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사람치고 애절하고 가슴저린 러브스토리 하나쯤 없는 이가 누구랴!.
인정하기 싫지만 벌써 이순[耳順]를 얼쩡거리는 필자도 차마 말 못할, 지독하고 아픈 사랑 한번
왜 없겠는가?
지난 주 법정스님 ‘무소유’를 소개하니 어느 독자께서 그의 마지막 입적장소였던
길상사(吉祥寺)’에 얼킨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소개해 주셨다
‘천재시인 백석(白石)과 기생 자야(子夜)의 순애보’다
함흥 영생여고에서 영어교사를 하던 백석은 일본 청산(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 문학가로 천부적인 재능과 외모로 당시 모든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백석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기생(妓生), 김영한(金英韓)과의 만남은 운명적이다. 1936년 회식
자리에 나갔다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백석은, 그 밤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손을 잡으며
고백한다.
‘당신은 내 영원한 마누라입니다/
죽기 전 우리 사이 이별은 없어요.‘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 라는 애칭을 남겼고. 그렇게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3년간 불같은
동거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큰 장애물이 다가왔으니 그것은 집안의 결사반대였다.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켜
둘의 사랑을 갈라놓으려 했다.
마지못해 딴 여자와 결혼을 한 백석은 첫날 밤, 야반도주하듯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을 가자고
제안을 하지만 자야는 자신이 백석의 장래에 해가 될까' 하여 거절한다.
백석은 언젠가 자야가 자신을 찾아 만주로 올 것을 확신하며 먼저 만주로 떠났고.
만주에서 자야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기다린다.
하지만 잠시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해방이 되자 백석은 오지 않는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내려왔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올라갔고
그 후 38선이 그어지고, 6.25전쟁이 일어나 둘은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
1996년 사망한 백석이 북에서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는 모른다.
한편, 혼자 남겨진 자야는 아픔을 잊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의 3대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을 세워 엄청난 재력가로 성장한다. 훗날 자야는 당시 싯가 1000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조건 없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그 대원각이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7,000평의 사찰 길상사(吉祥寺)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던 그 녀는 ‘백석의 시는 쓸쓸한 적막(寂寞)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다’라고 쓴, ‘내 사랑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은 이름’
(1995년 출간)저서를 가슴에 안고 폐암으로 1999년에 세상을 떠난다.
그녀가 떠나기 전 ‘1000억 원의 재산을 기부하는데 아깝지 않냐?’ 라는 기자의 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고 한다.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줄 만 못하다”
백석의 생일날마다 금식을 하며 일평생 잊지 못했던 그녀는 "내가 죽으면 화장했다가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 달라"는 유언대로 백석의 시에서처럼 '눈이 푹푹 내리던' 어느 날
길상사 앞마당에 뿌려졌다.
한 많은 안생을 살다간 자야의 회고록은
"백석은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다"
라고 썼다.
가을이런가!
가슴이 시리다. 그 시린 가슴을 안고
천성산 하늘 릿지길을 간다.
자야를 그리워하는 백석의 가슴으로
정겨운 임들과 같이.....
▲양산IC를 나와, 돌고돈 버스는 큰 도시화가 된 '웅상읍'으로 하여
'주진저수지'에 내려놓고..
현재는 양산시'주진동' 이란다.
▲ 오늘은 좀처럼 사진찍기에 모여지지를 않는다
천성산의 기대감 때문이리라
▲ 묘소의 규모나 위용으로 봐서 그 시절 '한자리' 하섰을
집안의 초입 묘소부터 가파른 길은 시작되고..
▲ '숙부인' 묘지를 지나는데
회장님의 정경부인, 숙부인등 품계 강의는 해박하다.
남편따라 신분이 정해지던 당시...
오늘날도 그 전통을 못 버려
군수부인이 군수인척 하기도 하지..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922m인 천성산.
천성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리었다
▲땀이 흠뻑 날무렵, 임도를 만나고
좌측으로는 700m '미타암'입구
우린 우측 '하늘릿지'방향으로 간다.
▲그렇지 인생도 날실과 씨실이 모여
옷감이 되듯,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짜여지는 '직조' 같은 것이려니..
▲'천성산'의 유래는 원효대사가
천명 대중을 이끌고 이 곳에 이르러
89암자를 건립하고 화엄경을 설법하여 ...
▲천명 대중을 모두 득도하게 한 곳이므로
그 이름을 천성산(千聖, 천명의 성인)이라 전해진다.
동쪽으로는 양산시 웅상읍, 서쪽으로는 양산시 상북면에 접하고...
