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경전인 ‘성경’에 이해하기 어려운 한 사건이 소개된다.
어느 날 아침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읍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너무도 시장하여
길 가에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혹 열매가 없을까하여 그 나무 가까이 가 봤지만
잎만 무성하지 무화과나무 열매가 없었다.
기대를 갖고 다가갔지만 열매를 얻지 못하자 지금부터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하리라
저주의 말씀을 하셨고 그 때로부터 그 나무가 시들어 버렸다는거다.
우리가 성인이라고 알고 있는 예수께서 아무리 배가 고파 화가 나셨어도 나무에게
이런 저주를 했을까 당황하게 되고,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어진 내용을 보면,
무화과철이 아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사과나무가 있었고 사과를 얻을까하여 열매철도 아닌 5-6월 봄날에 나무에게 갔다는
것이고 이는 나무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이 난해한 사건에 대하여 기독교에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하지만 나는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무화과 열매가 있을 철이 아니지만 ‘기적’을 원하셨다는 것이다.
벌써 한 해가 지나간다.
우리 주위의 여러 헌신, 기부, 봉사자들을 보면 마땅히 할 만한 형편 중에 하는 그것도 감동을
주지만, 자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려운 여건과 형편에서 선행을 행하면
이것은 ‘기적’이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산악회’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공동체 안에는 살아가는 사정으로 보면 도저히 감당할 형편이
아닌 이들이 회장도 하고, 총무도 하고, 그렇게 그가 그런 봉사를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열매철이 아닐 때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은 ‘기적’과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기적을 행하는 분들로 하여 우리의 공동체는 유지 발전된다.
오늘도 기적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분들을 존경하면서
한 해 동안 수고하신 분들과 새로 기적을 행하기로 다짐한 모든 분들에게
신의 도우심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원점회귀를 위하여 차량을 영산 석빙고
인근에 세우고 등로입구 보덕사까지는
재미없는 시멘트 길, 1K남짓 된비알 도로를 걸어야 한다.
▲'보덕사'
예나 지금이나 소박한 모습..
그래서 더욱 정겹고..
▲보덕사에서 '신선봉'까지1.2K 는
여러번 숨을 몰아쉬고, 앉아 쉬어야한다.
소나무 숲이 아니면 더욱 힘 들었으리라.
▲ 그 가는 길엔 여러 개의 정성된 돌탑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소박하고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우린 동시대의 사람이나, 우리 주위의 풍광은
'별로'로 생각하고,
먼 옛 사람이나, 먼 나라의 것만 귀히 여긴다
우리 가까이 이런 좋은 산도 시시하다고 하며...
▲흐린 날씨지만 이런 조망이 아름답다.
건너 중앙의 '종암산'
그 산 넘어 아래로는 부곡CC와 온천단지가 있다.
▲건너 봉이 '함박산'이다 어느 해 저기까지 하루에 주파했다가
'죽을뻔'했다. 오르내림이 심하다.
그 너머 왼쪽으로 칠원의 '청룡산' 좌측으로 천주산,
오른쪽으로 무학산..
▲신선봉에서 바라본 가야 할
영취산 정상(左),
앞은 3봉으로 이뤄진 '589봉'이다.
▲ 영산 시내모습, 오랜 역사의 고장이다
석빙고, 만년교, 그리고 유명한 3.1민속문화제(고싸움등)등으로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한 고을이다.
▲ 건너 함박산은 '만년교'에서 시작하여
종암산으로 하여 부곡온천으로 이어진다.
▲ '신선봉'
전에는 봉 이름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사방 조망이 정말 좋다.
이정표가 너무 높아 먼 곳에서 건너다 보면
골고다 언덕의 예수님 십자가 모습이다.
▲거기서 한번 폼을 잡아보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 온 한 해가 감사하고..
▲거기서 다시 가야할 봉들을 본다
앞이 589봉, 좌측이 영취산 정상,
저 멀리
고깔봉(병봉).. 제법 오르내림이 심하다.
▲ 가는 길에 '영축산성'이 길다
이 산성은 신라의 득세를 막기 위해 쌓은 가야국이 축성한 '포곡식산성'이다.
훗날 임진왜란 때도 활용됐을 것이다.
▲수년 전 이 산에 큰불 이 나면서 거의 모든 나무들이 불탔다.
송이버섯 때문에 주민간 갈등으로 벌어진 일이란다.
▲ 방금 내려온 '신성봉'을 올려다 보면
또 다른 올망졸망 조형을 갖춘 예쁜 바위들이
조경처럼 서 있다.
