰 배들은
쉴사이 없고..
▲ 앞,뒤, 좌,우,,,
어디를 눌러도 놀라운 풍광입니다.
.
▲ 그래도 여기부터는 난간이 설치 되었습니다.
뒤로 응봉산(472m)이 보이고, 그 너머로
설흘산(482m)이 희미합니다.
▲ 오늘도 박기봉 대장님은
활기가 넘치고..
뭐라더라?
'그 산은 갔던 산이라 안 간다 했더니
임마, 너는 아내 배 위 산은 한 번 올랐다고 안 오르냐?'
했다던가?
필자는 순박하여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 그렇게 '칼날능선'의 암릉길은 짜릿합니다.
칼날의 왼쪽은 홍현마을..
그러나 건너다 볼 수가 없습니다 천길 낭떨어지가 있어..
▲ 펜스, 데크가 스릴를 반감 시키지만
안전함이 더 좋은거니...
▲ 내려운 길을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 발을 잘 디뎌야 합니다.
이런 곳에서 '체면'차림으로
제식훈련처럼 씩씩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렇게 오르면 응봉산 정상입니다.
인산인해로 인증샷은 어렵고..
▲응봉산(472m)
과거 '매봉산'으로 불렸지만 '응봉산'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매가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모습을 따서
'매 응(鷹)'자가 붙은
전국의 많은 응봉산, 혹은 매봉산과 같은 명명 일것입니다.
▲ 거기서 넘어서 살흘산으로 가지만
대장님의 안내대로 '육조능선'으로 내려가다가
좌측 허리로하여 오르기로 했습니다.
▲ 내려오다가 넓고 따뜻한 곳에서
한 상을 차려 점심을 먹습니다..
바람도 좋고, 입맛도 여전하고...
▲ 부자동네 점심은 잔치상 입니다.
겨우 라면 먹은 우리 셋은 먼저 내려간다고
내려갑니다.
▲응봉산의 동쪽인 설흘산은
연필을 깎아놓은 듯 뾰족하게 솟아 있는데
아무리 내려가도 좌측으로 가는 길이 나오지 않습니다.
▲ 계속 내려갑니다
좌측 길은 나오지 않고 점점 불안합니다.
▲ 내려 온 응봉산을 올려다 보니
아득하게 내려왔고..
▲ 바로 아래로 아스팔트 길이 보입니다.
1K여를 내려왔나 봅니다.
'안되겠다 되돌아 오르자'
설흘산은 가야하지 않겠는가!
▲ 셋이 툴툴 거리며 가파른 길을 다시 오르니.
'부잣집 점심'을 드신 분들이 그제서야 내려옵니다.
'도로 다시 올라야 합니다 길이없어요'.
혹 속으로 이랬을 리는 없을 겁니다.
'고소하다 먼저간다고 하더니...' .
▲ 부지런히 다시 오르니
사람들이 덜 합니다. 두 번째 올랐으니
인증샷을 남깁니다.
▲ 설흘산 가는 길에
'수처작주'
당나라 임제선사가 남긴 말입니다.
'수처',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삶의 현장이고
'작주', 그러나 어디든 주인공으로,
주체적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 가천마을에서 오르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1K여를 힘겹게 오르면
설흘산 봉수대 입니다.
▲ 설흘산은 '감동을 더 하는 산'이라 합니다.
이 산에서 돌을 져 날라 108계단의 '삿갓배미'
다랭이 논을 만들고
자식을 키워 낸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억척스러움이
배어있으니...
▲ '설흘산 봉수대'
지난 달 올랐던 금산의 봉수를 이어받아
망운산과 여수 돌산도 봉수와 연결되는
국가 중요 통신기간시설 이었을 겁니다.
▲ 경상남도 기념물 248호 입니다.
이 분들이 아니고 '봉수대'말입니다.
이 분들? 기념물로 되겠습니까?
'국보'로도 모자랍니다.
▲ '장수'의 그리고 '오솔길'의 봉수되어
오래오래 '중심'이 될 분들입니다.
▲ 똑 같은 사진을 왜 배치했는가?