▲'하늘 릿지'까지는 가파름의 연속이다
비온 뒤의 미끄러움은 그냥 마지막 부분만 오르기로 한다
저 아래 '법수원' 암자가 안정되게 앉아있고...
▲ 이윽고 올라선 암봉에
우측으로 '웅상읍'...
지금은 서창동,소주동,평산동,덕계동으로
분동되었다
▲열정적인 우리 대장님, 시츄에이션이 아니다
순간포착이다.
그 열정과 10년은 젊게뵈는 인상좋은 얼굴은
그 앞에서면 필자는 늘 주눅이 든다
▲ 건너다 뵈는 암봉들...
저마다 이름이 있겠지만 ...
▲어디서나 소나무의 강인함은
아름다움이 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대동지지에서는
천성산을 원적산(圓寂山)으로 기록하고 있고..
▲ 또한 세종실록지리지는 이 산을 소금강(小金剛)
또는 '소금강산'으로도 부른다고 적고 있다
그런 말만 들었다 직접 읽기야 했겠는가!
▲비만 안오면 조망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햇는데
조망까지 볼수있으니 ..
▲ 길이 미끄럽고 가팔라,
여러번
이리저리 올랐다 내렸다 길을 찾는다
▲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고
사방 펼쳐진 장관에 혼미하다
▲ 방금 올랐던 봉도
이제는 내려다 본다
신선은 이런곳에만 살겠다
▲ '정선'이런가 '안견'이런가?
'몽유도원도'
그 그림 생각이 났으니
▲ '안견'이 맞다
간간이 구름속에 나타나는 건너편 봉..
오늘의 최고의 풍경이었다
▲ 그 봉 아래에는
작은 기도처인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고.
▲밧줄을 타고 올라야하는 걱정도 되지만
다 담지못한 풍경이 맘 바쁘게하고..
▲ 한 사람이 완전히 끝난후 다시 로프를 잡아야 한다.
자판기 커피도 미리 손넣고 잡고 있는 조급함은
줄 역시 그렇게 밑에서 벌써 잡고있다
▲ 아득하게 거기 그렇게 앉으면
왜 '하늘릿지'라고 하는지
실감이 나고..
▲ 여러번 다시봐도
오래오래 남을 풍경이다.
복 받은 감사한 날씨였으니...
▲ 모두들 떠나기가 싫은 모양이다
하긴 넋을 빼앗겼으니..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
▲....톡,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 풍경에 젖어
이해인 수녀님의 '가을기도'를
음미해 보고...
▲아, 저기를 오르면
또 어떤 엄청난 풍경이 기다릴까?
▲ 그 곳에 오르면 아래도 까마득히 동료들의
부지런한 오름이 보이고..
▲ 그 걸음들이 위태롭다
여기가 하늘릿지 아니런가!....
,
▲ 이제 뒤로 남기고
아쉽게 다음 코스를 재촉해야한다.
▲ '소나타'의 열광교향곡같은 선율이 끝난 탓인가,
거짓말처럼 그 뒷 코스는 잠시
평온하고 안연한 숲길이 이어진다.
▲ 그렇게 평온한 숲길을 잠시 걸으면 너른 '잔치봉'을 만난다
2-300명은 거뜬하겠다
▲ 일명 '걸뱅이 잔치바위'란다.
산아래 여러마을에서 밥을 얻어와
여기서 생활했나보다.
빨치산의 아픈 역사도 있다하고....
▲ 거긴 멋진 소나무가 있어
포토 포인트가 된다.
소나무가 말을 할줄 안다면 '돈내라' 하겠다
▲ 거기서도 법수원 뒷쪽
아름답던 구름속 암봉이 조망되고..
▲ 대장님은 가야할 제2봉을
그렇게 바라본다.
이때만 해도 어디를 보는지 알지 못했다..
▲'잔치봉'에서 말로 성찬을 나눈후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오고..
▲조금만 오르면 원적봉에 닿는다,
언제나 인자한 하회장님.
졸리신건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千)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聖人)이 되게 했다...
설명판이 좀 간결했으면 싶다.
▲ 아! 거기서 천성산 제1봉 원효봉이 조망된다
그 앞에는 앞에는 축구장 17.4배에 달하는
12만4000㎡ 크기의 광대한 화엄늪이 있다.
참 오래전, 노포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와
저기를 올랐었다.
▲그 원적봉에서 시끄러울 때만해도
앞으로 가야할 능선들, 특히 공룡능선의
오르내림을 몰랐을 때 즐거움이다.
▲ 조금더 가면 너른 광장에 벤취들이 놓였다
미타암에서 쉽게 올라오면 이리로 오기도하고..