▲ 깊게 내려왔다 신선봉을 올려다보니
꼭대기에 몇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향교가 나온다.
영산 사람들은 이렇게도 다니겠다.
▲이제 세 개의 봉으로 되어 있는
589봉으로 간다
▲ 양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감탄사가 절로난다
흡사 설악의 어느 곳을 걷는듯 하다.
▲'구계리'마을이다
동그랗게 산들이 둘러싼 높은 분지 지대의 평화로운 마을이다
삼재팔란(三災八亂)을 피한 곳이라 한다.
▲ 589봉으로 오른다
▲다시, 내려온 신선봉을 보고..
좌측 아래는 창녕 옥천계곡을 오르는 마을이다.
▲아찔하기도 하고 ..
전에는 위험하게 산 정상으로 넘었는데
지금은 허리를 휘돌아 길이 정비되었다
▲바람없는 포근한 날,
이런 멋진 곳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
정상으로 향한다.
▲'영취산'은 '영축산'이란 이름과
혼용돼 알려져 있다
▲영취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최후로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독수리 서식지인 이 곳을 독수리 취(鷲)자를 써
영취산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영취산의 불교식 이름이 바로 영축산이다.
▲영취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많다.
영남알프스 양산 통도사 뒷산 영취산(영축산)과
함양 백두대간상의 영취산(1066m)
그리고 진달래로 유명한 여수 영취산(510m),
울주 문수산 옆 영취산(352m)....
▲한 겨울 서릿발처럼 삐죽삐죽 솟아난 화강암릉과
기묘한 소나무에 걸린 구름조각이 조화를 이뤄
그야말로 노송괘운(老松掛雲)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데..
▲이제 정상이 눈앞이다
깊게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야 한다.
좌측으로 계성면 사리에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여러번 다시봐도 아름다운 종암산,
그리고 그 너머 멀리 천주산 ..
▲오르는 길에 바위에 올라
누워 하늘을 보기도 하고...
▲ 이제 정상 거의 온듯하다.
▲창녕에는 영취산이라는 이름이 두개가 있다.
하나는, 신령 영(령) 자를 쓰는 오늘의 영취산(靈鷲山·681.5m),
그리고 송이 집산지인 옥천을 들머리로,
관룡산 우측의
고개 영(령) 자를 쓰는 영취산(嶺鷲山·739.7m)이다.
▲거기서 종암, 함박산을 다시보고
▲영취산(靈鷲山.681.5m)
창녕군 계성면 사리와 영산면 구계리의 경계에 있다.
옛 이름은 수리뫼, 취산(鷲山)..
▲그 너머 구봉사라는 절이 아찔하다.
천길 암벽 아래 작은 공간에 턱을 물려낸 뒤
극락보전과 대웅전 산신각 등 절집을 지었다.
위태롭기 그지없으나 풍경은 그만이다.
▲그 아래로 옥천계곡으로 오르는
1080지방도가 평화롭고
저 멀리 뒤로 화왕산과 관룡산,
그리고 또 다른 영취산이 희미하다.
▲ 어디를 봐도 멋진 풍경이고
▲여기를 올 때마다
여인의 둔부가 생각나는데...
나만 그런가?
엉큼한 형이하학 때문인가?
▲그 정상 너머로 풍경이 그만이다.
▲여기서 구봉사 방향으로
내려 가기도한다.
▲머리위의 저 바위를 보며
좁은 바위사이로 통과해야 하는데
좀 통과가 어려운 몸도 있으리라
그런 분은 배낭을 벗고
칼처럼 옆으로하여 배를 최대한 들여밀어 가야한다.
▲우리는 '병봉'(꼬깔봉)을 거쳐
임도로 하여 구계리로 간다.
▲여기 삼거리는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청련사' 에서 오르는 곳이다.
▲'계성면 사리'에서 올라 원점회귀하는
코스도 있고..
▲['산이 좋아 산의 품에 안긴 당신이여!
당신의 메아리만 귓전에 맴돕니다
구름, 산새, 들꽃 벗삼아 산 사람되어
편히 잠드소서.'
당신의 아내 여옥이가']
벌써 20여년전, 부산 의사산악회소속 김한출 님이
여기서 사고를 당했단다.
사부곡 같은 이 글 귀가 오래 남았다. 명복을 빌며..
'여옥'..
'최대치'도, 채시라의 여옥이도 생각났다.
▲ 이런 비 하나 산에 남길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산꾼이리라..