필자도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 건너 응봉산을, 그리고
좌측 1K여를 내려갔다 다시오른 능선을 봅니다.
삶도 그럴겁니다. 지금은 고달퍼도
여유있게 건너 볼 세월이 있으리라...
수처작주(隨處作主) 하자
다짐합니다.
▲'가천다랭이 마을'
'옛날 한 농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논을 세어보니
한 배미가 모자랐습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한참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찾는 것을 포기하고 옆에 벗어둔 삿갓을 들고 일어 서려는데
그 아래에 한 배미의 논이 숨겨져 있었답니다.
하긴 가장 작은 논은 3평이라니...
▲ 하산 길은 가파릅니다.
'앵강만', 그리고 '노도'가 보이는 곳에서
'서포 김만중'을 설명해 봅니다.
▲ '서포 김만중'이 3년간 유배되고
글을 쓰고, 거기서 56세로 죽은 '노도'
현재 16가구 43명이 산답니다.
그가 죽은지 325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팠다는 샘터, 초가집, 그의 허묘가 남아 쓸쓸함을 더합니다.
▲ 그 '노도' 옆 중앙으로 금산이 높이 솟아있고
그 안쪽으로는 '앵강만'이 평화 롭습니다.
▲ '가천다랭이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너덜겅도 지나야 합니다.
▲ 그렇게 내려 와
설흘산도 올려다 봅니다.
▲ 가천 다랭이 마을..
남해군 남면 홍현리 입니다.
그 고달폈던 삶은 2005년 국가지정 '명승'이 되었습니다
문화재의 일종입니다.
▲'바래'는 척박한 환경에서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물 때에 맞춰 갯벌과 갯바위등에서
해초류와 해사물을 채취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 아들 더 낳을 일은 없겠지만
'암수바위'를 다시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암수바위'
5.9m높이의 발기찬 수바위와
그 우측에 4.9m의 만삭의 여인의 몸을 닮은 암바위입니다.
▲ 조선 영조27년에
이 고을 현령에게 한 노인이 꿈으로 나타나
'가천에 묻혀있는 나를 일으켜 달라'
그리하여 묻힌 암수바위가 세상에 나왔고
그 후로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제사를 매년 올린답니다.
▲하나하나 맨 손으로 쌓아올린 108계단 논들,
그 근면성과 억척과 눈물과 땀이 하나하나 배어있는
장구한 세월, 그 땅 뙈기에 각인 되었을
무명씨들의 분투를 생각하면
왠지 숙연해 집니다.
▲ 성채처럼 에두른 응봉산, 설흘산의 기기묘묘함과
아기자기한 해안 풍광까지....
참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 한국의 아름다운 명승,
더 현대식 집들어 늘어나지 않고
문화재 처럼 잘 보존되어 가길 바래봅니다.
▲이제 움쿠린 계절은 가고
봄이 되었습니다.
산행의 즐거움은 그렇게 마치고...
▲ 보물섬 남해,,,
다음 주 다시 '망운산'을
찾을 예정입니다.
▲ 선구리에서 시작하여
칼날봉을 지나 응봉, 설흘산으로
이어졌던 하룻 길..
▲ 다랭이 마을을 만든 무명씨 민초등과
서포 김만중의 생각으로 그렇게 걷던 하루
참 감사한 하루였으니...
서포 김난중은 남해노도에서 죽었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묻힌 대전에 그의 비가 이렇게 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국문을 사랑한 아름다운 사람,
그는 우리 문학사의 큰 자랑이요 기둥입니다.
....................................
사친(思親) - 어머니를 그리며 -
/ 김만중(金萬重)
今朝欲寫思親語 (금조욕사사친어)
字未成時淚已滋 (자미성시루기자)
幾度濡毫還復擲 (기도유호선복척)
集中應缺海南詩 (집중응결해남시)
오늘 아침 사친의 시 쓰려 하는데
글씨도 이루기 전에 눈물 먼저 가리우네
몇 번이나 붓을 적시다 도로 던져 버렸나
응당 문집 가운데 해남의 시 빠지겠네
'山行..그리움따라 > 경남.부산.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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