▲ 엷은 구름을 드리운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드넓은 억새 고원은
바람의 쟁기질을 따라 골 깊은 은빛 물결을 토해내고
철 잃은 철쭉은 신기함이 되기도하지..
▲환절기의 산만큼 빼어난 변검술사가 또 있을까?
긴 여름 숲을 빠져나와 능선에 오르면
거짓말처럼 서늘한 가을이 펼쳐졌다.
▲ 그렇게 지나고 보니
여기까지 차가 올라오는 임도가 있고
철쭉제가 엄청난 벌이었다.
▲ 아쉽지만 우리는 제1봉은 계획에 없다
제2봉을 행하여 임도와 숲길을 걷다보면..
▲ 제2봉 '비로봉'에 선다
이전에는 제1봉(920.17m)을 원효산(元曉山)으로
제2봉(852.2m, 비로봉)을 천성산(千聖山)으로 칭했다.
▲ 그러나 양산시에서 이 2개 산의 이름을 통합하여 천성산으로 변경하고,
기존의 원효산을 천성산 주봉(제1봉), 천성산을 제2봉으로 삼았다.
저 멀리 제1봉 원효봉이 보인다.
▲ 그 아래는 '내원사'가 자리하고
더 멀리는 경부고속도로와
이 산 속으로는 KTX원효터널이 관통한다.
▲천성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화엄늪과 밀밭늪이 있다.
이 곳은 희귀한 꽃과 식물(끈끈이 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 그 생태게 문제로 KTX 터널공사 당시
지율스님이던가?
목숨건 반대투쟁도 있었다
▲ 그리고 우리는 까마득한 길을 내려서
공룡능선을 향하는데...
▲ 저 멀리 뵈는 곳이 방금 섰던
제2봉 정상석이다.
▲ 거기서 미타암에서 빠르게 올라온
동료들을 반갑게 만나고..
▲ '공룡능선'이 어찌 보이지를 않는가?
길을 잘못 들었나? 깊히깊히 내려간다.
▲ 그렇게 한참을 내려서면
원효가 중생들을 모아놓고 불법을 설파했다는 집북재 에 이른다.
공간이 제법 넓어 많은 사람들이 휴식장소로 활용하는 곳이다.
▲ 깊히 내려온 많큼 다시
힘겹게 여러번을 넘나들어야 공룡으로 간다.
▲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내려가다
몇명은 그대로 하산하고
다시 봉을 기어올라
방향을 수정하기도 하고..
▲여러봉을 넘나든 끝에 시작된 공룡능선!
공룡은 침니처럼 뾰족하게 솟은 5∼6개의 연봉이
공룡의 등날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 능선은 말 그대로 들쭉날쭉한 하늘금이 압권이다.
때론 가풀막으로, 때론 직벽사이 로프로 오르지만
느끼는 스릴의 정도는 상상 이상이다..
▲ 탁 트인 조망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오른쪽 '산하동 계곡'이다
▲능선 전체가 설악처럼 보이지 않고
꼭꼭 숲에 가려있어 거기를 오르고 ..
▲ 다시 깊히 내려야 비로소
공룡이구나
알게되는데..
▲ 곳곳에 나타난 암봉과
나무들의 공생은 경탄 그 자체이다.
▲ 탁 트인 조망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면 흡사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천성의 깊은 속살까지 죄다 드러나 보인다.
▲ 그렇게 넘나든 봉들을 되돌아본다
최고봉 681봉부터
오르내림이 심했다
▲이제 여기가 마지막 봉이고
다시는 '오름' 없겠지 ...
그러나 앞으로도 여러번 있었다.
▲ 여러번 로프를 잡고 오르 내림을
계속해야한다.
▲ '편향수'
바람이 방향따라
또는 남쪽을 행하여 가지는 그렇게 아름답게 자란다.
▲그리고 마지막 로프.. 수직 직벽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했으니.
그러고도 한참을 급하게 내려와야 한다
▲ 노사연이 노래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 랑 한 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중략)
▲그러면서 그 가사는
'우린 늙어가는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 그렇게 내려서며
시원한 '알탕'도 마지막인듯하고..
▲그렇게 세월도 흘러가고
다시금 추억이 된다.
▲내려선 내원사 입구...
참오랜만에 내원사를 와본다
그 시절 천성산을 넘어 이리로 내려왔었지...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이 시는 백석이 러시아에서 자야를 기다리며 쓴 시로 알려졌다.>
▲ '자야' 김영한이 희사한 '길상사'
▲ 평생 백석을 그리워 한 '자야'..
▲ 그리고 '백석'
'山行..그리움따라 > 경남.부산.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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