너머로 옥천저수지가 보인다.
태풍 매미때 많은 주민들이 수몰 되었다
▲ 다시 깊게 내렸다가 건너다 보이는
꼬깔봉(병봉)..저기를 올라야한다
▲그 옥천 저수지 위로 옥천계곡이 평화롭다.
좌측 산이 화왕산이고, 우측 산이 관룡사가 있는 관룡산
그리고 오른쪽이 창녕의 또 다른 '영취산(738m)'이다
▲내려온 정상도 아득히 되돌아 보고..
▲꼬깔봉(牟峰)
영취산의 동쪽 662m의 봉우리로
구계리 '보림사지'가 있는 곳의 뒷산이다.
마치 고깔처럼 생겼다 하여 꼬깔봉이라 부른다.
▲고깔봉 아래 '보림사'의 멸망과 관련된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보림사 뒤 꼬깔봉 산자락에 명당이 있었다.
그러나 절의 경내라 묘를 들이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밀양의 어느 명문세가가 이 명당이 탐이나
그 곳에다 묘를 들이려고 하였다.
▲당연히 보림사쪽에는 반대를 하였고,
결국 힘으로 밀어부치다 안되니 계교를 쓰게 된다.
▲빈 상여를 내세워 중들과 싸우게 하고
시체를 맨 돌격대는 싸움이 한창일 때
다른 길로 와서 묘를 들인 것이다
▲ 묘를 쓰면 절이 망하리라 하여 결사적으로 막던 스님들은
나중에야 빈상여와 씨름을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 묘가 쓰여 졌으니 파묘(罷墓)를 할 수 는 없는 일이고
뒷산 봉우리에 봉우리가 다 덮힐 만한
큰 고깔을 만들어 씌웠다.
▲절은 그후 임진란에 불타서 망해 버렸고,
자손의 영화를 보려했던 밀양땅 호족은 꼬깔 때문에 자손이 없어
그 가문 역시 망해 버렸다 한다.
▲그러나 이런 스토리텔링 자체보다는
임진왜란때 승병장 사명대사로 하여
왜군들이 보복한 결과가 보림사가 망한 타당한 이유이겠다.
▲마지막 고깔봉을 오르는 길은
두 다리가 후들거렸으니...
▲보호 난간이 없다면 오르지 못했으리라.
▲ 앞 봉을 넘어 온거다
다시 깊히 오른거구..
▲그리고 멀리 오늘 넘나든 봉들을 본다
좌측 먼 봉이 신성봉. 그 우측으로 세 봉우리인 589봉, 그리고
중앙이 정상이고, 앞 666봉은
故김한출 비가 있는 곳..
▲ 거리는 짧아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시절 어떻게 건너 종암산, 함박산까지 종주를 했을까?
어느산을 가든 '그 때는 이리 힘든 산이 아니였는데...'
이러는 걸 보면 한 해, 한 해 힘이 달리는가?
▲ 꼬깔봉을 오르는 아찔함과는 달리
넘어 내려가는 길은
푹신한 마사땅이니 ...
▲ 좌우로 송이채취단지가 넓다.
채취기간에는 여기를 오가는 일에
누명쓰기 쉽겠다.
▲ 그렇게 임도를 향하다보면
임도 가기전 우측 구계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임도로하여 내려가도 되고, 종암산, 함박산,
아니면 화왕산 방향으로 가려면 임도까지 가야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구계리에서
오늘 걸었던 봉들을 올려다 보고..
▲ 정겨운 마을,
신축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선 마을을 통과하면
맑고 아름다운 저수지도 있다.
▲구계리는 보통 '12땀'이라 불린다.
그 만큼 많은 마을이 있었고 사람도 많이 살았다.
열 두 땀(뜸)으로 꼽히는 마을들은 궁터마(內村), 적지, 중마, 새터,
섬땀, 곰골, 애기당, 달바위, 산정, 윗각단,
가마등, 새동네 등이다
▲그렇게 내려서 마지막 작은 저수지 앞 길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철새의 모습도 아름답고,
........................
그렇게 2016년 마지막 산행의 날에
한 해동안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공간에서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산을 함께 걷는다는 것..
큰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지난 한 해동안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해주시면서 우리 고운님들!
베풀어주신 깊은 관심과 사랑 잊지않겠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함없는 사랑으로
한결같은 믿음으로
밝아오는 새해에도
우리서로 더불어 같이 갈 이되기를
더욱 아름답게 빛나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내 건강하십시오,,,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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